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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파란 글씨는 졸저 "항해일지"에 게제된 부분이다.
이 배는 전문 냉동화물 전용선으로 당시 일본에서도 그리 많이 건조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로 최신형 신조선이다. 냉장 ‧ 냉동화물 운반선은 +20도에서 –25도 사이의 온도를 8개의 각 선창마다 다르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선창의 크기나 개수, 온도 유지를 위한 특수한 기술, 주로 식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운송기간 등에 제한이 있어 최대 10,000톤 이상은 건조하지 못하며, 보통 7~8천 톤 규모의 선박들이다. 일본 큐슈의 남쪽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하야시가네(林兼)조선소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었다. 히로시마마루에서의 실적이 완벽하게 인정받은 결과이다. 신조선을 직접 인수받아 바로 출항하게 된 것이다.
Gross Ton(총톤수): 7164.96 ton.
Net Ton(순톤수): 4116.06 ton.
Dead Weight(하중): 8872.54 ton.
Full Load Draft(최대흘수): 8.819m.
Call sign : H3AH.
Cable add: OCEANCARRIERS KOBE.
Official No. 8665-Pext.
Flag(국적): Panama.
Built Year(건조년도): 1979.
Owner: Ocean Carriers Co., Ltd.
Address: 12-1, Hanakuma-cho, Ikuda-Ku, Kobe, Japan
Tel: 078-371-1831. Telex: 05622-623
Crew: 25 of Korean Crew
1979. Jan. 20(토)
15:30 : 신조선 인수팀 12명과 함께 대한항공으로 김해공항을 출발.
16:15 : 일본 福岡공항 도착. 후쿠오카역에서 기차로 다시 환승. 21:10시 長崎도착. 조선소 大洋療에 투숙하다.
이미 기관부 곽윤옥 기관장과 2등기관사 장장팔이 먼저 와 있다. 낯설고 새로운 길. 신조선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 불면. Anglo Marine(株)에 우편물을 Agent에 의뢰 발송하다.
C/O 송사원. 1/E 현고웅. R/O 유화준. BSN(갑판장) 변종성, 1등조타수 권오환,
1등조기수. C/S(조리장) 황윤섭. C/K(조리사) 서영섭 등 그리고 나 12명이다. 모두 대아에서 신임하고 아끼는 Member들이다.
79. Jan. 21(일)
Agent와 함께 Immigration(법무부 출입국)에 입국수속을 마치다. 西村(니시무라) 공무감독과 인사. Saloon Class(고급사관) 5명에 대한 명함 신청. 제3진 선원 출국관계 협의. 승선일을 30일로 예정, 31일부터 선내에서 식사개시 등 Schedule 점검.
2월1일 16:00시를 On-Hire(임대차 시작) 시점으로 한다는 등의 협의를 갖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나 자신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여간 다행으로 여기지 않아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한다.
22일 저녁부터 자체적으로 식사를 조리하도록 하다. 선원수첩은 일괄해서 유화준 통신장에게 보관시키다. 각부별 상호 긴밀한 협조를 당부. 오전에 선내를 순시하여 개략적인 상황을 파악, 오후에 각종 필요한 Document들을 챙기다.
내일 Sea Trial(해상 시운전) 예정. 06:30분까지 승선 할 것. 역시 불면. 아직은 Owner(선주)가 인수 받지 않은 상태이므로 조선소 소유이다. 우리가 임의로 할 수 없다. 선박에서는 船長이 없으면 안 되니까 명의만 이용하는 것으로 그냥 입회 내지 파악만 해야 한다.
Jan. 22(월) 1979
바쁘다. 06:30시 승선. 07:00 출항.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정대로 움직이는 일본인들의 치밀성과 성실성이 놀랍도록 마음에 든다. 오늘의 시운전은 조선소측의 자체운전으로 비공식 시운전이다. 각부별 전문가들에 의한 각종 Test가 순조롭게 진행, 성적이 양호하다. 인수 전이라 책임은없지만 선박에는 선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규정 때문이다.
Max. Speed(최고속력)가 22.557Knot다. 아찔하다. Check 할 게 너무 많다. Chart Catalogue(해도목록)를 두고 하나하나 챙긴다. Almanac 229은 부산에서 구해 오도록 조치. Loran과 Omega Table과 Chart. Great circle Chart(대권도) Plotting Sheet 등등 지금까지 듣도 보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과연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西村(니시무라) 감독에게 25명분의 Crew Roll(선원명부)과 Wage List(급료표) 등을 건냈다.
Jan. 23(화)
Ship's Money(선용금) 청구. 오락기구 점검과 청구. 용선자(Charterer) 및 운항, 항해지침의 점검과 협의. 각종 소모품과 작업복 등의 청구와 반입점검 및 지정 장소에 보관 배치. 눈코 뜰 새가 없다. 몸은 녹초가 되도 정신을 더욱 또렷해진다.
오늘 정식 시운전 실시. J.R(일본선급)의 관계관들과 조선소 측 그리고 Owner측의 西村감독과 내가 참여, 공식기록을 점검하다. 어제와 같은 양호한 결과다. 저녁에 조선소측에서 식사 초대 있었다. 거실에 놓아진 두 송이의 국화꽃이 무척 마음을 착찹하게 한다. 아마도 조선소 여직원이 갖다 둔 것 같다.
Jan. 24(수)
造船에 관한 사항을 마친 셈이다. 이제부터는 선주측과 선원들이 몫이다. 부족한 인원, 신조선이므로 전부가 새것이고 모든 것을 빠짐없이 챙기고 갖추어야 한다. 물론 선주측의 사전 수배가 완벽하고 치밀하게 되어 있지만 이것을 실지로 확인하고 인수하고 보관하고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임무다. 종일 Store(선용품) 점검. 무선검사가 실시되다.
神戶(고베)의 Anglo Marine 徐慶寅(서경인) 사장님께 전화.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다. 비가 오다.
Jan. 25(목)
선용금 100,000엥을 받다. 다시 Anglo에 전화 마지막 제3진의 渡日건을 독촉. 29일 가능성을 타진하다.
Jan. 26(금)
식료품 사입 시작하다. 47,657엥을 지급. Anglo와 협의 새로 오는 선원들은 29일에 내가 직접 福岡까지 가서 기차로 데려오기로 한다. 추가 선용금의 청구. 부산 대아에 전화. 제3진 29일 출발을 확인하다. 역시 선용품 가운데 빠진 것이 있어 추가로 청구하다. 나가사키(長崎) 상륙허가증을 신청하다.
Jan. 28(일)
처음으로 갖는 휴일. 造船所 측의 도움으로 나가사키 시내를 관광하다. 아직은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못한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다. 책과 간식 그리고 몇 가지 생활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을 사다.
Jan. 29(월)
기차로 후쿠오카 향발. 공항에서 Anglo의 齋藤(사이토)씨를 만나고 13명을 인수, 다시 기차편으로 나가사키로 오다.
Jan. 30(화)
선용금 $4,000을 수령하고 다시 $1,000을 청구하다(Rate: $1=¥195.90). 오후 2시 공식적으로 세관검사를 마치고 2시반에 정식으로 전원이 승선을 마치다. 정식으로 승선은 했으나 아직은 우리 것이 아니다. 정식으로 Owner가 인수증에 Sign을 마칠 때까지는-. 박영태 군 검역 실시. 식료품대 ¥775,115 지급. 접대품 ¥14,550구입.
Jan. 31(수)
Anglo 徐 사장님. 그리고 Owner측과 협의 각종 작업수당. 식비 등의 합의. 운항에 관한 Instruction(지시서)도 받았다. Panama운하 통과를 위한 Panama Agent에는 도착 5일전부터 매일 ETA를 타전하란다. 첫 항차가 미국 플로리다주 Fort Pierce에서 Grape Fruit(한국에서는 ‘자몽’이라 했다)를 적재하고 일본으로 오는 코스다.
1상자의 크기가 45x35x27.5cm=1.31CFT=0.37㎥랬다. 낯설다. 과일이랬다. 일단은 접어두고 출항 후 차근차근히 익혀보자. 부딛치면 수가 있을 것이다. 西村감독으로부터 선저 외판에 대한 Sea Protest(해난보고서)를 8개월 이내에 작성하란다. 積荷港인 F. Pierce에서는 신조선의 첫 기항지라 시민들에게 선박을 공개하고 축하 행사도 있단다. 船上에서는 중요한 사람들만 모여서 간단한 기념식과 Party도 있을 예정이라고. 뭐가 뭔지?
Feb. 1(목)
14:00 영업부 2층에서 선박 인수 인계식을 거행하다. 14:20 본선에 일본 국기를 하강하고 Panama국기를 파나마 영사가 직접 게양했다. 조선소측 여직원이 꽃다발을 선주와 선장. 기관장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14;45시 조선소에서 離岸하면서 유창한(?) 일본말로 그 동안 본선을 제작하면서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마이크로 했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송 속에 출항하다.(후에 서 사장님에게 이 일본말 인사가 조선소는 물론 선주 및 참석한 일본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들었다.)
돌풍과 심한 눈이 내린다. Pilot와 小池(고이께)사장이 고베상선(해양대학) 동창이랬다. 바깥 해상이 거칠다. 20도 정도의 심한 Rolling이 있다. 쉬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 아직도 쫒기는 기분. Great circle Chart(대권도)가 출항 한 시간 전에 도착. 아직 풀어보지도 못했다.
Feb. 2(금)
Av'e Speed(평균속력) 18k't. 정신이 없다. 아직도 Course Line(정식항로)를 긋지 못하고 있다. 내일 새벽이면 Tokyo만을 지나 起程지점에 도착하는데. 종일을 항로 만들기에 매달리다.
Feb. 3(토)
겨우 항로를 완성하다. Position이 문제다. Loran과 Omega가 아직 서툰데다 No.229 Table도 처음 사용하는 것이라 익숙지 못하다. 저녁 박명(薄明)시 겨우 Set했다. Great Circle(大圈)보다 약간 아래쪽으로 잡았다. 좋은 기상과 해상을 바랄뿐이다. 심한 Vibration(진동)과 Rolling에다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몸살기가 있더니 이제야 덧나는가 보다.
Feb. 5(월)
Loran과 Omega set 성공하다. 자동으로 위치가 표시된다. 편리한 항해기기다. 대부분의 Instruction을 일본말로 된 것을 청구. 읽고 이해하기가 훨씬 쉽고 자세하다.
멀미기운이 몸살과 겹친다. 평균속력 20놋트. 작년의 히로시마마루에 비하면 그냥 날아가는 기분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차이다. 平穩을 되찾은 海上이 무엇보다 다행한 일. 북위 37도 30분이다.
Feb. 6(화)
늦잠. 계속 짙은 구름이 덮였다. Omega의 위치에 다소 의혹을 갖는다. 내일 새벽 Data Line를 넘을 예정. 2월 6일을 반복해야 한다. 선장실, 넓직한 거실과 별도로 된 침실, 냉온수가 자유로운 욕탕과 화장실, 시원한 냉난방 시설.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어 좋다. 작년에 비하면 궁전이다. 냉각용 해수를 저기압에서 증발시켜 청수(淸水)로 만드는 시설이 있어 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다.
Feb. 6(화)
다시 6일. 손바닥에 가려움증이 있다. 연성세제를 맨손으로 사용한 탓인가? 35분간 主機(Main Eng.)를 Stop하다. 빠른 선속에 의한 잦은 시간의 변경. 시차를 이기지 못한다. 불면의 계속. Wife 생각이 나다. 벌써 이래서 어쩐담. 가볍게 한잔하고 눕다.
Feb. 7(수)
다소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Sailing Instruction(항해지시서)과 냉장 화물에 대한 참고자료를 읽기 시작하다. 역시 영어보다 일본어가 훨씬 편하고 이해가 빠르다.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루 속히 なれる(습관)가 되어야 할텐데.
Feb. 8(목)
평온한 날씨다. 이 계절에 이런 해상이 계속된다는 것에 감사한다. Maiden Voyage(처녀항해)를 축하라도 해주는 것인가. Position에 대한 의혹을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전자계기 사용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생기는 것이리라. Star Sighting(천측)이라도 한 번 해서 비교해봐야 하는데-. 해를 못 본지도 오래다. 땅위의 모든 일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꽤나 멀리 온 느낌이다. Panama까진 아직 10여일은 더 가야한다. ITF(국제운수노조연맹)관계가 성가시다. POB지급 서류 작성하다.
Feb. 9(금)
11시까지 자다. 시장기에 잠을 깼다. 그러나 모처럼의 숙면에 개운함을 느낀다. 어서 정상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다시 영어와 씨름을 시작하다. Hawaii의 미국 방송이 들린다. 파란 하늘 밝은 햇살 영롱한 별빛을 한 번 보고 싶다.
Feb. 10(토)
곽 기관장의 인생역정이 무척 실감나게 들었다. 인생의 浮沈, 그리고 기회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오직 그걸 잘 포착하고 이용하고 못함에 각자의 Key가 있다.
Feb. 11(일)
본선의 Power, 그리고 Speedy 함이 Deck 위에서 봄으로 더욱 실감을 가질 수 있다. 操船上의 제반 사항을 더욱 신중히 익히고 파악해야겠다.
Feb. 12(월)
명쾌한 날씨 그리고 좋은 海狀을 오랜만에 보다. 연일 계속되는 불면. 차츰 낮아지는 위도에 따라 높아지는 기온. 잡념 그리고 흐트러지는 정신력. 부딪치는 영어의 벽. 뚫어야 한다는 욕망은 있으나 능률이 없다.
Feb. 13(화)
오후 3시경 San Benedicto 섬을 보다. Omega 위치에 대한 의혹에서 벗어나다. 정확하다. 그러나 당분간 過信은 말자.
Feb. 14(수)
Air-Con. 가동시작. 강한 Mexico Current로 인한 압류가 심하다. 올빼미를 닮아간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말똥말똥하게 깨어 있다. 시차 때문이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영어와의 싸움. 계속 두드리자. 목적을 의식하지도 말자. 끈덕진 집념 아니 아집이다.
Feb. 15(목)
잠! 잠! 마누라를 짜증나게까지 한 그 깊은 잠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출혈된 눈알. 쑤시는 관자놀이. 멍청한 정신. 비상수단을 써보기로 하다. 선물로 받은 Suntory Whisky를 수면제로 삼다.
Feb. 16(금)
반죽음의 혼란상태에서 보내다.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던 것을-. ‘부활의 날’로 기억해두자. 엊저녁 위스키는 준비해준 소고기 Steak와 혼자서 슬금슬금 마시기 시작한 것이 어느 정도 취기가 있을 만큼 마신 후 그냥 누웠다. 덕분에 세상모르게 골아 떨어지기는 했다. 그런데 새벽 몇시나 됐을까? 눈을 떠보니 엉망진창 바로 그것이었다. 토한 것이 온 침대에 떡칠갑이 되어 있었다. 침대뿐만이 아니고 내 몸의 머리위에도 묻었다. 도데체가 어떻게 되었길레 이 모양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은 없다. 그 이상은 이야기를 말자. 여하튼 하루 종일을 굶었다.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본다. 그럴 수밖에-. 평소 식사 한 번 거르는 적이 없던 내가 하루 종일을 먹지 않고 두문 불출하고 있으니. 앞으로 위스키는 사절이다. (이 사건 이후 위스키와는 결별했다.)
Feb. 17(토) :
19:00 파나마 운하의 태평양측 관문인 Balboa 외항에 닻을 내렸다. 빠르기는 빠르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데 17일밖에 안 걸린 셈이다. 내일 오후 4시 Transit(통항)하기로 한단다. 처음이다 Panama운하를 통과해보기는. 세계의 가장 큰 운하인 Suez운하는 작년에 지나 보았다. 신조선임으로 선박의 외형을 그들의 기준(운하통과)에 맞춰 Re-measuring(재측정) 하기 위해 검사관이 왔다. 그걸 기준으로 통항료 등을 계산한다고 했다.
Feb. 18:(일)
08:30 - 13:30시 사이에 측정을 마치고 16:00 Pilot 승선. Panama 운하를 들어가다. 23:00시 완전히 운하를 통과. Cristobal을 벗어나다.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훌딱 넘어왔다. 바람이 텃세를 하는군.
Panama 운하! Suez운하가 ‘힘’으로 건설한 것이라면 이 운하는 ‘技’로 만들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여 이렇듯 교묘한 운하를 만든 서양인들의 예지가 놀랍다. 그 육중한 선박을 들어 올리는데 이용되는 물의 흐름을 조정하는 水門을 열고 닫는데 필요한 동력은 단 45마력. 개통 초기에 말이 끌었으나 지금은 동력으로 양쪽에서 선박을 끄는 인력차량은 일본 미쯔비시회사의 작품으로 대당 100만달러나 한다고 한다. 지역은 분명히 파나마인데도 운하의 운영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냥 신기할 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여 연결하는 이 運河는 태평양의 Balboa에서 대서양의 Colon(Cristobal)에 이른다. 길이 82km, 평균수심 13.7m이상. 폭 30-90m. 수면은 해발 26m. 수문은 상하 각 3개씩이다.
이 운하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프랑스 기술자 F M De Leespes(레셉스)가 당시 Colombia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운하회사를 설립. 1883년에 시작했으나 지역의 극심한 마라리아, 황열병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유럽 기술자들의 희생이 많은 등 실패했다. 그 후 1898년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으로 인하여 이 운하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됨에 따라 당시 미국의 T.루즈벨트 대통령이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함으로서 1903년 Panama의 독립과 아울러 파나마와 조약에 의해 1904년에 건설에 착수 10년만인 1914년 10월 10일에 역사적인 개통을 보았다. 이 운하를 위해서 미국이 파나마란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운하는 갑문식(閘門式) 운하이다. 이 갑문식은 어디에서 처음 발견됐는지는 불명하나 대체로 15세기에 이태리 밀라노부근에서 고안, 채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계 운하발달사에서 이 갑문과 갑실은 극히 간단한 물의 흐름을 원리를 이용하여 상이한 두 수면사이를 연결하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한 쌍의 갑문과 막혀있는 갑실을 이용하여 수면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지금은 세계의 운하 수면을 해발 190m까지 올려 놓는다고 한다. 샤그레(Chagres)강을 Gatun부근에서 막아 Dam을 막고 거대한 가툰호수를 만든 후 이 호수에서 양쪽을 운하로 물을 공급함으로서 선박을 항해할 수 있게 했다. 건설 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축사상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 운하를 중심으로 양쪽 8km씩을 운하지대로 하고 이 지대와 운하의 관리를 미국이 갖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운하지대의 사용권과 행정권을 미국은 일시금 1000만달러와 연간 25만달러(1939년부터 43만달러, 1955년부터 193만달러로 증액)를 지급하였으나 아마도 2000년대에는 파나마로 이양된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이 운하건설을 최초로 착수한 레셉스가 인부들이 전염병 때문에 실패한 반면, 미국이 건설하는 기간에 마라리아와 황열병의 전염매개체가 모기임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치료백신이 발명됨에 따라 인부들이 병으로부터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000여명의 인명피해가 따랐다고 한다.(참고자료에서 발췌)
Feb. 19(월) 1979
밤과 낮이 완전히 뒤바뀐 ‘올빼미 생활’을 당분간 정착시키기로 하다. 억지로 하기보다 자연적으로 정상화 되어지도록 두어야겠 다. 기막힌 노력이 엉망으로 끝나버렸으니 -.
Feb. 21(수):
14:30시 미국 플로리다의 F. Pierce 외항에 닻을 내렸다. 미국의 플로리다주 중간의 조그만 항구. 부근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Grape Fruit(우리말로 자몽)를 양국간의 무역법에 따라 일본으로 수출하게 된 것이란다. REGUN호와 교신.
Feb. 22.(목):
01:40시 부두에 계류하다. 계류 중 선수 Bulbow가 부두벽에 부딛쳐 약간의 손상을 입다. 02:00 Survey(검사관)붙이다. 곧 이어 작업을 개시하다. JRL(Japan Reefer)의 三井(미쯔이)씨가 오다. Port Capt.(하역감독)인 셈이다. 편리하기도 하고 귀찮스럽기도 하다. 불면과 피로의 연속. 짜증 그리고 가끔은 후회도 고개를 든다. POB와 수당들을 지급하다.
Feb. 23(금):
생각보다 순한 검은 인부들이다. 고맙기도 하고 가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미국의 힘을 느낀다. 어제 접안시 손상된 부분에 대한 Sea Protest만들다.
Feb. 24(토):
기념식이 있은 날이다. 이 항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외국 선박이 입항하게 되는데다 “Royal LiLy”가 신조선으로 처녀항해 후 첫 기항지이므로 그에 따른 행사가 계획된 것이다. 이 부두와 본선을 공개하고 시민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본선 싸롱룸에서 벌어진 공식 행사에서 F. Pierce 시장으로부터 행운의 Key를 받았다. 부두 창고 이층에서 벌어진 Party에는 일반 시민들이 많이 모였으며 7인조 악단의 생음악 연주와 뷔페식으로 장만된 푸짐한 음식. 市長이 그의 부인 윗도리를 팔에 걸고 예외 없이 접시를 들고 마누라 뒤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높은 질서 의식과 권의주의적 모습이 없음이 더욱 놀랍다. 중간 중간에 오늘 참석한 유명인사의 소개도 있었다. 그냥 이름만 부르면 식사하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고 인사만 하면 된다. 오늘의 주인공이라며 ‘Captain. Suh’로 소개받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절까지 했다. 우리 배도 공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며 설명을 요구한다.
좁은 사다리라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에 불편하고 위험했지만 한사람씩 차근차근히 줄을 서고 기다리는 질서 때문에 아무런 사고 없이 마쳤다. 의미 있는 행사이긴 하지만 고된 하루였다. 부두에서 넘어져 다친 어떤 부인을 보고 즉시 도와주고 연락하고 재빨리 달려온 응급차 등이 역시 미국의 국력임을 증명하는 듯 하다.
25. Feb. (일):
모처럼의 휴일. 처음 밟은 미국 땅. 오후 외출. Market를 둘러 보다. 탐나는 게 많다. 오랜만에 40여분간 걸었다. 조용한 마을이다. 크고 넓직한 잔디밭 마당을 가진 집들이 있는가 하면 흑인들이 사는 듯한 조그만 오막살이 같은 것도 있다. 대도시의 소음이나 번잡스러움이 없다. 농산물 상호 교체수입에 따라 이곳 과일을 실어내기 위해 급히 개조한 항구라 그런지 외국적 대형선이 들어오긴 너무 비좁고 작은 포구다.
Feb. 26(월):
냉장상태가 불량하다. 기관장의 노고가 크다. 역시 경험의 부족에 기인한다. 그냥 쌓아둔 과일에서 Co2(탄산가스)의 방출이 심하다. Hatch 안에 계속 환풍을 하지 않으면 탄산가스에 질식하는 수가 있댔다. 과일 자체가 막 밭에서 따론 생물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교포 한 씨가 방선. 그의 미국 생활에서 느끼는 게 많다.
Feb. 27(수):
Bottom Touch 발생. 그리고 기관실 Sea Chest의 막힘. 배의 경사. Diver의 수배 및 선저 검사.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들을 겪다. 역시 C/O의 경험부족이 원인인 듯하다.
오후 6시 출항. 밤바람이 시원하다. Ship Chandler가 시원찮다. 그만큼 규모가 작은 시골이라는 뜻이다. 교포 한 씨 덕분에 배추는 구할 수 있었으나 담배는 기어이 면세로 사질 못했다. 비싼 식료품. 앞으로가 염려스럽다. 자주 올 곳은 못 된다.
Feb. 28(수):
Panama 운하 통과시 띄울 공문 모두 마친다. 아무래도 기분이 안 난다. 재미가 없을 듯한 예감.
Mar. 2(금):
16:00시 Cristobal 도착. 18:40시 Berthing하다. FO. LO 그리고 식수 받다. 상륙할까 하다가 그만두다. 역시 밤샘하다. 선주. 대아 집에 편지 띄우다. 정이 붙지 않는다. Agent를 통해 받은 두통의 Telex에서 더욱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양키놈들이 교활함이 다시 떠오른다. Cargo Damage가 어쨌든 없어야 이 누명을 벗는다.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 일도 없는데 카고(cargo)의 손상을 본선 잘못으로 뒤집어 씌운 내용이다. 두고 보자. 염려했던 Bonded Stores(면세담배)를 구입하다. 다행스런 일이다.
Mar. 3(토):
오후 2시 출항. Canal 통과까지 꼬박 13시간을 船橋에서 Pilot와 싱강이 하다. 녹초가 된다. 그 녀석도 무척 고단했을 테지만 좀 Carrier가 부족한 듯하다.
Mar. 4(일):
다시 시간을 늘려간다. 서서히 정상을 되찾는 기미가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東航과 西航이 현격한 차이가 난다. 시간을 당기고 늘이는 데서 생활의 리듬이 쪼개지기도 하고 붙여지기도 한다.
그날 새벽 아내의 흐느낌! 수만 마디의 질책보다도 아프고 무겁게 파고들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무슨 어려움이라도 있는 것일까?
Mar. 5 (월):
소설!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충동을 가진다. 무엇인가 얘기를 하고 싶은 게 불끈불끈 솟을 때도 있다. ‘부자 실습’. ‘세하곡’. ‘사막의 돌’. ‘누님의 초상’ 등의 단편들이 근간에 읽은 것들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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