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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Fighting for us" -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캠페인 구호다. TV뉴스의 시청자들은 우리가 즐겨 쓰는 '파이팅'을 힐러리가 역수입해 간 게 아닌가 의아해 할 것이다. 이 구호를 맨처음 쓴 사람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 마울라나 카렌가였다. 카렌가 교수는 미국내 흑인의 문화와 권익을 위한 사회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는데 이 때 그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Fighting for us"였다. '우리 권익을 찾자'는 표어다. 이 운동의 결실로 매년 12월 26일 또는 27일부터 새해 1월1일까지 한 주간 흑인문화 축제인 콴자(Kwanzaa)가 열리게 됐다. 콴자는 스와힐리어로 first fruits의 의미다.
Fighting! 칭찬하거나 격려할 때, 혹은 결의를 다질 때 한국인들이 외치는 말이다. fighting이 전투, 전쟁, 싸움이니까 입시든 운동경기든 잘 싸워 이기라는 격려의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 말이란 사회 성원들 간의 약속임으로 서로 알아듣고 상호간에 의사소통이 잘되고 있다면 굳이 탓할 이유가 없다. 다만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든가 혐오감을 주게 된다면 '잘못된 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파이팅은 한국식 영어다. 응원과 격려의 뜻을 가진 감탄사로서 원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이 변용된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파이팅 대신 순수 우리말을 쓰자는 취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순화어를 공모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선정했다.
<아자아자>, <힘내자>, <아리아리>, <영차>, <얼씨구> 등인데 널리 쓰이고 있지는 않다.
More than nine hundred people have died in the fighting(그 전투에서 900명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처럼 파이팅은 응원이나 격려의 뜻이 아니고 싸움이나 전투를 가리키는 호전적 표현이다. fighting cock(싸움닭), firefighter(소방수), infighter(접근전에 능한 복싱선수) 등에서 보듯 물리적 싸움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물가나 범죄와의 싸움에도 쓸 수는 있지만. 예컨대 물가안정을 신주단지로 받드는 한국은행은 '디플레 파이터'다. 디플레이션과 싸울 최적의 무기는 돈과 환율이다라고 쓴 한국경제 기사가 이를 말한다. 더욱이 '파이팅'을 '화이팅'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우리말 외래어 표기준칙에도 어긋난다. 영어 f는 'ㅎ'이 아니라 'ㅍ'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4월초 필자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열린 마스터스 골프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관하러 간 일이 있었다. 이 때 최경주 선수가 출전했는데 10번홀에서 그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기에 나와 아내는 "Go, go! Choi." 소리높여 외쳤다. 엉터리 파이팅을 대신해서 두루 쓸 수 있는 한마디 영어가 'Go, go'다. 이와 비슷한 Go for it 역시 "할 수 있다, 잘 해봐", 그런 의미다.
I really want to apply, but I don't think I will get the job(정말 지원하고 싶은데 들어갈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아). Just go for it! You never know what will happen(잘 해 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잖아). 여기서 Just go for it은 '일단 해 봐', '잘 할 수 있을거야'라는 뜻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는 행운을 빈다(good luck!, 혹은 fingers crossed!), 잘 할 수 있을 거야(you can do it!)라고 하면 되고, 운동선수 앞에서는 힘내라(cheer up!), 영차(let's go!) 등으로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텔레비전 종군기자 에드워드 머로는 자신의 리포트 말미에 항상 "Good night and good luck!"이라고 덧붙였다. fingers crossed는 '손가락 엇걸기'로 행운을 빈다는 뜻이다. 풀어서 My fingers are crossed. 라고 말해도 된다.
그 밖에 잘 했어, 멋져, 근사해, 훌륭해 등 격려의 외침은 수 없이 많다. 곧 great, terrific, sweet, excellent, awesome, lovely, nice 등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다. 골프 선수들이 long put를 성공하고 나서 캐디와 high-five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high-five, 손을 높이 들어 손뼉을 마주치는 인사법을 말한다. 여기서 High-five!, 또는 Give me five!라는 응원구호가 나왔다. 결과를 두고 칭찬할 때는 Well done!이나 Good job!이 제격이고. 이것저것 아무 생각이 안난다면 그냥 Go, go!를 외쳐 보자. 더욱이 화이팅이라고 발음하면, 미국 메인주 워싱턴 카운티에 속한 타운 Whiting으로 착각할 수 있고, 생선 명태살로 오인 받을지도 모른다.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국민들이 밤낮없이 "싸우자, 싸우자" 외치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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