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 공지영
전화를 끊고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전화기가 놓인 창가의 탁자를 떠나
지 못하고 쭈그린 채 앉아 있었다. 새로 이사한 집의 창은 남쪽으로 나
있어서 초봄의 까실까실한 햇살이 아침부터 낡은 커튼의 올 사이로 스며
들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전화기 번호판사이의 아주 작은 틈새에 낀 오래된 먼
지들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1하고 2 사이 2하고 3사이…. 다만, 4하고
1 사이 그리고 2하고 1 사이 8하고 9 사이의 모서리들만 그 먼지들로부
터 희미하게 벗어나 있었다. 4하고 1 사이하고 8하고 9사이하고는 아마도
어머니댁의 전화번호를 누르기 위해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한달 전 아직 바람이 찼던 겨울날 이 산비탈의 동네까지,
이삿짐 센터의 인부들하고 언성까지 높이며 웃돈싸움을 하고 난 이후로
어머니에게만 전화를 걸었을 뿐 전화기를 써본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가스를 설치하고 전화를 신청한 것은 아마도 전화가 나오기 전 주인집
전화를 빌려썼으니까 이 전화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고 마치 너무나 오
래도록 미워했던 누군가하고, 마지막 오기까지 다 짜내어 전투라도 치르
는 듯이 몇날 몇일 밤을 이삿짐을 정리하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던 날,
갑자기 이 창으로 들어오는 부신 햇살에 눈을 떴을 때, 하얗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아직 풀냄새가 풀풀 나는 새 집의 낯선 벽지와 자리를 바꾼 가
구들을 망연히 바라보다가는 그런데 왜 이렇게 동네가 조용하지 하는 생
각을 하면서 불현듯 눈물이 쏟아졌고, 아아, 약해져서는 안돼 하는 생각
에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물론 중
국집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반경이었다.
하필이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은 사실은 짬뽕 국물이라도 좀 먹
고 싶었던 생각에서였겠지만 전에 이 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창문 모서리
에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놓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
이긴 했다.
하지만 새로 이사온 이 조용하고 낯선 동네의 중국집 외에는 어느 누구
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지 않을 만큼, 그리고 사실은 중국집에서조차 전화
를 받지 않은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을 만큼 나는 사람들에게 지쳐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그때 이미 봉순이 언니를 생각했었다. 그것은 이십
몇년만의 불현듯한 회상이었다. 나는 지금 방금 통화를 끝낸 어머니가 내
게 전해줄 말을 벌써 예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봉순이 언니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봉순이가 없어졌단다.”
어머니는 요즘 가뜩이나 날카로워져 있는 나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어제 결혼식에서 우연히 대지골 사람을 만났는데 그러더구나…. 개
기르던 떠돌이 놈하고 눈이 맞은 것 같다는데 세상에 아비 다른 애들 넷
을 놔두고서, 남부끄럽지도 않은지….”
“애들이 아직 한창 학교 다니잖아…. 근데 어디로 도망을 갔다는 거야
?”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니? 큰 애야 저번에 광양으로 내려갔고 나머지
애들은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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