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완주', 철인이 빛나는 이유2020.02.06. 오전 09:54
일반 이은경 전(前) 일간스포츠 스포츠팀장 좋아요
2018년 9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아이언맨 대회 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77년, 하와이에서 복무 중이던 미 해군 중령 존 콜린스는 동료들과 작은 논쟁을 벌였다.
‘과연 마라토너와 수영 선수, 자전거 선수 중 누가 가장 체력이 좋고 강하냐’는 것, 더 나아가 ‘나는 체력이 너무 좋아서 마라톤을 뛰고도 수영을 더 할 수 있다’ 같은 자랑 경쟁이었다.
결국 콜린스 중령은 새로운 경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3.9km를 수영하고, 오아후섬을 일주하는 사이클 코스(180.2km)를 소화한 뒤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해 보자는 것이다.
1978년, 처음으로 이 코스를 도는 대회가 생겼다. 이 대회는 후에 하와이 카일루아-코나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아이언맨 하와이’ 대회가 됐다. 아이언맨 하와이 대회는 긴 코스와 더불어 극한의 더위 속 치러지는 도전이다. 이 대회의 공식 명칭은 ‘아이언맨 월드챔피언십’으로, 현재 가장 유명한 국제 아이언맨 대회다.
이상은 빌 셰플러의 책 ‘The Ironman Triathlon(Ultra sports)’에 설명된 아이언맨 대회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다.
트라이애슬론, 한 종류가 아니다
흔히 일반 스포츠팬들 사이에서는 트라이애슬론과 철인3종이라는 용어가 혼용해서 쓰인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서의 명칭은 ‘트라이애슬론’이다. 한국의 협회 이름은 대한철인3종협회다.
아이언맨, 철인3종, 트라이애슬론은 각각의 이름은 달라도 모두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다 해야 하는 종목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철인’만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이 트라이애슬론은 거리별로 굉장히 다양한 세부 종목들로 나뉜다.
대한철인3종협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트라이애슬론의 거리별 세부 종목만 총 5개가 있다. 먼저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에서 사용하는 거리를 ‘표준(스탠더드) 거리’라고도 부른다. 수영 1.5 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다.
이보다 짧은 스프린트는 0.75km(수영), 8km(사이클), 2km(달리기)를 뛴다. 주니어 선수들의 대회가 이 코스로 치러지며 일반 동호인 대회도 이 기준으로 열리는 대회가 많다.
O2 코스는 올림픽 표준 코스의 2배인 3km-80km-20km, O3 코스는 올림픽의 3배인 4km-120km-30km를 소화한다.
‘아이언맨 대회’라고 이름 붙은 대회의 레이스 길이는 또 다르다.
앞서 소개했던 하와이의 아이언맨 월드챔피언십의 경우 수영 3.9km(2.4마일), 사이클 180km(112마일), 42.195km(262마일)의 장거리 레이스다. 아이언맨 대회는 레이스를 마치는데 16~17시간 정도 걸린다. 스프린트 경기가 1시간이 채 안 되는 기록이 나오는 것과 대비된다. 지난 2016 리우올림픽 트라이애슬론 남자 개인전 메달리스트들은 1시간45분대 기록을 냈다.
이외에도 트라이애슬론에서 변주된 다양한 종목이 존재한다. 수영을 제외한 달리기와 사이클로만 구성된 ‘듀애슬론’은 표준거리가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다. 사이클을 제외한 수영과 달리기로 구성된 ‘아쿠아슬론’은 표준거리 1km(수영)-2.5km(달리기)로 되어 있다.
또한 동계 트라이애슬론은 X-스키, MTB, 산악달리기가 각각 3~4km, 5~6km, 5~6km다. 최근 신설된 종목도 있다. 크로스트라이애슬론은 수영-MTB-산악달리기가 각 1km, 20~25km, 6~8km이다. 크로스듀애슬론은 달리기 6~8km, MTB 20~25km, 산악달리기 3~4km를 소화한다.
이처럼 트라이애슬론은 엄격하게 규정된 ‘정통 거리’가 따로 없다. 수영, 사이클, 달리기 외에도 산악자전거나 산악달리기 등 다른 종목으로 변형이 가능하고, 각각의 구간 길이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다.
1900년대 초반 ‘트라이애슬론’이라는 근대 종목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프랑스 등 유럽 일부 도시에서 도시의 강을 건너고 도로를 뛰는 대회를 개최했다. 이렇게 시작한 종목인 만큼 자연이나 도시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즐기면서 레이스 코스를 만들었다.
유명한 트라이애슬론 대회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알카트라즈 탈출' 대회는 참가자들이 알카트라즈 섬에서 해변까지 수영하고, 도로에서 사이클을 탄 후 달리기 구간에서는 베이커비치의 악명 높은 '모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코스다.
이렇듯 고정적으로 정해진 한 가지 종목이 아닌다양한 종목으로 경쟁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트라이애슬론의 진짜 재미다.
짧은 역사, 빠른 성장
근대적인 의미의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1974년 9월25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샌디에이고 트랙클럽의 회원들이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일정 거리씩 소화하는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개최하고 참가했다.
트라이애슬론의 역사를 보면 유럽과 미국에서 지역별로 각각의 다른 방식으로 여러 종목을 섞어서 레이스를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하와이에서는 장거리 철인3종 대회가 만들어져 정착했고, 유럽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수영과 달리기, 때로는 카누가 들어가는 등 여러 종목으로 레이스하는 대회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현재의 트라이애슬론에 가장 가까운 대회가 시작됐다.
트라이애슬론은 획기적이고 매력적인 스포츠였다. 특히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TV로 중계될 때 한 도시의 강(혹은 바다)과 도로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서 올림픽 개최 도시의 아름다움을 홍보하기에 최적의 종목이었다.
이처럼 올림픽에서 트라이애슬론이 마케팅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장 빨리 알아본 주인공은 후안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었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이 빨리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트라이애슬론 국제연맹을 만들도록 독려했다. 결국 트라이애슬론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시범종목으로 선정됐고, 1994년 IOC 총회에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하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들어가도록 결정됐다.
트라이애슬론 국제연맹은 사마란치 위원장의 관심 속에 1989년 처음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맹이 ITU(International Triathlon Union)다. 트라이애슬론은 국제연맹이 만들어 진지 5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 지위를 확보했다.
트라이애슬론은 197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급속도로 대중화됐다. 그러나 ITU와 별개로 아이언맨 대회는 WTC(World Triathlon Corporation)라는 회사가 주관한다.
WTC는 국제연맹이 아닌 기업이기 때문에 ITU의 방향성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대회 운영을 해서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ITU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는 국제반도핑기구(WADA)의 기준에 맞춘 도핑 검사를 실시하지만, WTC는 상당 기간 이를 따르지 않고 도핑 검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이후부터 두 단체는 점차 잡음과 마찰을 줄여가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트라이애슬론 단체전(혼성 릴레이)이 정식종목으로 데뷔한다. 혼성 릴레이에는 한 팀당 총 4명(남자 2명, 여자 2명)이 참가하며, 선수 한 명당 수영 300m, 사이클 7.5km, 달리기 1.5km 정도를 뛰는데, 개인전과 달리 대회가 열리는 코스에 따라 구간별 길이를 유연하게 조정한다. 릴레이 종목은 선수 한 명 기준으로 볼 때 트라이애슬론 치고는 매우 짧은 거리를 소화한다.
단순한 1+1+1이 아니다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차례대로 해야 한다. 세 종목을 고루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 가지 종목을 연결하는 훈련도 중요하다. 또한 트라이애슬론에서의 수영, 사이클, 달리기는 단일종목에서의 수영, 사이클, 달리기와 다른 점이 꽤 많다.
먼저 수영의 경우 레인이 정해져 있는 실내수영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바다 혹은 강에서 헤엄치는 ‘오픈워터’ 수영을 해야 한다.
실제 자연에서 하는 수영이라 선수의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경우가 많고, 지형지물 등을 이용해서 정확한 방향을 인지해야 앞으로 갈 수가 있다. 또한 선두권의 경우 물속에서 선수들끼리 서로 밀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트라이애슬론에서의 수영은 향후 사이클과 달리기 구간을 위해 다리의 힘을 상대적으로 아끼면서 수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다의 경우 조류의 흐름을 파악해서 이를 이용해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도 쓸 필요가 있다. 차가운 수온에 잘 적응하고 강한 물살을 이겨 내기 위해 선수들은 보통 트라이애슬론 용으로 제작된 ?수트를 입고 수영한다.
2009년 호주 질롱에서 열린 하프 아이언맨 대회의 한 장면. 트라이애슬론 바이크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편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는 보통 도로사이클 경기용 바이크를 사용한다. 공기저항을 줄이고, 달리기에서 사용하는 대퇴사두근 사용을 최대한 아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트라이애슬론 바이크는 자전거의 싯튜브 각이 커서 선수가 자전거에 앉았을 때 좀 더 앞쪽에 앉는 모양이다. 또한 ‘에어로바’라고 부르는 손잡이는 일반 자전거 보다 훨씬 아래쪽에 달려 있어서 낮은 자세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모두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트라이애슬론 바이크는 코너링이나 민첩성은 떨어지는 대신 안정성이 높고 속도를 내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또한 트라이애슬론에서는 ‘드래프팅’이라고 해서 선수들이 그룹을 지어서 공기 저항을 덜 받도록 레이스하게 허용한다. 일부 대회에서는 드래프팅을 허용하지 않는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의 트라이애슬론은 모두 드래프팅이 허용된다.
달리기는 보통 트라이애슬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으로 꼽힌다. 이미 수영과 사이클로 체력을 많이 쓴 상태에서 먼 거리를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시간 사이클에 적응된 근육을 순간적으로 달리기에 사용하는 근육에 힘을 주도록 바꾸는 근전환을 해야 하는데, 초보자의 경우 이 구간(T2, 사이클에서 달리기로 전환하는 구간)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가 흔히 나올 정도다.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 결승선 비디오 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T1(수영에서 사이클로 전환하는 구간) 구간에서는 수영을 마친 선수들이 전속력으로 뛰어서 사이클이 있는 곳까지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이클의 상위 그룹 드래프팅에 들어가야 공기저항을 덜 받고 사이클 구간을 소화하면서 메달권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영에서 기록이 처졌던 선수도 T1 구간을 빨리 소화하면 그걸 만회할 수 있다.
트라이애슬론에서는 선수들이 T1, T2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장비를 챙기는 시간 모두 기록에 포함된다.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트라이애슬론 개인전의 경우 금메달과 은메달의 기록 차가 불과 0.06초였다. 그만큼 최상위권 엘리트 선수에게는 전환구간에서의 빠른 동작도 중요하다.
트라이애슬론, 부상이 가장 적다고?
대한철인3종협회 기우경 부장은 트라이애슬론 최고의 장점으로 “부상이 적다는 것”을 단연 첫손에 꼽았다.
일반적으로 철인3종이라고 하면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서 몸에 무리가 많이 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기 부장은 “아이언맨 코스처럼 극한 코스가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를 여러 종목으로 나눠서 가는 게 부상이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4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기만 하는 마라톤과 달리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고루 하면 쓰는 근육이 종목마다 바뀌어서 몸에 무리가 덜 간다. 트라이애슬론은 과도하게 관절을 사용하지도 않고, 폭발적인 근력 보다도 유산소 능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201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ITU 월드 트라이애슬론 시리즈 여자 부문에서 우승한 미국의 그웬 요르겐센. 트라이애슬론 참가자는 선수 구분을 위한 참가 번호를 몸에 프린팅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또한 참가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규정도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거리별로 연령 제한이 존재하며, 아이언맨 대회의 경우 일정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참가할 수 있다.
다가오는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 트라이애슬론 수영 경기가 열릴 도쿄 오다이바 해변의 수질이 극도로 나쁘다는 외신 기사가 쏟아져 나온 바 있다.
그런데 ITU 규정에 따르면, 대회 전 수질을 검사해서 물 100ml당 대장균 200개가 넘거나 구균의 숫자가 100ml당 200개가 넘으면 경기가 부적합하다고 판정한다.
협회의 기우경 부장은 “만일 오다이바 해변이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수영을 빼고 사이클과 달리기 구간을 늘리거나 하는 식으로 변경한다”며 “주최측도 대회 전까지는 수질 기준을 최대한 맞추려 할 것이다. 수질이 적합하지 않으면 선수들이 물에 들어갈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문제로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트라이애슬론의 가장 짜릿한 매력은 ‘자연과 함께하는 느낌’ 그리고 ‘완주’다.
기우경 부장은 “일반 동호인 중에는 극한의 철인3종 경기를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보여주기’ 식의 도전을 하려는 사람이 꽤 있다. 특히 체계적인 훈련도 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도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라이애슬론은 완주가 곧 성공이다. 기록은 엘리트 선수의 몫이고 동호인은 즐기면 된다. 빨리 가는 것보다 해냈다는 느낌이 가장 짜릿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 부장은 한국 트라이애슬론 발전 환경에 대해 “한국 스포츠는 지나치에 엘리트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 한 가지를 잘 하면 일찌감치 거기에만 올인시킨다”면서 “수영을 잘 하는 아이는 달리기를 안 시키고,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에게 사이클을 시켜보지는 않는다. 너무 빨리 프로화가 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트라이애슬론은 어릴 때부터 생활체육을 두루 해 본 아이들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운동 선수의 종목 적성은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확실해지는 경우도 있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키우는 환경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이은경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