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을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그 어미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나 호랑이 맞아? 달리기도 못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사냥도 못하는 내가 호랑이 맞아?" 어미는 대답합니다."그럼 내가 낳은 새끼니까 너는 틀림없는 호랑이다" 또 물어 봅니다."강아지 만도 못한데 나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호랑이 맞아?"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야 이 개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졸지에 개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못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주병, 왕자병 등에 걸려있고 자기의 현재 가지고 있는 물질, 지위, 재능, 직분이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목사이자, 교사이지만 이것은 잠시 나에게 맡겨진 직분일 뿐이지 결코 나를 뜻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건강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 나는 불치의 병에 걸려 심히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과 인간이 무엇 때문에 왜 존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물질이나, 고등동물 정도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잘못 해석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였고 인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를 똑바로 알고, 인간을 바로 알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주속의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지구속의 나는 한 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보시에 나는 한 점이요, 티끌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안 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심에 놀라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4)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보시는 가 성경 스바냐서 3장 1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잊지맙시다.
▣ 귀중한 나
그토록 귀중한 너만이 그에게든 아니면 다른 그에게든 사랑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재잘거렸던 영특한 지혜를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해 쓰렴.
네가 귀중해지면 누구든 네게로 돌아온다. 그가 아니라면 더 귀중한 무엇이 돌아온단다.
- 공지영의《상처없는 영혼》중에서 -
* 자신을 사랑하는 것!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울 듯 싶은 이 일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네가 귀중해지면 누구든 네게로 돌아온다"는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쉽지 않은, 그렇지만 꼭 해야 할 이 일을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내 안에 보석 있다
보석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보석입니다. 오물이 묻어 있어도 보석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물 정도야 잠깐 닦아내면 보석은 그 영롱한 빛을 금방 다시 보여줍니다. 6.25 전쟁을 겪은 어느 분은 전쟁으로 집과 땅과 곳간에 가득 채워놓은 벼 가마니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답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분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기술밖에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술로 열심히 일을 해서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집과 땅과 곳간에 가득 채워놓은 벼 가마니보다도 백배 더 가치 있는 보물은 내 안에 있는 '실력'입니다. 몸에 지닌 것이 진정한 내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 보석이나 금붙이를 많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궁할 때 금이나 보석은 금방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 실력은 나를 살리는 보석이나 금붙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신만의 '탁월한' 실력을 쌓으세요. 그냥 먹고 살 정도 가지고는 안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세요. 그것이 내 안에 있어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최고의 보석입니다.
ⓒ최용우
▣ 나는 무엇인가요?
좀 무거운 질문인가요?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냥 '생각' 한번 해보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을 보고 '나야 나.. 저때는 참 예뻤구나' 하고 말합니다. 아기 때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다른데 그런데도 그 모습이 '나' 라고 하네요.
그러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 막 꿈틀대기 시작하던 모습도 '나'인가요? 기독교인들은 태아도 '생명'이라고 보기에 '낙태'를 반대합니다. 그러면, 그 이전 아빠의 몸 속에 '정자'의 형태로 존재했을 때도 '나'일까요? 아이고.... 그냥 넘어갑시다.
그럼 반대로, 내가 죽으면 아무리 나를 사랑했던 가족들이라도 나를 3일 후면 땅 속에 묻어버리거나 불에 태워서 나무아래 뿌려버릴 것입니다.
자, 나무 밑이나 무덤에 묻혀있는 게 '나'입니까? 나의 세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땅 속에서 몇 년 안에 흙 속으로 스며들어가 무덤가의 풀 한 포기로 흡수되어 풀잎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 송이 민들레꽃이나 할미꽃으로 피어나거나 아니면, 나무에 흡수되어 낙엽이 되거나 나무에 열리는 열매가 되기도 하겠지요? 그럼 그 꽃이나 낙엽이나 열매가 '나'입니까? 아이고.... 그냥 넘어갑시다.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그저 물질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육체는 '나'를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육체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나'라는 사실입니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육체' 보다는 '영혼'에 있어야 합니다. 영혼! ⓒ최용우
▣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얼마 전에 나온 `한국직업사전'에 의하면 현재 국내 직업 수는 11,537개라고 합니다. 10년 전에 비해 1천여 직업이 늘어났고 점점 세분화되며 기발한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무턱대고 다른 사람과 같게 되려는 노력을 하다가 자기를 잃어버리고 좌절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각기 특성 있게, 독특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11,537가지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는 그 일이 내가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우리의 삶의 행복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환희에 넘칠 것이며, 남을 모방한다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괴로움과 절망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권리와 자격이 있기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달란트를 주셨고, 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재능과 직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 기도: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하나뿐인 나
내 옷장에는 별로 입지 않은 스웨터가 하나 걸려 있다. 소매도 너무 짧고 어깨도 너무 좁다. 단추도 몇 개 떨어져 나갔고, 실밥도 닳아 해어졌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나는 그 스웨터를 치우고 공간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논리의 말이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나는 그럴 수 없다. 스웨터에 얽힌 독특한 사연이 나로 하여금 스웨터를 버리지 못하게 한다. 남다른 사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스웨터가 할머니의 애틋한 모정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스웨터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실가닥 하나하나 정성스레 고른 것이다. 실밥 하나하나 사랑으로 택한 것이다. 스웨터로서의 용도는 모두 잃었지만 가치는 전혀 잃지 않았다. 그것이 가치있는 것은 기능 때문이 아니라 지으신 분 때문이다. 시편 기자도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을 것이다.
"주는...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베를 짜듯이 지으셨습니다."
이 표현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베를 짜듯이 지어진 존재이다. 당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대량 생산품도 아니다. 조립 라인에서 짜 맞추어진 제품도 아니다. 당신은 최고의 장인(匠人)이신 하나님에 의해 세심하게 설계되어 특별한 은사를 받아 사랑으로 이 땅에 보냄받은 존재이다. 2인자가 설 곳이 없는 사회에서 그것은 기쁜 소식이다. 봉급액수나 다리의 각선미로 인간의 순위를 매기는 사회에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을 향한 예수님의 설계야말로 기쁨의 진정한 이유이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맥스 루카도)
▣ 나를 상징하는 딱 한 단어는?
개나리는 희망, 과꽃은 추억, 국화는 명복, 금낭화는 수줍음, 금잔화는 겸손, 나팔꽃은 허무한사랑, 상사화는 순결, 도라지꽃은 성실, 동백꽃은 신중, 라일락은 첫사랑, 루드베키아는 영원한 행복, 맨드라미는 열정, 모란은 부귀, 목련은 우아, 무궁화는 일편단심, 물망초는 나를 잊지마세요, 백일홍은 꿈, 백합은 순결, 사르비아는 정열, 상사화는 이별, 수련은 신비, 아카시아는 우정, 안개꽃은 약속, 옥잠화는 추억, 장미는 사랑, 접시꽃은 풍요, 채송화는 순진, 코스모스는 순정, 포인세티아는 축복, 프리지아는 순결, 해바라기는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꽃마다 그 꽃이 상징하는 꽃말이 있답니다.
그래서 꽃말에 맞게 장례식장엔 국화, 어머니날엔 카네이션, 성탄절엔 포인세티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장미, 부활절엔 백합꽃을 사용합니다.
우리 집 마당에 요즘엔 채송화가 가득 피어 있습니다. 꽃말을 생각하며 쪼그려 앉아 채송화를 들려다 보았습니다. 과연 채송화는 그 모습이 참 순진하네요. 어쩜 그렇게 꽃에 딱 어울리게 꽃말을 잘 만들었네요.
에... 그런데, 그럼 나는? 나를 상징하는 말은 과연 무엇일까?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나를 상징하는 단어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최용우
▣ 자신을 안다는 것
누군가 헬라 철학의 대가 탈레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을 아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가장 쉬운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더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잘난 척하지 마십시오. 별것 아닙니다. 남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무책임합니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디언 슈익스라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다녀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좀 더 진실하게 나를 드러낸다면 다 같이 보잘것없는 인간이요,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는 없으나 이런 깨달음이 너무 늦게야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아쉬움입니다.
/임준택 목사(대림교회)
▣ 거울 속의 나
옛날, 어떤 왕이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습니다. 백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시종이 왕이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습니다. 다음날 왕이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고, 거울이 있던 자리의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린 모습이었습니다.
창백한 여인과 굶주린 아이를 보았고, 먹을 것을 찾으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과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도 자신만을 보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만 보고 있을 때는 예수님도 이웃도 결코 볼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전도 예화 다이제스트 / 배창돈 엮음
▣ 건널목우리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써클안에서 분주합니다. 우리들에게는 만나 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사람들이 있고, 돌보아야 할 우리 자신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따금 길 건너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헨리 나우웬의 ‘영혼의 양식’ 중에서-나의 테두리 안에서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나의 계획에 따라 시간을 나누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테두리 안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앞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가는 중에도 말입니다.내 안의 가득 차 있는 자기사랑과 욕심은 나를 쉼 없이 달리게 하지만 또 그만큼 나를 지치게 합니다. 이젠 내 삶의 테두리, 그 너머의 삶을 바라보려 합니다. 내게로만 향하던 관심을 누군가에게로 향하게 하려 합니다. 오늘 나는 건널목에 서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이젠 건너편 누군가에게 다가가 내게 있는 것들을 나누며 살고자 합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바쁜 일상에 묻혀있던 구원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 자기 관리
본문: 삼상 2:35
존 맥스웰의 '자기 경영의 법칙'에 보면 "누가 지붕을 고쳤는가?"라는 질문 안에 예수님을 섬기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예수님을 예수님 때문에 믿는 사람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믿는 사람이다. 지붕을 고치는 사람은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사각오로 예수님을 위해 헌신과 충성을 한다. 이런 사람이 충실한 제사장,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사무엘을 가리킨다. 충실한 제사장의 판단 기준 및 척도는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이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제사장이 충실한 제사장,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인, 홉니와 비느하스, 사울 왕은 자기 뜻을 내려놓지 않음으로 실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의 뜻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두 가지를 하였다.
첫째는 날마다 죽었다(고전15:31). 날마다 옛사람이 죽었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된다.
둘째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켰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무엇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이다.
* 기도: 주님!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날마다 나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관 목사 의산교회 시무
▣ 나를 키우는 10가지
본문 : 요 8:54, 갈 1:24
● 요 8: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 갈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안양 성문고 이규철 교사는 삶을 리모델링하기 위해선 10가지 ‘ㄲ’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1. ‘꿈’을 소유하자 입니다. ‘이룰 수 없어’하고 포기하지 말고 꿈을 마음속에 그린다면 그 꿈의 크기만큼 성장하고 성취할 것입니다.
2. ‘끼’를 발휘하자 입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도 잘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그냥 스쳐지나가지 말고 잘 살펴보면 당신에게도 최고의 끼가 있을 것입니다.
3. ‘깡’을 키우자 입니다. 악착스럽게 버티는 억지, 오기로 버티어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4. ‘꾼’이 되라 입니다.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로 일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죠.
5. ‘꼴’을 곧추 세우십시오. 다윗은 꼴이 된 인물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꼴은 보십니다. 외모도 지저분하게 관리하면 안 되겠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마음 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꼴이 분명했습니다.
6. 이런 원칙들을 잘 활용하려면 ‘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꾀는 저절로 생기지 않아서 배움의 꾀를 통해 익혀나가야 합니다.
7. ‘꿀’과 8. ‘끈’ 은 앞의 덕목들을 도와주는 윤활유입니다. 꿀이 있어 인생은 행복하고 이웃과의 끈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9. ‘끝’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앞의 덕목들을 이뤄 성공하면서도 다른 이를 존중하고 기쁨을 간직하여 ‘끝’마저 좋다면
10. 하나님에게 ‘꿋(Good)!’이라고 칭찬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ㄲ’들을 잘 활용하여 나에겐 기쁨이 되고 하나님껜 영광이 되는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아나갑시다.
* 기도: 주님,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묵상: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보고 사용할 방법들을 적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 나를 알게 하신 하나님
그 당시 저는 무척 힘들고 지쳐서 세상에 살아있는 것조차도 싫었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자포자기 상태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었지요.
그러한 내게 돌아오는 것은 허탈, 허무, 고독, 외로움, 고통 뿐…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었습니다. 어머니도 오빠들도 내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지리도 복도 없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남들은 다 남편 사랑 받고 아이들도 잘 자라는데 나는 왜…?” 하면서 저는 늘 신세한탄을 했습니다. 자연히 아이들에게도 항상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998년,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카드 빚, 가정에 대한 소홀함 등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딱 10년 전,
집안의 반대에 맞서면서도 시작한 결혼이었는데 말입니다. 10년 동안 남편에 대한 사랑보다는 실망이 컸고, 남편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보였습니다. 제 마음은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어 늘 남편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잔소리했습니다. 4남 1녀 중 막내딸로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서인지 저에게 있어서 ‘주는 것’은 익숙지가 않았습니다. 남편이 나를 대접해주기를 바랐지요. 남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 남편과 헤어지던 날, 뒤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던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모르는 척 외면했습니다. 제가 집을 나온 이후로 남편은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둔 채 3개월간 방치해 두었습니다. 남편과도 연락이 되지 않아 그 동네의 어린이집을 모두 수소문한 끝에 작은 아이를 찾아 데려왔지만, 아이는 이미 엄마와 아빠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인해 심각한 폐쇄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문을 닫으면 기절을 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잠시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증상에는 부모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 밖에는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2000년 7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상속들과 나의 모든 세상적인 삶들을 바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갓패밀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에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나에게 문제가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내고 상대방의 잘못만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다 잘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더 많이 변화된 것은 저의 마음입니다. 지금 저는 그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변화로 인하여 가정이 바뀌고 그로 인해 교회가 변화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장6절 말씀)
* 부부간에 갈등 겪고 계신 분이 있나요? 상대방의 잘못은 이미 잘 알고 계시니 이제 나에게는 혹, 문제가 없는지 한번 살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네요.
(김수진)
▣ 소중한 사람과 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말은 평화주의자이며 영성가이고 시인이셨던 故 함석헌 선생께서 남기신 시 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애송하는 시의 제목이다.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잔잔히 와닿는 다음의 한 시구는 나의 인생과 인간관계의 지표가 되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살아다오’ 말해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람이 한 세상을 얼마나 가치있게 살았는가’라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내가 과연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간 나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과연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며 분노하게 하였는가.
또한 나를 가슴 설레게 하고 감격하게 만든 일들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무엇이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하였는가.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배경이나 학식이나 재물, 외모, 건강이 아니다. 단 한 가지, 그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과 그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도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서로 구명대를 사양할 그런 사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비전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 불가능한 일일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가게 될 때 ‘저 사람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감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나는 떠올릴 수 있을까? 과연 지금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런 만남을 갖고 있는가?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며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게 될까? 나는 이런 물음들이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꼭 물어봐야 할 매우 가치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순간들은 우리 마음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물음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이유 자체를 묻는 질문이 된다.
/오제은(가족치유연구소 대표·천안대 교수)
▣ 나는 결코 '아무나'가 아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나 자신을 '특별하게' 대접해야 한다.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아무나'라고 생각하는 한, 꿈꾸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꿈이 '아무나'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 자신을 '아무나' 정도로 여겨서야 되겠는가?
- 이익선의《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중에서 -
* 꿈꾸는 것은 누구나(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나(아무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나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꿈꾸는 것도 그 꿈을 이루는 것도 아주 특별한 행위가 될테니까요.
/이정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자신과의 싸움
본문 :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유망하고 실력 있는 운동선수들에게도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옵니다. 매일같이 같은 방법으로 훈련하고 같은 방법으로 시합에 나서지만 어쩐 일인지 전처럼 되지 않아서 성적이 떨어지곤 합니다. 이런 선수들의 슬럼프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연구하고 또 상담을 해준 한 심리학자는 선수들의 슬럼프는 대부분 스스로의 정신 상태로 인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슬럼프를 겪는 운동선수들의 신체적인 능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전보다 더욱 향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슬럼프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기량도 예전과 변함없고 나의 능력도 변함없지만 무언가가 달라져 예전처럼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바로 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잘 다룬다는 것과 일맥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다루는 선수들은 슬럼프에서 회복되는 기간이 짧고 회복 이후에 더욱 기량이 급성장하게 됩니다.”
인생에도 신앙에도 슬럼프가 찾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함으로 인해 우리는 한층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질 때는 자신을 더욱 돌아보고 성찰하십시오. 봉착한 문제를 더욱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성장하게 하소서!
* 묵상: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땐 지난 과거를, 자기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자신을 아는 지혜
희랍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제자 카이흔이 하루는 신에게 “신이시여!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신이 사제를 통하여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라는 대답을 들려 주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상당히 놀랐다. 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은 자기를 세상에서 제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알아 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튿날부터 아데미에 있는 모든 학자와 정치가와 예술가를 방문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지혜 있는 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제서야 신이 왜 자신에게 가장 지혜가 있다고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 있는 척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첫걸음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때 훌륭한 성도가 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자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이다. 철학자 탈레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 하나님을 웃겨라 / 양은식
▧ 묵상
●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버려야 할 어리석은 행동은 무엇입니까?
● 내가 나의 친구와 이웃들에게 전도할 때 그들에게 말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 기도
주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서 멈추지 않고 저를 통해 흘러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필요한 사람들의 심령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진리와 사랑을 지혜롭게 전하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생명의 삶
▣ 먼 북소리
마흔이 되려 한다는 것, 그것도 내가 긴 여행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먼 북소리》중에서 -
* 아득한 의식의 저 편에서 멀리 북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일어나라고... 다시 시작하라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어서 길을 떠나라고...
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나는 나
금년에야 겨우 유치원에 들어간 내 아들은 아직 3자와 4자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블록을 가지고 놀 때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서 우리 식구들을 놀라게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도 ‘소녀의 기도’를 피아노로 멋지게 연주하곤 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이들인데 이제는 내가 40년을 살았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냅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왜 나는 못하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찾아 그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것은 찾아보지도 않고 남의 것만 부러워한다면 결국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못난 자신을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 당신 자신을 주시오
일본의 위대한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訶川要産)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사 직전에 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1909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그는 신가와 빈민굴 한 평짜리 오두막으로 이사하여 빈대와 벼룩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고독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는 굴뚝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기 밥으로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불량배들에게 맞아 앞니 4개가 부러지는 핍박을 이기고 주일학교를 세웠으며 그가 휴지를 주워 쓴 소설 ‘사선을 넘어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자 그 인세를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1927년 일본 노조를 최초로 설립하였고 1929년에는 일제 군부에 항거, 투옥되었다가 종전 후 실명상태에서 다시 빈민굴로 돌아와 사랑의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당신 자신을 주시오.” 이것이 그의 신조입니다.
/이철제 목사(서울 성서교회)
▣ 자아발견
어느 정신요양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사가 한 환자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때 환자는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뒤지고 침대 밑까지 뒤지면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소?" 의사가 물었더니 환자가 낙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선생님,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의사는 이 말을 듣고 오히려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 긍정적인 자아상 확립
어떤 아이는 자신을 늘 부모님에게 짐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너는 실수로 태어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날 엄마들에게는 농담이였지만 아이에게는 치명적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엄마에게 짐만 될 뿐이야”라고 말하면서 자기 같은 것은 살 필요가 없다고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한 부부가 뒤늦게 아이가 아픈 것을 발견하게 되자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은 도대체 뭘 했느냐?”면서 부부가 서로를 공박하며 싸웁니다.
사실 이 같은 말다툼은 자신이 부주의한 결과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때문에 생겨날 때가 많지요. 따라서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부정적인 자아상은 대부분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유래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부모의 애정과 끊임없는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긍정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부모의 폭언 때문에 일생을 열등감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삶에서 결국은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하나님의 가슴에 아픔을 안겨드리는 부모의 잘못임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 자아를 찾으려는 본성
산림자원 조경학을 강의하는 교수와 대화하는 중에 “나무들을 다루다 보면 나무에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려는 본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가지 접붙이기를 하기 위해 돌감나무 밑동을 잘라버리면 평소 같으면 싹이 나지 않을 부위이지만 그 밑동에서 싹이 나고 왕성하게 줄기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삽목을 하기 위해 나무로부터 나뭇가지 일부를 잘라내어 땅에 꽂아 두면 가지 밑 부분에서 뿌리가 생겨나는 것도 잃어버린 뿌리 부분을 복원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 즉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한 나무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하는 본성을 주신 것 같다. 아니, 우리 인간에게는 흔적 기관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어 끊임없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임화식 목사(순천중앙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자아상실
게오르규의 작품 『25시』를 보면, 요한 모리츠라는 젊은이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징집을 당해 독일군에 입대를 했다가 얼마 후 유대인이라는 오해를 받습니다. 그 청년은 온갖 핍박과 고난을 당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독일 군의관의 신체검사를 통해 ‘독일 게르만족의 순종’이라는 판결을 받은 이후부터 갑자기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그는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심사관이 포로들을 하나하나 심사하다가 요한 모리츠의 파일을 보게 되었는데, 그의 파일은 두 가지로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서류에는 ‘유대인’으로, 또 다른 서류에는 ‘게르만족의 순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심사관은 그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심사관의 질문을 받은 그는 대답을 못하고 속으로만 ‘도대체 나는 누구지?’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핍박을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독일군 영웅으로 높임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재판을 받고 석방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그는 전혀 기뻐할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기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을 모셔 들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정체성을 가지십시오.
* 기도: 주님, 정체감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 묵상: 더 이상 세상에서 방황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건강한 자아상
건강한 자아상은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와 친밀해지는 데서 시작이 된다.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식이나 나를 아는 것은 진정한 지혜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관용이나 나를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나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내가 진정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선행위에 속하지만 나를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행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웃는 것은 작은 친절이나 나 자신을 향해 웃는 것은 마음으로 우러나온 기쁨입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은 정직이나 나를 속이지 않음은 진정한 믿음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은 인격이나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힘이나 나를 다스림은 진정한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은 화목이나 나 자신과 더불어 사는 것은 진정한 평화이다.
스위트 홈 바이블에서/ 송길원저
▣ 의인의 자아상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는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것이다. 성경은 “오직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했다. 이외에도 의인에 대해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시 37:29)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시 37:30)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시 97:12)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시 92: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성경 구절을 들어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를 믿기 이전의 모습을 가리킨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이 입혀 주신 ‘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며 ‘의의 태양’이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빛 되신 주님이 내 안에 강물같이 충만히 계십니다. 빛 되신 주님이 당신 안에 강물같이 충만히 계십니다.”
<김열방 목사/잠실목자교회>
▣ 거울에 비친 자아상
사람마다 자아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자아상이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지요. 자기 자신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자아상을 지닌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그는 정말 멋있고 호감이 가는 젊은이인데도 그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특별하거나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요구합니다. 그 칭찬과 잘했다는 평가에 따라 그의 자아상이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이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가 여섯 살이었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어느 날 뒤뜰에서 아버지와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을 던집니다. 아이가 공을 놓치자,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뒤따릅니다. 두 번째 공도 놓치자,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야! 네 살짜리 네 여동생이 너보다 훨씬 잘 받겠다.”라고 질책합니다. 그날 이 아이는 자신을 바보천치라고 비난하면서 공 받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상처를 받은 것이지요. 사실 이 아이는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공을 놓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지 공놀이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이는 자라면서 공부를 잘해 1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자신이 모범생이거나 수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미 비뚤어진 자아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로부터 생겨난 이 비뚤어진 성품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과 솔직하고 진솔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많은 부부가 갈등하는 이유가 사실은 이 비뚤어진 자아상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면서 그 상처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받고 유익을 얻겠다는, 내가 타고난 죄인 이기심이 이 상처를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멸시와 고통의 삶을 사신 분이시지만 이 같은 상처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이 비뚤어진 자아상을 훌훌 떨쳐버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지닌 놀라운 특권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변화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연히 이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강안삼 장로
▣ 영적 자아를 검토하라
찰스 디킨즈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인공 시드니 카트니는 어느 날 거울에 비췬 독주에 취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너는 어리석은 놈이다. 내가 너인 줄을 미처 몰랐다”고 하면서 괴로워했다고 한다. 드디어 그는 자기의 주먹으로 그 거울을 깨뜨렸고, 그래서 그 거울이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인생 실패를 절감했다. 그 다음부터 새로운 시드니 카트니의 출발이 묘사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먼저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파리해진 우리 영혼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우상화에 급급한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일종의 자기 혐오와 구토를 느끼는 참 자기 발견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자기 속에 두 가지의 모습이 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외쳤다.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의 참 승리가 있음을 노래했다(롬 8:1, 2). 이 세상 육신의 생명은 영원에 비할 때 너무나도 순간적인 것이요, 잠깐이다. 그러나 인생의 육체적인 생명만이 삶의 전부인 양 아는 것은 속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놀드는 “파묻힌 삶”이란 시에서, 참 인간의 삶을 “보이지 않는 땅 속 지층을 흐르는 지하수”로 비유한 바 있다. 우리는 지하수처럼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있는 참 자아를 우리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월요일의 하나님 / 김의환
▣ 자아실현과 자녀교육
자아실현의 요구를 억압하는 제도나 체제는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같은 정치체제만이 아니다. 때로는 문화나 사회관습이나 심지어 부모들까지도 자녀들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한다.
자아실현의 자유와의 관계에서 부모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기에 자녀를 통하여 부모의 욕망을 성취하려 하여서는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함은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는 말이다. 자녀들이 이 땅에 보내어진 그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함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부여하신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인도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자녀들의 존재 이유란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각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각자 나름대로 자유롭게, 독창적으로 그리고 조화롭게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 이상적 사회란 인간 각자가 평화와 정의 속에서 각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각자 나름대로 자유롭게 실현하면서 삶의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일컫는다. 이런 이상을 가로막는 어떤 정치제도나 문화나 사회관습 심지어 부모까지도 인간을 인갑답게 하지 못하면 인간의 적이 될 수 있다.
/김진홍 목사
▣ 자기부인이란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병고로 양약을 삼으라” 하셨다.
2.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근심-곤란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다.
3.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움이 넘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장애 속에서 대자유를 얻으라” 하셨다.
4. 수행하는 데 마귀의 방해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귀의 방해가 없으면 수행이 견고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 왈 “모든 마귀의 방해를 수행을 돕는 벗으로 삼으라” 하셨다.
5. 일이 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이루어지면 경솔해 지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여러 고비를 넘겨서 일을 성취 하라” 하셨다.
6. 친구를 사귐에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신의로서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다.
7. 다른 사람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내 뜻대로 순종하면 마음이 교만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지내라” 하셨다.
8. 덕을 베풀었거든 보답을 바라지 말라. 보답을 바라면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덕 베푼 것을 헌신 버린 듯 여기라” 하셨다.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 왈 “ 적은 이익으로 만족 하라” 하셨다.
10. 억울한 일을 당하여 억울함을 밝히려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당사자들의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디. 그러므로 성인 왈 “억울함 당한 것을 수행의 문으로 삼으라” 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 모델에게 필요한 것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로 늘 편안한 봄날 같지 않습니다. 생로병사가 다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가 있고,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 뜻하지 않은 좌절과 실패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언행을 보여 주는 모델들이 되게끔 주님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훈련들이 있습니다. 모델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량입니다. 17, 18세기까지만 해도 그림을 보면 깡마른 사람이 아니라 퉁퉁한 사람이 미녀였습니다. 유사 이래 항상 퉁퉁하고 후덕하게 생긴 사람이 미녀였는데, 모델이라는 직업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깡마른 사람이 미녀인 것으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후한 사람이 옷을 입으면, 옷이 안 보이고 사람이 보입니다. 그런데 깡마른 사람이 옷을 입으면 옷이 두드러집니다. 따라서 모델들이 다 깡마른 것은 날씬한 것 자체가 예뻐서가 아닙니다. 깡마른 사람이 입어야만 디자이너의 옷이 백 퍼센트 이상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직업적인 모델들이 디자이너의 옷을 잘 보여 주기 위해서 감량하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자신을 감량해야 합니다. 그 감량을 성경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자기부인’입니다. 자기부인의 척도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 드러나 보이도록 그 말씀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부인하고 말씀의 통로가 될 때 내 삶이 정말로 아름다워집니다.
「성숙자반」/ 이재철
▣ 손해 좀 보고 살자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항상 갈등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갈등도 희생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희생은 어머니의 자녀 양육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성장케 하는 힘이 있다. 동시에 희생은 극심한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쉽게 설명해서 희생이 무엇인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내 일’도 아니고 ‘네 일’도 아닌 것이 있다. 분명히 누군가가 해야 하지만 명확하게 책임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꺼이 나서는 것이 희생이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개개인이 환전을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기 때문에 몇 사람이 돈을 모아서 함께 환전할 때가 있다. 3명이 모은 돈이 10달러가 되었다고 하자. 문제는 3명이 공평하게 나누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지분은 33.33%이다. 대개 인간 갈등의 문제는 이런 단순한 데에서 발생한다. 이럴 때 기꺼이 내가 3달러를 가질테니 둘 중 한 사람이 4달러를 가지라고 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희생을 감수한 사람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심한 갈등이 있는 모임에서는 누가 3달러와 4달러를 갖게 되는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런 갈등까지도 녹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2달러를 가질 테니 나머지 두 사람이 4달러씩 가지라고 하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 2:4:4의 원리를 붙드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희생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 들어가보면 100% 희생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지분 33.33%에서 3.33%만 포기하면 평화가 임한다. 더 심한 상황에서는 13.33%만 포기하면 평화가 임한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성자가 된다. 이것이 희생의 길이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많다. 희생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작은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앙이 무엇인가? 자기부인에 있고 십자가를 지는 데 있는 것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생활 속에서 손해 좀 보고 살자. 희생하며 살자. 그러면 평화를 맛볼 것이다. 어떤 때는 좀더 심한 희생을 감수해보자. 사람들에게 작은 성자라는 칭호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작은 성자 놀이도 즐겁지 않겠는가?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10:34)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 포기의 결단
배 한 척이 파선하여 구조선이 달려와서 밧줄을 던져주며 그 줄을 붙잡고 옮겨 타라고 했더니 모두 짐을 버리고 옮겨타서 살았는데 한 사람은 금조끼를 벗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타다가 몸이 무거워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떨어져도 다시 구출할 수가 있었으나 이 사람은 가라앉아서 구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기할 때는 포기해야 사는 길이 열리고 다시 성공의 기회가 오는 법인데 체념할 줄 모르고 집착이 강한 사람은 영원히 패배하고 마는 법입니다. "버리는데 용감한 사람이 누구보다 담대하여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 이가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 과거에 대한 집착, 실패에 대한 집착을 빨리 털어버리는 사람이 새로운 성공의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바둑도 죽을 놈은 빨리 포기하고 다른 것을 두어야 죽을 놈도 살리고 이길 수가 있습니다. 팻 로버슨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팻 로버슨 목사는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 퇴근시간에 한 잔 하러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여보, 나 구원받았소"하고 외쳤습니다.
"당신 미쳤군요"하는 아내의 소리에, "난 미치지 않았소. 난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는 취침시간 쯤에 아무 말도 없이 찬장문을 열고 거기 있던 위스키병을 내려놓고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도에 쏟아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콸... 콸... 콸...
"당신 왜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하면서 아내가 달려와 마지막 술병을 움켜쥐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빼앗아 다 쏟아 버렸습니다. 구원의 기쁨은 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당신은 예수 믿고 무엇을 버렸습니까? 또 지금은 무엇을 버리고 있습니까?
성경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하였습니다.
알렉산더 왕이 이끄는 군대가 페르시아를 쳐부수기 위해 전진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군인들은 패전을 결심이라도 한 듯 힘없이 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왕은 그 이유를 재빠르게 알아차렸습니다. 군인들은 여러 전투에서 얻은 노획물들을 몸에 잔뜩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군인들의 행군을 잠깐 멈추게 한 알렉산더 왕은 노획물들을 모두 모아 불태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에 군인들은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페르시아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그렇지만 군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적인 욕심을 잔뜩 짊어진 채 군사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딤후2:1-13)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말씀하시자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4:19-22, 눅5:10-11)
그러나 한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마19:21-22) 주님이 원하시면 그 무엇이건 포기하고 버릴 수 있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이성의 판단 없이 무조건 자기의 친척, 본토, 유산을 버리고 떠났습니다.(창12:1-9) 기독교의 신앙은 포기하고 떠날 때 축복이 시작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한 것, 죄악의 상태에서 떠날 때 비로소 축복은 시작됩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마가복음10장29-30절에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자식이나 아비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모친과 자식과 자매와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는 자는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의 대학교 앞에 한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두 분 목사님이 함께 개척을 했습니다. 그 중 한 분 목사님이 보스턴으로 개척교회를 하러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난 4년 동안 훈련시킨 가정들에게 보스턴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 가정 모두가 그 목사님을 따라나섰는데 특히 그들 중 두 형제의 결단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형제는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버클리 대학교의 조교수로 발탁되었습니다. 출세 가도에 확실히 들어섰음에도 그는 그것을 포기하고 자기부인과 함께 기도하고 돌아와서는 "목사님께서 제안하신 대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되어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의 이름은 에드워드 강으로 오랫동안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가 드디어 합격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도 집에 가서 기도를 하고 돌아와서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따라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내가 확신하기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각 주마다 법률이 다릅니다. 따라서 그곳에 가서 다시 자격증 시험을 보아 다시 취득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형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요청하신다는 그 확신 때문에 가진 것을 포기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버릴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9)
/한태완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중에서
▣ 나는 예수 따라가는 (찬송가 349장, <통> 387장)
1. 나는 예수 따라가는 십자가 군사라 주 이름 증거하기를 왜 주저하리요 다른 군사 피흘리며 나가서 싸울때 나 혼자 편히 앉아서 바라만 보리요
2. 큰 싸움은 시작되어 용사를 부른다 곧 나가 전쟁마당에 다 어서 나가자 거룩하신 주님위해 싸우러 나가자 주님의 권능 힘입어 다 이길 때까지
3. 그 승리의 영광위해 싸워야 하리라 주말씀 나의 힘 되니 겁낼것 없도다 모든 싸움 이긴후에 그날이 이르면 승전가 높이 부르며 큰 영광 누리리
[후렴] 다른 사람 어찌든지 나 주님의 용사되리 나는 주의 군사되어 충성을 맹세하여 내가 승리하기까지 주은혜로 싸우리 주의 용사된 나에게 주의일 맡기소서
▣ 나, 자기 부인, 자신, 자아에 관한 성경 말씀
0 (시편 119: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0 (마태복음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0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0 (마태복음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0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0 (마가복음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0 (마가복음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0 (누가복음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0 (로마서 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0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0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0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0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0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0 (에베소서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0 (빌4: 7- 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나, 자신, 자아에 관한 금언
0 자기 자신 외에 모델로 삼을 만한 다른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올리버 스미스)
0 자신을 선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악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생동안 허물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파스칼)
0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테렌스)
0 그대 자신은 맨 마지막에 사랑하라(세익스피어)
0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는 생존할 가치를 일은 자이다.(박창환)
0 만일 내 마음이 내 자신만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생각지 않는 삶을 살 바에는 나는 내 자신의 가슴을 찢어버리겠다.(알렉산더 포프)
0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
/한태완 목사 주제별 예화모음
첫댓글 좋은 말슴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