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현수간
'그리움이 간절하던 차에 주신 편지를 받으니 위로됩니다. 근래 형편이 좋지 않음을 알았으니 근심이 참으로 깊습니다. 저(성혼)는 남은 생명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중략) 숙헌(이이)이 근래 진상(나루터)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의 집 조금 넓은 곳에서 사 오일 공부하는 자리를 만들어 <대학>, <논어>의 음석(음을 달고 해석하는 것)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형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다면 올바름을 취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우계(성혼)가 구봉(송익필)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이다.
지금으로부터 오백여 년 전, 인생을 논하고, 학문을 논하고, 삶의 철학과 사상을 논하고,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던 세 학자가 있었다. 구봉 송익필(1534~1599), 우계 성혼(1535~1598),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다. 비슷한 연배의 이 들은 조선 중기 파주에 살며 우정을 쌓았던 대 성현들이다. 이기와 심성, 사단, 예론 등 진지한 학문 토론과 처세 등을 나눈 이들의 편지글은 삼현수간(보물 제1415호)이라는 책으로 엮여 지금까지 전해온다.
'나(송익필)는 우계 성혼, 율곡 이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지금 둘 다 세상을 버리고 나만 살아있다. 지난 전쟁으로 두 친구의 글이 흩어지고 없어졌지만 아들 취대가, 남아있는 글과 잡다한 기록을 모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를 모아 죽기 이전에 보고 느끼는 자료로 삼기로 하였다' 서문에서 송익필은 삼현수간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삼현수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시간
파주시 주최, 파주이야기가게(대표 이윤희) 주관으로 총 12회에 걸쳐 진행되는 ‘파주삼현의 발자취를 찾아서’는 20대 중반부터 35년간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유한 세 분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파산서원 앞에서
4월 30일 첫 회를 시작으로 벌써 3회가 진행됐다. 기자가 동행한 날은 법원읍 웅담초등학교 전학년, 총 43명 중 42명이 참가한 전교생의 소풍이었다. 강의를 맡은 이윤희 대표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웅담리 마을의 유래와 근처에 있는 포수바위의 전설을 들려주며 공감대를 나눴다.
첫 번째 찾아간 곳은 파산서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호/파평면 파산서원길 24-40)이다. 파산서원은 조선 후기 서원 철폐령이 내려 전국 천여 개 서원 중 47개만 남고 모두가 철폐될 때 파주의 서원으로는 유일하게 남게 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 서원의 역할과 기능, 배향 인물(성혼, 성수침, 백인걸, 성수종) 등을 알아봤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 앞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아이들은, 옛날 학교에서는 제사도 지냈다는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삼문 앞에 서서 세 개의 나란한 문 중 들어가는 문(東入)과 나오는 문(西出)을 알려주고, 가운데 있는 넓은 문의 용도를 묻자 한 어린이(5학년 남궁 빈)가 ‘영혼이 다니는 문이요’하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어찌 알았느냐 물으니 할아버지 제삿날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오시니 문 열어드려라’ 하고 시켰기 때문이라 한다.
두 번째 찾아간 곳은 화석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파평면 화석정로 152-72)이다. 화석정 아랫마을은 율곡 선생 선대의 세거지로 ‘율곡’이라는 호가 이 마을에서 비롯됐다. 정자 안에는 어린 율곡이 여덟 살 때 올라서 지은 ‘팔세부시’가 걸려 있다. ‘하늘에 닿아 푸른 임진강물, 서리 맞은 단풍의 붉음, 저녁 구름 속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노래하며 나라를 걱정한 어린 율곡의 이야기와 ’나도 밤나무‘ 전설을 듣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어 찾은 곳은 율곡이이유적지(사적 제525호/법원읍 자운서원로 204)이다. 이곳은 연 방문객 10만여 명이 다녀가는 파주의 대표적 유적지로 율곡 선생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고자 조선 중기(광해군 7년)에 건립되어 효종 임금 때 사액을 받고 율곡 선생과 그의 후학인 김장생, 박세채 세 분의 제향을 모신다.
자원서원 사당(아래 왼쪽)과 동재(아래 오른쪽)
기념관에서 영상을 통해 율곡 선생의 삶과 업적, 십만 양병설이 주는 교훈 등을 알아보고 13기의 가족묘가 있는 묘역 공간으로 향했다. 묘역 공간엔 율곡 선생 묘를 비롯한 신사임당 부부묘가 위 아래로 배치돼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친동생을 챙기듯 어린 동생들을 챙긴다.
율곡이이묘 이원수,신사임당 묘
다음으로 우계 기념관(파주읍 성현로 60-20)을 찾았다. 성혼 선생은 율곡 선생만큼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니나 전국의 향교에 모셔진 동국 18현 중 한 분이다. ‘만일 견해의 도달한 바를 말한다면 내가 약간 낫다고 할 것이나 지조를 삼가고 지키며 실천함에 있어서는 내가 미칠 수 없다.’ 성혼 선생을 평한 율곡 선생의 표현이다. 가까운 이를 향한 애정과 존경이 드러나는 표현이라 하겠다.
우계기념관
우계 사당을 지나 묘역 공간에 이르면 성혼 선생 부부묘와 성혼 선생의 아버지 청송 성수침 선생의 묘가 있다. 간소한 묘비를 보며 자신의 묘비에 아무것도 쓰지 말라 한 소탈한 심성과 아버지가 위독할 때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썼다는 효심을 이야기했다.
우계선생 묘(왼쪽 위) 및 묘비(오른쪽) | 우계사당(왼쪽아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구봉 송익필 선생 유허비(산남동 183-3)이다. 다른 두 분에 비해 파주에 남은 관련 유적지가 부족한 편이다. 소설 <단>의 주인공인 고 봉우 권태훈 선생이 구봉 선생을 조선시대 최고의 도인이라 칭송하며 1991년 심학산 자락에 세운 비석이다. 구봉 선생은 파주시와 고양시의 경계 지역에서 태어난 당대 8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이다. 율곡 선생은 ‘성리학을 논할 만한 사람은 오직 송익필 형제뿐’이라고 할 만큼 그를 존경했다.
구봉선생 유허비
모든 과정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훌륭한 조상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 본받고 싶다’라는 말로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유튜브 영상으로 미리 공부하고 왔다는 3학년 담임 이지혜 선생은 “저학년들은 조금 어려웠겠지만 우리 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세 분의 학자처럼 함께 한 어린이들 또한 두고두고 우정을 나누며 학문과 사상, 감성을 공유하는 좋은 벗들이 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료로 현재 12회분 모두 참가 신청이 마감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신 ‘방촌선비학교 체험학습장’, ‘옛 의주대로 답사’ 등 문화재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니 참여해볼 만하다.
※ 문화재 체험 프로그램 문의 : 문화관광과 문화팀 940-4356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
출처 : 파주시 싱싱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