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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인접한 봉제산을 거니는 이소희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기 답답할 때 바람을 쐬러 나오는 산책코스이다. 높은 산을 꿈꾸지만 낮은 산도 감사하다며 그가 웃는다. ⓒ신희수 기자 |
삶은 0.03mph로 기어가는 달팽이의 등짝 같다. 모질도록 지루하다. 숨쉬고, 밥 먹고, 잠을 자고, 오늘이 가면 틀림없이 내일이 온다. 무서운 것은 그 따분한 순간들이 사채이자처럼 차곡차곡 쌓인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양식을 수천 페이지에 적용하는 편집디자이너이자 같은 동작을 무수히 되풀이하는 스포츠 클라이머인 이소희씨는 그 두터운 반복의 힘을 안다. 때문에 그는 요행도, 지름길도,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클라이맥스도 기대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쌓고 꾸준히 다듬은 오랜 시간 위에 비로소 눈부신 한 순간이 깃들음을 믿는다. “안되면 될 때까지” 음미할수록 살벌한 경구를 읊조리는 이소희씨의 미소가 온갖 어둠과 의심과 좌절을 내쫒는 햇살처럼 따끔따끔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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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오룡차를 내려주는 이소희씨. 차와 커피는 종일 집에서 작업하는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신희수 기자 |
자세히 보면 모든 순간이 다르다
찻물이 봄 숲의 연한 녹음을 닮았다. 다도를 즐긴 지 어언 8년, “다(茶)는 배웠는데 도(道)는 도통 모르겠다”는 이소희씨의 농과는 달리 소형 다기에 온도를 맞춰 차를 우리는 과정이 제법 본격적이다. 오룡차의 검은 잎이 뜨거운 물속에서 비틀리고 굽은 몸을 서서히 펼친다. 작은 방 가득 맑은 향이 퍼진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니까 차나 커피 같은 소소한 기쁨들이 필요해요. 핸드드립이나 더치커피도 즐겨 마시고, 재질에 따라 커피 맛이 다르기 때문에 모카포트도 어느새 5개 이상 모았지요. 차도 진하고 연하고 어떤 건 텁텁하고, 미묘한 차이가 재밌어서 귀한 잎부터 티백까지 다양하게 즐겨요. 아, 그래도 맛없는 건 안 마시지만요.”
이소희씨는 책을 만든다. 이른바 편집디자이너, 그 중에서도 책 속에 삽입되는 내지 디자인이 전문이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사무실에 출근하지만 대부분은 까치산역 인근의 아담한 빌라, 자신의 집에서 혼자 작업한다.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피로를 설명하다가도 “업무량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등반하기에는 좋은 직업”이라며 프리랜서 생활에 만족감을 표한다. 책상을 다 차지하는 대형 모니터 두 대에 시커먼 활자들이 빽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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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씨는 2014년 가을 선운산 투구바위의 샌드월(5.13a)를 완등하며 13급 클라이머가 되었다. 일 년 반 동안 시간과 노력을 쏟은 성과였다. 사진=이한성(에이스클라이밍센터) ⓒ신희수 기자 |
출판업계는 대체적으로 봄·가을이 한가하다. 클라이머에겐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소희씨는 지난 가을 선운산에서 샌드월(5.13a)을 완등했고 현재 호의 기다림(5.13a)와 스피드(5.13a)를 번갈아 도전하고 있다. 선운산 암장으로 대표되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등반의 여러 종류 중 그가 가장 많은 열정을 쏟아 붓는 분야이다. 확보용 볼트가 있어 전통식 등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루트를 여러 번 반복 연습하여 최고 난이도를 갱신하는 그의 등반방식은 마스터 클라이밍, 흔히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샌드월을 횟수로 200번 이상 붙었어요. 하단부에 익숙해지기만도 일 년 가까이 걸렸으니까요. 처음엔 크럭스에서 동작조차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이소희씨가 하나의 루트를 완등하는데 걸린 세월이 일 년 반. 한겨울을 제외하면 2주에 한번 꼴로 꼬박꼬박 주말마다 선운산을 찾았다. 만기일이 정해진 적금도 아닌데, 등반에 대한 성실함이 지나쳐 오싹할 지경이다. 고난이도의 동작을 다듬어 육체의 한계 이상을 넘어서는 과정 역시 구도자의 길처럼 험난하고, 솔직히 조금 지겨워 보이기도 한다.
“남의 눈에는 암담하겠죠. 늘 같은 동작을 실패하고 항상 똑같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하지만 제 입장에선 오를 때마다 등반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져요. 조금씩 홀드가 더 잡히고, 약간 오래 버티고, 자세가 좋아지죠.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성장하는 그런 과정이 꽤 즐거워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제 등반을 완성시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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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그 중에서도 내지를 주로 디자인하는 이소희씨는 반복 작업에 익숙하다. ⓒ신희수 기자 |
깔끔하고 겁 많은 여자가 산을 만나
“겁이 많아요. 그냥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 엄청 많아요.”
이소희씨는 돌다리를 두드릴 만큼 두들겨서 확실히 안전하단 걸 확인한 다음에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할 만큼 주저가 많다. 거기다 도시여자의 예민한 성격까지 더해지면 산과 바위는 그 넓고 거침없음으로 되레 불편하고 고통스런 장소가 된다.
“등산을 참 좋아했으니까 암벽등반은 당연한 수순이었죠. 북한산을 걷다가 인수봉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기를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리안 한백오름 소속이었는데 매년 산악회에서 자체적으로 등반학교를 열었어요. 거기 처음 등록했던 때가 2000년인가,”
허나 이소희씨는 당시 교육을 끝내지 못했다. 중도 포기한 이유가 걸작이다. 매주 비박이 포함된 장기등반이 진행됐는데 종일 못 씻고 야외에서 자는 곤혹스러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도시적 청결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었던 당시의 그에게 암벽등반은 마음에는 들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이었다. 이소희씨가 다시 등반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7년 후였다.
“인생의 큰 변화가 몰려왔던 시기였죠. 생활에 치이고 세상에 시달리고,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삶의 의지랄까, 그런 게 필요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한백오름 등반교육을 받았지요. 7년 전에는 도저히 못 참겠던 것들도 그때는 덤덤히 견뎌지더군요. 산은 찌들어가는 제 삶의 탈출구가 되어주었어요. 산이 없었다면 아마 그 시기를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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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소설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지만 그 중 이소희씨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책은 한국차문화자료집이다. 50권에 달하는 이 전집을 위해 그는 기초자료 수집에서 편집디자인, 양장본 작업까지 관여했었다. ⓒ신희수 기자 |
157cm 아담한 체구의 여자가 거대한 야영배낭을 매고 지하철을 타면 숙덕숙덕 객실 안 모든 도시인들의 시선이 시끄러웠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이면 인수봉이나 선인봉 아래에서 비박을 하는 생활이 2년 이상 계속되었다. 최선을 다해 열정을 바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지친 삶에 위안이 된다. 그 2년 동안 이소희씨는 국내 무수한 산의 암릉과 암벽을 올랐다. 대부분 후등이었다.
“워낙 겁쟁이니까. 그리고 사실 전 후등으로 따라가는 것도 충분히 즐거웠어요. 선등만 등반인가 뭐. 그래도 언젠가는 앞에 나서야지,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는데 막 선등을 시도하던 시기에 공교롭게 스포츠 클라이밍을 만나게 됐죠.”
스포츠 클라이밍은 끈기, 근성, 포기하지 않는 재능, 이소희씨의 강점이 가장 빛나는 분야였고 등반실력은 쑥쑥 자라 꽃처럼 활짝 피었다. 두 번의 태국 프라낭과 한 번의 스페인 로데야르 등반 여행으로 더욱 성장한 그는 갈망하던 5.13급 클라이머가 되었다.
“다들 제가 등반을 금방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어요. 키도 작고, 밸런스도 등반 감각도 좋은 편이 아니니까. 근데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게 제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죠.”
스포츠 클라이밍으로 가장 큰 성취를 이뤘지만 사실 이소희씨가 꼭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건 아니다. 겨울이면 빙벽에 미쳐 지내고, 드라이툴링 대회에 꼬박꼬박 참가하며, 인공등반도 배웠고 더운 여름엔 멀티피치 등반을 즐긴다. 무엇보다 그는 여전히 산을 사랑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 스스로 끈질기고 독하다고 인정하는 성격답게 이소희씨의 최종 목표는 70살까지 등반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식의 등반이건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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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씨는 스포츠클라이밍 외에도 빙벽등반, 드라이툴링, 인공등반, 멀티피치 등 다양한 등반을 즐긴다. ⓒ신희수 기자 |
크고 덤덤한 인연과 작고 소박한 삶
70살까지 누구와 등반할 것이냐고 묻자 이소희씨가 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그는 익스트림 라이더 강사이자 5.14급 등반가인 강인철씨와 유명한 클라이머 커플이다. 등반과 인생을 함께 나눈 지 이제 5년차에 접어드는 이들은 인터넷 등지에서 부부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나야 상관없는데 인철씨 혼삿길 막힐까봐 걱정이지요” 개구지게 웃다가도 “나중에 늙어서 힘없어지면 같이 살아야죠” 함께 할 미래를 떠올리는 목소리가 찻물처럼 웅숭깊다.
“22년 동안 책을 만들었으니 할 만큼 했죠. 이젠 나이도 있고,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다보면 눈이 시려요.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더 늙으면 한적한 시골에서 소욕지족하며 살고 싶어요. 차를 덖거나 작은 카페를 하면서.”
조용하고 작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 그의 성품을 닮았다. “내가 요만한 사람이니까” 이소희씨는 꾸역꾸역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 상처 받을 필요가 없음을 안다. 무거운 짐을 메지 못하고, 등반실력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겁이 나서 선등을 나서지 못할 때도, 그것이 자신임을 담담히 인정했다. 불확실성에 대항해 아슬아슬한 모험을 떠나기엔 주저가 많은 성격이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자신을 다듬어 나아가는 끈기와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는 의지는 그의 어깨에 한 쌍의 날개처럼 달려있다.
“바쁠 땐 하루 종일 일하지요. 집에서 작업하니까 일터랑 휴식공간이 구분되지 않아요. 등반과 책을 만드는 일은 뭔가 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즐겁다가도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되고, 지루한 순간이 많죠. 10년 후엔 해외 등반을 다니면서 세상 구경을 하는 게 꿈이에요. 일단 내년에는 라오스에 등반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모든 클라이머가 그렇듯 그도 먼 곳의 꿈을 꾼다. 그러나 이소희씨는 구름 위의 별을 보느라 발걸음을 잘못 디딜 사람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충실하게 하고 그 뒤의 결과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한다”는 매일의 다짐이 묵직하다. 기대를 줄이는 대신 노력을 쏟아 부어 그의 시간은 무시무시한 밀도를 갖는다. 그러고 보니 이소희씨의 공간에는 견디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의 소소한 위안으로 가득 차 있다. 거실엔 향 내음이 은은하고 건너 방에 조용한 불경 소리가 흐른다. 좋은 차의 마지막 한 모금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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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씨가 영월 빙벽을 오르고 있다. ⓒ곽태영 |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
모니터만 바라보는 하루가 답답할 때 그는 집 근처의 봉제산을 걷는다. 낮고 부드러운 동네 뒷산, 이팝나무 꽃잎처럼 하얀 이가 드러낸 이소희씨의 미소가 화사하다. 잘 웃고, 눈물 많고, 전광판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속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 “지금은 등반이 재밌으니까 계속할 뿐”이라는 가벼운 언급 뒤에 “40년 이상 살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건 등반 밖에 없다”는 애틋한 고백이 따라온다.
“예전에는 일할 때도 겉멋 같은 게 있었어요. 화려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고 원색이 예뻐 보이고. 이제는 하얀 바탕에 글씨만 가득한 속지에서 무색무취한 아름다움을 봐요. 남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미묘한 차이에 뿌듯해하고. 등반도 그래요.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음에 감사하게 돼요.”
잘 되건, 잘 되지 않건, 끔찍하게 지루하건, 계속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어쩌면 아주 용감한 클라이머인지도 모른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웃으며 던지는 모진 말이 무섭도록 담담하다. 그가 쌓아온 노력과 의지의 나날이 가는 어깨 아래 흰 날개로 돋아나는 것 같다. 과연 이소희씨는 어디까지 날아가게 될까. 초여름 하늘이 새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