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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11구간]
☞ 피나무재-별바위-주산재-대관령-왕거암-느지미재 ☜
- 주왕산 왕거암 시산제&自爆山行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11구간[피나무재-느지미재]
◆ 일시 : 2006. 3. 17.(금)/18.(토)[무박산행]
◆ 날씨 : 흐림
◆ 종주경로 : ☞ 피나무재(490m)/914번지방도 → 별바위(745.4m) → 주산재/우설령 갈림길 → 798m → 대관령/대궐령(740m) → 왕거암(907.4m) → 느지미재(650m)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4:50 피나무재 출발
△ 05:00 봉우리/우 내리막
△ 05:05 안부
△ 05:20 봉우리/우 내리막
△ 05:33 701.5m
△ 05:41 헬기장
△ 06:03 통천문
△ 06:10 별바위(745.2m)/5분 휴식
△ 06:28 주산재/우설령 갈림길
△ 06:52 602.5m
△ 07:02 봉우리/좌 내리막
△ 07:23 넓은 공터 안부/직진 오르막
△ 07:36 貞夫人慶州金氏之墓
△ 07:48 798m/헬기장/10분 휴식
△ 08:12 갈림길/직진
△ 08:17 청련사 갈림길[↑갓바위 0.6km, →청련사 1km]
△ 08:23 3거리 분기봉/갓바위전망대 갈림길
△ 08:24 갓바위전망대 조망
△ 08:32 갈림길 복귀
△ 08:34 대관령/갓바위 갈림길/좌측 주왕산 방향으로 진행
△ 08:38 제단바위
△ 08:55 분기봉/우 오르막
△ 09:11 왕거암 분기봉 3거리
△ 09:16 왕거암/1시간15분 시산제
△ 10:30 왕거암 출발
△ 10:36 왕거암 갈림길
△ 10:53 느지미재
△ 11:05 느지미재 출발
△ 11:44 큰골
△ 11:54 감시초소
△ 14:05 내원마을/내원분교, 주방천계곡 따라 유람 후 대전사 통과, 주차장 도착
△ 14:40 청송읍 솔기온천 온천욕
△ 16:00 달기약수 약수탕/대구식당 회식
△ 17:00 서울 향발
△ 21:00 강남역 도착
◆ 산행거리 : 12.3km[『사람과 산』자료 참조] + 대전사 어프로치
☞ 피나무재-3.2km-별바위-6km-대관령-1.8km-왕거암-1.3km-느지미재 ◀
◆ 산행시간 : 9시간 15분(시산제 1시간15분, 주방천 협곡 유람 & 어프로치 3시간 포함)
◆ 형태 : 德七이 합동산행[서훈식 고문, 夷希美 회장, 허공 선두대장, 흑기사 후미대장, 범털총무, 창암, 밤안개, 무흠, 뚜벅이, 대왕, 윤비, 천사, 돌범, 오르고파, 김수영, 김익수, 경로, 록수, 들꽃, 산구름돌, 주유천하 :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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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일찍이 내가 올라갔던 산
건너온 강
몇 개 되지 않지만 그 이름들조차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모르는 산과 강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수많은 얕은 언덕과 짧은 물줄기
어딘가 적혀 있지 않아도
그 많은 이름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다
헤아릴 수 없구나
모르는 이름들
남들도 내 이름을 모른다
서로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 어디서 이름 부르고
때로는 자기의 이름 제각기 쓰면서
곳곳에 살아 움직이고
더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술 한 번 함께 마셨다고
절에 한 번 같이 갔다고
그 이름을 유행 가수처럼 소리쳐
부를 수 있나
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하는 이를
강아지나 고양이 부르듯 그렇게
부를 수 있나
목청 높여 연호할 수 있나
가만히 입속으로 되뇌어보거나
가슴속에 간직한 채
아껴야 할 이름
- 김광규, “이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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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1구간
원래 예정된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1구간은 피나무재에서 별바위-주산재-대관령-왕거암-느지미재-명동재-먹구등-대둔산을 거쳐 황장재로 이어지는 24km의 주왕산 구간이다. 이 구간은 바로 주왕산국립공원의 외곽지역을 통과하는 구간으로 이 구간의 정맥길이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의 경계가 된다. 주왕산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고 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으로 불렸고, 택리지나 대동여지도에는 주방산(周房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번 구간의 정맥길은 별바위, 왕거암, 먹구등,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주왕산의 병풍길을 따라서 걷는 길이다. 나는 2003년 봄 달기약수가 있는 월외리에서 금은광이(812.4m)에 오른 후 제2폭포-후리메기-칼등고개를 거쳐 주왕산(720.6m)에서 대전사로 하산한 후 주방천을 따라 올라가 학소대 등을 돌아본 일이 있는데 이번에 낙동정맥 종주 일정에 맞추어 주왕산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줄기를 휘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주왕산 왕거암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음복으로 막걸리 잔이 돌아가면서 긴장감이 풀어지고 분위기가 급변하여 원래의 일정이 뒤틀어지게 되었다. 아직 주왕산의 절경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정맥일정에 따라 이왕 주왕산 줄기에 온 것이니 주왕산의 진면목인 주방천 협곡의 기암절벽들도 보고 온천욕도 즐기자는 의견이 세를 얻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니기미재’인지 ‘느지미재’에서 계곡을 따라 대전사로 내려가기로 의기투합하는 하는 바람에 정맥길 자폭산행이 되고 말았다.
인생항로이든 산길여정이든 돌발변수나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어느 곳에서나 일탈의 유혹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것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즐거움은 그 즐거움 못지않게 속 쓰린 고통을 수반한다. 느지미재에서 내원마을을 지나 금은광이 갈림길 공단초소에서 길을 막고 있는 공단직원을 만나 우리들의 아쉬운 처지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주방천 협곡의 기암절벽들을 보면서 유람은 잘 했지만 3시간에 이르는 어프로치가 너무 길었고, 당장 다음 구간을 운용하는데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2. 주왕산(周王山)
어쨌든 이 구간의 알파와 오메가는 주왕산(周王山)이다. 주왕산국립공원은 1976. 3. 30.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개 국립공원 중 면적이 제일 작다. 지리산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주왕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들어간다. 주왕산의 산 자체는 보잘 것 없는 산이지만 예부터 명산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바로 신이 빚어놓은 듯한 기막힌 암봉미에 있다.
주왕산에는 금은광이, 두수람, 먹구등(지도에 따라 ‘벅구등’으로 표기된 것도 있다), 후리메기, 월미기, 느지미재 등 당최 알아먹기 어려운 별별 희한한 지명들이 많다. 주왕산은 청송의 鎭山이고, 청송(靑松)이란 글자 그대로 소나무의 산이다. 소나무가 많아 송이버섯도 많이 난다. 주방천 계곡을 따라 암봉이 즐비한 바위산이지만, 이 계곡을 둘러싼 산줄기는 포근한 육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왕산의 핵심은 대전사에서 내원마을로 이어지는 주방천 협곡의 기암절벽이다. 주왕산의 산줄기는 유순하지만 주방천을 따라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등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수직 암봉과 암벽은 물론이고 明鏡止水와 같은 溪流도 세파에 시달린 인간들의 몸과 마음을 淨化해준다. 이중환은 擇里志에서 주왕산을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산은 표고가 제일 높은 봉우리를 주봉으로 삼는데, 주왕산의 주봉(720.6m)은 대둔산(905m), 금은광이(812.4m), 두수람(923.3m), 먹구등(846.4m), 가메봉(882.7m), 왕거암(907.4m), 별바위(745.4m) 등 다른 봉우리들보다 표고가 훨씬 낮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북쪽 외곽에 있는 태행산(933.1m)이 높이는 높으나 주왕산 본 줄기와는 많이 떨어져 있으므로 대개 왕거암을 주왕산의 최고봉으로 친다. 주왕산에서 최고로 전망이 좋은 곳은 가메봉일 것 같고, 주왕산 주봉에 올라보았을 때 왜 이런 봉우리를 주왕산의 주봉으로 삼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신라 선덕왕때 선덕왕의 조카인 金周元(태종무열왕의 6대손이며 강릉김씨의 시조임. 선덕왕이 후사가 없어 군신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김경신이 원성왕이 되었고,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이 부친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옛날 국사시간에 배웠다)이 이 산에 들어와 수도생활을 했다는 데서 유래하여 周王山 또는 周房山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당나라 사람 주도(周鍍)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김기빈의 「한국의 지명유래」(지식산업사 : 1986)에 의하면 신라말기 당나라에 반기를 든 주도(周鍍)가 後周天王(周王)이라 칭하며 옛 晋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당나라 서울 장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패하고 압록강을 건너 이곳에 피신하였다는 것이다. 당나라에서 신라에 사신을 보내 이들을 토벌토록 요청하므로 신라 조정은 馬一聲 장군 형제를 보내 이 산을 포위하고 주왕을 잡아 죽였으므로 고려의 나옹화상이 그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구라가 전해져온다.
이 산에는 주왕이 마 장군과 싸울 때 식량과 병사가 모자라 신라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 기를 꽂았다는 높이 45m의 기암(旗岩, 대전사 뒤의 ‘山’자 모양의 바위)과 주왕이 숨어 살다가 신라군에게 붙잡혔다는 주왕굴 등 주왕과 관련된 곳들이 많다.
기암과 대전사 그 절묘한 배치
大典寺는 고려 태조 2년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인 大典道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나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그냥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일 뿐인지, 역사적 전거가 확실하게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3. 들머리 : 피나무재로
2006. 3. 17. 금요일 늦게 퇴근하여 바로 낙동정맥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3월 18일은 덕칠이가 2년 전 백두대간종주의 대장정을 시작한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에는 백두대간 도래기재-화방재 구간의 태백산에서 시산제를 지냈고, 이번에 그 2주년을 기념할 겸 낙동정맥의 주왕산 왕거암에서 시산제를 지내기로 하였다.
총무가 시산제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 구간에 입만 가지고 간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재동 구민회관 앞으로 가다가 양재역에서 서 고문님과 변 회장님을 만난다. 시산제 후 먹을 것이 많을 듯하여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았다가 만일을 대비하여 빵집에서 빵을 준비하였다. 이번 구간에 새로이 산돌님이 참여하였고, 산행인원은 21명이다. 급한 용무로 탱크님과, 나푸른솔님, 서송수님, 토끼님이 빠졌다.
밤 11시 YES 관광 28인승 우등버스는 바로 출발한다. 안락한 의자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냥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2006. 3. 18. 토요일 새벽 1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문경휴게소이다. 새로 신설된 도로마냥 휴게소도 쾌적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휴게소에서 30여분 휴식을 취한 후 버스는 34번 국도를 타고 문경, 예천, 안동을 거쳐 914번 지방도상의 피나무재에 도착한다. 시간은 새벽 4시 25분이다. [진보 37km, 주왕산 12km]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지난 구간 산행을 마치고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수많았던 별들은 다 어디 갔는지 빅뱅을 앞둔 우주마냥 밤하늘은 캄캄하다. 그러나 우려했던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제는 정착된 산행전 체조로 가볍게 몸을 풀고, 각자 시산제 제수 음식을 나누어 배낭에 담는다. 나는 돗자리를 배낭 뒤에 얽어매니 시골에서 농군이 분무기를 짊어진 모습이다.
4. 여명을 기다리며 :
[피나무재 → 별바위 : 3.2km//1시간20분]
새벽 4시 50분, 주왕산국립공원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 뒤 등성이로 올라붙으며 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피나무재에서 별바위까지는 3.2km로 1시간 30분이면 이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제발 어둠이 풀려 별바위에서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어둠을 뚫고 간다.
참나무숲 낙엽길 오르막을 5분쯤 오르면 완만한 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른 봉우리에서 다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릴 뿐 사위는 고요하다.
날씨는 바람 한 점이 없고 후덥지근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제 겨울은 저 멀리 가버리고 본격적인 봄철산행 모드로 전환하여야 할 시점이다. 산에 다니다보니 웬 계절의 변화가 그리 빠른지 모르겠다.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선 지점의 우측 암릉 좌측 사면길을 따라 오른다. 701.5m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내려서서 참나무지대 오르막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꽤 가파르다.
한 봉우리에서 다시 오르막을 올라 어떤 봉우리의 좌측 사면을 따라 오르는데 자갈길이다. 자갈길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거대한 바위 덩어리 사이로 조그만 구멍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곳이 통천문인 것 같다. 어둠 속이라 그 본연의 자태를 볼 수 없어 유감이지만 이름처럼 하늘로 통하는 문인 통천문이라기 보다는 바위 구멍(穴)처럼 보인다.
밤에 보는 통천문 : 웬 구멍?[녹수님 사진]
바위 덩어리 좌측 사면 오르막을 7분쯤 치고 오르면 능선에 합류하고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별바위이다. 삼각점도 있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아 10여명이면 가득 찬다. 이 봉우리는 삐죽삐죽한 바위가 튀어나온 형상이 별처럼 생겼다고 하여 별바위로 부르기도 하고, 옛날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이 별바위 사이에 떠있는 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더니 장원급제했다는 전설이 있어 별바위로 부른다는 구라도 있다.
새벽 6시 10분 산하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라 흐릿하기는 하지만 주위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환한 시간에 주위를 조망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난 구간에 보았던 주산지의 모습도 보이고, 앞으로 가야할 왕거암의 모습도 보인다. 왕거암은 무슨 사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별 바위 위에 서고 보니 산의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돛단배에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방으로 산, 산, 산뿐이다.
산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점 티끌도 안 보이게
나를 지운다.
- 조태일, “소멸”
5. 유순한 병풍길 :
[별바위 → 왕거암 : 7.8km//약3시간]
별바위에서의 5분간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왕거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좌측(북쪽)에 왕거암이 있는데 정맥길은 동쪽방향으로 휘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주왕산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이 활짝 펼쳐지지 않고 겹겹이 포개진 것 같다. 별바위에서 왕거암까지는 7.8km로 3시간 정도면 이를 수 있다.
맑은 날씨는 아니나 여명이 밝아오면서 시야가 트여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흐린 날씨라 일출은 기대할 수 없다. 별바위에서 약간 뒤돌아 내려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얼음이 남아있는 급경사지대를 내려와 평탄한 길을 가다가 내리막에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다시 오르막에서 좌측능선으로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는 우설령으로 가는 길이고, 정맥길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하는 주산재이다. 주산재에서 구간을 끊고 우설령에서 어프로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주산재에서 내려가는 길은 참나무숲이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나 아직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내리막에서 오르막을 올라 완만한 유순한 참나무숲 정맥길을 따르다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아마도 좌측으로는 신술리로 가는 길이 있는 것 같다. 안부에서 오르막을 올라 완만하고 호젓한 길을 가다보면 봉우리 좌측 내리막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른 봉우리가 602.5m로 추정된다.
602.5m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후미가 도착하여 방을 빼주고 내리막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고도차가 크지 않은 유순한 길이라 오르내림이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시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서 봉우리 좌측 사면을 따라가는데 소나무가 듬성듬성 나타난다. 묵묘터를 지나 넓은 공터안부가 나오는데 조그만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야영터로 적당할만한 장소이다. 우측으로도 길이 나있는데 이 길로는 영덕군 달산면 덕산리 방향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야영터에서
야영터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지그재그로 참나무와 산철쭉 군락지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오르막 중간에 묘가 있고, 상석을 살펴보니 貞夫人慶州金氏之墓로 되어 있다. 貞夫人이라면 조선시대 外命府 正二品, 從二品 당상관의 부인으로 꽤 지체가 있는 부인인데 서방을 어디 두고 부인만 홀로 이곳에 묻혔는지 그 사연은 알 수 없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 봉우리 좌능선에서 봉우리 우능선으로 정맥길이 휘어지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 보니 798m 헬기장이 나온다.
798m 헬기장
사각형 헬기장은 시멘트로 깨끗하게 다져져 있고 페인트표시도 선명하다. 이곳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하다 후미가 들어오면서 다시 방을 빼주고 헬기장 좌측의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선다. 이곳에서 왕거암까지는 3.3km로 1시간 조금 더 가면 될 듯 하다.
내리막길이 미끄러워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이어 오르막 좌능선을 따르다가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굴참나무 군락지대를 지난다. 좌측으로 나무에 어떤 표시가 되어 있는 갈림길에서 그냥 직진하여 오르막을 올라 좌능선을 타고 진행하면 청련사 갈림길이 나온다.
청련사 갈림길에서 : 꽃밭에 웬 잡초가?
참나무 등걸에 [↑갓바위 0.6km, →청련사 1km]라는 화살표 이정표가 걸려 있고, 청련사로 가는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이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5분 정도 오르막을 올라서면 능선분기봉으로 갓바위전망대 갈림길이다. 대왕님은 선두들과 함께 진행한 후 후미들의 영정사진을 박아주기 위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정맥길은 좌측방향이나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갓바위전망대로 가본다.
갓바위전망대에서 보는 조망 : 좌측 하단에 갓바위가 보인다.
이 전망대는 오늘 구간의 최고의 전망대이다. 영덕군 달산면 용정리, 덕산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동해 바다까지 조망이 된다. 갓바위전망대는 이곳에서 갓바위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이고, 갓바위 위의 전망대가 아니다. 이곳에 서고 보니 세상 천하가 다 내 발 아래 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갓바위전망대에서
이런 전망대가 있는 줄 알았으면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내도 될 뻔 했다. 다시 갈림길로 복귀하여 갓바위 방향으로 가다보면 또 능선분기봉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주왕산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갓바위로 가는 길이다. 이곳이 지도상의 대관령 또는 대궐령이다. 고개라기보다는 꼭짓점이다. 갓바위까지 0.2km라 금세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으나 전망대에서 갓바위의 모습을 보았던 터라 좌측의 주왕산 방향으로 간다. 호젓한 참나무 숲길이다.
제단바위로 내려서는 서고문님
내리막을 내려서다보니 제단바위가 나온다. 아마도 이곳은 무속인들이 제를 지낼만한 곳이나, 산꾼이 보기에는 비박터로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다. 제단바위에서 내리막을 내려선 후 진행을 하는데 버섯 모양의 바위도 보고, 사면을 따라 계속 진행하는데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렸던 흔적이 나온다. 아마도 주왕산은 기도발이 잘 받는 모양이다. 기도발이 잘 받는 이 주왕산에서 시산제를 올리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버섯모양의 바위
솔숲 오솔길을 진행하다가 분기봉에서 우측 오르막을 오르는데 정맥길이 계속 좌측으로 휘어지는 느낌을 갖는다. 흑기사 후미대장이 시산제 제수 음식 때문에 무전기를 돌범님에게 인계하고 서둘러 왕거암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을 올라서니 왕거암 갈림봉이 나온다.
이 갈림길 좌측으로 5분쯤 진행하면 주왕산 최고봉인 왕거암(907.4m)이다. 왕거암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주왕과 관련이 있을 듯하나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암’자가 붙을 만한 봉우리는 아니다. 2등 삼각점(청송24, 2004재설)이 박혀있고, 정상에는 벌목을 해놓아 공터가 꽤 넓어 시산제를 지내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이 왕거암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가메봉을 지나 주왕산 주봉으로 갈 수 있다. 별바위에서 왕거암까지 정확하게 3시간이 소요되었다.
6. 주왕산 최고봉 왕거암 시산제
먼저 도착한 선두들이 시산제 준비를 하고 있으나 짐들이 분산되어 있어 결국은 접시를 갖고 있는 녹수님이 마지막으로 도착해서야 시산제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비가 내릴 듯하여 우의를 꺼내 입었으나 산신령이 시산제를 지내는 우리들의 정성에 감복했는지 비를 거두어주셨고,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거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어 제상이 차려졌고, 분향과 서고문님의 강신을 시작으로 덕칠이 시산제가 시작된다. 이어서 제주이신 변 회장님의 초헌에 이어 흑기사 후미대장의 힘찬 목소리로 독축이 있었다. 축문은 내가 총무님의 명을 받들어 작년 백두대간 시산제 축문을 약간 버무려 만든 것이다.
흑기사 후미대장의 독축
독축에 이어 천사님의 아헌과 녹수님의 종헌이 있었고, 이어서 회원 각자의 헌작이 있었다. 서고문님만 봉투에 돈을 담았고, 모두들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올리고 술을 따른 후 재배를 하였다. 소지를 끝내고 총무님은 재빨리 모인 돈을 회수하여 이를 잡수입으로 잡았다. 철상 후 음복을 하고 제수 음식을 나누어먹는 자리에서 모두 즐겁게 마시고 먹었다.
그런데 막걸리가 들어가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밤안개님이 시산제를 마치고 1시간 이상 산행을 해 본 예가 없다는 등 이야기가 나오고 주왕산의 절경을 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급기야 허공대장님의 긴급유시가 발표되었다. 오늘 구간은 느지미재에서 대전사로 내려가면서 주왕산의 진면목을 보고 온천욕도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일탈의 기쁨을 만끽하는 분위기다.
이거는 완전히 자폭인데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청문회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애쓰게 구간조정을 하여 간신히 한 구간을 줄여놓았는데 원상으로 복구되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느지미재에서 내려가는 경우에는 다음 구간 운용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은 시산제 분위기에 더 이상 표출되지 않았고, 김수영님과 김익수님만이 황장재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서둘러 왕거암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사실 마라톤 풀코스 3시간 2분대의 김수영님이 황장재로 가지 않았으면 문제가 발생할 뻔 했다. 버스가 황장재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아무도 운전기사의 연락처를 받아놓지 않아 버스를 청송으로 되돌릴 마땅한 방법이 없는 차에 김수영님이 흑기사가 아닌 백기사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우리가 느지미재에서 대전사로 어프로치 하는데 이것저것 보고 노느라고 3시간이 걸렸는데 김수영님과 김익수님은 왕거암에서 황장재까지 13km를 3시간 정도에 주파하고 우리가 대전사로 내려갔을 때 그들도 황장재에 도착하여 청송으로 버스를 몰고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산제 후 자폭기념사진을 박고 : 언제나 일탈은 즐겁다
7. 자폭산행, 봄기운을 느끼며 :
[왕거암 → 느지미재 : 1.3km//23분]
왕거암에서 1시간 15분 동안의 시산제를 마치고 자폭기념 사진을 박은 후 느지미재로 향한다. 왕거암에서 느지미재까지는 1.3km로 20여분이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왕거암갈림길로 복귀하여 갈림봉에서 내리막을 내려선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호젓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이런 호젓한 정맥길에 길들여있다 보니 저자거리보다 더 시끄러운 주말의 근교산은 피하게 된다. 정맥길에서는 우리 일행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한다. 1주일을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이런 호젓한 길이 그리워진다.
수행자는 무릇 홀로이기를 원한다.
한 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도
저마다 은자처럼 살아간다.
서로 의지해 살면서도
거기에 매이거나 얽혀 들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독립과 자유를 원한다.
묶여 있지 않은 들짐승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숲 속을 다니듯
독립과 자유를 찾아
혼자서 간다.
- 법정, “묶이지 않은 들짐승처럼”
[법정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왕거암에서 23분만에 느지미재에 도착했다. 느지미재인지 니기미재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나지막한 고개라는 뜻인지? 느지미재에 도착한 후 후미를 기다려 함께 대전사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앞에 보이는 명동재 봉우리를 앞에 두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자폭산행을 감행하는 것이다.
느지미재에서 산행모드 전환
스틱도 집어넣고 배낭포도 걷어내는 등 모두들 산꾼모드에서 관광객모드로 전환하도록 한다. 그러나 신발이며 옷이며 꾀재재한 모습이 산꾼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다. 오전 11시 5분 좌측의 대전사 방향을 향하여 느지미재를 출발한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계곡길을 따라 걷는데 종종 정맥표지기가 보이는 것이 느지미재 어프로치를 하는 팀도 있는 것 같다.
정맥 마루금을 쫓다보니 그 동안 계곡 물소리와는 소원해져 있었는데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도 색다르다. 山自分水嶺을 미신처럼 믿고 바람소리를 벗하여 마루금 산줄기를 이어가다가 물줄기를 만나면 피하는 사람들도 양념삼아 간혹 물소리도 들어볼 필요도 있다. 길이 뚜렷하지 아니하여 물을 건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가는데 땅바닥에는 푸른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튀어 오르는 봄의 생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느지미재에서 내려오는 길
나무들도 팽팽하게 물이 올랐고, 생강나무도 노란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노란 꽃망울을 달고 있어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르다. 산수유는 중국 원산으로 자생하지 않고 주택가 가까운 곳에서 피는데 생강나무는 이른 봄 산에서 핀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의 동백꽃은 선운사의 붉은 동백꽃과 같은 꽃이 아니라 노란 생강나무꽃이다. 위 소설에서 동백꽃이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어 어린 학생들이 위 소설을 읽고 동백꽃은 빨간색이 아니냐며 순진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강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동박나무’가 이모음 동화현상으로(‘학교’가 ‘핵교’라는 식으로) ‘동백나무’로 바뀐 것이고, 김유정의 동백꽃은 실은 노란 생강나무꽃이다. 김유정이 “동백꽃”을 쓴 실레마을에서는 제주도, 남해안이나 선운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붉은 동백꽃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김유정의 고향인 춘천의 실레마을(신남역 인근)에는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어 있다.
느지미재에서 40여 분만에 큰골3거리에 도착하면서 편안한 산하의 모습이 안전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내원동까지는 0.9km, 상의매표소까지는 5.8km라는 공단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엣 10여분 내려가다 보니 감시초소가 나오고 입산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8. 내원마을의 정취 : 사람들은 떠나가고
내원마을은 옛날의 내원마을이 아니다. 내원마을은 예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로 알려져 있었고, 이곳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파전이나 동동주를 파는 집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공간이다. 공단에서 이 마을이 자연을 훼손하고 주민들이 등산객을 상대로 무허가로 음식을 판다는 이유로 몇 년 전에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내몰았다고 한다.
비어 있는 내원마을
어느 곳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면 오염은 피할 수 없는 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없어 내원마을을 통과하는 기분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것과 같은 허허로운 기분을 맛본다. 집터들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산줄기로 감싸인 아늑한 분지, 누런 갈대와 계곡의 정취도 뛰어나고 계곡의 한 켠에는 올챙이 알들이 무더기로 떠 있다.
운치 있는 내원분교도 텅 비어있고,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를 어미 개와 새끼 개만이 우리를 맞아준다. 어미 개는 뒷발 하나가 잘려있고 백내장 때문인지 눈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 먹다 남은 과자와 김밥을 주니 새끼 개만 잽싸게 받아먹는다. 통나무집 내원분교 앞에는 목장승들이 도열하듯 서 있다. 주왕산초등학교 내원분교는 1970년부터 1980년 3월 폐교시까지 7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지금은 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쉼터로 마련되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내원분교 졸업생들 동창회
내원분교 앞에서 우리는 분교생이 되어 단체사진을 박고 길을 떠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희희낙락거리며 길을 가는데 금은광이로 내려오는 길목에 초소가 있고 공단직원인 듯한 사람이 희끔희끔 우리를 쳐다보다가 우리를 막아선다.
9. 주왕산 정맥길은 없다! 있다!!
지금부터 돌발상황 발생.
그 아리까리한 상황을 약간의 구라를 덧붙여 재구성해본다.
공단직원(이하 公員) : 어디서 오는 길이죠?
서 고문 : 낙동정맥을 하고 있소(처음에는 공단직원에게 걸리면 작년에 설악산 죽음의계곡 내려올 때처럼 회갑잔치기념 산행을 하는 것으로 하시도록 했으나 얼떨결에 사실대로 말해버림).
公員 : 아니 그 길은 비지정탐방로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덕칠 일동 : 우리는 몰랐어요.
公員 : 그러면 어디서 산행을 시작하셨어요?
덕칠 : 피나무재에서요.
供源 : 그곳에 출입금지표지를 못 보셨나요?
덕칠 : 못 봤는데요. 새벽 4시에 캄캄한 때 산행을 시작해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 우리는 낙동정맥 코스대로 온 것뿐입니다. 정맥길로 가다가 비도 오고 주왕산도 보자고 해서 니기미재에서 별 생각 없이 이 길로 내려온 것뿐이에요. 우리가 알았다면 어떻게 멍청하게 이 길로 내려왔겠습니까? 피해버리지. 안 그렇습니까?
公員 : 주왕산국립공원 내 그 길은 다닐 수 없는 길입니다. 지정탐방로가 아닌 길은 전부 다닐 수 없는 길입니다.
덕칠 : 아니, 그렇다면 1년 내내 다닐 수 없다는 말입니까?
허공 : 백두대간에 그런 길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맥에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은 몰랐는데요.
公員 : 그래요, 전혀 댕길 수 없어요.
덕칠 :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낙동정맥 종주한다는 겁니까?
公員 : 우리들이 비표를 떼어내면 다음 날 달고, 매일 그곳에서 지킬 수도 없고 미치겠습니다. 피나무재에서 도로공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철망 펜스까지 쳐놓았는데 쥐새끼처럼 구멍을 뚫어 놓으신 것 보지 못했나요?
덕칠 : 못 봤는데요(이 와중에 천사님 이하 여성동무들은 슬슬 눈치를 보다가 벌금액수라도 줄여보려고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工員 : 안되겠군요. 이 모임 어느 산악회고 회장은 누굽니까?
덕칠 : (변 회장님이 하마터면 손을 들 뻔 했다가 움찔한다). 우리는 산악회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로 회장 그런 거 없습니다. 모임 이름도 들으면 좀 뭐 할 거예요. 땡칠이라고.
公員 :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같이 본부로 내려가십시다. (무전기를 들고) 본부! 본부!!(무전기에서는 찍찍 소리만 들리고 본부와 교신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돌범 : 좀 봐주세요. 제 등에 진 것 봐요. 이렇게 청소하며 다니잖아요?(돌범님의 배낭 뒤에는 시산제 끝물들을 담은 비닐봉지가 매달려있다)
公員 : 제가 한 두 번 당해본 줄 아십니까? 가십시다!
녹수 : AC, 이리로 내려오면 안 된다면 다시 올라갑시다!(아니 어떻게 다시 올라가? 그리고 올라간다고 해결이 돼?)
경로 : 우리가 모르고 한 거니까, 계도 차원에서 넘어갈 수 있잖습니까?
公員 : 모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본의 아니게 과속하여 들키는 것과 똑 같습니다. 누가 과속하고파서 합니까?
덕칠 : 여기서 얼마나 내려가야 합니까?
公員 : 한 시간 반 쯤 걸릴 겁니다.
덕칠 : 그러지 말고 한번만 계도 좀 해주세요. 다시는 안 다닐께요.
公員 : 사람들 눈이 있어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덕칠 : 누가 본다 그래요.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겁니다.
公員 : 아닙니다. 우리 공단 직원이 잘 못 봐줬다가 옷을 벗었어요. 누구 밥그릇 자를 일 있습니까? 내려가서 본부에서 사정 이야기를 잘 해보십시오. 잘 하면 1인분만 과태료를 끊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덕칠 : 1인분에 얼마죠?
公員 : 50만원이요.
덕칠 : 우이, 50만원씩이나!(19명이 각 50만원씩이면 950만원이다) 한번만 계도 좀 해주세요(모두들 공원의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공원에게 고분고분한다).
公員 : 골치 아프네(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을 안 듯), 정 그러시다면 서로 떨어져서 가고, 혹시 적발되면 내원동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말하지 말고 장군봉 갔다 오는 것으로 얘기하세요(산불경방기간이라 주방천과 백련암-장군봉코스만 빼고 주왕산의 대부분의 코스는 입산금지다).
덕칠 : 어휴! 살았다!!(재빨리 다리를 건너 제3폭포 방향으로 사라진다)
10. 주왕산의 핵심 : 주방천 협곡의 기암절벽
위기를 간신히 돌파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제3폭포부터 차례로 주방천의 비경을 구경하면서 내려간다. 후리메기를 지나 주왕산 주봉으로 가는 길에도 입산금지 현수막이 걸려있다. 폭포는 겨울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내고 수량은 많지 않지만 시원한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다.
제3폭포
제2폭포 갈림길을 지나 협곡 사이를 통과하면서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절벽바위 학소대, 김주원의 설화와 관련이 있는 급수대,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이 생긴 시루봉, 병풍바위들을 바라보니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
주왕산의 절경은 가을에 보아야 제격이고 이러한 길은 혼자 다니는 길이 아니라 마누라나 애인과 함께 다니는 길이다.
시루봉
급수대
널널한 마음으로 주방천계곡을 따라 유람을 한 후 대전사 직전의 간이식당에서 동동주까지 한 잔 하고 대전사로 들어가 ‘山’자 모양의 기암의 절경을 다시 음미해본다. 매표소를 빠져나가 상가지대를 통과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2시 5분, 느지미재에서 출발한지 딱 3시간이 걸렸다. 어프로치로 3시간이 걸릴 바에야 그냥 황장재로 직행했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대전사와 기암
오늘 정맥길은 13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시산제 1시간 15분, 주방천 유람 3시간 등을 포함하여 9시간 15분이 걸렸으니 큰 이문이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긴 이러한 코스를 경제적 이문으로 따질 것은 아니지만.
돌범님과 정맥길 망중한
11. 정맥길 에피소드
청송읍내의 주왕온천관광호텔로 이동하여 온천욕을 하기로 하고 인근 식당의 차를 불렀다. 호텔로 가보니 관광호텔 옆에 최근에 개장한 솔기온천이 있다. 황장재에서 버스가 도착하지 아니하여 먼저 온천욕부터 하기로 한다.
어쨌든 산행 후에 하는 온천욕만큼 상쾌한 것은 없다. 온수뿐만 아니라 냉수도 수질이 미끈미끈하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오니 버스가 도착해 있으나 문이 닫혀있어 기다리는데 기사가 도착하여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모두들 온천욕을 하고 나니 때깔이 다르게 보인다. 앞으로 진행할 백암산 구간에서는 두 차례(한 차례는 남진) 백암온천욕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기대가 된다.
버스는 달기약수탕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대구식당에서 닭백숙으로 회식자리를 마련한다. 지난 구간에는 흑기사님이 골프연습장 개업기념으로 한 턱을 쏘았고, 이번에는 연무흠님이 지점장 영전기념으로 한 턱을 쏘는 바람에 입만 갖고 다니면서 공짜로 잘 얻어먹고 있다. 귀경길 버스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도 술은 좀 많이 마실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마셨다가는 잠도 오지 않고 골치만 아프게 된다.
수통에 약수를 채우고 버스는 오후 5시경 청송을 출발한다. 술의 위력으로 버스에서 바로 곯아떨어졌다가 괴산휴게소에 설 때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깨고 보니 버스는 복정역을 통과하고 있고, 밤 9시 강남역에 도착하여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들어온다.
12. 窮則通, 궁하면 통한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 느지미재에서 자폭산행을 하는 바람에 구간 운용이 애매해지게 되었다. 놀 때는 좋았지만 빼먹은 구간을 메우기 위해서는 고통이 뒤다른다. 그러나 인간지사는 窮則變이요, 變則通이라,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窮則通이다!
오늘의 경험에 비추어 어차피 느지미재에서 대전사로 어프로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른 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 단순한 방법으로 아예 처음부터 피나무재에서 황장재깨지 새로이 산행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는 너무 무식한 방법 같고, 우설령에서 주산재로 어프로치를 하여 정맥길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으나, 이 역시 피나무재에서 시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갓바위골에서 대관령으로 어프로치를 하거나 아니면 영덕 방향의 상먹동에서 느지미재로 어프로치를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이쪽은 길이 뚜렷하지 아니하여 밤에 산행을 시작하는 경우 까딱하다가는 알바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부득이 이 구간을 역주행 하기로 하되, 황장재가 아닌 화매재에서부터 시작하여 황장재-화매재 간의 4.2km를 벌어두면 그 다음 구간 운용이 좀 편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는 아무래도 상먹동으로 내려가는 것은 개척산행의 위험부담이 있으므로(버스가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느지미재에서 대관령까지 3.2km를 복습하고 대관령에서 길이 잘 나 있는 갓바위골을 거쳐 입암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버스에 타고 인근의 영덕으로 가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유명한 영덕대게도 맛보고 한 따까리 하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되는대로 가볼 수밖에, 궁하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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