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삼일 째다. 손을 벌리며 사각형 종이 담배각을 찾으러 침대 옆 협탁 위를 더듬었다. 삼일 전 모든 담배를 가위로 절단해서 버린 뒤로 한 개비 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참. 이제 끊었잖아.'
친구의 유혹에 져서 한 일년 정도 폈는데, 몸에 맞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어 며칠 전에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아침부터 담배를 찾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담배는 아침에 정신을 차리는 용도로도 쓰여왔지만, 이제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다.
전신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몸매를 보면서 옆구리의 군살들을 집게 손가락으로 잡고 흔들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매지만 자세히 집중하면 온통 살들만 보이는 것 같다.
가슴 골 사이와 양 옆으로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보였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어깨와 날개 죽지 뒤로 약간 붉은 것들도 더러 보였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에 간혹 가려움도 느껴지지만 대체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샤워를 마치고 큰 타월로 물기를 닦고 거실로 나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옷장을 열고 서랍에서 브래지어를 꺼낸 뒤 가슴을 채우고, 빨간 팬티를 입었다. 그리고 속옷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홀로 3층 빌라 302호에 산 지 육개월 째다. 마성의 연예계에서 독립을 얻어낸 그녀의 독립 기념일은 7월 20일. 그날은 빌라와 전세계약 동시에 이사를 들어온 날이었다.
괜찮은 남자의 프로필이 최신글에 올라왔다. 남자의 프로필을 제대로 읽어보았다. 그녀와 같은 입장에 있는 무자녀 돌싱남이었다. 그 남자에게 톡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만한 내용은 전체적으로 진정어린 어필이 글 속에 있었고, 사진을 보니 잘 생긴데다 참 착해보였다.
일단 사진은 맘에 들어서 카톡 아이디를 재빨리 메모했다. 그녀는 창밖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태양 주변에 하얀 물질들이 뿌려져 있었다. 구름과 비견 되는 물질들, 사람들은 그것을 구름으로 알고 있다.
요즘들어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가 사라지는 이유도 아마 중금속 중독으로 인함일 것이다. 미세먼지에 섞인 중금속도 있지만, 수돗물에 섞인 중금속도 그렇고 뭐든지 정상인 것이 없는 세상에 살면서 몸 역시 정상일 수가 없다.
담배를 한 달 끊으면 애견센터에 가볼 참이다. 육개월간 혼자 살다보니 여간 적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남친이 생긴다면 조금 더 고려해 볼 참이다.
그녀는 평소 버릇대로 하루 계획을 머리에 담고서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정말 남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담배를 끊은 순간 타락했던 그녀를 순수했던 자신으로 돌려보려는 시도를 진행하는 중이다.
그녀의 나이 39살. 정말 삼십대 아홉수에 제 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걸까?
독신의 즐기는 삶을 산지 고작 육개월이지만, 때론 그녀에게 처한 지긋지긋한 현실 때문에 여간 우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담배와 함께 타락한 현실을 끊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
카톡으로 그에게 자신의 간단한 소개글과 사진을 보냈다. 며칠 뒤 그 남자는 그녀에게 만남을 요청해왔다. 그녀는 그에게서 조금 성급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최대한 그에게 맞춰주려는 성의를 보였고, 목요일 저녁 6시에 신촌에서 그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
한 중년 백수 신세로 골방에 누워 있는 남자는 여전히 계속되는 재채기와 온몸에 두드러기 증상에 밤부터 으슬으슬 떨리다가 식은땀을 흠뻑 쏟고 있었다.
요즘에는 병원에 가도 약도 잘 듣지 않고, 병원에 가게 되면 오히려 병을 달고 올 수도 있어서 집에서 스스로 격리 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대유행 신종바이러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 없었지만, 아닐 것이라고 믿고 그냥 집에서 해열제 먹고 버티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직업도 없는데, 몸살감기까지 걸리다니, 악재 중에 악재였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돈이라도 벌어놔서 먹고 사는데 당장에는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국가에서는 재난 지원금이 나오고 있어 당분간은 그것으로 생활비에 보태는 중이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좀 수그러들고 나면, 재기를 위해서 다시 취업 전선으로 뛰어 들어 가야만 했다. 유주한, 그의 나이 마흔 하나, 언제 오십 대가 될지도 모른다. 결혼해서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여 가정을 구축하고, 2세를 얻어야 하는데, 그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 시선도 문제지만, 나이 들면 외로움 속에 고통 받을 것이 더 두렵다. 지금은 부모님이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분들도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지금은 믿을 수 없지만 그때가 되면 정말 그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새롭게 프리랜서로 일해보겠다는 다짐은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다. 아르바이트도 관심 없고, 오직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 뿐인데, 그의 건강 염려 증세는 점점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합병증으로 죽는 사람들이 이웃 주변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119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보통 돌아가시는 분들은 독거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가 밖을 둘러보시고 집안으로 들어오시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앞 집 고영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갑자기.."
그는 역시 신종바이러스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뉴스에서도 대부분 바이러스에 걸려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사인이 심혈관질환 때문이라는데."
"심각한 유행단계지.."
어머니는 잠시 그의 한심한 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주한아! 넌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디 나가서 일자리라도 알아봐라. 바이러스에 뒈지기 전에 굶어 죽겠다."
그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방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다름, 네이바 등등의 포탈 사이트는 현재 사망자 수를 전면에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불안한 세상에서 직장 다닐 맛이 날까?
하지만 그는 어쨌든 집에만 있는다고 다 해결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경고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었다. 이제 곧 세계 대공황이 닥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대비해서 달러와 금을 몇 조각 모아 놓았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돈을 더 모아야 했다. 가정도 있어야 했고, 생존하려면 공동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럿 있었다.
한국에도 지속적으로 강도 3에서 4정도 되는 지진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 대지진 이후로 한국인들도 여간 그 여파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 지진으로 방사능에 노출된 수산물들이 아무도 모르게 국내로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 국민들의 몸에도 방사능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찍는 엑스레이로 인해, 집에서 사용하는 전자렌지로 인해, 스마트폰, 텔레비젼, 컴퓨터 등의 전자기파, 그리고 5G의 고주파로 인해..
앞으로는 한국도 지진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갔고, 얼마 전에는 서울과 가까운 북한 평강에서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서 재난 문자가 심각한 소음을 일으키며 온 적이 있었다.
일단 직업을 구하자. 조금 더 직장을 다니면서 생존 전략을 세워야겠다. 이번은 점점 부피가 커지는 대형 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준비도 천천히 해야 한다. 천천히 그 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은 위기는 빨리 다가와서 빨리 해결되지만 큰 위기는 천천히 다가와서 막장으로 흐르는 것, 즉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섯 군데 회사에 한꺼번에 입사서류를 준비하고, 월요일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서류접수를 집중 포화했다.
힘든 과정이었다. 사이트마다 그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된 회사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겨우 찾은 다섯 곳이었다. 힘든 과정을 거쳤고, 왠지 어려운 일을 마친 상태에서 이대로 하루를 보낼 수 없다. 영업을 하듯 회사 입사지원 역시 영업이다.
그를 마케팅하는 과정이며, 회사 맞춤 이력서를 보내야 하기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쌓인 스트레스로 어깨가 많이 뭉친 것 같다.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으니 어디 가서 풀긴 풀어야 한다. 조금 일했다고 엄살이냐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지원한 회사는 쉽지 않는 곳이다. 그곳 맞춤을 위해 일주일이 소모됐다.
마지막 과정이 인터넷으로 쏘는 일이었다. 그것을 오늘 월요일 오전 중에 마무리를 한 것이다. 이제 그의 스펙을 알아보고 반드시 두 서너 곳은 면접 제의를 할 것이다.
그는 말없이 빈 가방 하나를 들러 매고 밖으로 나섰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옥상으로 올라간 어머니는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백수로 3년째 지내다 보니 이제 나가고 오는 일도 이 나이에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도 함께 사는데 적어도 속임은 없이 투명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곤 하지.
세상이 지진이다, 전쟁이다, 바이러스다 난리를 펴도 돌아가는 모습들은 여전하다.
버스와 차들은 도로에 가득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밖을 쏘다닌다.
다만 달라진 것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
젊은 여자들은 여전히 외출할 때 예쁜 옷, 다리 맵시가 잘 드러난 옷, 강한 매력을 어필 하는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닌다.
그의 시선은 그런 예쁜 여자들에게 쏠리지만, 그림에 떡,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즐길 뿐이다.
가질 수 없는 환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이제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면접을 보러가야 한다.
이이잉~
바지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전화 진동이었다.
"여보세요?"
"유주한 씨 이신가요? 여기는 SW입니다."
"아! 네.."
그가 이력서를 보낸 회사였다.
"면접 제의를 드리려고요."
그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1년 간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화상면접과 다양한 수습기간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는 한의원으로 가서 침으로 근육의 경화를 완화시킨 다음 보약을 지어 먹으면서 스테미너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면접제의를 받고 면접을 한 뒤 회사에 나가서 한 달간의 수습을 마치고 난 다음..
현재, 그는 승용차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의 부서는 영업팀이며, 여러 회사를 다니며 영업을 뛰고 있다.
요즘 영업은 방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것은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는 제품의 판매를 위해 전국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개설하는 동시에 타브랜드와 제휴를 맺는 일을 진행했다.
그의 일은 담당자와 피드백을 하면서 거래를 진행한다.
계약서를 쓰고, 체인점 개설을 돕고, 동시에 타브랜드와 엠오유(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
즉 양해각서를 온라인상에서 맺으며 전국에 체인망을 증폭시킨다.
이번에 제대로 된 식품 사업이다. 해외에서 수입한 고구마가 SW의 메인 아이템이다.
이름은 SWEET POTATO, 고구마의 영문 명칭이다.
이 제품은 회사에서 프랜차이즈로 개설한 파전피자퓨전집에 공급된다.
물론 프랜차이즈 이름은 파전피자이다.
어느 날 그는 차로 학동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수많은 차들이 질서 정연하게 다니다가
갑자기 차 한대가 튀어 나와 그의 차 앞을 가로질러 달렸다.
"씹새끼! 좇나 운전 개같이 하네.."
그는 경적을 울리는 대신 차 안에서 혼자 열불을 토했다.
물론 사고로 이어질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방어운전을 하기 때문에 결코 사고로 이어질 만한 짓을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랑을 했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고,
1년 연애 이후로 더 이상 사랑이 지속되지 않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하지만 그후로 주한은 이미 사랑이 완전히 매말라 있었다.
애인이 생긴다면 그녀는 어느 정도 미모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너무 못생기지 않고, 어느 정도 예쁘면 좋겠다.
너무 뚱뚱하지도 않고 건강하면 좋겠다.
그렇다고 거식증에 걸려 밥을 거르는 여자는 아니었으면 한다.
잘 먹으면서 운동해서 건강미 있는 몸매를 가꾸는 여성이 좋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키는 너무 크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게 크면 잡아 먹으려고 달려들것 같아서 그렇다.
물론 편견이지만, 눈높이가 맞는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것도 욕심은 욕심일 것이다.
차창 밖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교차로 정지 신호에 서 있는 동안 여자가 녹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걸으며 차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짧은 치마 아래 길쭉하게 뻗은 다리가 각선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여인에게 눈길을 오래 두지 않고,
직진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좌우를 살피며 교차로를 통과하는데,
느닷없이 차 한 대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비상 경보등을 켜고 그대로 차를 멈추었다.
미친 차가 그대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내 앞을 지나가버렸다.
그의 손도 이미 다른 차들과 함께 기나긴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그는 황당했지만, 재빨리 신호가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벗어나야 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그대로 멈추지 않았으면 바로 저승길로 직행했을 것이다.
그는 그날 심장이 벌렁거리는 가슴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열심히 업무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인터넷 카페에 접속하여 여자친구를 찾는 글을 올렸다.
그 인터넷 카페에서 글과 사진, 그리고 그의 약력을 올리면 전화가 오기도 한다.
혹은 여자들이 올려놓은 것을 읽다가 서로 웹상 대화를
나누다가 연락처를 얻어서 만남을 가질 수도 있다.
그는 골목길 한 켠에 주차를 해놓고,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채 열심히 글을 올렸다.
누군가가 그에게 연락을 취하기를 고대하면서..
열받는 7월, 청푸른 하늘을 본지 기억이 안난다.
뭔가 중간에 시야를 가리는 것들은 항상 코를 자극하여 알레르기 비염을 일으킨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지 오래된 것 같다.
그래도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니 서울을 벗어날 수는 없고, 언제까지 더러운 미세먼지를 마셔가며 살아야하는지..
공기도 안좋아서 가끔은 산에도 가야하는데,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 산에 간들 얼마나 많은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런지..
그래도 안가는 것보다 가는게 날 것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누군가로부터 메세지가 도착했다.
워터멜론토크라는 바다가 연상되는
푸른색깔 이미지의 이모티콘이 떠오르며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을 위해 카페에서 올려놓으신 글을 보고 톡했어요."
그는 내가 던진 미끼에 그녀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기를 치려는 것은 아니고,
그녀를 어떻게 해볼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의 인생의 어항에 잡아 놓을 여인을 잡기 위한 미끼라는 표현일 뿐이다.
하룻밤, 원나잇, 그런 것도 취향이 아니다.
오히려 만나서 맘에 들면 그녀를 영원히 옆에 붙들고 영원히 가족으로 만들 의지가 있다.
시어머니께 순종하고,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여자,
즉 현모양처를 꿈꾸지만 요즘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적으론 그저 불만 없이 함께 잘 살아줄 사람이면 족하다.
요즘 여자들은 워낙에 매스컴에서
날씬한 몸매를 강조하니 왠만해서는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빼고,
관리해서 살을 찌우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이래서 힘들긴 하지만
거리를 걷노라면 여인들의 뒷모습은 건강미가 넘친다.
하지만 너무 안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때론 들곤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인사와 더불어 이런 저런 대화가 천천히 이뤄졌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와의 만남이 신촌에서 이뤄졌다.
앞에 원피스로 등장한 그녀,
머리카락은 웨이브 펌에 살짝 갈색으로 물들어져 있고, 키도 적절한 크기에 몸매도 괜찮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는 지친 상태로 주중에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의 급한 성격 때문에 일단 봐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판단에 데이트를 신청한 것이었다.
"제 이름은 유수한이라고 해요. 제가 너무 성급했나요?
좀더 대화를 나누다가 주말쯤에 봤어야하는데.."
여자는 예의를 갖추느라 속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예요. 저도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 걸요. 오히려 한참 기다렸는 걸요. "
과연 이 여인이 앞으로 그와 함께 할 여자가 될 것인지, 기대가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매우 평범했다.
솔직히 그의 머릿속에 담긴걸 다 말했다가는 그녀는 도망가버릴 지도 모른다.
남자는 자신을 숨기고,
여자도 자신을 숨기면서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아야한다.
그런데 그녀는 돌싱이다.
물론 자녀는 없다고 한다.
"시기가 되어서 서로 뜻이 안 맞다는 걸 깨달은 거죠.
서로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그런 요인이 되었을 거예요."
그녀의 이혼 사유였다.
"차는 제가 사는 거니까 드시고 싶은 거드세요."
"전 카페라떼로 먹을게요."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계산하고 가져올게요."
수한은 카운터로 가서 음료 주문을 하고 다시 돌아갔다.
남녀가 처음 만나서 흔하게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수한은 그녀가 음료가 나오고 한참 자기 잘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그녀에 대하여 하나 둘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그의 한 쪽 귀를 타고 다른 귀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차는 수한 씨가 샀으니까 저녁은 제가 살게요."
미지가 밥을 사겠다고 하자 그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여자들은 남자에 의지하는데, 그녀는 선뜻 시원스럽게 나오는 경향을 보였다.
굳이 그녀의 의사를 만류하고 고집부려서 밥을 사겠다고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녀의 안내로 나는 닭갈비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참 직원들의 서비스 조리가 이뤄졌고,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맥주를 시켰다.
"뭐드실래요? 전 맥주 타입이라.."
"전 소주.."
"제가 소주는 먹지 못해서.. 바로 취해버리거든요."
"아! 그럼 맥주 먹지요 뭐.."
사실 수한은 맥주를 먹으면 배탈이 잘나서 술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는 소주를 먹는 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그는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그녀는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자기 취향을 선택했다.
차라리 술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반강제로 그녀와 건배를 했다.
*
*
*
*
*
그리고 그렇게 서로 빠른 속도로 연애는 시작된다.
*
*
*
*
*
어느 날 아침
수한과 이지는 며칠 째 밤을 함께 지냈다.
그날은 둘다 출근해야하는 월요일이었다.
이지는 그에게 아침 밥을 차려주며 그에게 신혼의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수한은 그녀와 함께 아침을 준비해주며 같이 상 위에 반찬을 놓고 국을 떴다.
그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살면 아침도 같이 차리자."
그녀는 그녀의 미소를 받으며 대답했다.
"우리 둘다 바쁘면.. 만약 내가 애라도 키우게 되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응. 그래도 널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방긋 웃으며 아침을 먹은 뒤 먼저 수한을 현관 앞에서 키스 인사를 했다. 그녀는 집에서 회사가 도보로 20분 거리라서 서두르지 않아도 됐지만, 그는 한시간은 족히 걸리기에 먼저 나서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같은 사랑은 반복되었다. 그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주말 부부처럼 토요일, 일요일을 함께 밤을 불태웠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수한은 지난 주와 같이 부리나케 회사로 출근했다.
그날 그녀는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장만했다. 과감한 결정이었고, 그녀의 감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 마음으로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오줌에 묻혀 보았다.
그리고 5초후 반응은 나타났다.
줄이 두 개가 그어졌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뱃속에 새 생명이 생겼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한씨! 오늘 좀 만났으면 해."
둘은 회사일 때문에 토요일에만 만났지만, 그녀는 그에게 중요한 소식을 들려줘야했다. 그날 그녀는 조금 일찍 퇴근하여 산부인과에 들렀다.
의사는 그녀가 확인한대로 초음파를 통해 임신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녀는 초음파 사진을 들고 수한을 만나기 위해 평소에 만나는 장소의 커피숍에서 기다렸다.
커피숍 문이 열리고 수한이 나타났다.
그녀는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지야! 먼저왔네."
"응. 어서 앉아봐."
"왜? 무슨 일인데?"
그녀는 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이게.."
수한은 대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기분이 상당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자신에게 아이가 생긴 것이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만, 기쁜 것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는 듯했다.
"이지야! 우리 잘 한 번 키워보자."
그녀는 뜨고 맑게 빛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 주 토요일 그는 일을 빨리 진행해야겠다는 판단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이지야. 오늘 저녁 때 예쁘게 입고 나와."
이지는 그의 요청에 최대한 신경을 써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저녁에 강남에서 그를 만났다.
수한은 레스토랑에서 그녀를 의자에 앉힌 뒤 곧바로 무릅을 꿇으며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지야. 나랑 결혼해주겠어?"
그녀는 기뻐하며 함박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밥먹고 우리집에 가자."
"이렇게 빨리?"
"그래. 어서 서둘러야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잖아."
"알았어."
몇일 뒤 상견례는 잘 이뤄졌고, 결혼약속을 잡은뒤 한 달 뒤 두 사람은 조촐한 결혼식장에서 양부모와 가족들만 초청해서 예식을 마쳤다.
임신을 한 이지의 배는 달이 갈수록 불러왔다.
그리고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했다. 아기가 태어났고, 사내 아이였다.
수한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를 보며 기뻐했다.
그리고 병실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가서 말했다.
"이지야. 고생많았어. 이제 우리도 자식이 생겼어."
"이름은 정했어?"
"응."
"뭔데?"
"유인서 어때?"
"좋네."
"맘에 들어?"
"응."
며칠 후 수한은 이지와 인서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매일 밤 인서를 보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5월 25일
KBC 뉴스속보
“긴급속보입니다. 호남선 새마을호가 선로를 벗어나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10분 후
"현재 호남선 ITX호 가 전복되고 목포시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위독한 가스가 분출되어 사망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지금 목포시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경가스로 추정되는 물질이 목포시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목포시의 대로에서 추돌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잠시 후 대통령의 긴급 발표가 있겠습니다. 본부로 연결하겠습니다."
몇시간 후 오현우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회견 단상에 올라 발표를 시작했다.
"전 국민 여러분! 지금 이 시각부로 목포시에 위급 재난 경보를 발표하겠습니다. 전라남도 목포시 일대의 모든 국민들은 신속히 목포시를 빠져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군경합동부대가 군산을 통과한 호남선 새마을호 열차를 멈추는데 실패하고 목포시 일대에서 신경가스 테러로 인해 사망자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지금 퍼지고 있는 신경가스는 종류조차 알기 힘들며 저희 조사단들이 차단복을 착용하고 들어갔음에도 신경가스에 노출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저 신경가스 테러를 발생케 한 원흉이 누구인지는 저희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미 정부는 테러를 막는데 실패하였고, 부끄럽게도 이렇게 국민여러분의 마지막 처신을 부탁할 뿐입니다. 부디 목포시 일대에서 벗어나셔서 목숨을 보존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할 뿐입니다."
KBC, SBC, MBS등의 공중파 채널 뿐 아니라 여러 개의 케이블 뉴스채널 및 일반 채널에서도 대통령의 전격 발표를 방영했다. TV를 보고 있는 목포 뿐 아니라 목포시 인근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발표에 놀라 허겁지겁 필요 물품을 사기 시작했고, 벌써 짐을 싸 차에 싣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일반국도에 갑자기 차량이 몰려들었고, 어느새 정체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국의 국민들은 뉴스를 보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아포칼립스와 아마겟돈을 연상케 하는 퍼펙트 스톰, 거대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었다.
고조된 앵커의 목소리가 전남 목포시가 신경가스의 분출로 쑥대밭이 됐다는 긴박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정부당국은 장항선 열차의 전복 사태 이후 목포 전 시를 초토화시킨 정체불명의 신경가스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조사단을 급파한지 아홉 시간이 흘렀지만, 조사단으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그들의 생사 마저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재시각 공 세 시 이십 오분 목포시는 신경가스로 추정되는 물질의 겉잡을 수 없는 확산으로 죽음의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5월 26일
오후 6시경 KBC 아나운서의 긴박한 목소리가 서울 중심 거리의 전광판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5월 25일 발생한 테러에 사용된 신경가스가 VX로 밝혀졌지만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수많은 괴담과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모설은 가짜뉴스입니다."
어느 진실을 폭로하는 유튜버
"목포 열차 전복사태와 아비규환 같은 사건에 대하여 의문 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청와대에 정확한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글들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청원에 참여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VX의 확산범위에 대비한 VX의 양입니다. 목포시를 초토화할 수 있는 양의 VX가 살포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전문가의 입장입니다. 질병관리국과 재난대응안전센터는 거짓말을 지꺼리고 있습니다."
공영채널
"질병관리국과 재난대응안전센터는 조속히 신경가스의 성분을 채취하여 차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책 준비중입니다. 하지만 현 실정은 어떠한 첨단 군 장비를 갖추고도 목포 시 내로 접근 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신경가스의 일시적 소강 상태로 인하여 감염자 및 사망자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군경합동 부대는 2차, 3차 신경가스 노출을 막기 위해 격리지역을 정하여 놓고 차단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
수한과 이지는 그날 긴급 뉴스속보를 숨죽인 채 보고 있었다. 둘은 가슴이 철렁한 상태로 숨죽이고 뉴스를 보면서도 둘 다 고향이 목포나 전라도 쪽이 아니라 그쪽에 가족이 없다는 것을 한편으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달이 흘렀다.
수한은 화장실 끝칸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두 직원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가 한달 째 보이지 않아."
"정말? 어디갔지?"
"뭔가 이상해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소리도 있고."
"뭐 정말이야?"
"임원진들도 거의 반이상이 안보이잖아. 지금 거의 젊은 임원들만 돌아다니고 있고말야."
"뭔가 수상한데.."
수한은 왠지 회사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날 밤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다가 얕은 잠에서 꿈을 꾸었다.
그는 넓은 산 속 정원이 있는 이층 목조주택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정장 신사가 현관안에서 문을 열고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며 그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왠 낯선 남자가 접근을 하자 당황한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그 남자는 자신을 소개할 의사가 없는 듯 다시 되물어왔다.
"선생님의 이름이 유수한 씨가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만 어떻게 아시죠?"
수한은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자 왠지 덜컥 겁이 일었다.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신상을 캐고, 속여서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일단 눈으로 확인시켜드리지요."
남자가 오른 손으로 큰 원을 그리자 갑자기 주변이 다른 세상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가 만든 세상 안에는 오직 수한과 이지 뿐이었고, 또 다른 세상 속에는 마치 입체동영상이 재생되는 스크린을 보는 기분이었다.
수한의 회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출두하여 모든 정보를 박스에 담고 있었다.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는 도주한 대표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만했다.
"이, 이게 도대체 뭡니까?"
남자는 수한이 더 흥분할 것 같아서 모든 영상들을 거두었다.
남자는 그의 의심을 느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현실 매트릭스에서 계속 살아가면 저렇게 됩니다. 앞으로 당신에게 벌어질 일은 비단 당신들만의 일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에게 닥칠 일이라는 것입니다."
수한은 그 마법과 같은 상황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 지 감이 서지 않았다.
옆에 이지는 반대로 남자의 능력, 그리고 방금전 상황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공포에 젖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수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그에게 말미를 줄 뜻으로 말했다.
"제 말이 바로 믿겨지지 않으실 겁니다. 수한씨의 회사가 부도를 맞은 건 이미 1년 전일입니다. 현재 당신의 회사는 파생금융상품을 사들여 돈으로 대체하여 빚을 불리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 이지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곳의 대표는 이미 도주로를 확보한 상태며 이백여명의 임직원들은 그것도 모르고 미친듯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사해보세요. 그럼 알게될 것입니다."
수한은 꿈에서 깨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 이상한 꿈에 그는 온몸에 서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빨리 회사에 가서 그의 불안한 기분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회사로 출근 하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뜨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대기업들이 부도 맞고 줄도산하는 보도 검색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도 긴급뉴스에 우왕좌왕하는 표정이었다.
"서 설마."
텔레비젼에서도 수많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부도를 맞았다는 뉴스가 긴급히 보도되고 있었다.
"설마 우리 회사도.."
그때 이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뉴스에서 난리야. 대기업들이 부도를 맞고 있어."
"나도 스마트폰으로 봤어. 지금 출근길이야?"
"응! 회사가는 길인데, 지난부부터 대표님이 안보여서 이상했는데, 우리회사도 어떻게 되는 지 알아봐야해."
"알았어. 나도 확인하고 전화줄게."
수한은 어째서 일이 이렇게 갑자기 터지는 지 이해가 안갔다. 대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기에 모든 회사들이 한방에 무너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로 출근한 사람들은 다들 어이가 없는 표정들이었다. 황당하고 맥을 못추리는 기운 빠진 남직원들과 여직원들은 어지럽혀진 회사 주변을 배회하고, 어떤 이는 이사와 대표의 사무실을 뒤지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수한은 사장실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는 김차장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김차장은 평소에 수한과 친한 사이였기에 가까이 대할 수 있었고, 그는 그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김차장님! 어떻게 된겁니까? 사장님은요?"
"어! 윤과장! 사장이랑 이사는 튄 것 같아."
"그럼 우리 월급은요? 퇴직금도 날아간 겁니까?"
"씨발! 나도 몰라! 나는 여기서 벌써 10년 째란말이야. 너는 아직 일년 밖에 안됐잖아. 내 퇴직금이 공중분해됐다고."
수한은 그를 그대로 둬야할 것 같았다. 그 상황을 믿지 못하는 그는 모든 증거물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손해를 덜본 상황인 수한은 사무실을 벗어나며 다시 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지가 전화를 받으며 먼저 입을 뗐다.
"여보! 어떻게 우리회사 대표가 도망갔데. 이미 회사는 부도 처리되고 지금 세무과에서 와서 여기저기 물건에 압류표시 붙이고 있어."
"이런 어쩌지? 세상이 어떻게 된거야?"
"몰라! 일단 집에서 봐."
"응."
뉴스에서는 전세계의 2차 대공황 상황을 긴급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긴급 뉴스를 보도합니다. 지난 대대적인 양적완화로 막대한 빚의 증폭과 기업합병을 위해 발행하던 CLO(대출증권담보부채권)의 부실로 인하여 보험사와 은행, 기업체가 동시에 후폭풍을 맞아 BIS는 사실상 세계는 대공황 수준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이미 대공황을 맞이하기 전 대부분의 보이지 않는 채권자들이 공매도에 나선 상태였고, 수많은 굴지의 기업들이 부도를 맞이했다. 이는 무리하게 기업체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대형급 허리케인, 핵폭발과 화산폭발 이상의 거대 재난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월가의 모든 금융기업들과 유럽 각국 중앙은행, 독일의 도이치뱅크, 미국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체이스뱅크, 시티뱅크 등등 이미 부도를 맞이한 상황이었지만, 뱅크런을 막기 위해 전 국민들의 계좌를 동결하여 출금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오일 값과 식료품, 일반 잡화, 의류, 수산물의 가격이 폭등했다.
이세상은 상위 소수 1%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경제상황으로 치닫고있었다.
수한은 미국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난민이되어 집도 잃고 돈도 잃어 산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가거나 산으로 들어갔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대한민국의 사정도 다를 바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통보와 같은 긴급뉴스는 마치 오늘 일이 터진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지만, 이미 한 달 전부터 붕괴는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장 든실했던 삼성그룹마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수한은 집으로 돌아와 이지와 함께 밥을 먹으며 말했다.
"원달러 환율 차가 천전부지로 올랐어. 그래서 한국인 이미 다 부도상태였는데, 지금까지 언론이 틀어막다가 오늘 터뜨린 거야."
"이를 어쩌지? 앞으로 인서랑 어떻게 먹고살아? 여보!"
"일단 현금 가진거 다 꺼내보자."
"현금이 어디에 있다고? 다 은행에 있는데."
"그럼 은행에 가자."
"은행 문 다 닫힌 거 못봤어?"
"뭐라고?"
"신한, 국민, 하나 다 영업정지상태야."
"뭐라고? 뉴스에서는 아무말 없었는데?"
"뉴스에서는 안나왔는데, 지금 은행이 그런 상태야."
"말도 안돼! 이거 피켓들고 정부청사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야? 국민들을 이렇게 사지에 내몰고 은행들이 다 잠수타고, 미친 거 아니야?"
이지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일단 시댁이랑 친정 집 다 가서 대책을 구해보자."
약간 흥분해 있던 수한은 그녀가 침착하게 계획을 세우자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수한은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꿈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얼마전 꿈에 나타났던 남자가 그와 함께 높은 산의 정원 테라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미 대화는 지난 회와 이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전에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 현실의 상황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런 상황을 모면할 수가 있죠?"
"일단 저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셔야합니다. 두 분이 살 곳은 정해져 있어요."
"산으로 들아간다고요?"
"네. 산으로 가야해요. 그곳은 일시적으로 안전한 곳입니다. 당신은 모르지만 현재 세계는 거대한 변혁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매트릭스의 노예처럼 가짜들만 보고 살고 있지요. 하지만 결국 하나하나 드러나게 될 것이며, 자각한 자들은 매트릭스에서 어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수한씨도 그렇게 하셔야합니다. 제가 수한씨를 찾은 이유는 당신과 나의 인연 때문입니다."
"인연이라뇨? 당신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수한씨께 제가 빚이 있어서요."
"빚이요?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요? 언제 저한테 돈 꿔간적 있어요?"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런 빚이 아니고 돈으로 값을 수 없는 빚이라서.."
"참나. 어쨌든 그럼 한번 믿어봅시다."
"그럼 제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수한은 남자가 손을 내밀자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순간 남자와 수한의 몸이 번쩍하며 사라졌고, 곧바로 집으로 이동했다.
집에는 이지가 있었고, 갑자가 나타난 수한과 낯선남자를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꿈속이라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신속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남자는 두 사람 앞에서 두 손을 큰게 원을 그리듯 휘젖었다. 그러자 눈 앞에 파란 물결 같은 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남자가 반투명 물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 뒤로 이지가 아기 인서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수한이 따라들어갔다.
반투명 문을 통과하자 눈 앞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굴뚝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담한 한 채의 오두막이 보였다.
"어머, 예쁜 집이에요."
이지가 탄성을 질렀다.
그녀가 살고 싶은 이상적인 자연공간의 집이었다.
"저런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남자는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다음 설명을 해주었다.
"도시 삶과 단절하면 이목의 시선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남자가 한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자 갑자기 다시 공간이 바뀌며 다른 곳으로 이동이 되었다. 이동 되는 방법도 여러가지였다.
넓은 집 마당에 사람들이 싱싱한 채소로 건강 식단을 만드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도합 이십명이 넘는 사람들이었고, 남녀 성비로 이뤄졌는데, 각각 부부 한쌍씩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돌아다녔는데 노인은 없었다.
수한과 이지는 놀라워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고 사람들이 남자와 새 식구가 찾아온 것을 보고 밝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친절한 그들이 바로 마음에 속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남자를 바라보며 무슨 저런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는 다시 수한을 향해 웃으면서 다가오며 말했다.
"여기 있는 모두 한 식구처럼 지내지만 지역은 각기 다른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통로는 제가 설정한 입구로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지요. 앞으로 당분간은 생존을 위해 산에 있지만 세상은 더 험난해질 것입니다. 코브웹이라는 외계인 파충류 집단이 인간을 노예화 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위 1%를 이루는 앨리트들 가운데 실제로 파충류들이 변신한 자들이 80%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쉽게 물질에 중독되지 않고 상당히 똑똑하고 예민하며 뛰어나지요. 마약, 담배, 술, 이성 같은 것에 빠져 사는 앨리트는 그냥 돈 많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해 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합니다. 어차피 그들이 만들려는 신세계질서는 구축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안은 매트릭스와 같아서 불완전한 인간을 통제하기 매우 쉽게 설정이 되어 있지요."
수한은 남자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보로 봐서는 그냥 허튼소리만 들을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죠?"
"일단 제가 제공한 집에서 살면서 밖에서는 추이를 관찰하시고, 저희와 계속 소통하시면 됩니다."
"계속 산에서 살아야한다는 말씀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거대한 위기가 산재해 있습니다. 태양의 코로나 물질의 유입도 문제며, 현재 공명주파수도 100헤르츠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서 지구의 공명주파수의 혼돈이 일어났으며, 일정한 파동양 이상의 고주파동이 하늘과 땅속, 바닷속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면역계에 이상신호가 접수되고 지자기교란이 있을 때마다 우리 몸에서 염증이 발현될 것입니다. 취약한 노인들은 버티다 못해 사망하고, 건강한 사람들도 몸이 점점 약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이러스입니다. 수많은 변종바이러스가 미세먼지와 함께 세계로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로 인하여 몸속에 흡입한 우리는 유전자변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랜 기간 다국적 제약회사의 유지를 위해 하늘에 뿌린 바이러스는 공기중에 미세먼지와 함께 떠다니고 계속해서 우리의 몸을 기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에 유전인자를 변형시키려는 코브웹이라는 그림자 정부의 술책입니다. 지금까지는 조심스럽게 뿌려서 잘 몰랐지만, 이번에는 거의 실험적인 것이라 각종 변종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치명적 모든 면역 시스템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아내 이지는 인서를 안고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자는 수한에게 눈빛으로 아무 일이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같이 식사합시다. 수한씨. 앞으로 세상에 큰일이 벌어지면 우리도 어서 든든하게 먹고 준비를 해야해요."
수한은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유쾌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려던 순간 그는 눈을 떴다.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이 황당한 기분이 들만큼 꿈은 실감이 났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텔레비젼을 통해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