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일주문에 선운산 선운사가 아니라 도솔산 선운사라고 씌어 있다. 뭉게뭉게 구름처럼 수풀이 피어나는 모습이 지극히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이다. 선운사를 둘러싼 도솔산의 여러 산봉우리 산등성이 라인이 사찰 건물의 지붕선과 이어지며 동양화를 대기가 민망하게 초연한 아름다움이다. 아마도 사람도 자연에 가까워지려 하면 저런 아름다움에 도달하지 않을까.
방문일 : 2021.5.10.
위치 : 전북 고창군
선운은 참선하는 구름, 혹은 구름 속에 참선을 한다는 의미이다. 도솔은 부처님이 반드시 이 하늘에 있다 성불한다는 육천 중 네번째 하늘이다. 결국 선운이나 도솔이나 도를 닦고 참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사찰이 전체적으로 거슬리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하나 없다. 절을 둘러 싼 산세와의 조화마저 유별날 정도로 자연스러운 곳이다. 천왕문을 지나면 처음 만나는 만세루는 남은 목재로 만든 건물이라 어느 한 곳 제대로 된 곳이 없다는 건물이 다. 그렇게 어그러지고 정연하지 않은 조각들이 모여 만든 건물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단아하다. 틀어진 여러 조각들의 조합이 어엿한 건물로 당당하게 서 있다. 보물 이름을 달고서 말이다. 사찰과 도솔산의 조합도 그렇다. 따로 조용히 제 멋으로 있지만 합쳐져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있다.
몽실몽실 초록 덩어리들이 사찰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같기도 한다. 우리 사람들도 그렇게 서로 다르지만 얼려서 아름다운 조합을 이루고 있을 터이다.
* 선운산 자락에 위치한 선운사는 김제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유구한 역사와 함께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절의 이름은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는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유래되었다.
선운사는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긴 평탄한 대지 위에 여러 동의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중심부에는 천왕문과 만세루, 대웅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과 만세루의 서쪽에는 영산전·팔상전·명부전 등이 자리하며, 동쪽에는 동상실·능인각·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도솔[兜率]은 욕계 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이다. 보통 도솔천이라고 불린다. 수미산 꼭대기에 십이만 유순(十二萬由旬) 되는 곳에 있다는 천계(天界)로서,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으며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하늘에 사는 사람의 욕망을 이루는 외원(外院)과 미륵보살의 정토인 내원(內院)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있다가 성불한다고 한다.
미륵과 모든 부처님의 공간 도솔천, 왔다 그 공간에 잠깐 몸 담그고 가면 나도 훈김에 득도는 못해도 하나쯤의 돈오는 하지 않을까.
일주문을 지나 선운사의 이르는 길이다. 도도하면서도 화려한 초록의 향연이다. 어느 꽃이 이런 초록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눈이 부신 초록, 아니 연두길에 눈이 호사한다.
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또는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이 의운국사(義雲國師)에게 명하여 창건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창건설은 당시 선운사가 위치한 지역이 백제의 영토였고, 백제와 신라의 외교관계를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선운사는 1318년(충숙왕 5)과 1354년(공민왕 3)에 중수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사(廢寺)되었다. 1472년(성종 3) 행호선사(幸浩禪師)는 탑만 남아 있던 자리에 덕원군(德原君 : 성종의 숙부)의 후원을 받아 10여 년 동안 대규모 가람으로 중창하였다. 이때 선운사는 왕실 원당(願堂)의 기능을 갖게 되었으며 천불대광명전·관음전·금당·능인전·지장전·나한전·대장전·보현전·설법전·시왕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과 문, 요사 등의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덕원군별원당선운산선운사중창산세사적형지안(德源君別願堂禪雲山禪雲寺重創山勢事蹟形止案)」(1483년)에는 당시 선운사 건물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종열위영가(祖宗列位靈駕: 역대 왕실 조상들의 넋), 시주자 명단, 축원문(祝願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찬란했던 선운사는 정유재란 때 초토화되면서 성종의 어실(御室: 성종의 선왕·선후의 영가를 모신 곳)만 남게 되었고 1608년∼1609년 사이에 승려 수십 명이 모여 법당 3칸을 세웠다고 한다.
1614년(광해군 6)에는 무장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재건 불사를 주도하여 법당을 5칸으로 증축하고, 건물의 방향도 지금과 같이 바꾸었다. 이때 증축된 건물이 지금의 선운사 대웅전이다. 내부에 모셔진 삼존불상은 1633년에는 조성을 시작하여 이듬해 봉안된 것이다. 그러나 대웅전은 1839년 장마로 인해 오른쪽 2칸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이듬해 보수되었다. 1973년에는 부식된 부재를 교체하면서 단청을 다시 칠하고 기와도 교체하였으며 1992년에는 지붕을 수리하였다.
대웅전. 보물 제290호. 선운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단층 맞배집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 협시불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만세루. 사천왕문을 지나 처음 만나는 누각이다. 남은 목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만세루. 가까이 보면 아구가 맞은 번듯한 목재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훌륭한 건물로 서 있다.
선운사는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왔다갔다 대웅전을 요리조리 보게 이곳저곳에서 만난다.
다시 입구에서 처음부터 본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이르는 길은 개천 이쪽 저쪽 두 갈래 길이다. 들어갔다 나오는 길을 달리 하며 모두 보자. 놓칠 수 없는 초록의 향연이다. 물과 함께 해서 빛깔의 공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극락교. 앞에서 사천왕문을 만난다.
흰두교의 신이라는 사천왕. 무섭지만 절마다 있어 이제 친숙한 얼굴이 되었다. 이렇게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으니 이제 겁도 안난다. 최명희 <혼불> 마지막 권은 온통 사천왕 이야기다. 무슨 매력이 있어 그리 빠져들의 소설의 정신줄을 놓았는지, 들여다 보자.
기념품과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얼마나 물건이 많은지 안 사고는 못 배긴다. 뽕나무로 만든 소금도 판다.
범종각
정면에서 보는 만세루. 마침 초파일 즈음이라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느라 앞모습을 가리고 있다.
대웅전과 불당안 삼존불
*정면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봉안하고 좌우에 협시불을 모신다. 그러나 선운사 대웅전은 중앙에 비로나자불을 모시고 좌우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불상과 전각의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18세기 후반까지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대법당이라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관음전. 안에 천수관음이 모셔져 있다.
지장보궁. 지장보살을 잃었다가 어떻게 되찾게 되었는지 내막을 적어 놓았다.
대웅전 양쪽에 심은 배롱나무가 우아하고 기이하게 자태를 자랑한다.
만세루 뒷 모습. 안쪽에서는 차도 마시고 강학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영산전
산신각
동백나무숲
조사전
사찰 설명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고창선운사 #선운사 만세루 #도솔산선운사 #고창가볼만한곳
----------------------------
풍천장어
선운사 입구는 전국 풍천장어의 본산지이다. 수많은 장어식당이 포진해 있다. 장어는 재료 자체의 맛이 음식맛을 좌우하므로 곁반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곳은 전라도, 전라도에 와서 제대로 된 밥상을 받지 않으면 좀 억울하다.
여기서는 풍천장어 밥상만 간략히 소개한다. 선운사 구경에 놓칠 수 없는 것이 풍천장어다. 풍천은 기수역이란 말도 되고, 이 인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