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전을 다녀와서
梅庭 문매자
머리가 은발로 바뀌면서 나도 이제는 편안한 삶 속에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살자고 생각했다. 국립박물관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박물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어림잡아 보기에 칠십에 가까워 보이는 해설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의욕적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존경스러워 보이고 건강함에 놀랐다.
폼페이 도시는 한순간에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 속에 묻힌 도시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폼페이를 생각하며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실지로 보기 시작했다. 폼페이와의 첫 만남은 벽화다. 정원의 벽화는 주로 자연을 그대로 그렸다. 나무, 새, 꽃, 나뭇잎 모두 사실 그대로 묘사 되었다. 사람들은 정원 안에 몸을 맡기고 편히 쉬고 있다. 현장의 사람들은 건강한 꿈을 꾸며, 꾸밈이나 기교를 일부러 부리지 않았다. 보는 이가 편안하다. 어찌 이 아름답고 평화스럽고 아늑한 곳에 무서운 저주의 화산이 폭발했을까?
벽화에서 느끼는 정원은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해 가며 살아가는 속에서 더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훌륭한 장소였다. 잿더미 속에서 발굴된 작은 유물하나 까지 모든 당시를 생활상을 확연히 잘 표현 해주고 있다.
우물, 수도관, 수도꼭지, 굵은 배관을 통해 그 옛날 이미 수도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문화가 발달한 도시었다는 것을 누구나 충분히 감지할 것이다. 화려했던 폼페이 도시가 얼마만큼 참혹했던가! 벽화의 모습으로 미루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다행히 화산재가 덮어서 재속에서 파괴 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으며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여신 페플로포로스 조각상이 존재하지 않아 아쉽게도 로마 시대 복제품으로 대변해 주었다.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서 폼페이의 안정된 생활상으로 볼 때는 우리나라의 온돌 문화와는 달리 당시 폼페이 시민들은 침대에서 잤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즐기는 문화와는 상반되는 문화다. 장식장, 탁자, 의자, 등잔 받침 식기 모두가 하나하나 색다르게 화려하다.
특히 놀라운 것은 식사용 침대다. 당시 이 나라 귀족들은 몸이 불편하지 않아도, 시중드는 사람이 있어 누워서 편히 식사를 했단다. 우리는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문화다. 우리는 누워서 식사를 한다면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는다. 그러나 폼페이 시민들은 우리 문화와는 달랐다.
화로, 물 주전자, 커튼거리, 식기 자질구레한 것까지 손상되지 않고 재가 푹 덮여져 있었기 때문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발굴되었다고 한다.
금 귀걸이, 뱀 모양 팔찌, 유리 목걸이, 화장품 단지, 화장품 푸는 주걱, 숟갈, 청동제 향유 병, 정말 아름답다. 또 청동 기억자로 된 때 미는 도구, 이것을 처음 보는 순간 너무 놀라웠다. 때를 이태리타월로는 미는 줄을 알았지만 우리나라의 낫 모양으로 생긴 기역자 모양의 도구로 몸을 긁어 때를 긁어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발굴되어 당시를 추측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게 했다.
베스 비오 지역에서는 포도주 판매가 왕성했다. 포도밭이 많았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낚시 흔적이 발견되었다.
저울추의 발견으로 이미 그 오랜 옛날 폼페이에서는 무게를 잰 흔적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미루어 수학과 과학이 발달했었다는 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자로 길이를 재고, 부피와 면적도 측량했다. 함 평형추는 대형 저울로 나무와 청동을 달아서 집을 짓고 물건을 만들었음을 보여 주었다. 항아리를 만들어 올리브 향유를 담고, 생선까지 이미 저장하여 오래 두고 먹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저장 식품의 발달 과정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탄화된 복숭아, 올리브, 호두가 그대로 숯 모양으로 제 모습을 보여준다. 가마솥, 냄비 손잡이, 탈착씩 쟁반, 식당벽화, 요리용 삼각 받침대, 철, 청동, 뚜껑 달린 가마솥, 제례용 화병에는 양쪽에 잔이 두 개 달려있다. 아주 특이 했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처음 보는 형태이다.
전시실을 돌아서자 다음으로 눈앞에 나타난 것에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람들이 용암 가스가 폭발하자 숨을 쉬기 위해 남자 여자 모두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죽은 시체의 모습이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물론 손가락, 발가락은 모두 타서 없는 몽당 발과 몽당손이다. 쇠고랑을 찬 남자도 있다. 감옥 인 듯싶다. 한 곳에서 삼십인 이상이 발굴되었다. 그렇다. 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자연의 재해 앞에서는 구별 될 수 없다.
죽음 앞에서의 평등이겠지 자연 재해의 죽음 앞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조차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겠지 하며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어 대강 훑어보고 발을 돌렸다. 말은 할 수 없지만 씁쓸한 뒷맛의 여운을 남아 쫒기 듯 음침한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첫댓글 황혼길로
접어드시면서
편안한 시간이
주어지셨네요
화산 폭발로 인해
재속에 묻혀버린
폼페이 도시
글로서도
상상이 되어집니다
요즘 해외 뉴스에서도
화산 폭발이 심한데도
있던데요
끔찍하더이다
손가락 발가락
모두 타서 몽당발과 손
얼마나 아팠을까요
끔직합니다
그 고통 말입니다
좋은 경험 하셨네요
사진만으로도
끔찍한 장면이
많았을텐데요
이태리. 최후의 날
폼페이 도시가 화산폭발
로 인해 아비규환 생지옥으로
변한 잃어버린 도시
폼페이오 전을
관람하고 오셨군요
자연재해엔
인간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죽음을 맞게된다는
아픈 교훈을. 줍니다
즐감입니다
자연재해엔
인간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죽음을 맞게된다는
아픈 교훈을. 줍니다
즐감입니다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 연안 배수비오 화산 폭발
1978년 8월 24일이었던가요
역사적 현장
전 아직 못가본 곳
자세한 설명으로 감사히 배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