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멋, 단시조
서벌 편
석야 신웅순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사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 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서울․1」전문
시조 시인들에게 회자되었던 명작이다. 나그네의 처절한 비애감! 만평의 적막을 사다니. 시인에게는 적막보다 더 비싼 땅이 어디에도 없다. 그의 형이상학적 정신은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원은희는 『서벌 시조연구』 머리말에서 이 시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시민으로 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시정신으로 사회적 통념에 집중했던 기존 시단과 맞선 그 의 활약은 시조부흥과 시조 대중화로 이어져 현대시조의 면모와 위상을 드높였다. 주제의 차원에 서 혁신을 이룬 작품인 「서울․1」은 정형시와 자유시의 경계를 초월한 명작으로 현대시조의 전 범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실존주의 경향을 띤 현대시조 작품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은 달랐다. 열정과 정서가 달랐고 현실과 형태가 달랐다. 기존 시조 그 가치마져 다른 그는 천생 시인었다.
문틈으로 보는 달과 뜰에서 보는 달과 언덕에서 보는 달이 서로 다르다.
시인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또한 자신을 어떻게 보았을까.
지극히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
그분, 방금 막
세상
버렸나봐.
하늘님
당신만 아시고는
색동무덤 써 주셨다.
- 「무지개」전문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이 지금 막 세상을 등졌는가보다. 그래서 하늘님이 아시고 색동무덤 써주셨나보다. 무지개는 지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차안과 피안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선녀들이 물 맑은 깊은 계곡에 목욕하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전설도 있지 않은가.
무지개는 잠깐 나타났다가는 금세 사라진다. 무지개를 초극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육사의 「절정」에도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어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 했다.
불교에서는 무는 존재하지 않는 고정된 경계나 틀이 없는 깨달음의 상태이다. 차안과 피안이 연결되어 있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는 다리. 이것이 초극의 경지이며 시간도 무화되는 엑스터시의 경지이며 무(無)의 경지가 아니가 싶다.
시인은 왜 여러 편의 시조에서 무지개를 등장시켰을까.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혼자서 살았다. 탈출구가 필요했고 자신을 초극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무지개를 선택한 것이다.
어떤 때는 미친 듯 화를 내고 어떤 땐 부처님처럼 양순하고 어떤 때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 철학자. 시인은 천생 시인일 수 밖에 없다.
발에 감긴 밤하늘이 시려서 우는 기러기
30원이 없었던가
막차 놓친 외기러기
못 가눠
뽑은 외마디
둘 데 찾는 이 기러기
- 「서울․3」전문
선생은 자신을 막차를 놓친 외기러기라고 했다. 물론 시인과 텍스트의 화자는 다를 수 있으나 확언컨대 선생은 분명 외기러기였다. 30원이라는 상징적인 액수는 시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이다. 시인은 몸 하나 가눌 수 없고 둘 데가 없어 ‘꺼억꺼억컥’ 기러기 외마디 소리를 뽑아냈다. 얼마나 절절했으면 시린 밤하늘을 혼자 뽑아내는 것인가. 아마도 가난은 일생 그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시인은 1970년 32살 때 군에서 제대, 상경했다. 만만치 않은 것이 서울 생활이다. 문학이라는 외줄기에 기대어 살아야만했던 시인에게 서울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시인은 1985년 47세 때 별거. 2001년 뇌출혈로 쓸어질 때까지 17년 동안 혼자 살았다. 이 즈음에 쓴 것이리라. 그의 삶을 생각하면 30원의 상징은 자명해진다.
모든 문학 작품은 자신의 삶을 벗어나 존재할 수가 없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 무심코 칠한 낙서, 무심코 그린 그림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기억도 무의식도 수천 물길로 길어올리는 것이 시이다. 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사실은 아니되 진실인 것이 바로 시이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바람 불어도 흠이 질 것 같은 천진난만한 동시조 2편을 소개한다.그의 동시조를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순해진다. 묘한 치료약이다.
초침은
달리는 말
분침은
달팽이 발.
가는 건지
마는 건지
시침은
부처님 손.
손 얼른
움직이셔야
도시락
먹을 텐데
-「넷째 시간」전문
풀 한 잎 또옥 따서
냇물에 띄웁니다
생각 한 잎 또옥 따서
내 마음에 띄웁니다.
잠길 듯
배 되어 가는
풀 한 잎, 생각 한 잎
-「풀 한 잎 생각 한 잎」첫수
시인은 고등학교도 중퇴할 정도로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했다. 평생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인, 그래서 가난이라는 트라우마를 일생 안고 살아야만 했던 시인. 시인에게서 시는 끝내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과 같은 것인가. 순수가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이다. 붉은 고통 속에서 나온 시인의 시조는 다이아몬드같이 순도가 이리도 높고 높다.
서벌은 1964년「관등사」로 시조문학지에 3회 추천 완료되었다. 한국시조작가협회 창립 위원이었으며 시조동인지 『율』을 창간, 주관했다. 시조집으로 『각목집』,『걸어다니는 절간』,사설시조집 『휘파람새 나무에 휘파람으로 부는 바람』등이 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 남명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협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전 유성구 구암사 납골당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