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을 만나 상담을 하게 되면 먼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영역이 있다.
만성 질환에서는 특별히 혈액과 장의 건강이다.
혈액이 부족해지면 질병을 유발하기 쉽다.
그런데 혈액부족은 기생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내가 혈액과 기생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지금부터 20년 전 이야기이다
결혼하고 소규모의 첫 약국을 운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약국 가까이 유명한 민물 생선 횟집이 있었다.
약국이나 집으로 손님이 오게 될 경우 별다른 상황이 아니면 그 횟집으로 손님을 모시고 가곤 했었다.
남편도 회를 좋아했기에 송어회나 향어회를 즐겨 먹곤 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몸의 컨디션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워낙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다.
두 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고 나서 약해진 몸을 조심조심 하고는 있었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지는 것이었다.
일단 기운이 없어서 약국을 지키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기상하기도 쉽지 않았고 오후 3시쯤 되면 눈이 저 뒤로 쑥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 같고 천근 만근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만사를 제쳐놓고 ‘ 나 잠깐 들어 가서 쉬고 나올게, 손님 오시면 좀 있다가 오시라고 해.’
아가씨에게 한 마디 하고는 가까이 있던 집으로 달려가 방에 드러 눕곤 했었다.
누워 있으면 몸이 저 깊은 지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
까무룩 해지는 의식속에서
‘아!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아이들 아직 어린데 지금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제대로 키워줄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곤 했었다.
일 거리가 겁이나고 하루의 생활조차도 버겁게 느껴지고...
주변을 둘러봐도 나만큼 힘들어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방법을 생각하다가 전에 강의를 들었던 선생님에게 찾아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한방을 과학적으로 풀어주시던 강좌에 매료되어 열심히 공부하던 중이었다.
이것 저것 상담을 마치신 선생님께서는
추위를 많이 타고 기력이 쇠잔하니 흑염소에 한약을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셨다.
며칠후 택배로 도착한 한약을 큰 기대를 가지고 먹기 시작했으나...
한포만 먹어도 위로 열이 뻣쳐 뒷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아파서 먹을 수가 없었다.
상황을 전화로 말씀드리니 양을 줄여서 먹으라고 하신다.
양을 줄여서 반만 먹어도 마찬가지.
이렇게 저렇게 해 봤지만
결국은 하나도 먹지 못하고 버리고 말았던 씁씁한 기억이 있다.
그때의 처방이 당귀사역가 오수유생강탕이었다.
뜨거운 성질의 흑염소에 더 뜨거운 오수유를 넣어 누구도 먹기 힘든 약이 되었던 것.
지금 정도의 한약 지식만 있었어도 그 처방을 그대로 받아오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당시는 인체의 물리에 대해서 깨달음은 없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깨달음이 없으니 책의 내용대로 강의는 할 수 있지만 이론과 실제의 임상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손발이 차고 추위를 탄다는 호소에 속에 쌓여있는 열을 고려함이 없이 뜨거운 약으로 처방을 하셨던 거였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빈혈에 대해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체의 질병을 화학적인 원인과 물리적인 원인으로
또는 열기와 수기로
또는 양적인 병인과 음적인 병인등의 두가지 관점에서 파악한다고 해서
양병학이라고 이름을 붙이셨다는 강좌를 듣게 된것이다.
그 강좌에서 '피가 부족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에 대하여 듣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증상이 나에게 적용되는 증상들이었다.
추위를 잘타고
손발이 차고
쉬피로하고
기운 없고
아침 기상이 힘들고
소화불량이 잘 생기고
불면증이 잘 오고
잘 붓고
등등...
일단 혈액을 보충 해 준다고 조혈 영양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나의 전반적인 증상들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혈액 부족 증상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체험 해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훨씬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괴롭히던 증상들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즐겨 먹던 민물 회에서 디스토마라는 기생충 감염이 되었던 것이었다.
디스토마 치료제를 먹게 되면 그 약이 간에 부담이 되고 또한 체내의 디스토마가 죽기 전 난동(?)을 부리므로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틀 동안 그 약을 먹느라고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디스토마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충이다.
디스토마 감염이 되면 인체에 혈액은 부족해지고 충이 배설하는 암모니아 독소는 쌓이게 된다.
빈혈 증상과 독소로 인한 알러지, 피부 소양증과 불면증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기생충 병은 이렇게 특징적인 증상들로 나타나지만
일반 병원 검사에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에는 디스토마는 암보다도 더 무서운 병이었던 것이다.
그 병을 체험하고 치료가 되고 나니 그 비슷한 증상들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전이었으므로 약국에서 직접 처방 조제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얼굴이 노래져서 피곤하다며 찾아 오던, 그 횟집을 애용하던 많은 이들에게 그 처방을 일러주곤 했었다.
그 이후에 디스토마를 검사하는 테스트 시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 검사를 받아보라고 환자들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얼굴이 노랗고 민물회를 즐겨 먹고 전의 나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병원 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경우가 몇 번 되풀이 되고 나서 그 시약을 개발한 신풍 제약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를 했다.
‘분명 디스토마 기생충이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병원에서 시약으로 검사하면 음성으로 나올까요?’
했더니 그 시약의 정확도가 좀 떨어진다고, 자기들도 고민이긴 한데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판매하는 회사에서 그렇게 말을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요즘은 병원에서도 그 시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요즘도 그 기생충에 감염 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신문에서도 낙동강과 섬진강 주변의 사람들에게 흡혈충 감염율이 높다 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강 주변의 사람들에게 한정 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지금도 민물 생선회나 민물 게를 즐겨 먹고 있다.
또 계곡물이나 강물에서 놀다가 물을 마시게 될 수도 있다.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보면 송어 횟집이 얼마나 많은가.
혹자는 송어는 맑은 물에서 사니 기생충이 없다 라는 자기 주장을 하는데 실상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다.
송어회를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다음에 진행 될 상황이 떠 오르면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감염이 된다 해도 감염 여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대변 검사를 통해서 감염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요즘에 대변 받아오라고 해서
기생충 검사를 해 주는 병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