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1-3절에서『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당시 유대인들과 심지어 제자들은 혼란을 겪는다. 대부분 유대인들은 예수가 엘리야나 모세가 환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은 예수를 신, 또는 반신안인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만일 부활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이 보여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들은 부활의 장면을 보았을 때 예수를 신으로 생각할 것을 예수님은 우려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자 곧 사람이셨다. 부활하기 전의 예수는 신도 아니고, 반신반인도 아닌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호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되면 예수가 신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와 같은 개념이다.
마가복음 9장 4-5절에서『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예수님과 엘리야 모세를 본 제자들은 그들을 신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잘 아는 엘리야는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변신하여 올라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세도 얼굴에 광채를 나타낸 것을 모세오경을 통해서 읽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초막(성전) 세개를 지어 예배하겠다는 표현이다. 이게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오늘날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예수를 신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이 정의를 내려주신다. 그는 나의 아들이고 죽고 부활하기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해 세상에 왔으므로 그의 말을 따르라고 하셨다. 마가복음 9장 6-7절『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어떤 제자들은 예수를 엘리야가 환생했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했는데, 말라기 3장에서 선지자가 한 말을 두고 서기관이 그렇게 했다는 표현이다. 그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마가복음 9장 11-12절에서『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예수님은 세례요한을 두고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엘리야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죽고 부활하는 사역을 맡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9장 13절에서『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십자가의 사역을, 그리고 세례요한은 십자가의 사역을 위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곧게 하셨다.
마태복음 3장 3절『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테 에레모 τῇ ἐρήμῳ)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테 에레모(τῇ ἐρήμῳ)는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세상에 던져진 자라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구불구불했다면, 세례요한이 이제 곧게 만들어서 나아가기 좋게 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말라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백성들을 돌이키겠다』고 하셨다. 이 말라기 선지자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엘리야의 영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세례요한이다. 그래서 그 일을 세례요한이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영)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자식은 이스라엘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거스르는 자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세례요한)이 준비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이 여기서 적용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부르짖는 요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므로 회개하여, 율법 속에서 죄인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길을 평탄케하고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비로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 의인이 되는 것처럼 믿고 있는데,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 율법 속에서 자신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로 방향을 돌이켜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주실 것이다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세상에 와서, 앞길을 평탄케 하는 말(회개하라)을 했지만, 유대인들의 지도자 급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깨닫지 못했다.『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예수님도 세례요한과 같이 임으로 대우할 뿐만 아니라 고난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40장 3절에서『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는 말에서 광야와 사막은 어디를 말하는가? 세례요한이 외치는 광야와 사막은 바로 이스라엘을 두고 말하는 것이며,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별개하고 생각했으며, 대부분 부활을 믿지만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다. 그런데, 육체가 죽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도 보여주셨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메테모르포데 μετεμορφώθη)』”변형되사”에 대한 영어 번역은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kjv,niv)라고 되어있다. 메테모르포데(μετεμορφώθη)는 메테(되돌아가다)와 모르포데(하나님의 본체) 의 합성어이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을 빛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부활은 모양이 바뀌는 것이다. 즉 다른 존재가 된다. 영어로 transgigure라는 말이다. Change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서서히 변화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가죽옷에서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사람의 자리에서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도 역시 부활하면, 그런 상태가 된다.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한 성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부활은 옛혼에서 새로운 영의 몸이라는 혼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옷이 희어지는 것은 이전의 옷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