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의 역사 》
안녕하십니까? 집현전의 김학사입니다. 흔히 강화도를 말할 때 나오는 말이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지요. 그만큼 강화도에 역사 유적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말입니다. 강화도 하면 흔히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떠올리듯 근·현대사 관련 문화재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적·유물의 연대는 의외로 선사 및 고조선 시대까지 올라가지요.
오늘은 그와 관련한 첫 글입니다. 이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현지를 방문하시기 전에 추체험하시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면 하고요. 그러면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대편
⑴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 (江華 富近里 점골 고인돌)
① 점돌 고인돌은?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점골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입니다. 서기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32호 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로 지정되었다가, 서기 2008년 8월 18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지요. 강화도에는 여러 유물·유적이 있지만 선사 및 고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곳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과거에는 지석묘라고도 불렀습니다.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있지요.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 고인돌이 있지요. 흔히 북방식 고인돌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한편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고인돌이 있습니다. 이른바 남방식 고인돌로 구분되는 것이지요. 한자식으로는 기반식 지석묘라고 합니다. 이 바둑판식 고인돌은 한강 이북 쪽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최근에는 남방식이라는 명칭이 그다지 잘 쓰이지 않는 편이지요.
여하튼 이 고인돌은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능선 끝자락 해발 약 15m 지점에 있습니다. 참고로 고려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과 내가면·하점면·송해면에 걸쳐 있는 산이지요. 이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덮개돌 무게에 의해 약간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4.28m, 너비 3.7m이지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무덤입니다. 거석 무덤 혹은 거석문화 양식들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지요. 세계 거석문화 중 40%에 달하는 4만~4만 5천 기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중 강화도에는 총 160기의 고인돌이 있지요. 이 중 70기가 전라도 화순과 고창의 고인돌들과 함께 서기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역사 교과서가 다소 두루뭉술하게 쓰였습니다. 가령 2006년의 국사 교과서를 보면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청동기 시대가 전개되었다’하는 식이었지요. 그렇지만 고인돌 시대와 단군왕검의 고조선 시대가 일치한다는 사실은 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래 남아 있는 고인돌에 관한 탄소연대 측정으로 입증되었습니다.
② 강화 점돌 고인돌의 단짝? 경기도 양수리 고인돌
여기서 두물머리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일대를 말합니다. 양수리(兩水里)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옛적에 두물머리라 불린 곳이지요. 두물머리의 한자식 표기가 바로 양수리입니다. 현재 북한에 있는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과 춘천시를 흘러내리는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검룡소의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지요.
여하튼 강화도와 인접한 두물머리 고인돌의 덮개돌 밑 15센티미터 되는 지하 무덤방에서 숯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숯의 탄소연대 측정 결과를 보니 대략 4240~4140년 전의 유물이라는 연대를 보인 것이지요. 참고로 이상의 결과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대측정을 근거로 한 「사이언스타임즈(Sciencetimes)」 2007.10.09.일자 기사에서 인용했습니다.
현재 시점이 서기 2023년이니까 기원전 2333년을 기점으로 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해도 지금으로부터 4356년 전이라는 말입니다. 고조선의 중심지인 요동이나 한반도 북부지방 입장에서는 비교적 변방인 지역임을 감안하면, 고조선 역사에 근접한 탄소연대 측정이 역사책에 근접하게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지요.
③ 강화도의 여타 유물과 유적
인천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산35에 위치한 마니산(摩尼山)과 부근리의 고인돌이 강화도에 함께 있음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245에 있는 강화 삼랑성(江華 三郞城)까지 감안하면 더욱이요. 거석문화 시대의 꽃인 고인돌은 이 모든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열쇠와도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江華 內可 鰲上里 고인돌)까지 살피면 더욱 그러합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 125-1에 있는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지요. 서기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하면 이 고인돌군은 모두 북방식 고인돌입니다. 이제는 의미가 줄어든 분류지만 북방식 고인돌이 있음은 고조선의 세력권임이 분명합니다.
오상리 고인돌의 묘실 구조는 ‘ㅍ’자 형태이고, 크기는 대·중·소형으로 구분됩니다. 민무늬토기와 대롱옥, 반달돌칼, 화살촉 등 매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지요. 대롱옥은 새의 뼈와 같이 속이 빈 뼈를 사용해 만든 일종의 목걸이입니다. 이때 대롱옥이 무덤 즉 고인돌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매장 의례용으로 추정되지요.
이런 대롱옥 같은 장신구류는 옥 자체가 강화도에서 나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강화도에서 옥이 생산되는 지방 혹은 타국과의 교역이 현대인의 통념보다 활발히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지지요. 이상의 내용들은 김우선 작가의 『강화걷기여행』(2009)과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글로벌 이코노믹」 2017-08-03 08:39 기사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글이 길어져 다음 글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