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절무니 거 있나, 철이는 어디에 갔느냐. 며느리……예, 아버님, 학교에 다녀왔던 철이를 제가 심부름 보내었습니다.
시어머니가……철이어미, 거 있나. 너, 가위 어디에 두었노. 며느리가……예, 어머님, 제가 찾겠습니다.
질부가……둘째어머님,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시숙모가……이 일은 내가 할 터이니 너는 시장에 다녀오너라.
아버지가……석이 거 있나, 이리 오너라. 아들이……예, 아버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가……석이 거 있나. 이리 오너라. 아들이……예, 어머니,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질부가……맏아버님,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시백부가……이 일은 내가 할 터이니 너는 청소해라. |
이 “습니다말”을 최현배 지음《우리말본》에는 듣는 이를 존경하는 존경말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듣는 이를 존경하는 존경 말이라고 해서는 실상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듣는 이를 공경하는 “공경말”입니다. “존경말”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공경말”이라고 해야만 이치에 맞습니다. 존경은 선택되는 것이요, 공경은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그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존경이란 행실이 훌륭하고 거룩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우러르게 되는 마음가짐이요, 공경이란 그 사이에 “하늘이치”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섬기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가짐입니다. 존경심이 일어나는 어른들에게만 “습니다말”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습니다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배달말에 “존경말”이 있다고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잘났건 못났건 <친당․시당․척당> 어른들을 공경해야만 되는 것이기에 “습니다말”을 사용하는 것이요, 잘났건 못났건 직장에 있는 상관이기에 “습니다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직장 상관을 존경하기 때문에 “습니다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났건 못났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을 공경해야만 되는 것은 그것이 “하늘이치”이기에 그러하고, 하늘이치이기 때문에 따라야만 되는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배달말에는 “존경말”이 없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 “습니다말”은 존경말이 아니고 “공경말”이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습니다말”이 듣는 이를 존경하는 말이 아니고, 듣는 이를 공경하는 말임이 알게 되면 이 “습니다말”이 다시 기운을 차려서 힘차게 자라날 것으로 보입니다.
2. 삼가말
듣는 이를 삼가 조심해야 될 경우는 “삼가말”을 사용해야 됩니다. 이 “삼가말” 역시 말끝이 “습니다말”로 됩니다. 공경말 역시 말끝이 “습니다”이고 보면, 공경말과 삼가말 사이에 다른 점을 밝혀 두어야 하겠습니다. 공경말이 〈제+습니다〉 모습인가 하면, 삼가말은 〈나+습니다〉 모습으로 됩니다.
<면복친당의 부인․외사촌의 며느리․고종의 며느리․외사촌의 손부․고종의 손부․처남의 며느리․처남의 손부․처제․처남딸>에게 삼가말을 사용해야 되고, 그리고 <처백모․처숙모가 질녀남편>에게 삼가말을 사용해야 됩니다.
○○댁(30세)이………………○○할아버님, 언제 나오셨습니까. ○○할아버지(시할아버지3종․70세가)……………예, 나는 오늘 첫차를 타고 왔습니다. |
위보기 말은 70세 노인이 자기 삼종아우(三從弟, 8촌)의 손부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두고 70세 노인이 집안 30세 부인을 존경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됩니다. 또한 이것을 70세 노인이 집안 30세 부인을 공경하는 말하기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삼가 조심하는 〈삼가말〉인데, 70세 노인이 면복 된 집안 30세 부인을 삼가 조심하는 말하기로 되는 것입니다.
외사촌며느리가……△△아주버님 오셨습니까. 아버님은 오늘 대구에 가셨습니다. 시아버지고종이……예, 그렇습니까. 그동안, 시어른 모시고 잘 계셨습니까. 내가 오늘 외가에 온 것은 아우를 좀 보려고 왔습니다. |
위 보기에서, 30세 부인이 자기 시아버지의 고종형(70세)에게 말한 것은 듣는 이를 공경하는 “공경말”이요, 70세 노인이 자기 외사촌아우의 며느리에게 말한 것은 듣는 이를 삼가 조심하는 “삼가말”입니다. (나이 어린 처제나 처 질녀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는 것은 옛날 종들이나 하는 말이었음)
고종며느리가……△△아주버님 오셨습니까. 저의 아버님은 오늘 서울 가셨는데 내일 오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시아버지외사촌이……예, 나는 오늘 새벽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아우를 보려고 왔는데, 내일까지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처남며느리가……△△새아주버님, 오셨습니까. 집안이 모두 편하십니까. 아주머님 근력 여전하십니까. 시고모남편이……예, 그러합니다. 처남 보려고 왔는데, 처남은 어디에 갔습니까. 그리고 처남댁은 어디에 갔습니까. |
“삼가말”을 할 줄 모르면 자기 자신이 미천한 사람으로 됩니다. “가정언어”가 아니지마는, 어떤 학교장이 신임교사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나는 내일 출장이 됩니다. 오늘 김 선생이 오기를 잘했습니다. 하숙집을 구하도록 시켜 놓았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 경우 역시 교장이 신임교사를 존경해서 하는 높임말이 아니고, 그 신임교사를 삼가 조심해서 말했던 “삼가말”이었습니다.
3. 친근말
듣는 이를 친밀하고 두텁게 대접해야 될 경우에는 친근 말을 사용해야 됩니다. 그 친근 말에는〈하소말〉․〈하게말〉․〈흐리멍덩 반쯤말〉․〈해라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친근말 네 가지를 풀어나가기로 하겠습니다.
1) 하소말
형에게 하는 말이 〈저……하소말〉이라고 알고 있으면, 여기에 대한 값을 올바르게 안 (알고 있는) 셈이 됩니다. 형과 아우 사이는 동급으로 앞뒤라는 차례가 있을 뿐, 아래 위라는 높낮이가 아니기에 형은 아우에게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형은 아우를 벗처럼 아껴야 되고, 아우는 형을 섬겨야 됩니다. 이것이 형과 아우가 서로 걸어가는 왕도로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에게 이 〈하소말〉을 사용할 수 없는 것만 보더라도 이 〈하소말〉이 공경 말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나이 적은 집안 아제(族叔)․집안 할아버지(族祖)들에게도 이 〈하소말〉을 하게 됩니다.
2)끝소리 흐리멍덩 반쯤말
끝소리 흐리멍덩 반쯤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다정말(多情語)로 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다정함이 없고서야 흐리멍덩 반쯤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됨의 고상한 품격을 지니지 못하면 흐리멍덩 반쯤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그 반쯤말이 자칫하면 〈해라말〉이 되기 쉽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반쯤말하기에 필요한 조건이 세 가지가 있는 바,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가 그 하나이요, 곁에서 소곤소곤 말하기가 그 하나이요, 말끝을 흐리멍덩하게 얼버무려 말하기가 그 하나입니다. 반쯤 말이란 온전한 문장이 되기 앞선 어느 지점에서 말하기가 끝났을 경우, 그 말 전체를 〈반쯤말〉이라고 합니다. 뜻인즉 온전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반쯤정도 말했다는 뜻으로 반쯤말(半쯤語)이라고 옛사람들이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미완성으로 끝나 버려야 반쯤말하기가 되기에 그 말의 끝소리는 일정함이 없이 어느 것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반쯤말”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 이 “반쯤말”입니다. 남편아내 사이 말하기에서 조금 더 범위가 넓혀지기로는 친밀한 벗끼리 서로 반쯤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말 하기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곁에 있는 사람마저 모르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보기가 좋은 말하기로 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내외간 말하기의 왕도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마저 알아들을 수 없도록 말을 하려고 하면 가까이에 가서 나직한 목소리로 소근 거려야 되며, 끝소리가 흐리멍덩해야만 됩니다.
남편이…………자고 일어나니, 가슴이 답답해. 아내가…………잠자리가 편치 않으면 그런 수가 있어.
아내가…………병원에 한번 가보지. 남편이…………안 갈 거야
아내가…………아버님이 아홉시 차로 오셨어. 남편이…………알았어. 곧 나갈 거야.
아내가…………오늘 저녁에는 일찍 돌아올 거지. 남편이…………아마 그럴지 몰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길는지 모르고. |
위보기 말이 남편아내 사이에 말하기의 전범(典範)입니다. 거듭 소리 내어서 몸에 배도록 익힐 것이며, 또한 서로 “반쯤말하기”가 지니고 있는 그 이치를 터득해야 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어서 서로 똑같은 반쯤말을 해야 되는 그 이치는 이러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는 차례가 없는 동급이기 때문에 서로 똑같은 급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과 아우가 등급이요, 남편과 아내가 동급입니다. 앞뒤 차례가 있는 동급이 형과 아우이요, 앞뒤 차례가 없이 안과 밖만을 가지고 있는 동급이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아내 사이는 높고 낮은 것이 아님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앞과 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다만 “안”과 “밖”이 있을 따름입니다. 남편이 <바깥주인>이 되고, 아내가 <안주인>이 되어 서로가 한 집을 꾸려 나가는 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부부유별이라고 합니다. 남편아내 사이는 서로 하는 일 몫이 다른 바에 있는 동급이라는 말입니다. 한평생의 길동무가 된다는 뜻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를 배필(配匹)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 필(匹)은 벗을 뜻하는 우(友)와 같은 글자입니다. 짝 벗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말이 곧 배필입니다. 지극히 가깝고 지극히 밀접한 짝 벗이 되다가 보니 곁에 있는 사람마저 알지 못하도록 귀속 말로 소곤거림에 아름다움이 있게 됩니다. 곁에 있는 사람마저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자니 끝소리가 흐리멍덩한 “반쯤말”로 된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남편이 높고 아내가 낮은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되어서 아내가 남편을 보고 꿇어앉아 절을 하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서 남편의 입에 넣어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자니 말은 공경말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사람은 어디에서든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리게 되고, 남편의 부름을 받은 일본여인은 하던 일을 집어던지고 남편 앞으로 달려가서 절을 하고는 공손스리 남편의 명령을 듣는다고 합니다. 지난날 우리 선유들이 왜인을 오랑캐라고 일컬었던 것 가운데 그 하나가 남편이 상전이 되고 아내가 하인이 되는 남존여비 그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나이들이 일본여성을 보고 (리요사이 겐보) 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인은 절대 남존여비 사상을 갖지 않았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아내도 남편과 똑같이 존경했음 -힘이 세다고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는 것은 천한 종들이나 하는 짓이었음. )
⑶ 하게말
듣는 이를 “자네”라고 하면서 말의 끝소리가 “네” “게” “가”로 끝나는 말을 〈하게말〉이라고 합니다. 이 〈하게말〉은 대충 형이 아우에게 사용하는 말하기라고 알고 있으면 〈하게말〉에 대한 올바른 값을 알게 되는 셈입니다. 이 〈하게말〉에는 반드시 듣는 이를 “자네”라고 불러 주어야 합니다. 장모가 사위를 보고 말하고자 할 때는 〈하게말〉을 사용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친근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하게말〉을 할 수 없는 그 정황을 깨달았다고 하면, 배달말을 높임과 낮춤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달말은 〈공경․삼가말․친근말․성그름말〉 네 가지로 갈래 지워집니다. 친근말 속에는 〈하소말〉․〈하게말〉․〈반쯤말〉․〈해라말〉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하게말〉은 그 사용되는 곳이 아주 넓습니다. 형이 아우에게, 누나가 동생에게, 오라버니댁이 시누이에게, 며느리끼리 그 위가 아래에게, 족숙(族叔)이 족질(族姪)에게, 시외삼촌 내외가 생질부(甥姪婦)에게, 장모가 사위에게 〈하게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⑷ 해라말
“너”라고 말하면서 말하기의 끝소리가 “라” “냐”로 되는 말하기를 〈해라말〉이라고 합니다. 해라말은 <아들․딸․며느리 손자․손녀․손부, 조카․질녀․질부, 종손․종손녀․종손부, 종질․종질녀, 재종질․재종질녀>에게 사용하는 말하기입니다.
아비 어미가 아들 며느리를 보고 〈물가지고 오너라.〉 〈밥 먹었느냐〉라고 말합니다. 말끝소리가 〈라〉〈냐〉로 되는 말을 〈해라말〉이라고 합니다. 명령을 내리는 말이 곧 〈해라말〉입니다. 해괴하게도 명령말인 〈해라말〉을 〈반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잘못된 말입니다. 잘못된 까닭이 어디에 있었는지 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반말〉이라는 말에서 사용된〈반〉자가 〈反〉이 될 수가 없고, 〈半〉이 될 수가 없고, 〈叛〉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반말〉이라는 말은 폐기처분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