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 김시천 낭송 –김경자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물처럼 몸을 낮추어
조용히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다구니 쓰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 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고
잘난 것만 보지 말고, 못난 것들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 저 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잠깐인 것을, 세월은 정말 유수같은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살았을까
낙락장송은 말고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
근처에 도랑물이나 졸졸거리고 산감나무 한 그루
철마다 흐드러지면 그쯤으로 그만인 것을.
무어 얼마나 더 부귀영화 누리자고 그랬나 몰라.
사랑도 익어야 한다는 것을
덜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
사랑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왜 몰랐나 몰라.
나도 이제쯤에는 홍시가 되면 좋겠어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어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ㅓ교육의 현장에서
“디레 디레 잘레만느” 라는 문장의 의미를 아시지요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합니다. 이문장의 의미는
"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는 뜻의 힌디어입니다.
코로나라는 도깨비비에게 감금상태로 살면서 조급증에 어쩔줄 몰라하던 제 심장을 견디게 해준 기도문 같은 문장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마음을 만지시는 분들이라 함께 나누고 싶어요
80년대 저항의 아이콘 박노해시인의 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뭔가에 쫓길때 기도처럼 외워보세요 그럼 불안증이 줄어들겁니다.
좋은시는 마음의 통증과 염증을 다스리는 진통제이기도 소염제이기도 해요
배고픈 영혼의 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문제 시인의 시 오래만지 슬픔이란 소염제를 하나드리고 갈까 합니다.
토닥토닥 - 김재진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ㅇ~~~~~~~~~~~~~~~미리보내드린 시 전문 ~~~~~~~~~~`
오래 만진 슬픔 -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겨울행 이 근 배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없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
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 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 어머니.
어머니.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엘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 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 쓰러진 자리
생솔가지를 꺾던 눈밭의
당신의 언 발이 짚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 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시) -피천득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꺾이어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갈래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맞닿아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으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 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므로
명치끝에 피는 꽃 / 김 계반
소매물도 벼랑 끝에서 만난
동백꽃 한 송이에 운적 있다
마른 울음이었다
금간 바위 틈
볼펜자루 만한 키에 꽃을 달다니,
청록색 반짝이는 이파리가 받쳐 든
꽃잎은 왜 그렇게 붉고
꽃술은 또 그렇게 샛노란지
둘러보니 주변에는
동백 한 그루 보이지 않는데
몫을 다하는 진짜 앞에서
말의 곳간이 비어있었다
명치끝에 피는 꽃
마른울음을 울뿐 詩 앞에서, 나는
늘 먹먹하다
기어이
딛고 일어서고
마침내 남아서 반짝이는 저것
꽃은 상처다
꽃은 사리다
다 못한 말들이 제 안으로 영글면
저렇게 빛이 되기도 하는구나
해조음에 기대어 한 호흡 한 호흡
붉은 발톱으로 기어올랐을 바위틈
간절한 바램은
먼먼 하늘에도 한걸음에 닿아서
눈 밝은 샛별이 팔 뻗었겠다
으샤 으샤 힘내라고 손 내밀었겠다
풀 한포기 들이지 않는 벼랑 끝
뜬금없이 날아온
씨앗 한 알
보듬고 다독여준 우주를 향하여
온 몸 곧추세워 정수리에 켜 든 촛불
동백꽃 한 송이
먹먹하도록 눈부신, 너를
캄캄한 내 詩의 명치 끝에
너를 매달고
또다시 세상 속으로 발걸음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