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교협 설립 및 운영 관련 안내 인사 및 강론
선교협 설립 관련 김찬선 신부님의 인사 및 강론 등은 전체공지에 있으나 그 곳에 없는 자료를
0 - 1. 신부님 강론글 처음에 모아 놓았습니다.
현재 선교협동조합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여 '여기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되였습니다.
이사장의 소임을 맡으신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글을 확보하느대로 이곳에 게시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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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선 구로구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보도한
김찬선 이사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올립니다.
구로구공익활동지원센터
공익활동스토리
[공익활동스토리] 내 안에 행복이 채워져야 나눔도 가능해요
구로구공익센터
2024. 5. 7. 11:29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자기 자신처럼 남들도 사랑하라.
구로5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농협을 끼고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면 ‘여기밥상’이라는 간판이 크게 보인다.
매장 앞에 옷가지며 물품들이 진열된 벼룩시장도 보인다. 이곳은 구로5동에서 이주민과 장애인에게는 무료 식사 나눔을 하고, 지역 주민에게는 3천 원짜리 콩나물국밥을 판매하는 ‘여기밥상’이다. 여기밥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님으로 계시고, 매일 사람들에게 밥을 내어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김찬선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천주교 신부이고 천주교 안에서도 작은형제회(성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입니다. 현재는 수도회 분들과 함께 오류동에서 살고 있어요.
신부님은 어떻게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클 때는 전쟁이 끝난 직후고, 집이 가난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저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에게 고통도 있고 세상을 봐도 정의롭지 않고, 악이 판을 치는 이런 세상을 왜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이 강하게 왔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찾아지지 않았어요.
가톨릭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한 10년간은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그 방황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제 인생이 너무나 명확해졌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어요. 근데 그 얘기 들으면 아마 웃을 거예요. “이게 겨우 인생 사는 이유야? 다 아는 이야기인데”라고 할 텐데요.
‘사람은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방황 끝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와 보니, 프란치스코 성인(聖人)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찾은 모습이 너무나 멋진 거예요. 그래서 늘 이분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일상은 일반인들과 다를 것 같은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제 일상은 좀 특별해요. 저는 잠을 일찍 잡니다. 저녁 8시 반쯤 자서 새벽 2시쯤 일어나요. 일어나서 그날의 성경을 읽고 묵상(성찰, 생각, 명상)하고, 매일 글을 써요. 묵상 글을 쓰거나 강의 글을 쓰고, 당일 준비해야 할 일을 하지요. 6시 반에 수도회 분들과 모여서 기도하고, 미사를 드려요. 그다음에 한 30분 정도 매일 아침 대화 나누고 ‘여기밥상’으로 나옵니다. 밥하는 일, 사람 만나는 일 하러 나오지요.
신부님은 어떻게 구로에 오셔서 활동하게 되셨나요?
저는 이 일을 하기 전에 주로 수도원 안에서 수사님들 교육이나 행정 업무를 담당했어요. 한편으로는 1997년도부터 평화 통일, 북한 돕기 관련 활동을 했습니다. 환갑을 계기로 수도원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어 자유의 몸이 됐고,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 보자’라는 생각에 구로에 오게 되었습니다.
탈북자, 중국동포, 고려인, 이주민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한국 남성과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한 부모 가장이 되어 자녀를 키우는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주민과 함께 살기 위해 2017년에 가리봉동으로 와서 새벽 인력시장 나가 막노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글학교’를 열고 2019년에 협동조합을 만들고 현재는 ‘여기 밥상’을 운영하고 있지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곳은 '여기밥상' 식당인데요. 이곳을 운영하는 '여기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취지와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여기밥상’이나 ‘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름에 모두 ‘여기’가 들어가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내 안에서부터 시작해야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부터 널리 퍼져 나가야 한다는 의미죠. 그러니까 여기에 집중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한자로 여기애인(如己愛人)의 줄임말이에요.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진정 사랑할 줄 아니까요.
협동조합은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거예요. 종교적 테두리를 벗어나서 활동하는 방법으로 협동조합 형태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일반 협동조합으로 시작해서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은 까다로웠어요. 하지만 이주민들의 자립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아 전환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후원하신 분들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원래 이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창업을 통한 자립을 염두에 두고 조합을 시작했는데 현실이 녹녹하지 않아요. ‘여기밥상’도 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 계속 노력하는 중입니다.
'여기밥상'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영되고, 메뉴는 콩나물국밥을 비롯한 여섯 가지 메뉴로 구성되어 있어요. 매달 300장의 무료식권을 동 주민자치센터에 전달해서 필요한 분들이 무료로 식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일반 주민들께는 모든 메뉴를 3,000원에 제공하고 있어요. 점심시간 때는 보통 40명에서 60명이 식사를 해요. 오늘은 특별히 70명이 오셔서 기록을 세웠네요. 젊은 사람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옵니다.
요리해 본 적 없는 제가 필요에 따라 주방장을 합니다. 1년 전부터는 이주민 한 분이 주방을 맡게 되어 저는 이제 ‘여기밥상 매니저’가 됐어요. (웃음) 참 고마운 일이지요. 이어서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요. 2월부터는 오후 4시 이후 시간에 이주민 한 분에게 식당을 빌려줘서 공유 식당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손님이 적어 힘들겠지만, 자립의 토대로 됐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들 일거리로 콩나물을 직접 길러 식자재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힘들어하셔서 지금은 저희가 키워서 그 재료로 요리하고 있어요. 많은 분이 식자재를 보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삼천 원짜리 한 끼 식사를 만들 수 있겠어요. 쌀 같은 식자재는 사 본 적이 없어요. 필요할 때 딱 맞춰 기부가 들어와요. 하느님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보내주시는 것 같아요. 대체로 천주교 신자들이 도와주세요.
제가 이주민들이나 어려운 분들을 직접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그분들이 밥상에 찾아와 주니 그게 참 고마워요. 제가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 중의 하나가 ‘스스로 찾아오시는구나’하는 거예요. 제가 너무 바쁘지 않으면 주방에서 나와 그분들께 말을 걸고 그러다 보면 그분들 사정을 알게 되죠. 보름 전만 해도 너무나 힘들어서 오신 분이 오늘은 자랑하러 오셨어요. 여기 오는 분들의 어두웠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자주 봐요.
'여기밥상'을 운영하시면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얼마 전에 독거노인 한 분이 ‘여기밥상’으로 거의 기어서 오셨어요. 몸이 매우 말라 있었고,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2주간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고 해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수도, 씻을 수도, 드실 수도 없다가 도대체 이러다간 죽겠구나 싶어서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여기밥상’이 생각나서 기어서라도 오셨다고 합니다. 일단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한 다음 무료 목욕 봉사 차를 연결해서 씻게 해드리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모셔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어요.
독거노인으로 주민센터에서 관리 되고 있으실 텐데 그 상황까지 갔다는 게 매우 안타까웠고, ‘여기밥상’이 동네에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베풀고 계시고, 그 향기가 위험에 처한 분들에게 힘이 되어 주셨네요. 저도 구로구 주민으로 감사드려요. 그 외에도 이주민들을 위한 활동도 다양하게 하고 계시는데 소개 부탁합니다
10월에 바자회를 해서 그 비용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어요. 물품 기부, 판매뿐만 아니라 후원금도 들어옵니다. 장학금은 우리와 연계하는 이주민 자녀와 한부모 자녀들이 50여 명이 되는데 그분들께 지급하고, 이주민들 가운데 인재 양성에도 쓰이고 있어요.
이주민들을 위한 한글학교도 꾸준히 합니다. 요즘은 복지관이나 지역단체에 한글학교가 많아요. 우리 쪽에서 배우는 분들은 소수여서 그분들의 상황에 맞춰 교육을 진행합니다. 귀화 시험을 보는 사람은 귀화 시험 선생님을 연결하고, 검정고시 하는 사람은 검정고시 선생님을 연결하는 식으로 맞춤형으로 합니다.
법률 상담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주변에 아는 변호사들을 통해서도 상담을 진행합니다. 주로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최저임금을 못 받은 상황 등에 대해 상담합니다.
구로5동에서 '여기밥상'을 운영하시면서 주변의 변화를 느끼시나요?
여러분들도 절 찾아왔잖아요? 처음에 여러분들이 제가 여기 있는지 알았겠어요? (웃음)
동네 이웃들이 서서히 알아가고 있어요. 밥상 이웃에 사는 분들이 처음에는 인사도 잘 안 했는데, 지금은 서로 인사하며 지내요. 그리고 ‘여기밥상’ 앞에서 매일 아나바다 장터를 하고 있는데,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자신이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주고 사기도 하세요.
그리고 우리 활동에 함께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변합니다. 조합 이사님들도 생각이 바뀌고요. 처음에는 이 일의 가치를 모르시거나, 밥상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분들이 서서히 변화해 가요. 동네에서 이런 공간을 통해 이주민과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효능감을 느끼죠. 이분들은 천주교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는 함께 하는 분들이 사회적 경제 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 성장해 주기를 바랍니다.
신부님을 이끌어 주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천주교 신부로서 원동력이 없이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옛날에는 인간적인 성취욕 그것이 원동력일 때도 있었어요. 특히 북한과 함께 일하고 그러면서 가능치 않은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이것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고, 같이 해도 안 되는 거면, 이건 하느님이 하시는거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기서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밥상 메뉴를 여섯 가지로 늘렸는데 하나하나 늘릴 때마다 너무 신기한 거예요. ‘이것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 누가 보내주고 그러는데, 그게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보내주겠어요? 근데 그게 딱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내가 이런 얘기 했는데 그것을 보내주겠다고 연락이 오네, 이거는 참 하느님이 하시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꼭 그것만 있을까요? 신부님을 보고 보내주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저를 보고 보내주기도 하고, 이사님들, 후원자님들이 정말 열심히 활동해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제가 이주민을 위한 일을 해야 하겠다고 몇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같이 손발이 되어 주세요. 그분들이 누구 연계하고 또 연계하고 그렇게 해주십니다.
이 일을 하면서 신부님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여기 오는 분들을, 찾아오는 분들을요.
점점 더 많이 알게 되고 처음에는 그냥 누군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안에 들어오는 거죠. 저한테 온 선물인 것 같아요.
이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변화하기를 바라시나요?
주민들이 바뀌길 바라는 건 없습니다. 저는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이제 나이 먹어서 그런가 봐요. 예전 같으면 바꾸려고 했을 텐데 이제는 우리가 여기서 잘 살면 그만큼 바뀌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요. 모두가 잘 되길 바랄 뿐입니다.
신부님에게 봉사란 무엇인가요? 더불어 타인에게 베푸는 무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우리가 매일 식당 일 시작할 때마다 하는 기도문에 보면 ‘오늘도 당신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어 당신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 사랑을 이 식당을 통해 나눔으로써 당신의 복음이 이 지역사회에 널리 전파되게 하소서’라고 되
어 있어요. 우리에게 봉사란 받은 사랑을 나누는 거예요. 지속해서 사랑을 받아야 나눔을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랑을 잘 받아야 해요. 내 안에 사랑이 고갈되지 않도록, 충만하도록 사랑을 잘 받는 게 중요해요. 사랑이 충만해지지 않고서는 일시적으로는 나눔을 할 수 있어도 꾸준히는 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여러분은 지금 좋은 나이, 젊은 나이니까 의미 있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너무나 평범한 얘기인데 내가 행복해야지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그게 오랜 제 인생철학이기도 한데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 그런 차원에서 내가 어떻게든지 행복하고, 그 행복이 넘쳐서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취재하는 동안, 우리의 질문(우문)에 신부님이 현답을 들려주시고 있다고 느꼈다. 삶의 모습 자체로 수도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분에게 질문이 너무 평범했다. 신부님은 말보다는 그간 쓴 글로, 글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분이기에, 인터뷰 때는 애를 먹었다. 하지만 구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겨주시는 신부님이 계시다는걸 생각하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하다. |
취재 공익활동기자단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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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사회적협동조합' 설립에 즈음하여 드리는 말씀'
< 추후 게시할 예정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