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역 이칭 타로와 일반적인 타로 카드와의 차이점
타로 카드로 점(占)을 치고 리딩을 할 때에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정화하거나 결계 의식을 하거나 혹은 명상을 하거나 지구와 연결되는 의식을 할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역 괘를 뽑기에 앞서 천지신명과 통하기를 간절히 빌곤 한다. 주역 점은 간절한 정성으로 선(善)한 일을 위해서 점을 쳐야 한다. 여기서 천지신명 대신에 하나님, 부처님, 천주님, 조상님 중에 누구를 불러도 상관 없다. 하지만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빠진다면 누구를 부른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타로에도 경솔히 혹은 악의로 또는 자신의 주권을 잃고 무분별하게 점을 친다면, 엉터리 결과나 의미를 알기가 힘든 애매한 카드들이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역 점괘를 뽑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간절한 심정으로 구해야만 한다. 예수님도 “너의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진심과 간절함이 바로 나 자신과 다른 이들, 거창하게 말해서 지구와 천지신명과 통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주역 이칭 타로와 일반 타로 카드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리딩의 결과물이다. 타로는 스프레드에 따라서 상황들이나 이유, 결과, 혹은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인 추구, 자아상, 희망 혹은 두려움, 온갖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프레드에서 선택된 그 카드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반영물이다. 비록 ‘무의식’의 반영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의식의 힘이 자라면 때에 따라서 나의 생각과 희망, 사념, 의지도 카드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역은 나의 소망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 반영된다. 비록 점을 치는 방법이 동시성의 원리에 따라서 우연한 방식으로 괘를 뽑는 것이긴 하지만, 주역이 형성된 원리나 주역의 가르침은, 우리 의식의 의지와 노력에 관한 조언이다. 타로 카드는 나의 더 큰 자아인 무의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무의식과 상응하는 대우주와 연결되는 것이다. 카발라의 격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주역은 곧바로 대우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고대의 성현들이 대우주를 관찰해서 그 자연의 도(道)를 보고 익혀서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중간자로서 인간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뜻하는 의식의 산물이다. 타로를 무의식의 도(道)라고 본다면, 주역은 의식의 도(道)이다. 타로는 나의 무의식을 살피지만 자유의지를 존중해준다. 그러나 주역은 나에게 주어지는 환경을 이야기하고, 중용(中庸)을 잃지 않게 조언한다. 그래서 흔히 주역점을 치면서 오늘의 일진이나 그 때의 운수를 살핀다고도 말한다.
2. 주역괘로 점을 치는 요령
과거에는 산가지나 서죽(筮竹)을 사용하거나 때로 동전 3 개를 던져서 뽑았다. 산가지나 서죽을 50 개나 100 개를 사용했는데 요즘은 그냥 8 개로 많이 뽑는다. 주역괘의 대성괘는 6 개의 효사(爻辭)로 즉, 위아래의 두 개의 팔괘로 구성된다. 50 개나 100 개의 산가지나 서죽을 사용했던 방식은, 6 개의 효사들을 하나하나 뽑기 때문에 6 번이나 뽑아야 했다. 하지만 8 개의 서죽을 사용하면, 두 번 만에 하나의 주역괘를 얻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편의상 보통 8 개의 서죽으로 점괘를 뽑는 편이다. 동전을 사용하는 방법도 동전을 여섯 번이나 던져야 하나의 점괘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한 번에 3 개의 동전을 던졌는데, 그것은 ‘동효’(動爻)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동효는 음양을 바꾸는 효변(爻變)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陰)은 양(陽)으로, 양(陽)은 음(陰)으로 바꿔서 또 하나의 괘를 더 얻는 방법이다. 동전을 던졌을 때 같은 면이 3 개가 동시에 나오면 그 효사를 동효로 보았다. 경우에 따라서 동효가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두 개나 혹은 심지어 여섯 개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이칭카드를 섞고 간절한 마음으로 카드를 한 장 뽑으면 하나의 주역괘를 얻을 수 있다. 혹은 서죽 8 개로 2 번만 뽑아도 쉽게 주역괘를 얻는다. 또 때에 따라서 그런 도구가 없을 경우에는, 주사위나 그냥 책의 페이지 혹은 다른 어떠한 무작위의 방법이 되었든 간에 2 개의 8 진법 숫자와 1개의 6 진법 숫자만 얻으면 된다.
동효의 의미는 조금 독특하지만 어찌 보면 간단하다. 주역괘는 6 개의 효사들을 가진다. 동효(動爻)를 사용하면 괘사가 가지는 6개의 효사 중에서 하나의 효사를 선택할 수 있다. 아무래도 조금은 더욱 구체적인 점괘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동효를 사용하면 한 번의 점괘를 뽑아서 두 개의 연결된 주역괘를 얻을 수 있다. 동효가 생기기 이전의 주역괘를 ‘본괘’(本卦)라고 부르고, 효변한 것을 ‘지괘’(之卦)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본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지괘로 변해가는 것으로 보고 지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중요도를 반반으로, 혹은 산술적으로 7:3의 비율로 보고 점괘를 해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역에서 각 효사들이 그 괘의 효사를 효변한 것으로 상을 취해서 기록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한 번에 참고할 수 있는 두 개의 괘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주역의 의미를 더 깊이 살피고 가슴에 새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은 보통 8개의 서죽으로 뽑고, 동효를 일반적으로 하나만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하여 주역 점괘를 얻고 싶다면 8 진법의 숫자 2 개와 6 진법으로 된 숫자 1 개만 얻으면 된다.
3. 주역 이칭 타로의 활용 방법
이칭 타로를 활용하는 방법은 개인에 따라서 다양할 수 있고 또 자유롭다. 어떤 방법이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분들과 일부 편의를 위해서 간단한 활용 방법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드릴까 한다.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일단은 초급 활용법부터 한번 사용해 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뒤에 보다 능숙해져서 중급 혹은 고급 활용법들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되돌아 살펴서 초급 활용법의 관점을 잊지 않아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점을 쳐서 구체적으로 맞추는 것 못지않게, 전체적 흐름에 대한 시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익숙해지고 좀 잘 맞는다 싶으면, 그런 거시적인 관점을 잃고 오만해지고 나무만 보기가 쉽다. 구체적인 그리고 명확한 점괘로 갈수록 오히려 편협해지거나 숲을 놓치기가 쉽다. 보다 넓은 눈으로 또한 융통성 있는 자세로, 하나라도 조언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점을 치면 무엇이든 얻을 것이다.
[ 첫째. 초급 활용법 ]
이칭 카드를 잘 섞은 뒤에 눈을 떠도 되고 감아도 된다. 익숙한 손으로 뽑아도 되고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뽑아도 된다. 카드 한 장을 뽑는다. 서죽을 사용할 경우에는 먼저 뽑은 것을 상괘로, 뒤에 뽑은 것을 하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괘명을 떠올리기 쉽다. 초급 활용의 경우에 우선은 카드를 뽑을 때 정방향과 역방향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물론 서죽은 정역이 따로 없다. 일단 주역괘를 뽑으면 해당 괘의 이름을 찾아서 괘사(卦辭)를 먼저 읽은 이후에 효사(爻辭)를 하나씩 차례로 읽는다. 괘사는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관점이다. 예를 들어 ‘풍산점’(風山漸)이라고 하면, 지금 순간은 무슨 일이든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거꾸로 말해서 지금은 내가 조급하게 서두르기 쉬운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풍산점의 6 효사들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여섯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한 번 점검하라. 그렇다면 아하, 초육은 이런 행동을 했는데, 육이는 저렇게 했고, 구삼은 저렇게 행동했구나. 이것은 점진적으로 처리해야 할 순간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시작부터 마침까지 하나씩 여섯 케이스들을 보여준다. ‘택화혁’(澤火革)의 경우, 이 순간은 갑작스러운 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변혁을 하는 여러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변혁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여러 번 이야기하고 때가 무르익으면 그때 비로소 변혁을 하라고 조언해준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동효를 뽑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동효를 뽑는다는 것은 내가 그 중에 어떤 특정한 상황으로 제한하는 행위이고 오만하게 다른 가능성들을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 둘째. 중급 활용법 ]
중급 활용법은 정방향과 역방향을 구분해 사용하고 동효(動爻)를 사용한다. 이칭 카드를 사용할 경우 서죽과는 다르게 불특정하게 역방향의 카드가 나온다. 무조건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효를 선택하는 법도 다양하게 된다. 크게 보자면,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는 카드가 정방향으로 나왔을 때이다. 이 경우는 동효를 선택하기 위해서 6 진법의 숫자가 추가로 필요하다.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를 얻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너무 우습다면 새로 카드를 한 장 더 뽑을 수도 있다. 새로 뽑은 카드 번호를 6 진법으로 환산하게 되면 된다. 그러나 불특정한 방법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점을 치는 당일의 날짜나 생년월일 중의 일부분, 전화번호나 아무 책이나 펼쳐서 얻은 숫자를 6 진법으로 환산하면 된다.
둘째는 카드가 역방향으로 나왔을 때인데, 이럴 경우는 전혀 다른 괘가 된다. 예를 들어 택수곤(곤란)은 뒤집히면 수풍정(근원)이 되고 산택손(손해)은 풍뢰익(이익)이 된다. 역방향의 카드를 똑바로 뒤집어 좌측에 놓고 역방향에 해당하는 카드를 찾아서 우측에 놓는다. 굳이 동효를 선택하기 위해서 카드를 뽑을 필요는 없다. 역방향에 해당하는 카드를 찾아서 그 카드 번호로 동효를 선택하면 된다. 주역 괘가 뒤집어지면 전혀 다른 괘가 되지만, 8 개의 괘들은 뒤집더라도 동일한 괘이다. 그럴 때에는 동효를 사용하지 않거나 앞에서 말한 방법을 따르면 된다.
셋째는 처음부터 항상 두 장을 뽑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방법이다. 둘 중에서 좌측은 지금까지의 운수로, 우측은 앞으로의 운수인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측의 카드 번호로 좌측의 동효를 선택하고, 좌측의 카드 번호로 우측의 동효를 선택하면 된다. 그냥 둘 중에서 하나의 동효만 선택할 수도 있다. 혹여 역방향이 나오게 되면 다른 괘가 되기 때문에 뒤집힌 상에 해당하는 카드를 찾아서 쓴다. 하지만 역방향으로 나왔던 카드를 정방향으로 돌려 놓고 같이 참고로 살펴볼 수 있다. 역방향의 경우는 정방향 주역괘의 덕(德)이 부족해서 역방향으로 간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본괘를 지금의 상황으로 지괘를 그 이유로 살펴볼 수도 있다. 그것은 본괘와 지괘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달려있다.
카드를 한 장을 사용할 지 몇 장을 사용할 지 또한 동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동시성의 원리나 우연적인 방법일 뿐인데 그런 황당한 선택 방법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두 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때로 카드를 한 장만 뽑기로 했는데 역방향의 카드가 나왔을 경우는 그것을 정방향으로 돌려서 좌측에 두고, 역방향을 찾아서 우측에 둔다. 그리고 좌측 카드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우측 카드를 앞으로의 상황으로 보는데, 좌측의 덕이 부족해서 우측 카드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셋째. 고급 활용법 ]
이 방법은 동양 점성술과 수비학(數秘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같이 활용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음양오행을 활용하는 방법은, 64 주역괘들과 384 효사들 각각에 지지(地支)를 배당해서 사용한다. 64 괘 구궁표와 팔괘 납갑 일람표 등을 활용하면 각각의 괘와 효사에 특정한 지지(地支)를 배당할 수가 있다. 그 지지를 활용하는 근본 원리는 각각의 지지에 배정된 음양오행의 성질들 즉, 상생(相生), 상극(相剋) 작용이다. 거기에 점을 보는 당일과 점을 보려고 온 사람의 사주와도 연관시켜서 살펴볼 수도 있다. 물론 더욱 구체적인 점괘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아마 필자가 운명론에 대한 반발감 그리고 타로와 같이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단기간의 점을 보다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한 가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은 카발라와 타로, 점성학 간의 연관성 못지않게 주역 속에도 점성학과의 깊은 연결성이 있다. 거의 동일한 사상이 들어 있다. 주역의 64 괘상은 뒤집어도 동일한 8 개의 부도전괘와 다른 괘가 되는 56 개의 도전괘로 구성되어 있다. 즉, 28 쌍의 도전괘와 8 개의 부도전괘로 구성되었다.
카발라 타로에서는 3 개의 어머니 글자 즉, 근원적 원소가 있고 그것을 7 개의 복자 즉, 7 행성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12 단자 즉, 12 별자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즉 항성들 속에서 행성들과 원소들의 변화를 묘사했던 것이다. 주역도 정확히 같다. 단지 동양에서는 28 수(별자리)를 사용하고 3 모자 대신에 북극성을 사용하는 차이만 있지만 사실상 같다. 3 모자에서 알레프로부터 쉰과 멤이 나오는데, 곧 불과 물이다. 동양에서 북극성이 음양으로 나뉘기 전의 태극이고 나뉘면 음(물)과 양(불)이 된다. 즉, 북극성이 사실상 3 모자와 같은 것이다. 북극성은 주역의 부도전괘 중에서 건위천에 해당하고 건위천이 곧 3 모자이고 나머지 7 개 부도전괘는 7 정(행성)을 말한다. 28 수(별자리)는 주작, 현무, 백호, 청룡 네 방향에 각각 7 개의 별자리로 이루어져있는데 서양의 12 별자리와 같다. 주역 64 괘에는 시간과 숫자 그리고 자연의 계절 변화를 비롯한 만물의 변화가 담겨있다. 또 공간의 정육면체에서 각각의 꼭짓점에 팔괘를 배당할 수도 있다.
직업적인 것이 아니거나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초급 활용이나 중급 활용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비록 직업으로 삼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초급 활용의 관점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 또 점괘를 해설할 때에도 그렇다. 대체로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은 이미 삶에 있어서 전체적인 시각을 잃고, 단순히 당면한 코앞의 일만 바라보면서 가타부타 결정만을 원하고 조언을 구하려고 올 때가 많다. 그런 순간에 거시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무보다 숲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현란한 기술과 정확한 예측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확실히 상(象)과 수(數)를 모두 활용하면 대단히 명쾌하다. 하지만 하늘과 대지는 우리를 수용하고 보듬어주지만 또 허용하고 놓아준다. 우리도 우리 앞의 불쌍한 영혼에게 내가 가진 우월한 시각과 기술을 과시하기보다 그를 수용하고 허용해주고 열린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무엇보다도 가능하면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어차피 모두 알려주더라도 절대 그대로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의 의견을 따르는 것도 곤란하다.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길 거듭 부탁드린다. 무엇보다도 주역 점을 치는 자세를 꼭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진심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위해서 주역 점을 사용하기를 부탁드린다. 재미로 혹은 악의로 마구잡이로 하루에 여러 번 뽑으면 어떠하겠는가? 주역의 산수몽(山水蒙)이라는 괘에 이러한 괘사가 있다. “스승은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침을 베풀어야 하고 절실치 않은 자에게는 베풀지 말라. 몽매한 자가 가르침을 처음 묻거든 알려주더라도, 2 번 3 번 그저 묻기만 하는 자들은 더 이상 알려주지 말라. 어지럽게만 될 뿐이다.” 특별히 나의 기억에 남는 말은, 점을 칠 때 그 목적을 선(善)한 일에 사용하라는 말씀이다. 사악한 목적을 갖고 혹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여러 사람들의 이익을 구하거나 혹은 덕(德)을 쌓는 일에 주역이 사용되었으면 한다. 맨 처음 주역을 공부하고 느꼈던 것은, 타로에서의 정의 카드 그 자체였다. 비록 주역이란 것이 점술로써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는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 나에 대한 좋은 거울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타로와 다르지 않다.
정이천이 말하기를 “잘 배우는 사람은 말을 이해할 때, 반드시 스스로 가장 가까운 자신의 경험 속에서 이해한다. 그 가까운 자신의 경험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말을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하는 것은 말인 사(辭)이다. 말로부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다.” 주역을 현실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도구로 사용하면 그것이 많은 성현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첫댓글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소경이 코끼리 더듬듯 더듬어가며 읽다보면 이해가 조금이라도 될까 하는 욕심을 부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의 서론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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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이제 괘사와 효사를 읽으세요
깊이 새기겠습니다~~
가능하면 괘사 효사보다
서론과 마지막 부분에 당부하는 글들,
전체적인 시각에서의 주의 사항들을
먼저 충분히 숙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시면 중간에 퍼질 수 있으니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시기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 보려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렵지만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독하였습니다.
지금은 스승이 학생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고,
배우고자하는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것을 인터넷이나 유튜브브로
찾아서 배우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성경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헤르메스 신비주의 격언에도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자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고
다만 그가 준비되어 있느냐에 달렸을 뿐입니다
의외로 세상에 많은 지혜와 보물들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 집단 지성의 산물일 뿐이고
그것이 인간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앎에 이르면 아는 자로서의 책임감이 뒤따릅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그 책임감이 기쁨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지금껏 그렇게 깨달은 자들 중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평탄함 그 자체가 이미 그의 잠든 삶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