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10년, 가족과 일본여행을 가겠다고 약속한 지 1년여 만에 드디어 한 달 전 일본행 항공편을 예매하였다. 특별히 셋째아들 상진과 막내 성준이의 일본어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고 아내에게도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파 기어이 가고 싶었다. 문제는 여행경비였지만, 아내가 작정하고 후원해주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행계획을 세워나갔다. 물론 처음에는 패키지여행으로 갈까하고 알아보기도 하였지만 여행경비와 여행목적 등을 고려하여 독자적인 가족여행을 선택하였다. 인터넷과 책자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먼저 다녀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지만 언어 장벽과 경비문제 등의 이유로 여러 번 여행일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정한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드디어 여행 날은 다가왔다.
여행 D-1일
5월 18일, 화요일 여행 전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김포 공항으로 가서 나고야행 비행기를 탄다. 저녁 근무를 하고 바로 출발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챙겨야 할 짐은 미리 다 준비 해 놓기로 하였다. 먼저 필수품으로 여권, 항공권예매 확인서, 여행경비와 신용카드, 5일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켄테츠교통티켓, 호텔 예약 근거자료등과 개인사물로 휴대전화, 전기면도기, 일어 회화책, 비상약품 등을 준비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름대로 필요한 것들을 나보다 더 꼼꼼히 챙기는 것 같았다. 왜 대부분이 가는 오오사카행이 아니고 나고야행이냐는 큰 아들의 말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일정을 스스로 세워보고 몸소 겪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간다는 사실이 그만큼 큰 부담이 되었다. 혼자라면 어떤 여행이라도 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아니 고생스러운 여행도 그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되지만 가족여행은 분명 그것과는 달라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고 보완하고 또 수정하였다.
여행 첫째 날 : 출발하는 날
5월 19일 수요일. 어제의 비가 그치고 날씨가 맑아서 여행자의 기분을 환하게 해주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준비한 덕에 아침을 먹고 6시 45분경에 집을 나왔다. 오전 10시 30분 출발 비행기로 공항에는 8시 30분 까지 도착해야했다. 집 앞에서 공항까지 가는 직행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세워주지 않으면 낭패라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택하여 안전하게 터미널로 가서 직행 버스를 탔다. 나중에 확인하였지만 현명한 판단이었다. 예정시간보다 약간 빨리 김포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하여 항공권을 받고 수하물을 보낸 후, 휴대폰 로밍을 의뢰하였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내 휴대폰이 010이 아니라 로밍이 되지 않는다 하여 하루 2000원씩 사용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휴대폰을 임대하였다. 신형 휴대폰이라 로밍 절차와 휴대폰 사용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 듣고 드디어 일본 엔화로 환전하기위해 환전소를 찾았다. 상진이가 삼천엥, 성준이가 사천엥을 환전하고 나는 150만원을 환전하니 약 12만 3천엥이 되었다. 목걸이 여행지갑에 여권과 비행기표 현금을 넣고 허리에 단단히 찼다. 곧 이어 제주항공 비행기에 오르자 10시 30분 정시에 이륙하였다. 저가 항공이지만 승무원들이 친절하였고 시설도 불편함이 없었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3명씩 앉도록 되어 아내와 두 아들이 왼쪽에 나란히 앉고 나는 바로 옆 오른쪽 통로 편 좌석에 앉게 되었다. 내 옆에는 일본인 중년 부부가 탑승하였다. 일본어를 공부한 후 일본인과 대화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눈을 감고 있어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스미마셍가...”로 시작하여 아는 단어로 이야기 해보니 그런대로 통하는 듯 했다.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대화 한 후에 나중에는 내 이메일 주소를 건네 주었다. 나고야 근교에 사는 분들로 2박3일 한국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남편은 금년 62세로 스즈기씨였고 아들 둘에 딸 둘의 자녀가 있다고 했다. 명동에서 먹은 만두가 맛있었으며 강남역 근처는 잘 모른다고 하였다. 드디어 약 1시간 25분 후에 비행기는 나고야국제공항에 도착하였고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은 후 드디어 일본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12시 30경 처음으로 킨테츠 자유이용권으로 공항에서 나고야역으로 가는 메이테츠보통열차(전철)를 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차창으로는 일본 농촌 풍경이 스쳐가고 앞 좌석에는 일본인들이 앉았다. 나는 그 순간을 즐기기 보다 조금은 급한 마음으로 고장난 여행가방 손잡이부터 고치고자 기어이 가방을 열어 도구를 찾아 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고치고 나니 열차가 나고야역에 도착하였다. 곧 이어 연결 통로를 따라 킨테츠 역으로 이동하여 오오사카 남바역까지의 특급열차표를 교환받았다. 기차를 타기 전에 도시락을 큰 것으로 두 개 사서 열차에 오르자마자 점심을 먹으면서부터 여유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도시락도 맛있었지만 아내와 모처럼 나란히 앉아 외국 여행을 하는 감회가 새로웠다. 기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드디어 우리는 첫 날 여행 목적지 오오사카에 도착하였다.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여행일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남바역에서 니혼바시역에 이르는 지하시장을 따라 구로몬재래시장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여러 가지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나는 전부터 갖고 싶었던 썬글라스를 삼백엔에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미리 예약한 남바역 근처로 오오사카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도톰보리인근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나와서 시내 구경을 하였다. 그동안 듣기만 하였던 우동, 라면,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돈카츠, 뎀뿌라, 당고, 스시, 소바, 돔부리가게를 지나면서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기로 하였는데 나는 스시집에 들러 스시 몇점에 사케 한잔 걸치고 나오니 기분이 술술하였다. 네온사인 깜박이는 거리에서 수학여행 온 우리나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과 많은 성인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오사카 거리에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넘쳐나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마트에서 아사이맥주와 기린맥주를 사가지고 숙소에 돌아와 마셨는데 기린맥주(생) 맛이 특별히 좋았다. 상진이는 숯으로 만든 세안제가 맘에 든다 하였고 성준이는 헌책방에서 산 만화와 마트에서 고른 과자와 음료를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여행 일정에는 항시 의외의 일이 따를 수 있듯이 생각지도 않게 숙소에 돌아오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당초 오오사카에서 2박 하려고 계획 하였는데 민박집 주인과 계약 조건 등에 분쟁이 발생하여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제공된 방이 당초 계약한 침대방이 아니었고... 쌍방간 감정이 개입되고 불편하게 되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뒷날 오사카 여행일정을 전면 재조정하여 오전에 오사카성만 구경하고 오후에 오사카를 떠나 나라를 거쳐 교토로 가는 새로운 계획을 짠 후 뒷날 숙소를 나오겠다고 하였다. 밤늦게까지 비가 내리고 약간은 더워서인지 아니면 주인과 다투어 감정이 상해서인지 처음 기분과는 달리 방안이 눅눅하고 습도가 높아 약간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피곤해서인지 다행히 새벽까지 푹 잘 잤다.
여행 둘째 날 : 5월 20일, 목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한국에서 가지고 간 햇반과 김으로 아침을 먹고 주인을 만나 기 지불한 이틀째 숙박비를 돌려받고 서로 간에 어제 일을 사과한 후 원래의 좋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민박집을 나섰다. 다음에라도 필요하면 그 곳을 이용 할 수 있도록 부탁 받고서...
드디어 택시를 타고 일본의 3대 성 중의 하나이면서 오사카 최고의 관광명소인 오사카성으로 향하였다. 한국과 차량 운행하는 방향이 달라 택시 타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차가 주행하는 도로의 오른 쪽 방향에서는 택시를 세울 수 없었다. 한참 만에 알아차려 건너편 도로로 이동하였더니 택시가 멈추어 탈 수 있었다. 무슨 택시인지 구분 못하고 탔는데 기본요금이 660엔이었고 곧이어 요금이 올라가기 시작하여 성까지 1300엔 정도 지불하였다. 공원에 도착하니 여전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웅장한 중앙 천수각의 모습은 외곽 성벽에 첩첩히 둘러싸여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여행가방을 가지고 이동하였으므로 불편하여서 도중에 가방을 매점 빈 공간에 두고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성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드디어 천수각에 도착하여 입장료로 성인 둘, 학생 둘 요금으로 약 2000엔을 지불하고 천수각 전망대에 올랐다. 누각의 4면에 부착된 황금덩어리와 정교한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오사카 시내를 내려다 본 후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와, 공원의 남쪽 출입구 방향으로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킨테츠 우에다혼마치역으로 이동하여 나라행 급행열차를 탔다. 약 40분 후에 나라역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가방을 역사에 있는 유료 로커에 두고 나와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카츠를 시켰는데 먼저는 종업원들이 밝고 친절하여 음식도 한결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 후엔 드라마에서 보았던 나라공원에 들러서 사슴들과 뒤섞여 거닐다가 도지사와 신사 등을 구경하였다. 오전과는 달리 오후엔 날이 개고 햇살이 비춰 상당히 더웠다. 그래서 휴식도 취할 겸해서 고풍스럽고 멋있어 보이는 찻집에 들러 먹음직스런 당고와 팥빙수를 맛보면서 휴식을 취한 후 선물가게에 들러 여러 가지 선물을 골랐다. 아내가 처음으로 지갑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 직장 동료들을 생각하며 모양도 좋고 잘 포장된 센베이 과자와 부드러운 빵 종류를 구입하였다. 한나절이었지만 만족스럽게 나라여행을 마치고 다시 킨테츠 급행 기차를 타고 당초 여행계획에 없었던 교토로 향하였다. 일찍 학교를 마친 남녀 고등학생들이 통학하는 열차 속에서 “아, 여기가 일본이구나! 하는 낯섦을 느끼며 이제 곧 고도의 도시를 본다는 설렘으로 연신 창밖에 펼쳐지는 한적한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먹은 후 많이 걸어서 피곤해서인지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기차는 교토 외곽에 접어들었고 눈앞에는 깨끗한 도시 풍광이 펼쳐졌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정반대로 그 날 묵을 숙소나 구체적인 관광 명소 등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국의 객창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교토역에 도착해 보니 역사가 쾌 크고 복잡해 보였다. 신칸센과 JR 국영철도, 기타 민영철도를 모두 탈수 있는 중부의 교통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교적 한적해 보이는 역사의 서편 출구로 나와 교토지도와 여행안내서를 구해들고 어디로 갈지 정하기로 하였다. 시간은 오후 4시 전후로 아직은 낮인데 플랫폼 밖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곧 밤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관광 안내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한인 숙소에 대한 정보는 없을 수 없어 생각 끝에, 우선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나가 그 인근에 있을 한인 식당이나 상점에 들러 숙박정보를 알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막상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혹시나 교토내에 한국식당이나 또는 상점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믿기지 않아 우리는 시내로 향하면서 가로 양옆 간판을 쳐다보며 갔다. 어렵지 않게 한글 간판이 눈에 뜨이리라 확신하면서... 드디어 중심가 “기온”지역 인근 전철역에서 하차하고부터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여행가방을 끌면서 한인 가게를 물으면서 찾아 나섰다. 결과는 어디에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약 한 시간쯤 지나 다시 택시 기사에게 물었더니 한국어로 “비빔밥” 하는 식당을 안다는 것이었다. 거기로 가면 한인을 만날 수 있겠구나 여기며 택시를 탔는데 상당히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택시비 올라가는 표시등을 보기가 부담스러워 애써 바깥에 눈길을 두며 도착해보니 한인은 안보이고 역시 친절한 일본인 부부가 나와 그곳에서는 한국 음식은 팔지만 한국인은 아니라고 하며 “고조텡”이라는 곳에 한국인 식당이 있다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그 택시를 다시 타고 도시 외곽을 돌아 드디어 교토에서 우리민족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그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한명은 말씨로 분명 한국인인데 주인과 다른 종업원들은 교포 2세나 3세로 보였고 우리말도 서툴렀다. 그런데 이들의 친절이 우리를 감동시켰고 그리고 생각키 어려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분들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우리가 묵을 숙소를 알아봐 주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와 인터넷을 이용해 많은 곳을 알아봤지만, 적당한 곳이 없이 오사카로 다시 돌아가 숙박을 하려고 결심하고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일본인이 운영하는 저렴한 여관을 알아낸 것이다. 마침 교토역 근처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정하고 또다시 택시로 이동하였다. “토마토”여관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경비도 아낄 겸 방 하나에 네 명 가족이 모두 들어가 짐을 풀고 안도의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한인 종업원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 듯싶었다. 즉, 최근 일본 경제가 좋지 않자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한인 민박집에 대하여 일본 숙박업 종사자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지방정부가 나서 단속을 하였기 때문에 한인민박집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처음 듣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지 상황이었다. 오사카만은 예외로 단속이 덜하여 민박집이 성행하였지만, 교토나 동경등 기타 지역은 허가 없이 민박을 하기 어렵게 되어 한인들이 덜 찾아오고 그 결과 인근 한인식료품가게나 식당등도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하였다. 일본 문화의 뿌리와 고색창연한 야경을 보리라 기대하며 찾아 온 교토의 밤은 이렇듯 주택가 뒷골목에 위치한 아담한 숙소에서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밤 9시쯤인가 무슨 요란한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주민들로 보이는 “자경단” 십여 명이 문단속 잘하라고 하면서 마을을 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적 전통인지 몰라도 아직도 그렇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며 교토의 숨은 매력을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하루에 3개 도시를 여행한 탓인지 가족 모두 피곤해 하여 간단히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여행 둘째 날 밤은 깊어갔다.
여행 셋째 날 : 5월 21일, 금요일
교토의 상쾌한 공기와 함께 밝은 햇살이 느껴질 쯤 일어나 보니 아침 7시경이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에서 물을 끊여 라면에 김치와 햄을 썰어 넣고 한국에서 가지고간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까지 숙소에 가방을 놓고 인근 유적지를 관람하려고 나섰다. 지도를 보면서 걸어서 드디어 “동본원사”라는 일본불교의 한 종파 본원에 들렀는데, 사찰 본관이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라 하였다. 마루에 깔린 나무 바닥은 거대한 고목들을 나란히 눕혀 놓은 듯하였고 사찰내부의 넓은 공간에는 다다미가 정결하게 깔려져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찰 전면 중앙에 부처 불상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풍신수길처럼 보이는 목조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교와 토속신앙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절인지 신사인지 도통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 전체가 거대하면서도 구도가 잘 잡혀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뽐내는 것 같았다. 사찰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음에 들른 곳이 우리나라 비원처럼 아름다운 궁중정원이었다. 정원의 규모가 그렇게 크거나 면적이 넓지 않았지만 역시 자연과 인공미가 혼재한 가운데 조화롭게 디자인 되어 있었다. 바로 이점이 이번 일본 여행 중 알게 된 것인데 일본에서는 전혀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부조화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전통은 전통대로 현대문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더 나아가 둘의 조합도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도 보면 여러 가지 언어가 동시다발로 등장하기도 한다. 즉, 히라가나, 카타카나, 한자, 영어, 축약된 일본식 영어 등이 마구잡이로 쓰여 우리말의 짬뽕처럼 보이는데 이도 일본문화의 한 특성이 아닌가 싶다. 객관적으로 살피면 우동이나 짜장도 맛있지만 짬뽕도 엄연한 음식으로 그 독특한 맛을 내기 때문에 어떤 관점을 들여대 비교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언제나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선일체”니 "대동아공영권”를 주장하는 논리가 그 잘못된 예이다.
교토의 매력을 막 느낄 즈음에 마지막 여행지로 떠나야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물론 여유시간이 있었다 해도 볕이 뜨거워 도심을 걸으며 관광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련없이 교토를 뒤로하고 일본여행 마지막 밤을 새울 “이세”로 향하였다.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냉방장치가 된 킨테츠특급에서 쾌적한 기차여행을 하였다. 기차여행 중 휴대폰에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와 막 통화 하려는 순간 경찰인지 역무원인지 갑자기 나타나서 사용을 제지하는 것이었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는데 교토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앞의 동본원사가 얼마나 크고 이국적이던지 건물 내 다다미에서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사진기를 내어 막 찍으려는 순간 역시 경찰인지 관리인인지 우리식으로 말하면 청원경찰같은 사람이 와서 제지하였다. 두 경우 다 제지 당하기전에 그 어디에서도 경찰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그 비밀의 답은 이세에 있는 유명한 이세신궁 관람 때 알아냈다. 처음 이세신궁 관람 때 역시 어디에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관람을 하다가 우연히 산기슭에 허름하고 조그마한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여 그냥 지나치려다 궁금해서 가까이가 창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그 곳에 오마와리상(경찰)이 있는 게 아닌가. 아하, 그렇구나! 경찰은 이렇게 일반인의 눈에 잘 안 뜨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창문을 통해 밖을 주시하다가 일이 생기면 길동이처럼 나타나는구나... 말 그대로 이세는 그 유명한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단군신화가 깃든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주위의 유적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잘 관리 된 신궁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걸리는 점은 그 동안 예외 없이 기독교인이라는 양심상의 이유로 어떤 신사나 절, 신궁에서도 참배나 절을 하지 않았다. 그냥 예를 갖춰 관람하였을 뿐... 잘 한 일인지 속 좁은 일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숙소는 나고야공항에서 대체로 가까운 휴양도시 이세시에 한국에서 보름 전에 예약해 두었기에 앞의 두 곳에서처럼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문제가 발생하였다. 사연인즉, 이 여관에 첫 번째 예약을 할 때는 한국인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나서 일본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동일 여관을 발견하고 가격을 비교해보니 가격차이가 많이 나서, 스스로 짧은 일본어 지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예약을 하고 먼저 예약한 건을 취소하였다. 조건을 조금 달리 한 것으로 한화 약10만 원을 절약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체크인 할 때 여관 주인이 내 이름으로 접수된 카드를 두 장 들고서 시설이 좋은 비싼 방으로 안내하였다. 당연히 나중에 예약한 저렴한 방인 줄 알고 짐을 푼 후 차 대접을 받고 대금을 지불하려는데, 처음 예약하였다 취소했던 비싼 방값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가지고간 근거자료를 보여주었더니 흔쾌히 내 주장을 받아들여 싼 값을 지불하라고 하였고 그 결과 우리는 싼 방값으로 이미 짐을 푼 비싼 방에서 묶게 되었다. 이게 웬 떡이야! 그 덕분에 그날 저녁은 조금 더 근사한 곳에서 식사할 수 있었다. 3박하면서 하루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잠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가족을 고생시키고 부담을 줘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단순히 보고 오는 관광을 넘어 많이 체험한 값진 여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행 4일째 : 돌아오는 날.
5월 22일, 토요일. 일본 전통여관에서 미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유카타를 입고 편히 잠을 자서인지 가뿐한 몸으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후 한시 반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혹시 늦을까봐 공항에는 3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아침 일찍 서둘러 나고야역을 거쳐 중부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탑승권을 교부받고 남은 시간에 모처럼 여유 있게 쇼핑을 하며 일본여행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내가 따라나서지 않아도 원하는 선물을 구입하기도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사왔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어 공부한답시고 폼 잡은 것 같은데 잘하든 못하든 그래도 그 덕으로 우리 가족만의 여행일정으로 일본여행을 잘 마친 것 같다. 3박 4일에 일본 중부 간사이지역 5개 도시 여행으로... 여행경비와 시간,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굳게 마음먹고 나선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특별히 나보다 자라는 아이들 삶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