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쿠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코비드 때문에 포기하고 있다가 이번 여름 휴가 기간에 다녀왔다.
미국 정부는 관광목적으로 쿠바에 입국하는걸 허용하지 않는다. 미 재무부에서 십여개 항목의 예외적 쿠바 입국 허용 조항을 제시하고 있는데 Support for the Cuban people 에 체크하고 항공권 예약했다.
그 다음엔 쿠바 출입국 관리소에서 요구하는 쿠바 입국에 필요한 인적사항 기타 등등을 미국에서 미리 온라인으로 입력하고 QR 코드를 사진으로 찍어 가져가야한다.
그 다음엔 쿠바 비자, 정식명칭은 Tourist card를 구해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쿠바 대사관 또는 마이애미 공항에서 구입 기타 등등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난 그냥 마이애미 공항에서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쿠바 여행 의료보험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내 상식에 맞지 않아 그냥 현장에서 해결할려고 구입하지 않았다. 여행자에게 의료보험을 입국 요건으로 하는건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너무 한거 아닌가...?
코비드 전에는 쿠바는 화폐가 외국인용(cuc), 내국인용(cup)으로 이원화 되있었는데 최근에 쿠반 페소 (cup)로 통합되어 그 나마 좀 덜 복잡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행에서 발급한 신용카드나 데빗카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여 여행 경비를 전액 현금으로 인출, 가져갔다.
한국여권 소지자는 몇개국만 제외하고 거의 전세계 모든 국가를 그냥 항공권만 구입하고 가면 되는데 왜 이런 복잡한 조건들을 요구하는 나라가 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의료보험 빼곤 다 준비해서 쿠바 출입국 관리소 직원앞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쿠바 여행 의료보험증 내 놓으란다.
내 대답은 간단 명료 ...한국 의료보험은 자국민이 어디를 여행하든 다 적용된다...
출입국 직원이 쿠바 여행 의료보험증 내 놓으라고 계속 신경질적으로 찡얼됐지만 난 멍한 표정으로 똑 같은 말만 반복했다.
더 이상 상대하기가 싫었는지 통과...공항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한증막 열기가 엄습하고 택시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일부러 좀더 걸어가 무심히 서있는 기사에게 미리 예약한 쿠바식 민박, 까사 주소를 보여주며 꽌또 꾸에스타? 하니 트레인타 돌라, 20달러...오케이...
미국에서 사진으로 본 까사는 일박에 25달러 치곤 멋지게 보이더구만 막상 도착하니 골목길 부터 분위기가 살벌하다. 누가 칼들고 다가와 돈내놔...해도 전혀 이상할거 없는 분위기다.
처자식 표정이...설마 여기서 자는건 아니겠지???...
일단 철문을 쾅쾅...주인여자 이름을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악을 써대니 골목에 비실비실 졸며 앉아있던 쿠바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한참 악을 써대니 그제서야 백인 할마시가 내려와 반갑게 맞아주며 방으로 안내해주곤 한 30분 가까이 영어로 이것 저것 설명해주는데 당최 뭔 말인지 못알아 먹겠다. 대충 그라샤스 몇번 하고 웃으며 쫒아내지 않았으면 날밤 세울뻔 했다.
그래도 선풍기 돌아가고 샤워기에서 물이 쫄쫄 흘러나오니 난 기분이 좋은데 처자식 표정은 거의 울상이다.
그 마음 내가 모르는건 아니지만 이번 쿠바 여행의 목적중 하나가 바로 이거 아니였던가...
아마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이 새롭게 느껴질거야...
일단 짐 정리 대충하고 밖으로 나오니 타는 듯한 더위에 습도까지 높아 온몸에서 땀이 아니라 진액이 삐질 삐질 흘러나온다. 처자식은 구경이고 뭐고 택시타자고 징징거린다...
아...이 사람들아...택시타면 그게 관광이지 여행이냐? 우린 여행자야...관광객이 아냐...
일단 그 유명한 말레꼰 해변 방파제 해변도로를 갔다. 정말 끝도 없이 길다. 작열하는 태양속에서 말레꼰을 시작으로 아바나의 뒷골목 여기 저기를 하루 종일 걸었다.
물 한병 살수 있는 가게도 없다. 처자식 둘다 거의 탈진, 발에 물집 생긴다며 불만 폭발이다.
처자식은 지쳐 울상인데 난
걷는 동안 만나는 거의 모든 쿠바인들하고 인사하고 서로 웃다보니 즐겁다.
계속 투덜대는 처자식을 조금만 참으면 아바나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에 데려간다고 달래고 달래 겨우 예정된 도보 순례를 마치고 까사로 돌아왔다.
꼼장어에서나 나올법한 진액을 쫄쫄 흘러나오는 석회질 가득한 샤워기 물로 씻어내고 미리 알아논 아바나의 유명한 리스토랑테와 술집 들을 하나씩 섭렵했다.
헤밍웨이가 그렇게 좋아했다던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퍼마시며 딸래미에게 물었다.
맛있어?
응...
낮에 그렇게 갈증 참고 배고픔 느끼면서 악착같이 걸었기 때문에 지금 먹고 마시는게 더 좋게 느껴지는거야...
오늘 고생했어도 쿠바의 참 모습 제대로 본거야...
아바나의 식당 술집은 어딜가나 생음악이다.
그 가수들이나 종업원들은 한눈에 날 알아본다.
내가 들었다 놨다하는 술잔의 속도가 다르니까...
어느 정도 먹고 마셔 기분이 좋으면 막판까지 기다리지 말고 중간에 지갑을 열고 뿌로삐나를 넉넉히 헌납한다......
쿠바 여성들은 몸매가 쥑인다. 특히 애플힙이 예술이다.
백인, 흑인, 뮬라토...인종마다 특이한 매력이 있다.
맞은편에 앉은 백인 여인이 자기 남자 친구가 옆에 있는데도 계속 우릴 쳐다보며 실실 거리더니 급기야 우리 테이블 앞에까지 와서 몸을 흔들어댄다. 술이 많이 취했나보다... 나도 일어서 같이 장단 맞추고 까불었더니...
마누라 왈...저거 미친년 아냐???...
혼자 갔으면 주저 앉을뻔....ㅎ
헤밍웨이가 왜 쿠바에서 미국으로 돌아 오자 마자 엽총 자살했을까 궁금했는데 아마 쿠바의 럼주와 쿠바 여인들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왜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는 자기 조국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지 못해 안달했을까...보통 인간들은 상상할수 없는 숭고한 이상인가...아니면 둘다 아드레날린 졍키들인가...난 모르겠다.
하여간 이렇게 고난과 희열이 교차하는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를 3일간의 아바나 일정을 마치고 바라데로행 천국열차를 탓다. 바라데로는 멕시코의 칸쿤 같은 곳이다.
여기선 환전을 해야 할거 같다. 자기네 화폐로 가격 붙여놓고 달러를 공식환율로 받는곳이 많다.
쿠바의 은행 공식 환율은 $1= 25 peso 그러나 암시장 환율은 $1= 100 peso...4배 차이다.
그래서 거리의 암달러 환전상을 찿았다.
온몸에 문신하고 생긴게 영화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범죄자 모습이다.
환전하자고 했더니 뒷골목 어디서 몇시에 만나자고 한다. 약속 시간에 갔더니 자동차 운전석에 비슷하게 생긴 또 한녀석이 앉아 있다. 뒷좌석 문을 열고 나보고 먼저 타라고 한다.
어두컴컴한 인적없는 골목인데 차 안에서 총이나 칼 들이대고... 돈 놔두고 그냥 꺼져 쎄꺄......이럴거 같은 예감이 든다. 만약 진짜 그러면 어떻게 할까....?
뭘 어떻해...그냥 돈 놔두고 꺼져줘야지...ㅎ
그래도 일단 호기롭게...
니들 먼저 돈 꺼내봐...
쿠바돈은 진짜 휴지다...액수별로 몇 백장이다...
수북한 돈다발들을 지갑은 커녕 반바지 호주머니에도 넣을수가 없어 날치기 안당할려고 셔츠를 벗어 둘둘 말아 싸가지고 반나체로 호텔로 돌아가 침대위에 돈 다발을 확 던지니 처자식이 우와~~한다.
재벌된 기분이다.
바라데로 이베로스타는 호텔비용에 식음료비가 포함되어 그냥 매일 먹고 마시고 놀면 그만이다.
음식의 질은 평생 다녀본 올 인클루시브중 최악이였지만 아바나의 현실을 목격한 우리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사히 먹었다. 사실 아침만 호텔에서먹고 점심은 간식 약간, 저녁은 매일 시내에서 외식했으니 본전은 못뽑았다.
바라데로는 미국인들에겐 낯설지만 구라파인들에겐 인기 여행지다. 호텔 투숙객들이 대부분 비영어권 백인들인데 미국인 같은 매너들은 없다.
익스큐즈미 이런거 없이 접시들고 불쑥 앞으로 껴들어 음식퍼가고 하는거 까지는 봐줬는데 앞에선 인간이 하얀 젤리같은 음식을 공용 수저로 푹 떠서 코에 완전히 밀착하고 킁킁 냄새맡고는 마음에 안드는지 그대로 다시 놓길레 혐오감이 끓어올라 수저를 빼서 그대로 옆으로 던져버렸다.
바라데로를 세계 최고의 해변이라 소개하는데 웃기는 소리다. 내가 이제까지 다녀본 해변중 Top 10 에도 못낀다. 바라데로 시내 레스토랑도 대부분 형편없고 쇼핑할 상점도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겐 거부할수 없는 매력이 있다.
open water swimmer 들이나 free diver 들은 상어보다 무서운게 해파리다. 그런데 바라데로 앞바다에서는 해변에서 수마일 헤엄쳐 나가도 해파리한테 한번도 쏘이지 않았다. 쏘여본 사람들은 안다.
그 무지막지한 통증은 그렇다치고 독성 강한 놈한테 쏘이면 심장박동이 불규칙 해지면서 전신마비가 온다. 보통 사람들은 상어를 무서워하지만
평생 바다 수영이나 스쿠버 하면서 상어 수천마리 만났어도 한번도 사고 난적없다.
상어 등지느러미 끝이 흰색이거나 검은색
White tip 이나 Black tip 상어들은 생긴건 포악하지만 순하다. 일단 상어가 나타나면 등지느러미를 보라. 우리가 바다에서 만나는 상어는 대부분 이런 애들이다.
물론 백상아리 같은 몇 종류의 폭군들 만나면 잠시 동작 그만하고 조용히 떠 있는게 좋다고 하는데 난 평생 이런 종류를 바다에서 직접 만난적이 한번도 없다. 사실 통계학적 수치로도 상어에 물려죽을 확율은 번개맞아 죽을 확율보다 적은데도 사람들은 근거없이 상어를 두려워한다.
또 한가지 장점은 스피드보트나 젯스키가 해변앞에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보트 운전하는 사람들은 난바다 수역에 설마 사람이 있으리라곤 상상 못하기에 위험하다. 항상 귀를 열어야한다.
바라데로 바닷물 또한 따뜻해서 하루 종일 물속에 있어도 오한이 들거나 하지 않는다.
워싱턴주 바다는 수온이 너무 차가워 딸아이가 프리다이빙 압력평형(equalizing)을 잘하지 못했다.
바라데로 따뜻한 바다에서 매일 연습하더니 얼마안가 자연호흡으로 이퀄라이징이 자유로워 수심 10미터 정도는 그냥 들어간다.
딸래미는 이제 해군 UDT/SEAL 대원같다..ㅎ
해변에서 1 마일 정도만 헤엄쳐 나가 자연 호흡으로 수중 10 미터만 들어가보라...신비의 수중세계가 열린다.
바다 거북이도 보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자유롭게 유영하면 그 즐거움은 허리춤 깊이의 물에서 물장구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것이 열악한 나라 였지만 우리 가족 모두 잊지 못할 15일간의 쿠바여행 이였다.
비바 쿠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