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역사 2층 카페에서 대합실의 궁륭 천장을 내다보았다. 천장 중앙에 그네처럼 매달린 디지털시계의 초록불이 22:20에서 22:21로 바뀌었다. 막차 출발 시간이 9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시계에서 눈을 거두어들였으나 나는 그를 바라보는 대신 그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주시했다. 이미 십여 분 째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음만 남은 그의 유리 커피 잔은 조명 램프에 의해 스크래치가 언뜻언뜻 비치는 버건디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반 이상 남은 내 커피는 언젠가부터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조금 전 플랫폼으로 이동해 역사 대합실이 텅 비었다. 카페에도 그와 나뿐이었다.
어디선가 철과 철이 마주치는 듯한 둔탁한 충격음이 이따금 들렸다. 그러나 거대한 궁륭의 공명 효과 때문인지 소리는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아련하기까지 했다. 충격음 사이사이로 바람소리가 다가왔다 멀어졌다. 대합실 유리창 밖에는 역청 같은 어둠이 고여 있었다.
22:21이 22:22로 바뀌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을 빳빳하게 펴서 그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악수의 손길이었다.
그가 내 손을 보고 이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일어서지도 내 손을 맞잡지도 못했다. 1분이 흘렀다. 나는 8년의 시간을 거두어들이듯 손을 거두고 말했다.
“잘 가요.”
그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더니 끝내 아무말이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카페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도인지 의식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통로에는 늦은 귀가 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긴 터널을 따라 바람이 훑고 지나가더니 행선지를 알리는 기계음같은 안내 방송과 함께 천천히 지하철이 멈춰섰다.
지하철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어느새 철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차창 너머 기차를 위한 철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 섬 위에 세워진 빌딩의 꼭대기에서 등대처럼 반짝이는 불빛은 마치 강물에 일렁이는 듯 했다. 착시였다.다리를 비추는 조명이었을 뿐이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나무에선 벚꽃이 하얗게 빛나고 있지만 강물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빠르게 다가오던 기차가 스치듯 지나갔다. 불 켜진 차창 안 어딘가에 그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다시 한번 그와 작별했다. 이젠 안녕.
어쩌면 나에게 하고 싶은 인사였는 지도 모른다.
그는 막차를 간신히 탔다. 그녀가 먼저 일어서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도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는 그녀의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를 보았고 하얗게 질린 그 손을 차마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았더라면 언제나 한겨울처럼 차가웠던 그 손을 잡았더라면 그는 절대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열차는 시속 315㎞/h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언제든 그녀에게 전화하면 적재의 ‘별 보러 가자’ 가 흘러나왔고 노래가 끊기면 웃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가 그녀를, 그녀가 그를 미소짓게 하던 때였다.
그녀는 기차를 타고 떠났고 나는 그때처럼 혼자
남았다. 혼자서 한참 생각했다. 8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이별이었다.
달라진 거라곤 그녀가 그땐 백팩을 들었다면 지금은 케리어로 바뀌었다. 소슬한 경계가 느껴지는 악수와
말로 다 할 수 없어 안하는 것도 있겠지만 밀어내는 마음이 느껴지는 슬픈 느낌 또한 다른 게 없었다
그는 혼자 사는 연제구 집에 도착했을 때는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도 엄청난 피곤함이 밀려왔다. 씻지도 않고 자리에 누웠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그녀는 광명역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것이다. 자꾸 시계에 눈이 갔다.
부산으로 내려와 10 년 째 줄곧 살고 있는 연제구에있는 아파트는 그녀가 연애시절 추천해 준 아파트였다.
부산지역은 처음이라서 첫 부임했던 학교 동료가 그녀였다. 잘 웃고 상냥했던 그녀였다. 물론 한 때였지만 그랬던 적도 있었다. 그녀는 국어교사였고 나는 미술교사였다. 방학이면 그림 전시회도 같이 서울로 여러차례 갔었다. 어느 해엔 같은 고 3 담임이어 여러면으로 공감대가 많아 빠른 시간안에 친밀하게 지낼 기회가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 7시면 이 집을 나와 학교로 출근하고 저녁 8 시면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런 집이 지금 그는 참 낯설었다. 그녀와 다시 헤어진 것보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함께 한 좋았던 추억이 없어져버린 머릿속이 가난한 사실이 슬펐다. 그래도 그때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잘 가요. 그녀가 했던 인사말은 예의바르지만 어떻게 들으면 마음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같아서
오히려 견딜만했다.
나는 그녀가 늦은 시간 조심히 들어가고 따뜻하게 말했으면 많이 슬펐을 것도 같았다. 잘가요. 그건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더 적절했다. 잘 지내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자기 본위에서 하는 인사말까지도 그대로였다.
뭐 어쩌겠어.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라면 기꺼이 존중하기로했다.
그래서 그는 정말로 자기길을 잘 가기로했다.
그가 그녀를 만나고 온 지 보름이 지났다. 자기길로 잘 가기로 마음 먹은 것과 그의 행동은 별개였다.
그는 일에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그녀가 악수를 청하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그녀의 손을 맞잡지도 못한 그의 태도가, 8년의 시간을 아무일도 아니었다는 듯 거둬들이려는 재스처였
는지, 아니면 그녀와 끝내기에 미련이 남았다는 뜻이었는지,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그는 머릿속의 그녀를 밀어내려고 평소보다 수업준비에 더 몰두했다. 책장의 맨 아래칸에서 LP판 크기
만한 화집을 꺼냈다. 방바닥에 화집을 놓고 한 장씩 넘겼다. 그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었지만, 요즘 아
이들이 보면 어떤 느낌일지, 어떻게 설명해야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서 너페이지를 넘기던 그의 손이 멈췄다. 프랑스 남부 아를을 배경으로 한 그림 속의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8년 전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그림이었다. 두 사람은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그림에서 상하의
시간차가 느껴져서 좋다고 했지만, 그녀는 검은 불꽃 같은 사이프러스 나뭇잎이 눈에 거슬린다고 했다.
그는 그녀와 마주 앉았던 카페에서 언뜻언뜻 조명에 비쳤던 버건디 테이블의 스크래치가 떠올랐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 그녀는 화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별을 보러가자고 했었다. 화가가 그린 별과 그녀가 가리키는 별과 그가 생각하는 별이 있었
다. 누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별과 하늘이 아니었다.
"사람만 늙는 게 아니야. 사랑도 늙는 거야. " 애숙이 혀를 차며 말했다. "세정아. 너흰 지금 사랑의 노화 증상을 겪고 있는 거야. 느슨하고, 헐렁하고,무덤덤해지고,...연애 8년이면 권태기가 몇 차례 올 만도 하지......" 짐찟 시니컬하게 내뱉으며 내 목소리의 반응에 귀와 신경을 곧두세우고 있을 애숙의 얼굴이 그려졌다. "아냐. 이번엔. 진짜 끝났어. 우리 연애. 수명이 다한 거야." 권태기면 회복이라도 가능하지. 노화증상이라면 필러나 보톡스, 리프팅으로 지속성을 보완이라고 할 수 있지, 낡은 물건이라면 재활용이라도 할 터이건만. 우리 사이는 이미 마침표와 도돌이표, 종결과 완결, 시즌1, 시즌 2 등의 연애 과정을 수차례 거쳐오고 거쳐와 이젠 종점을 더는 물릴 수 없는, 시효만료된 관계라구.... 재생불가능한 사망.... 내 머리 속에는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와 마지막 이별을 하던 날 역사 2층 커피숍의 장면이 스쳐갔다. 우리 관계처럼 무수한 스크래치 자국이 배인 빛바랜 버건디 탁자. 철이 맞부딪히는 충격음이 울려도 아무런 충격으로 못느끼는, 그저그런 일상으로 넘어가는 무덤덤함. 그와 내가 바로 그러했다. "아니, 세정아. 그러지 말고...이번에 캠핑 가서 ...뭔가 특별한 충격을 준하씨한테 줘보면......, 아이 참, 내가 다 속상하고 화가 나네. 그러게 세정아.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비혼주의자인 준하씨와 애시당초 빨리 끝내라구...네가 고집부릴 때부터 알아봤어. 준하씨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근무지 옮긴 것도 예전 애인이 결혼식 올리자는 것 피해서 왔다고 했지. 아무리 남자가 잘생기고 허우대 좋고 매너좋으면 뭐하니... 이 맹꽁아.. 너는 준하씨 마음 돌릴 자신이 있다더니....그러게....나처럼 임신이라도 해서라도 결혼식 올리자고 적극적으로 나가라고 했잖아. 여자 나이 서른 중반이면 똥값 취급받는 것도 알 텐데....준하씨. 네가 말리지만 않았다면 내가 멱살이라도 잡고....하. 증말......연애를 했으면 마무리를 해야할 거 아냐...이 나쁜...." 애숙의 목소리는 걱정과 안타까움과 위로와 나무람과 우월감이 믹싱된 칵테일 같았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칵테일을 끝까지 다 마시고 낮게 말했다. "미안해. 애숙아. 모처럼 캠핑 함께 하자는 거였는데. 너에게도, 동민씨에게도. 네 뱃속 아이에게도 모두." 핸드폰을 끊으며 나는 혼자 되뇌었다. '그게 다가 아냐, 애숙아... 네가 모르는 또다른 이유가 있어...' 불꺼진 거실에 저녁 어둠이 스며들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우드버티컬을 올렸다. 봄바람을 타고 마지막 벚꽃들이 눈꽃마냥 흔들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키를 챙기고 현관을 나섰다. |
자동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집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대로 집에 머물다가는 집과 함께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시동을 끄고 차밖으로 나왔다.
실외 주차장까지 오면서 내 시야를 가렸던 벚꽃들을 분명 손으로 쳐 냈었는데, 이제야 그것들이 보였다. 누가봐도 아름다웠다. 벌써 몇 해를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헤어짐을 준비하던 때에 설악산을 갔었다. 새 계절을 준비중인 초가을 낙엽들의 잎 끝이 붉은색을 띨 무렵이었다.
'지금까지는 끝만 색이 변했지만 곧 잎 전체로 퍼져 온통 붉은색으로 탈바꿈하겠지. 물들지 않은 부분들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할까!' 밀어내고 싶을까! 나는 잎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꼭 나같아서.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해 몸 한쪽에 다른 색을 품고 있는 나같아서.
애숙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애숙이 생각한 그림은 내가 먼저 그렸던 그림이었다. 별이 빛나는 하늘 밑 풍경, 애숙의 가족과 나의 가족들, 그와 애숙의 남편사이에 나와 애숙이 앉아있고, 아이들은 텐트 안에 잠들어 있는, 아주 평범한 가족 나들이 풍경. 애숙과 나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얘기를 할 것이고 얘기가 끝나면 그주에 시작하는 미니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 이런 시절이 지나면 애숙이 말한 '사랑의 노화'도 오겠지. 불탔던 사랑도 시큰둥 해 지겠지. 그럴수 있는 거니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나는 애숙에게 하게 될까! 그렇다면 애숙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득 애숙을 걱정하는 내가 역겨웠다. 모든 것은 내가 감내하고 내가 정리해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언제쯤 수긍하게 될런지!
나는 차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편안하게 나를 안아주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어떤 물음없이 마음을 달래주는 곳으로 나는 핸들을 돌렸다.
한강 반포지구 2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샀다. 달빛광장 쪽은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다리 서쪽 강가에 앉았다. 들리는 음악 소리와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안전한 느낌이 들었고, 적당한 봄바람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 강물의 일렁임이 나를 매만져 주었다.
캔 뚜껑을 열어 미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를 이제는 받아들이고 싶다.
두 달 전, 부산 그의 아파트로 찾아갔었다.
우리 사이에 미세한 스크래치들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나에 대한 지루함인지, 나와의 연애에 대한 권태인지, 비혼주의자라서 결국은 이쯤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에게 끝이라는 결론을 듣는 게 아니라, 사랑이 사라진 듯한 그와 나를 다독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물 두 컵을 가져와 탁자에 나란히 놓고 나는 그와 조금 떨어지게 소파에 앉았다.
“거리가 마음을 멀게 했네.”
나의 말에 그는 조용히 물을 마셨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네게 처음부터 아니 중간쯤에라도 털어놓지 못한 얘기가 있어. 내가 너와 보낸 시간들이 다 거짓은 아니었다고 미리 얘기해두자. 세정아 그건 믿자.”
그는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손을 맞잡았다.
“성인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난 다짐을 했어. 결혼은 안되겠다고. 누군가를 속이며 살 수는 없는 거잖아. 미래의 아내와 아이와 가족들...”
그는 말을 멈추고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떴다.
“널 처음 만났던 8년 전을 잊을 수가 없어. 싱그럽고 찬란해서 난 내가 바뀔 줄 알았어. 그러길 바랬어. 조심스럽게 나를 다잡았어. 긴 시간을 주저하던 내게 더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웃던 너를...........내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난...........여자를 좋아하는지 남자를 좋아하는지 오래도록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웠던 사람이야.”
그를 응시하는 나를 그는 여전히 외면하며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왜...처음부터...그 많던 시간 동안 한 번도 안 한 얘기를 왜........당신, 몰라? 6개월보다 1년이 깊은 거? 5년은 감당도 못 할 만큼 8년이 깊다는 거? 왜 나의 시간들을, 당신을 바라보던 나를 지금 부수는 건데?”
생각을 차분하게 하려 할수록 나오는 말은 더듬거렸다.
“내가 모르는 그 남자는 나를 알고 있니?”
“...”
“혹시 민석씨야?”
“...”
“당신을... 부모님은 알아?”
“아니.”
그가 가졌던 고통이 내게로 옮아오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으면 금방 떨어질 듯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나와의 섹스는...노력이었니?”
침묵은 이어졌다.
“나는 무방비상태지만 당신은 내 말들에 대한 답변들을 준비해 놨을 거 아냐.”
그는 결론이 있었고 나는 결론이 없었던 그 날은 그렇게 오래도록 침묵이었다.
나는 엉클어진 마음을 안고 서울로 돌아와야만 했다.
' 홍세정씨 핸드폰 맞습니까? '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핸드폰을 켜니 모르는 번호에 뜬 내 이름 석 자가 보였다. 화면을 밀어내는 손끝이 딱딱해졌다. 매끄러운 화면과 맞닿으니 '톡' 소리가 났다. 전체 문장이 뜨자 내 미간은 점점 좁아졌다.
'준하 친구 송민석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 번호로 전화주세요.
저녁 8시 이후엔 늦더라도 언제든 통화 가능합니다.'
구태의연했던 연애기간을 만회하려는 듯 나는 꽤나 경쾌해지려고 애쓰는 중이였다. 숏 컷에 숏 재킷, 숏 스커트, 숏 부츠... 무겁고 치렁치렁한 것들을 벗어던졌다.
추억조차 부끄러웠다. 달아나고 싶었다. 신이 노여워 할 것 같아 뒤돌아 보고 싶지 않았다. 화산 폭발로 그대로 굳어버린 폼페이 유물처럼 그와 함께 한 시간도 그렇게 정지됐다.
지금와서 굳이 연락 할 이유가? 민석에게 문자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건 내 자신이었으니까. 연인에게 다른 연인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가능성을 붙잡았던 여자가 갖는 자괴감이었다.
망설임 끝에 번호를 누르자 두 번째 신호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중저음의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세정씨? 반갑습니다. 부산에서 어제 올라왔어요."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굳어버린 화산섬에 쌓인 화산재들이 툴툴 날아올라 내 얼굴을 덮쳐 하얗게 질식시킬 것 같았다. 화석들의 정체가 드러날 수록 비참해질거라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불쑥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우리 만나요. 전화로 할 수 있는 대화가 아니거든요.
제가 세정씨 퇴근 시간에 맞춰 학교 부근으로 가겠습니다. "
민석과 약속한 날은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바람 탓을 하다보면 내 탓도 줄어들겠지. 그래, 내가 둔한 게 아니라 준하가 철저했던거야. 습관처럼 변해버린 관계에
사랑이란 단어를 엮다보니 이런 식의 착오가 생긴거야.
커피숍의 육중한 회전 유리문에 올라타며 마음을 다잡았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죠?"
준하가 세정씨를 그렇게 오래오래 만난 이유를 알 거 같아요 ."
곤혹스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금새 미소를 지어내는 민석의 모습에서 세정은 왠지모를 모성애를 느꼈다.
"민석씨랑은 미술학원 입시동기라고 들었어요.
저보단 훨씬 오랜 인연이신데요 뭘..."
그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향긋한 쟈스민 차를
음미하며 세정은 민석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22:21 전광판의 숫자가 아직도 내 눈앞에서 선명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준하를 한번은 만나야 했다. 며칠 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그의 기사를 보았다. 역대 최연소와 현직 교사, 두 가지 사실로 그가 있는 지방뿐 아니라 중앙 메스컴을 충분히 휘어잡고 남을 사건이었다. 나는 기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스터디 팀원이었던 준하와 어떤 이유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토론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세정과 나 사이에 그가 자리 잡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 나는 세정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 눈에는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는 그가 김산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해 말 임용고시에서 준하만 합격했다. 그가 부산에 있는 학교로 발령 받고 떠나자 술에 취한 세정이 고시원으로 찾아 왔다.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 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세정은 부산에서 기간제 교사 자리를 찾아 떠났다. 차라리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춥고 비참한 겨울을 3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동면하듯이 보냈다. 절망과 분노가 나를 국어 교사가 아닌 시인으로 만들었다. 첫 시집을 내고 운 좋게 국제 예술 교류 지원금을 받은 나는 중국으로 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예정 없이 연기되는 세정과 그의 결혼소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이라는 희망고문 대신에 낯선 땅에서 숨이 끊어질 듯 아픈 시를 쓰겠다는 포부였다. 김산을 찾는 탐사는 연해주에서 시작되었다. 상하이와 광동 꼬뮨이 있었던 광저우까지 김산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도서관과 감옥 방촌 마토우까지 샅샅이 훑고 다녔지만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 어쩌면 김산이라는 인물은 익명이거나 가공된 인물일지도 몰랐다. 자료수집이라기보다는 객기와 겉멋이든 자세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광저우에서 재중역사학자인 강정애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신해혁명 연구자인 강박사가 보여준 자료는 아리랑에서 알려진 김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소설화된 인물을 위해 발설하면 안 되는 비밀 하나를 떠안게 된 셈이었다. 내가 찾던 김산은 서양 중년 여성인 님 웨일즈의 눈에 비친 사랑스러운 청년 공산당일뿐, 준하와는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김산을 내려놓으며 준하와 세정과 함께 한 일들을 거짓말처럼 잊고 살았다. 두 번째 시집 『아나키스트를 위하여』가 출판되고 여러 곳에서 인터뷰가 있었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 라는 무책임한 말이 허무주의로 포장되고 기사화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비혼주의가 되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산. 이름을 지운 자리는 공터가 되고 말았다. 의미는 빠르게 사라졌고 지어내던 시는 우물이 마르듯 고갈되었다. “시민 여러분이 저를 여기로 불러냈고, 그 부름에 응답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는 기사와 강준하의 사진을 본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층 깊은 곳에 매몰되어 있다가 기회가 오면 생살을 드러낼 뿐이다. 풀잎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통증보다 먼저 배어나오는 핏물 같은 시를 다시 쓰고 싶어졌다. 그를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전화번호는 8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그가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주홍글씨가 두려워 세정을 핑계로 자신에게 비겁한 평화주의가 되도록 강요했다. 전광판의 숫자가 22:22로 바뀌었다. 준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세정의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통통 튀는 목소리로 한두 달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안부를 물었다. 나쁜 짓 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이마에 땀이 솟았다. 그녀는 내가 뭘 하는지 물었다. 글 쓰는 일을 한다는 말에 지금 어딨는지를 물었다. 약속이 있어 서울역으로 간다고 하자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준하를 두고 먼저 일어설 결심을 하기 까지 마음속에서 우리가 알아온 십 년보다 더 긴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는 가진 것도 많아 지켜야할 것이 많아진 그를 세정에게 돌려보기로 했다. 세정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잘 가요.” 그의 말이 쇠막대기처럼 날아와 귀에 박혔다.
서울역에서 나와 한강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주차장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반포대교 화려한 조명을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민석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머그잔을 들어 조금씩 홀짝거리며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인지 아니면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분명한 것은 그의 신중하고 정중한 태도는 마치 나의 허락이라도 구하려는 분위기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설마 이 남자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이라도 하려는 걸까.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내는 탁자의 둔탁한 소리와 잠깐의 고요한 침목이 흘렸다.
“세정 씨! 준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8년은 아주 긴 시간이지만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만큼 충분했다고 보나요?
준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지요.
서로가 미술을 좋아했고 미대에 가기위해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게 되었지요.
준하의 훤칠한 외모와 사려 깊고 절제된 태도는 친구들로부터 정말 인기가 많았답니다. 나도 그런 준하를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지요."
"민석씨! 친구로서 친구를 이해하는 것과 이성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게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동성 친구에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나와 준하의 8년 중 3년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서로를 많이 보았고,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다른 교사들과 관계를 통해서도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들었고 보았다.
어쩌면 나는 그가 첫 부임 인사를 하던 그날부터 사랑했던 것 같다.
그는 외모만큼이나 자신감도 폐기도 넘쳐났으며. 그 멋진 모습을 본 젊은 여교사들은 한껏 부풀어 올랐고 서로 호감을 보이려 애썼다. 그 시절 나는 홀로 객지 생활하는 외로움과 초보 교사로서 입시에 예민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친한 친구들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한 달에 한 두 번 밖에 만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때 그 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책을 봐도 흥미는 예전 같지 않았고, 스물 스물 스며드는 허전함에 주말이면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며 보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이였다. 단풍들은 형형색색 화려한 색으로 물들고, 맑고 산뜻한 공기와 시릴 만큼 푸른 하늘에 간간히 떠다니는 하얀 구름 등, 세상이 여느 날보다 아름답던 그 날도 나는 홀로 미술관을 찾았고 예상대로 관람객은 적어 호젓하였다. 모처럼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하며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다양한 도형과 선, 점, 음표 등으로 구성된 한 작품에 이끌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시선이 자꾸만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어떤 사내가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스폿 라이트가 비친 밝은 곳을 주시하다가 그보다 어두운 공간에 눈이 적응하려는 몇 초의 순간에 상대는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 왔다. 그가 바로 준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의지로 같은 공간에 존재했고 같은 것을 보려는 의지가 서로를 연결시켜 주었으며 그렇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관계를 발전시켜 갈 수 있었다.
나의 유아 시절은 무남독녀로 혼자 노는 것에 익숙했고 놀이의 대부분은 세트로 만들어진 인형의 집과 그림책을 보며 자랐다. 이 놀이들이 시들해질 즘에는 크레용과 색연필로 하얀 백지에 신이 천지창조를 하듯 나만의 세상을 만들곤 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나는 형제가 없다는 사실에 자주 슬픔을 느꼈다. 친구들은 오빠 언니 동생들과 집에서도 재미있게 놀았고, 밖에서는 든든한 힘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러웠다. 친구들이 형제와 놀 때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시간을 대신하였고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결국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신춘문예를 비롯해 여러 등단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조차 좋은 평가와 주목을 끌지 못하여 결국 글쓰기를 포기하고 교사로 방향을 튼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많은 형제가 있는 친구들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유대감은 든든함 그 자체였다. 또한 나와 부모만 있는 가족에게서 볼 수 없는 젊은 활기가 집안의 분위기를 가득 채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정 씨! 준하가 아주 힘들어 합니다. 당신과 작별 후 찾아든 상실감은 세정 씨만 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어요. 이제까지 준하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죠. 준하가 세정 씨를 정말 많이 사랑하기에 곧 결혼하리라 믿었거든요. 저도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평소 생각이 깊고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보이는 친구였기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지요. 그러나 이제는 준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준하가 세정 씨 손을 꼭 잡지 않은지를... 아마 저라면 준하처럼 행동할 수 없었을 겁니다.
준하는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찾았고 그 여인을 세정 씨로 생각했고 또한 세정 씨 마음도 같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준하는 고민을 하더군요. 세정 씨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그런 세정 씨의 행복한 꿈을 깨트릴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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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을 잊으려할 수록 지난 추억은 왜 더 선명해지는 모르겠다. 부산에 부임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 미술관에서 세정을 마주한 그 날을 인화지에 투영된 사진처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미술관에서 간딘스키의 작품 “고요한 사건”을 한참 동안 꼼짝 않고 응시하는 한 여인의 옆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여 그녀가 움직일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그녀도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고개를 내게로 돌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몇몇 젊은 여교사 중 네게 쏠리는 관심을 모른 척 외면하였지만 세정이의 단아함과 화사한 얼굴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고 다른 여자에게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정서적 품성이 어쩌면 나와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학교에서의 이성 교제는 워낙 이목과 눈길이 많아 마음을 전하기 어려웠던 중이였다.
그 날 화창한 주말을 맞아 친구가 내려오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이번 주에 개장한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려고 모든 일을 뒤로 미룬 체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을 전공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칸딘스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쁨에 마음이 설레었다.
내가 느끼는 화가의 특별함은 작품에서 표현된 모든 요소들인 점, 선, 면이 자유롭게 표현했으나 정해진 법칙 따라 구성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특히 저서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조형의식과 느낌을 밝히고 조형에 있어 색채나 선, 면 등의 요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이론적 토대로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모든 화가들이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표현하지만 칸딘스키처럼 정립된 이론서를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난 그의 뛰어남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주말이면 그녀와 연제구를 벗어나 사람들이 덜 찾는 장소를 찾아 다녔고, 가끔씩 서울까지 전시회를 다녀오면서 우리 사이의 사랑의 감정은 깊어만 갔다. 그녀는 좋아하는 감정을 애써 숨기려하거나 내가 먼저 표현해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아마 세 번째 만남 때 그녀의 손을 잡았고, 네 번째 만남 때 살짝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에서 그녀는 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상체에서 전해오는 그녀의 따뜻함과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나의 얼굴과 목을 기분 좋게 자극하였고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었다. 언제 부턴가 함께 만들어 갈 미래를 백지에 그려갈 때 그녀의 첫째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그림에는 나와 그녀 그리고 세 아이가 있었다. 몇 번의 밤을 함께 보낸 어느 날.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나는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극을 이어갈 때 그녀는 아이를 많이 가지고 싶다고 했다. 자기는 외동딸로 혼자 자란 아픔이 많아 우리의 아이에게는 꼭 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도 그러고 싶다고 하면서 힘껏 그녀를 안았다.
그녀와 사귄지 5년이 지나서 나는 비뇨기과를 찾았다. 언제나 나를 무겁게 짓누른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고1 때 아버지는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을 걱정하면서 태권도를 배워보라고 권하였다. 나도 운동은 싫어하지 않았기에 가까운 태권도장을 찾았고 일주일에 3번씩 도장에 갔다. 한 시간씩 운동하고 나면 땀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눈이 쓰리고 힘은 들었지만 샤워 후에 찾아오는 상쾌함과 유열감은 되레 공부하는데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기본 품새로 시작하여 발차는 동작을 익히는 과정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비슷한 수준의 동료들과 대련을 하였다. 권투 시합처럼 3분간 치고 받는 실전으로 혼자 몸동작을 익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운동 강도가 셌다. 1년이 경과되어 이제는 태권도를 좀 한다고 할 쯤 동료와 대련을 붙었다. 그 때 상대의 발길이 나의 낭심을 강타하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 신음 소리조차 내기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이였고 다행히 고환은 터지지는 않아 몇 일간 안정을 취한 후 퇴원하였다. 의사는 장기적으로 생식기능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잊고 살았는데 막상 결혼을 생각하니 불현 듯 불안감이 들었다. 비뇨기과 의사는 검사결과지를 들려다보며 정자의 량과 활동성이 일반인에 비해 20%수준이라며 난자와 자연 수정이 어렵고 어떤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다. 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쌓아온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다른 학교에 발령받아 첫 수업을 나가는 날, 그가 지방 선거에서 낙선한 뒤 작은 암자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나와 작별 후에 힘들어한다는 민석 씨의 말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망설이다 그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기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모든 추억이 빠르게 뒤로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와 카페에서 헤어졌을 때와 이후의 감정은 시간 속에 산화되면서 점차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그를 다시 만나려고 결심한 데는 그의 진심과 상관없이 오로지 내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고백이나 질타하고선 후회할 수도 있지만, 때론 상투적인 방법이 감정을 정리하는데 더 진심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그때는 내가 그에게 등을 보이며 떠나왔지만, 지금은 그가 나에게 등을 보이며 떠나가고 있는 듯했다.
그가 지내고 있다는 절은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좁은 숲길을 1시간가량 걸어서 가야만 했다. 나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아주 멀고 깊숙한 곳에 숨은 것 같았다. 버스는 이정표도 없는 한적한 곳에 멈췄다. 숲으로 이어지는 소로는 어느 정도 사람이 다니는 듯 발길이 닿은 부분에만 풀들이 없었다.
양쪽으로 사열하듯 이어지는 전나무 숲 끝에 암자가 보였다. 나는 일주문을 들어서려다 인기척이 나서 걸음을 멈췄다. 그가 절 마당 한가운데 서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더없이 맑았고 편안해 보였다. 평소 자상하게 말하던 목소리 그대로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웃으며 그와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대화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기에 저토록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얼굴을 엿보며 마음속에 새겼다. 내가 나타나면 그의 모습이 어느 순간 새처럼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였다. 일주문 뒤에 서서 나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었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그의 눈빛이, 그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기 전에.
첫댓글 오올! 읽는데 기대가 되고 떨리고 막 그러네. 1빠하길 잘했어. ㅋ 주사도 먼저 맞는 놈이 발 뻗고 잘 수 있느니.
그리고 저기요.... 오타가 있는데 수정해 주세요. 10:21 10:22를 22:21 22:22로요. ㅠㅠ
넵~
오타라고 처음부터 생각안했어요.
다르게 보이기 수법정도로 승화
사람을 한번 믿으면 별 걸 다
승화 한다네요ㅡ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