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완전하면서도 어느새 완전을 추구
하고 있고 육체의 나약함 속에서도 어느새 무리라는 틀을 만들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자의 종족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창조주조차 그들의 신비한 내력에 흠취되어 더욱더 인간을 자신의 품
으로 인도하기 시작했고 창조주의 품에서 어느새 우월감에 도취된
인간들은 하나 둘씩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처음의 맑고 순수하던 인간들은 점차 범람하는 파도처럼 검은 욕망
에 이끌려 이성의 절제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고 강한자에 이끌려
약자를 핍박하고 자신들을 거둬준 신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난 창조주의 아들로서 그의 명령을 받아 인간들에게 공포로서 존
재하게 될 드래크로니므이스라는 나의 이름과 비슷한 '드래곤'이라는 생
명체를 창조했다.
하지만...내가 처음으로 생명체란 것을 창조시기엔 연륜이 부족했던 것
이었을까...
나의 손에 태어난 생명체는 인간들에게 공포로서 존재하게될 절대존재가
아닌 애완동물로서 자리매김 할만한 아주 귀여운 아이가 태어났다.
아직 신으로서 각성한 지 얼마되지 못했던 내게서 처음으로 세상의
눈부신 빛을 알게해준... 내가 처음으로 창조한...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사
랑한 최초의 생명체...그 존재는 나의 아들이자 딸이었고 나의 삶이자 사
랑 그 자체였으며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연인이었다.
그 동글동글하고 50크로(1크로=1cm)도 안되는 연한 분홍빛이 느껴지는
털복숭이의 작은 몸체는 주위의 나와 같은 신들조차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찔하게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였다.
비록 나의 손에의해 태어난 생명체지만 누군가 내가 사랑하고 나의 삶이
자 연인인 엘테미아를 다시 창조하라고 하면 수억만년이 걸려도 내 앞
에 있는 작고 귀여운 아이를 창조해 내지 못하리란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내가 창조한 최초의 생명체이자 최초의 드래곤 엘테미아...
그 동글동글한 황금빛 눈으로 나를 바라봐줄때 난 신으로서 절제해야 할
감정이란 것을 그때만큼은 도저히 절제할 수 없었다.
언제나 원했다...그녀를...그녀의 곁에서 행복해하며 같이 웃고 생활하기를...
그렇게 인간의 세월로 치면 꽤나 오랜 시간의 세월이 흐른 후...
엘테미아는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그녀의 힘은 점점더 거대해 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녀를 일깨우기 위한 신계의 비보를 엘테미아
의 심장에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면 안되었다...그것이
아니면...
드래곤 하트...또다른 이름은...그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난 엘테미아에게 드래곤 하트라는 이름이 개정된 신계의 비보를 선물했다.
대륙에 퍼진 자연의 살아 숨쉬는 에너지인 순수한 마나를 무한정으로 유통,가
공시켜 주는 신계의 비보...
그녀를 깨우기 위해 드래곤 하트를 불어 넣어준 후 엘테미아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관장하는 에너지의 균형에 또하나의 거대한 힘을 창출함으로서 막대
한 균형붕괴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있고 싶었는데...아무런 슬픔도 고통도 없이 둘만의 낙원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꽃피우고 싶었는데...어느샌가 엘테미아의 막대한 에너지에
붕괴되기 시작한 차원을 관장하기 위해 나는 나의 온 신력을 쏟아 부었고
나의 신력은 점차 고갈되어 밑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것 같다...엘테미아가 점점더 나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 엘테미아는 그저 자신의 후손을 잇기 위한 준비라며 넘어갔지만...난
그때 그녀의 말을 깊이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기에 대충 넘어갔었다....그 후...그때
의 나의 선택과 무관심이 신으로서 모든 의무와 권리를 버리면서까지 죽고싶
을 만큼 후회하게 될 재앙의 서막이란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난 나이자 엘테미아였고 엘테미아는 엘테미아이자 나였다. 우린 서로의 영
혼을 공유하고 있었고 내가 엘테미아의 모든것을 느낄 수 있듯 엘테미아 역
시 내가 자신탓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처음으로 신으로서 각성된 후 내 황금빛 눈동자에서 눈
물이 흘렀던 날...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작고 사랑스런 엘테미아를 찾기 위해 난 나의 차원
계를 온통 헤집고 다녔고 끝내 그녀를 찾았을 땐 스스로 드래곤 하트를 자
신의 몸에서 떼어내어 자연에게...아니, 나에게 환원시키고 스스로 차원의 틈
으로 녹아들어가 자기소멸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차원의 틈으로 이미 몸의 절반이 들어가 버린 엘테미아를 보며 구슬같
은 눈물을 흘리고 피를 토하는 외침으로 그녀를 향해 간절히 외쳤다.
제발...나의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조금만 더 기다리면...'그'와 함께 방
법을 강구하겠다고...섣부른 판단으로 나의 심장이 되어버린 그녀를 잃게
하지 말아달라고...
허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인간의 형상으로 폴리모프한 채 나와
같은 구슬같은 눈물을 훔치며 생긋 웃고는 아름다운 다홍빛 입술로 구슬
픈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울지...말아...드래크로...드래크로는 말야...언제까지나...언제까지나 행복
해야해...난 잠시 여행을 가는거야...이곳은 너무 질려서 말야...헤헷...]
[........]
[그리고...]
[........]
[사랑해...안녕...]
난 나역시 그녀 못지 않게...아니 그녀보다 더욱더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 그녀를 보며 바보같이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손에는 엘테미아가 남겨버리고 간 작은 황금빛 보
석이 구슬픈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러갔다.
엘테미아가 스스로 차원의 틈으로 떠나간지 어느덧 10만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 자기혐오와 분노,증오,초초,자괴감으로 살고있었다.
하지만 잊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엘테미아의 후손을 창조하는 일을...
최초의 드래곤인 엘테미아는 고룡이 되어도 본체가 70크로(1크로=1cm)도
안되는 작은 크기에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런 생명체였지만 그녀의
후손들은 나의 분노를...허탈을...초조를...혐오를...후회를...추억에 대한
허무함을...그리고 잔잔한 기쁨을...그렇게 나의 막대한 감정이 주입되어
7빛깔로 나누어진 엘테미아의 후손들이 탄생되었고 신들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던 엘테미아의 드래곤하트를 그녀가 내 곁을 떠난 그 순간부터 계속 연구
하여 나의 손에 만들어진 엘테미아의 황금빛 드래곤하트의 샘플에 의해
그녀의 후손들은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본체는 엘테미아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직경 300헤론(1헤론=1m)크
기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생명체로 재 탄생되었고 인간들은 지상 최
강의 마법생명체인 '드래곤'을 전설로 떠받드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드래곤로드 헬트레이더스의 드래곤 창조신
'드래크로니므이스와의 면담'중에서 발췌-
이슈테리아 대륙에는 생동감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숲...
'태초의 숲'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국가정도의 면적을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숲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구름마저 덮지 못하고 천공을
향해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이 존재했다.
바람조차 불지 않던 산의 정상에서 갑자기 시각조차 잃게만들 눈부신 빛
무리가 황금빛 보석을 기점으로 서서히 비산하기 시작했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 듯 점차 황금빛 보석을 기점으로 퍼져 나가던
빛무리들은 이내 하나의 사람형태를 자아내기 시작했고 그 속에
서는 자조적이고 슬픈 목소리가 나직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엘테미아...너무...오래 기다리게 한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안해...그리고...지금부터 딱 1700년만 기다려줄래...? 그러다
면...널 꼭 찾아낼 거야...내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너의 영혼도 사라
지지 않아...모든 준비는...1700년 후에 끝나...그러니 조금만 참아줘...
네가 어디에서 그 무엇으로 존재한다 해도...널 운명으로 불러들일께..."
찬란한 빛무리속에서 듣기만 해도 눈물이 일것 같은 슬픈 목소리가 쓸쓸하게
울려 퍼진후 태초의 숲 전체를 가득 메울만한 거대한 원형의 황금빛무리가 수
만 수억갈래로 흩어지며 하늘을 찢어발기고 대기를 뚫고 지나쳐 또다른 차원의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드디어 1699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운명의 현혹(01)
난 가끔 이런생각을 한다. 난 어디서..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별로
복잡한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나조차도 가끔 이런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른사
람들과는 다른 나의 신체조건때문이다.
내 이름은 장린...현재 공주여자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나는 혼혈아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만 그 외에 뭔가 꺼려하시는 어머
니때문에 난 나의 출생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뭐...알아서 슬픈 내용이라
면 애초부터 듣고 싶지도 않다. 괜히 이상한 소릴 들어 이 즐거운 세상을 괴로
워하며 바보같이 눈물로 지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내 주위로는 온통 흑발의 건강미가 넘치는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달리고 있다.
하지만 난 그들과는 달리 금발의 머릴 지니고 있다. 분명히 한국인과 외국인간
의 사랑사이에서 금발의 유전이 나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난 괜히 모른
척했다. 난 머리를 기르기 귀찮아서 지금은 남자처럼 조금 짧게 기르고 있기에
다른 아이들이 볼때 내 머리가 보이쉬 하게 보이는 모양인지 여자애들이 나만 보
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하곤 한다.
뭐...그게 싫은건 아니지만...
난 아버지가 없다. 이 부분도 어머니께서는 제대로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지만 역시
이도 알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막자란 얘는 아니다. 무언가 모자란 만큼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난
더욱더 명랑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소녀로 살아왔다. 가끔...아주 가끔은
마치 나 자신이 내가 아닌것 처럼 행동할때도 있지만...바로 지금 이런생각을 하고
있을때가 그렇다...
평소같으면 예쁜 아이들과 귀여운 꼬마들만 있다면 사죽을 못쓰며 덤벙대는 나
지만 지금과 같이 나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버릴때는 마음이 왠지 착
가라앉는다...
무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날 자꾸 어두운 나로
가두어버리려 한다.
아!...
이제야 내 눈이 푸른 눈동자로 돌아가려 하나보다...내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버릴때는 오감외에 또다른 감각이 생겨난 것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 그 감각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음에 난 감았던 눈을 뜬다.
푸른눈으로 돌아왔을때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덤벙대고 순진한 아이가 되어버
린다. 놀랄때는 흐에엑~거리며 바보같이 놀라고 우엥거리며 전형적인 새침떼
기 소녀가 되는것이다...푸른눈동자가 되면...내가 바라고 원하는 나의 모습 그
대로...
" 선배님~~~♡"
"........"
하하... 나도 모르게 부활동시간이 끝났군...모두들 예상했겠지만 지금 나는 양궁부
부장이야. 나의 화려한 활쏨씨에 반한 후배들이 몰려오는 구나...전에도 말했지만
난 범인들보다 굉장히 좋은 시력을 갖고 있어서 양궁대회란 대회는 거의 휩쓸고
다니는 실정이야...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자랑스런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도 출전할 예정이구...헤헷...괜히 내 자랑 하는것 같네...아무튼 이런저런 이유와 머리스타일까지도 남자처럼 짧은 컷트머리라 여학교에선 내 인기가 좀 있는 편이야.
어느새 귀여운 나의 후배들한테 또 둘러 쌓였군..헤헷....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생각해도 어깨 너비로 사선과 직각으로 서고 윗몸을 바르게 하여 양어깨의
힘을 빼고 얼굴은 바로 정면을 향한 후 화살끼우기는 활시위에 화살을 끼우고
얼굴은 표적 방향으로, 아래턱을 내밀지 말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표적을 바라보는
내모습이 상당히 멋지단 말야~ 그리고 활시위를 노면서 공기를 가르는 '패애앵~'소리와 함께 과녁 정 중앙에 꽂히는 신기의 솜씨...꿈 많은 사춘기 소녀들이 반할만 하지 않아?
뭐? 전혀 아니라고? 흐응...너무해...
이제 부활동시간도 끝났으니 주위에 몰려있는 애들의 처리과정을 거친 다음 귀가
만이 남았구나...
우선 화사한 미소어택으로 한방먹여야 겠지...
"헤헷...고마워 애들아~~♡"
"흡"
"끅"
"아아~앙~!"
흠...역시 여기저기 숨넘어가는 소리 들리는군...하지만 어쩌겠어 편안히 교실로
가려면 약간의 정신어택으로 길을 뚫은 다음 날렵한 몸놀림으로 '내일 다시보자~'
라고 쿨하게 외친다음 멋진 앞머리를 휘날리며 잽싸게 돌아 완벽한 뒷모습을
타오르는 석양과 함께 연출하려면 어쩔수 없다구 하하하...하...아...이,이런...갑자기..
왜...또...
"........"
또 다시 이런 기분이다...문득 즐겁다가도 무언가 슬픈 기분이 나도 모르는 사이
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들어온다. 왜지...난...항상 명랑하고 순진하며 밝은
소녀이고 싶어...언제까지나...그런데 왜...계속 어두운 나로 만드는거야...
평소보다 더욱더 심하게 밀려오는 아련한 슬픔에 난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린채 두 팔로 양어깨를 감싸며 차가워진 몸을 떨고 있었다. 주위에서 놀란 나
의 후배들의 비명성이 들려왔지만 육체적인 고통조차 느껴질 정도로 내 가슴을 찢
어놓는 아릿한 슬픔이 밀려와 아무것도 들을수도 볼 수도 없었다.
"싫....어...."
사라져줘...다시 밝은 나로 돌아가고 싶어...제발...
끝없이 속으로 되내이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슬픈 침묵뿐이었다. 그때였다. 너무나 고독하고 가슴속 깊은 곳을 아리는 듯한 깊은 슬픔에 괴로워하고 있을때 고여있는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한방울의 청초한 물방울처럼 슬프고 지친 내 영혼을 깨우는 듯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 닦아..."
-두근...-
어느새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채 난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뒤로하며 고개를 올려 나에게 분홍손수건을 건네는 조그만 아이를 바라
보았다.
너무나 귀여운아이...
평소의 푸른 눈동자를 지닌 나였다면 당장 달려가 안아들고 비비적거릴만
한 아찔할 정도로 귀여운 아이였지만 지금은 눈앞의 귀여운 여자아이 덕에
더욱더 밀려드는 슬픔뿐이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강렬히 느껴지는 슬픔은 없었다. 무얼까...
눈앞의 이 아이를 보자 더욱더 확연해진 가슴속의 깊은슬픔은...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넌...도대체 누구지...?"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조그만 아이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미소가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에는 없지만 분명 내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누구지...이아이는...
도대체 이 슬픔의 정체는 뭘까...? 눈앞의 이 이아가 왠지 나의
슬픔을 더욱더 불러들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다...넌 도대체
누구야...그녀를 보면 더욱더 괴로우면서도...난 고개를 뗄수 없었다.
그때 오직 나만이 들을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눈앞의 귀여운 아이는
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계속...기다려 왔어요..."
".......!?"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난 어느새 깊은 슬픔을 담은 눈물을 조
용히 흘리고 있었다.
운명의 현혹(02)
처음에는 몰랐지만 예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와 만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만 보면 계속해서 나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버린 채 내기 싫
어하는 또다른 내가 되어버렸지만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그녀를 보지 않는
다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에 계속 그녀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언
젠가부터 그녀를 보아도 나의 눈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버리지 않게
되었고 푸른눈의 나로 보았던 예림이는 너무나 귀여워서 일요일인 오
늘도 함께 교회를 갔다가 시내로 놀러나온 것이다.
요즘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심하게 예림이와 붙어 있는 것 같다...
비록 예림이는 중1이지만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에 동생과 언니로 착각할수도 있겠지만 난 왠지 그녀가 동생같아서 좋
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무얼까...밤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연인...?
뭐...이상한 소설같은 내용에 나조차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던 지난밤
이 생각난다.
난 그동안 꽤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였기에 솔로인 나를보며 안타까워하
는 후배들의 등살에 못이겨 몇 번 다른 남학생들과 소개팅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그저 바보같이 실실거리기만 했을뿐 별로 두근거리는
감정따윈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예림이만 보면 묘한 설레임이 일어난
다. 헛...혹시 난 금단의 길에 접어든 것 아닐까? 아,아냣!!...암튼...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아닐꺼야 하하...
아직도 예림이와의 만남에서 기억에 남는것은 그녀와 학교의 운동장에
서 처음만났을때 내게 했던 말...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그말에 난 진한 슬픔과 동시에 묘한 행복감을 느꼈었지...
"어라?"
나 혼자만의 생각을 마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예림이가 없었다.
지금은 파란불의 신호를 받아 나와 예림이는 시내 도로의 한복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예림이가 횡단보도 중
간 지점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는지 허리를 굽힌 채 지갑을 줍고 있는 모습
이 눈에 들어왔다.
음...너무 혼자만의 생각에 몰두해버린 모양이다. 함께 걷던 예림이조차
놓칠 정도로...에구구...
현재 우리가 건너고 있는 도로는 4차선 도로라 대충 횡단 보도의 길이
가 10미터 정도 됐는데 반대편 인도의 신호등을 보니 파란불이 깜빡깜
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노파심에 예림이에게 소리쳤다.
"예림아 빨리와~~!"
"응~~~!"
후훗...목소리도 이제 들어보니 귀엽기도 하지...허리까지 길른 그녀의 긴
웨이브머리가 너무나 귀엽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귀엽게 솟은 코..
그리고 앵두같은 새초롬한 입술이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귀여울것 같
아...아우웃~~귀여워~~~♡
아무튼 나의 외침에 귀엽게 응답한 예림이가 허리를 세우고 나에게
달려올려 할때 반대편 도로에서 경찰차들의 싸이렌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깜짝놀란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마치 포뮬러경기를 연상케 하는 속도로 사거리에서 우회전으로
핸드브레이크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드리프트를 해 오는 검정 스포츠
카를 발견할수 있었다.
" 안돼~~~!!!"
나의 심장은 굉장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달려들던
검정색 스포츠카는 경적을 시끄럽게 울려대며 아직도 파란불인 횡
단보도를 무서운 속도로 지나치려 하고 있었고 운동신경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예림이는 꼼짝도 못한채 얼어붙어서 위험천만한 이
순간을 멍하니 방관하고 있었다.
예림이와 검정색 스포츠카의 거리 6m...나와 예림이의 거리 5m...
이건 초등학생이라도 나의 다리보단 2륜구동의 스포츠카가 훨씬
빠르다는 걸 안보고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렸다.
무언가가 아주 불길한 예감이 나의 온몸을 휘젓고 있었다. 마치...
기나긴 세월을 통해 겨우 만난 연인이 다시 내곁을 떠날 것 같은
불길함...마치 이것이 없으면 살수 없을 것 같은 나약함...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순간 보다 길게 느껴졌다. 갑자기 사물이 느
려지고 주위의 색이 바래지면서 나와 예림이만이 주위에 생동감있
게 비쳐졌다. 그렇다! 예림이다.
난 예림이를 잃고 싶지 않다...예림이를 보면 처음과는 달리 요즘
은 슬픈감정 대신에 행복한 감정이 내 가슴에 녹아내리고 기분이 좋아
지고 또 사랑스럽다. 그리고 싫지 않은 두근거림까지도...
생전 처음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무
튼 내 가슴속에 각인된 예림이가 내 눈앞에서 다시 사라진다면 난
도저히 못견딜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생각과 함께 주위에 있던 사람들조차 경악할 만큼 폭발적
으로 반응하는 다리근육에 나조차도 놀랄 만큼 쏜살같이 앞으로, 예림
이쪽으로 달려 나갔다.
거리 4m....3m....2m....1m....모든 사물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지만 난 알수 있었다. 지금 이순간 예림이를 안고서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검정스포츠카를 피할수 없다. 예림이를 밀자...우선
예림이를 밀고 나서 나의 운동신경에 모든걸 걸어보자!.
생각을 마쳤을땐 이미 나의 두 팔은 예림이를 힘껏 밀쳐내고 있었
다. 그리고 살아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충격이 나의 옆구리
를 통해 전신으로 퍼졌다. 시야가...빨갛다...빨간 물방울이 나의 시
야에 비친다...그런데...그때 나의 시야에 예림이가 보였다.
두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웃어?...'
그랬다. 예림이는 웃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
나도 모르게 그 행복한 미소에 화답하듯 같이 웃어주었다.
어째서 일까...? 굉장히 고통스런 순간에도 무언가 안락한 기분마저 들
게하는 예림이의 미소에 난 가슴속을 가득 메우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때 였다.
예림이의 눈동자가 나와 같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주위의 건물들과
경악하고 있는 사람들...자동차...가로수...신호등...모든 주위 풍경이
하얀 도화지에 검정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그럼과 동시에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무렵 예림이는 앙
증맞은 두 팔을 벌려 허공에 동그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헤헤...귀여워...'
죽는 순간에도 예림이의 모습이 마치 아기 천사같아 보였다. 이런...
나 여기서 죽으면 안돼...절대 안돼...예림이라는 이유의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겨날 때 예림이의 주위로 동그란 황금색 원이 수십개가
생겨났고 그 동그란 원안에서 알수없는 문자와 기하학적으로 이
루어진 도형 수십 수백개가 동시에 찬란한 빛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원진들이 예림이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원진들은 갑자기
내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가 나를 감싸안듯 너무나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의식이 흐려질때쯤 마지막 발악으로 예림이를 쳐다보았다.
나를 향해 그 앙증맞은 두 팔을 벌리고는 너무나 아름다운...세상에
서 가장 행복한 듯 미소짓고 있는 천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앵두빛
의 도톰한 입술이 열리는 것으로 나의 의식은 유선이 들어오지 않은
텔레비전처럼 노이즈 현상과 더불어 점점더 흐려졌다.
의식을 잃기전 마지막 전신의 힘을 짜내어 예림이에게 다가갔다
한발짝..두발짝...드디어 내눈앞에 사랑스런 아기천사가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힘들게 두팔을 뻗어 예림이를 안고는 천천히 나의 얼
굴을 예림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느꼇다. 에림이의 눈물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밀크쉐이크 같은 입술을...조금만더...조금만더...이대로 계속 예
림이의 입술을 느끼고 싶었지만 끊어지려는 의식은 나도 막을수 없었다.
그리고 보았다 두뺨에 가벼운 홍조와 행복해 보이는 예림이의 모습을...그
리고 이 세계에서 건내는 마지막 말을...
' 먼저가서...기다릴께...사랑해...엘테미아...'
' 부우우우웅~~~~~'
"......"
내이름은 이석기...제길...그동안 불법으로 위조신용카드를 만들어 막대한
돈을 챙기고 있었다. 허나 짭새새끼들에게 그만 뒤를 밟혀 나와 내 동료를
잡으려 한다...그동안 벌이가 짭잘해서 BMW를 산지 얼마 안됐는
데...씨버럴...빨리 해외로 떠야 했는데...그래서 현재 경찰들의 추척을 뒤로
하고 내 친구와 함께 도로를 쏜살같이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거리에서 영
화처럼 멋지게 드리프트를 이용해 우회전 한 다음 횡단보도를 지났다...그때
한참 바빠 돌아가시겠는데 옆에 친구새끼가 말을 걸어온다.
" 어이 석기야. 횡단보도에 누가 있지 않았냐? "
이런 긴박한 순간에 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릴 해대는 거야!! 난 그래서 친
구새끼에게 짜증을 부렸다.
"몰라~~! 있긴 누가 있어~~병신아! 뒤에 짭새새끼들이나 따돌릴 생각이나
해!!"
"아,알았어...이상하네...분명 두 소녀가 있었던거 같은데..."
석기의 친구는 의혹의 표정이 가득한채 백미러로 보이는 아무도 없는 횡단보
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날 월요일 오후 4:30-
내 이름은 최진경. 올해 공주여자중학교 2학년인 새침떼기 소녀다. 이제 5분
만 있으면 특별부활동시간이 끝난다.
" 야~~진경아 어디가?"
뒤에서 나의 절친한 친구 혜진이가 날 부르고 있다. 어래? 나 어디가냐고 당연
히...
"......운동장에 양궁부실로...."
"양궁부? 거긴왜? "
왜?......라니...그렇고 보니 내가 양궁부에 왜가지...? 왜 갑자기 머릿속이 뿌연
안개처럼 희미해져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린...? 그래 장린...린이란 사람을 보러가는 건가? 아닌가?그런건가?....아..머리
아파... 난 그냥 막연히 떠오르는 이름을 혜진이에게 알려주었다.
"장...린...선배를 보러.....?"
이말을 하자 내 친구 혜진이는 검지손까락으로 턱을 받치며 어리둥절한 표정
을 짓는다.
"양궁부에 장린이란 사람이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양궁부 1년째 생활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은 없어. 너 오늘따라 이상하다?"
그런가...이상한가? 하긴 정말로 이상하다 장린이란 사람을 만나러 간다...장린
이란 사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만나러 간다니...오늘 확실히 이상한 나다.
하지만 뭘까...
매일 해오던 일은 빼먹은 듯한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아쉬움은...
신비의 대륙#01
짙은 녹음이 울창한 숲에 한명의 소녀가 누워 있었다. 길다란 은발을 풀
어헤치고 하얀 우유빛 살결이 두드러지는 아름나운 나신의 소녀였다.
한동안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소녀의 오른손가락이 갑자기꿈틀거리더니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서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방금 깨어나서 맑은 정신상태가 아닌듯 몽롱히 풀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여긴...어디...?"
새하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천천히 그 소녀는 일어섰다.
"우웅.....도대체 어떻게 된거야...예림이는 어디갔지?..."
그렇다. 그 은발의 소녀는 올해로 16세가 된 장린이었다. 장린은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살피다가 문득 온몸의 허전함을 느끼고는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깨닫고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주저앉았다.
"꺄~악!"
내이름은 장린...올해 16세가 된 소녀이다...어떻게 된거지? 난 분명 예림이와
함께 거리를 활보하다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의식을 잃었던것
까진 기억이 난다.
마지막에 예림이의 알수없는 미소...그리고 먼저가서 기다리겠다는 말...나를 엘
테미아라고 부른것까지 어폄풋이 기억이 났다.
"...알수 없어...여긴 어디야~"
갑자기 알수없는 곳에 혼자 있게 되자 불안해진 나였다. 하지만 무얼까?...언제
나 느껴지던 아련한 슬픔이 이곳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보는 생소
한 세계에 불안하긴 했지만 이제는 언제나 명랑하고 순진한 소녀로 존재할수 있
음에 불안한 상황속에서도 한줌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얼래?"
조금씩 현실을 직시하던 나는 내 주위로 은빛의 가는 실들이 주변에 널려 있
음을 보고 의아해 하며 은빛 실들을 한움큼 집고 잡아당겼다.
"아얏!!??"
어,,,어라???왜 이 은빛 실들을 잡아 당겼는데 내 머리끝에서 느낌이 오는거지?
서,,설마...
난 천천히 은빛 실들을 따라 시선을 두었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그 은빛실들의
출발점이 바로 내 머리인 것을 알수 있었다.
'이...이게 뭐,뭐야?'
황당했다. 내머리는 이렇게 길지도 않을뿐더러 금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허
리까지 내려오는 은빛으로 빛나는 긴 생머리의 은발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자
세히 보니 예전 내 피부도 그리 황색빛 피부는 아닐지라도 지금처럼 새하얀 피
부까지는 아니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느낌상 예전 16년 동안 보아온
내 얼굴이 아니라는걸 어렴풋이 알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여긴 또 어디야~~! 예림아~~~"
좀전의 평온은 온데간데 없고 나는 예림이를 부르며 오랫동안 숲속에서 절규했다.
이슈테리아 대륙의 동북부에 존재하는 '태초의 숲'의 한가운데 거대한 산맥이
존재했다. 산맥 자체가 거대하고 태초의 숲인것을 감안해 인간들은 이 거대한
산맥을 '태초의 산맥'이라 명명했다.
태초의 숲은 그 주위로 거대한 마나장이 퍼져있고 각종 결계등이 굉장히 많이 설
치되어 있다.
결계등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그곳에 엄청난 태고의 유물이나 보물따위가 뭍혀
있거나 던젼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에 연륜이 많은 모험가나 용병,
한나라의 군대까지 이 태초의 숲을 점령하기 위해 숲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태초의 숲에 발을 디딘 사람을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수 없는 숲따
위는 아니었다.
다만 숲의 이름처럼 한번 들어간 사람은 기억을 모두 잃게 되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후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숲의 이름처럼 숲에 발을 디딘 사람
들은 모두 태초로 돌아가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여론이었
다.
이 여론이 기정사실로 인정되어 대륙에 널리 퍼진후로 인간들의 발길은 점차
줄어들면서 1000년이 지난 지금 인간들이 정해논 금지로 지정되어 왠만한 간
큰 사람들이 아니면 숲 근처에 오지 않았다.
가끔 굉장히 고통스런 일을 당하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사람들이 자신
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오는 것말고는 말이다.
태초의숲... 숲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태초의 산맥...그 산맥의 가운데 거대
한 동굴이 존재했다.
거대한 동굴은 어림잡아 400헤론(1헤론=1m)이나 되어 보였고 그 동굴주위에
는 수많은 결계와 부비트랩등이 설치되어있었다. 그 동굴안에는 마법등으로 어
두운 실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벽면에는 수많은 무기와 보석들로 치장되
어 있었다.
그 공간은 인간이란 너무나 작은 존재가 존재하기조차 무색할정도로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간에서 하나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느꼇나? 내 6000년간 이렇게 맑은 드래곤피어는 처음 느껴 보는군..."
"어"
"그렇군..."
"그래"
"응"
"......"
"......"
대략 지름이 3,4헤론(1헤론=1m)정도 되는 원탁에 가지각색의 머리칼을
소유하고 있는 7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20대 초반의 굉장한 카리스마를 지
닌 사내가 조용히 감고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원탁에 앉아 있는 모두를 둘
러 보며 말했다.
"로드...이게...우리들의...어머니...아니, 시조라고? "
붉은 머리 사내에게 로드라 불린 백금발의 아름다운 머리를 늘어뜨린
소녀는 분홍빛 입술을 천천히 열며 말했다.
"응...과연 창조주의 예언대로야...1700년전에 창조주님께서 자취를 감추시기
전 이렇게 말했지"
[너희들의 태초를 볼 것이다.]
"아...나도 분명히 기억해. 지금의 이 피어...너무나도 맑고 아름다워...너무
나 친숙하게 느껴져...다헬론 위치파악은 됬나?"
녹색머리의 커다란 귀를 소유한 아름다운 청년이 다헬론이라 불린 하얀머리
의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고 다헬론은 하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대충 대륙의 로슈레인 왕국과 휴벤트 제국 사이라는 것밖에... 피어가
워낙 생소한 느낌이고 그 주위에 이상한 파장이 느껴져 정확하지 않아..."
다헬론의 부정적인 말에 모두의 표정에 어둠이 내리 깔리기 시작했다. 이에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심산인지 붉은머리칼의 사내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후훗...그나저나....우리들의 시조라면 대략 수백만년전에 사셨던 분이잖아? 그
러담 시조할머니의 얼굴에 주름살도 수백만개가 아닐까 하하하하하"
"말안해도 알고 있어..."
"재미없어..."
"........"
붉은 머리칼의 사내 즉 가드레일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 백금발의 로드라고
불리우는 소녀는 모두를 둘러보며 아름다운 입술을 열었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해. 어서..만나고 싶어...전 드래곤들에게 2만년만에 비
상계엄령을 내린다고 전해주고 어서 그분을 찾으라고 전해"
"그렇도록 하지."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엘테미아님..."
신비의 대륙(2)
내가 패닉상태에서 깨어난건 나의 외관이 바뀐 것을 알고 난 후 몇십분이 지나
서였다. 솔직히 약간의 붉은 빛이 도는 이 은발...아무리 내 머리칼이라지만 상
당히 아름답다. 군데군데 울창한 나무사이를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빛을 받아
머리칼에 쐬이면 상당히 아름다운 은빛물결이 넘실거린다.
아직 아무것도 입지 못한 나는 주저앉았던 내 몸을 다시 일으키고 주위를 살
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적한 숲이라서 주위에 나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이
대로 이곳에 계속 머물수는 없기에 나는 천천히 길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
작했다.
새하얀 손으로 나의 치부를 가린 채 한참동안 걷고 있을 때 근처에 대략 6m
정도 되는 큰 물웅덩이가 내 눈에 비쳐졌다. 순간 나의 외관에 호기심이 생겨
그 물웅덩이에 다가가 허리를 굽어 앉고는 살짝 엎드려 내 얼굴을 그 물웅덩
이에 비춰 보았다.
"흐음......."
그 물웅덩이 주변이 약간 어둡고 잔잔히 흐르는 바람을 타고 작은 파동이 끊
임없이 생겨나 자세히 내 얼굴을 볼수는 없었지만 대략 괜찮게 생긴 얼굴과 내
눈이 황금색 눈동자라는 걸 어렴풋이 확인 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체격은 어깨로 보아 예전보다 약간 더 왜소해 진것도 같았다 일어서
서 땅과의 거리를 보니 예전 내 모습은 165cm를 가뿐히 넘겼었다. 여자치고는
훤칠한 키였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160도 안되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우...갑자기 의식을 잃고 깨어나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숲에 와있질 안나, 내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있질 안나...뭐...전보다도 훨
씬 예쁘게 생긴 것 같지만...
하지만...난 처음 깨어났을 때부터 인정하기 어려웠던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젠 정말 혼자인가봐...'
알 수 없는 곳에 이젠 엄마도...친구들도...모두 없는 곳에 홀로 존재하게 되었
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한방울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또르륵하고 흘러
내렸다. 갑자기 침울한 분위기를 타서 그런지 그 자리에서 내 무릎에 얼굴을
뭍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던 나의 시야에 뭔가 반짝이는 물체가 내눈에 들어왔다. 난 숙였던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의 식물들은 내가 16년간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것들로 구성되었었다. 물론
우리나라식물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그 외 대륙의 신기한 식물들도 있겠지만 지
금 내가 보고 있는 숲은 나의 상상을 넘어선 신비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작은 날개를 가지고 이리저리 빛을 뿌리며 귀엽게 생긴 잠자리같은
것들이 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손을 내어 보니 녀석들은 작은 쉼
터라도 찾은 듯 내 손에 얹혀 재롱을 부리기도 했다. 손을 얼굴쪽으로 대어 자
세히 보니 작은 그 빛무리들의 외형이 인간형상이란걸 알수 있었다. 작은 몸의
등에는 네 쌍의 투명하고도 빛이 나는 날개가 위 아래로 파닥거릴때마다 빛의
가루가 이리저리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었다.
'히야...예쁘다'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마 볼엔 작은 홍조를 띄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
작은 요정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왜냐구? 난 귀여운 것을 보곤 잠시 이성
을 잃게 되니까..헤헤...
하지만 애석하게도 부비부비 할순 없었다. 내가 무자비하게 그런 애정행각을
벌이게 되면 이 요정들은 한줌의 먼지가 될 것 같았기에...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물 웅덩이에서 작은 파문이
일더니 손바닥만한 소녀형상의 물방울이 생겨났다.
"에에엣???"
난 깜짝놀라 그 자리에서 다시 주저앉았고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요정들은
잠시 나의 주위로 이리저리 날다가 내가 싫지 않은지 다시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난 내 하얀손을 들어 잠시 내 눈을 비비적거리고는 다시 물웅덩이를 주시했다.
잘못 본 환상인줄 알았지만 내가 본 것은 청순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작은 소녀형상의 물방울이었다.
"헤에~자세히 보니 너무 귀엽다..."
그렇다. 그 소녀형상의 물방울은 너무 귀여웠다 내가 그 귀여운 모습을 더 가
까이에서 보기위해 손을 뻗자 마치 이순간을 기다려왔듯 작은 물방울들을 살짝
튀기며 내손에 올라탔다.
자세히 보니 역시 너무 귀여웠다. 신비스런 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은 물의
요정은 그 모습이 투명하고 인간이 지을수 없을 것 같은 청순한 미소를 보내
오고 있었다.
그 청순한 미소에 화답하듯 나도 그 물의 요정에게 살짝 미소를 보내자 그 물의
요정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의 얼굴에 다가와 부비부비를 하는게 아닌
가? 나 역시 잠시 멍해있다가 같은 취미를 가진 요정에게 진한 동료애(?)를 느
끼며 숭고한 취미를 함께 나누었다.
이렇게 취미를 나누고 있을 때 내 주위로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걸 느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었지만 그 바람은 너무나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치 내가 혼자임을 상기하고 울적했던 기분들을 모두 바람에 실어
날려 버리기라도 하라는 듯이...
가만히 앉아서 주위의 빛의 요정들과 물의 요정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 다시 내 눈엔 연한 녹색의 내 팔뚝한만 생기발랄한 소녀가 등장하자
나는 좀전의 빛의 요정이나 물이 요정이 등장했을 때보다 더더욱 놀랐다. 왜냐면
빛과 물의 요정과는 달리 사이즈가 빅사이즈였기 때문이었다.
손바닥만한 요정들을 보다가 지금 나타난 팔뚝만한 요정을 보니 그 생김새가
더욱 뚜렷해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내게 선사해주고 있었다. 이제 빛의 요정과
물의 요정을 만날때처럼 약간의 위화감이 생겨나질 않았다. 의사소통은 할수
없었지만 난 이 존재들이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친근한 존재로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지금 내앞에 있는 이 연한 녹색의 요정은 주변에 녹색의 동글동글한 나뭇잎같이
생긴 것들이 이 녹색요정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신비스럽기보단 친근하고
재미있는 느낌의 새침떼기 소녀형상을 하고 있었다. 잠시 그상태로 시간이 지
나자 이 녹색요정은 내 주위의 빛의 요정이나 내 얼굴에서 아직도 고상한취미(?)
를 즐기고 있는 물의 요정을 보곤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내가슴
에 얼굴을 묻고는 부비부비하는게 아닌가!!!?......부비부비하는 부위가 약간 비
밀스런 곳이고 맨살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흥분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스쳐
지났지만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살짝 들어올린 귀여운 얼굴에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연한녹색의 요정 주위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걸로 보아
이요정은 바람의 요정인 것 같았다.
한참동안을 주위의 귀여운 요정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어라 잘못들었나? 어디서 자연에 의한 숲의 속삭임이 아닌 인위적으로 생긴
숲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
것을 알수 있었다.
그렇고 보니 상당히 내 귀가 밝아졌군. 대략 20m 전방에 있는 것 같은데 말야.
'부스럭....부스럭!'
숲속의 풀들이 스치는 소리는 점점더 잦아졌다. 아무래도 동물인 것 같은데 예민
해진 청각을 이용해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동물이 이족보행의 동물이
라는걸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전해오는 이 기분은 뭘까...?
무언가 위화감이 들고 날 위협할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전신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기류가 나의 전신을 휩싸이는 듯 하자 내 주위의 요정들은 갑자
기 혼란스런 움직임을 보이며 어디론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잠시 허탈해진
나는 이 알 수 없는 기분나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존재에게 괜시리 짜증과 분노
의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기분나쁜 그 존재가 수풀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의 분노는
조그만 모래알갱이 만큼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나의 몸은 꼼짝도 할수 없이 얼
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흉측한 모습의 괴물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신비의 대륙(3)
"돼!...돼지???!"
그렇다!! 수풀사이로 모습을 드러낸건 돼지머리를 하고선 날이 빠진 칼이나 도
끼등을 가지고 취익~취익 거리는 녹색피부의 돼지머리 인간들이었다. 몸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입가엔 더러운 타액이 흐르고 있었으며 노란 눈에서는 생생한
피를 갈구하는 광기가 번뜩였다.
그 돼지인간무리들은 대충 5~6마리정도 돼 보였는데 그중 덩치 큰 돼지머리
가 췩~취익 거리며 나의 앞으로 나왔다.
"dljfsljld?dlkjflsjflj!!!! lkjlflsfjdiflksjdfjsldfj"
역시...돼지머리언어는 내가 알아듣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분위기를 봐서 나에게 좋게 흘러갈 것 같은 그들
의 대화가 절대 아님을 알수 있었다.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봐서 괴물이 아닌
약간의 지성을 갖춘 무리들이라 나는 순간 기원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싶다고...내가 나의 소망을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자 마자 갑자기 나의 심장부
근에서 알수없는 포근한 움직임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의 주위로 번쩍이는 황
금빛무리가 나의 머리를 향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황금빛무리가 돼지들에게는 그리 좋은 빛은 아닌 모양인지 그들은 잠시 대
화를 멈추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나의 주위로 돌던 황금빛무리는 이내 내 머리속으로 서서히 사라졌고 내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에게 들어온 지식이 아닌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잠들어있던 방대한 양의 지식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라도
시작한 것처럼 잠시 머리가 복잡해 졌지만 그 복잡함도 짧은 시간 안에 안정을
되찾았다.
이렇게 내가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시 돼지머리들은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취,취익~저 인간 예쁘다. 나 인간 많이 봐왔다! 저런 인간 못봤다.! 그,그런데
마법사같다. 취익~어떻게 할꺼냐? 취익~"
"취익~취익~ 아,아깝지만 취익~우리의 따스한 손길로 취,취익~ 주겨주자~
!취익!"
"그,그게 좋겠다...취,취익~!그,근데 그냥 취익~ 죽이기는 아깝다...취,취익~"
"......그, 그런가 3호... 잠시라도 취익~ 인간암컷에게 취익~ 극락을 맛보여주
고자 하는 취익~ 너의 그 따뜻한 취,취익~ 마음에 감동했다.~ 취익~ 3호 마
음대로 한다. "
.....황당한 종족이군...어쨋든 난 알 수 없는 빛이 내몸을 감싸고 지나간 간 후
부터 기분나쁜 돼지머리들의 언어를 알수 있었고 그 언어가 내가 떨어진 신비
한 대륙의 대륙공통어 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살아생전 처음보는 기이한 느낌이 드는 숲이었고 지금 이숲이 내가살던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얼까...? 가슴속에 자리하던
불안감과 홀로 존재하는 허전함의 저편에서는 이 대륙에 대한 묘한 친근감과 그
리움같은 감정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휴~아무튼 신비한 대륙에서 처음본 인간 비스무래한 것들이 이런 괴물같은 녀석
들이라니...설마 대륙 밖에는 이런녀석들이 판치는 세상은 아니겠지...불길해...
흐엥...갑자기 울고싶어...
스스로 암울한 생각을 하던 나를 무시하고 돼지머리들은 일제히 검이나 도끼
등을 꼬나쥐고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우욱...'
상당히 거부감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온다...으...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군...저 돼지들 근육이 장난아니네?...저런 칼이나 도끼등으로 맞으면 아
플거야...흐에...어떡하지... ?
이렇게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중 재수없게 생긴 돼지들중에서도 더 재수없게
생긴 돼지 한 마리가 재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에에??"
뒤에는 물웅덩이가 있어서 마땅히 도망갈 곳도 없었다. 이런...어떻게 해~~~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 재수없고 얍삽하고 능글맞고 더티하
게 생긴 돼지녀석이 순간 내 얼굴앞으로 다가왔다. 에엣!!!가까이에서 보니 더
재수없다!!! 싫어!!~~~
전신을 찌를듯한 소름을 못이겨 눈앞에 있는 돼지머리녀석을 내 가녀린 주
먹 한방에 한 10미터쯤 날아가 버렸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고 그 돼지
에게 주먹을 뻗었다.
퍽~~~~~!!!!
꾸에에에엑~~~~!"
돼지다운 비명을 지르며 내가 뻗은 그 주먹에 돼지녀석은 한10m 뒤에 있는 나무
속에 쳐박혔는데 그 힘이 줄지 않고 계속 떠밀려 3번째 나무가 부서저서야 돼지머
리는 땅에 착지할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저 앞에 돼지들조차 지금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듯 입을 쩌억 벌리고 경악하고 있었다.
우와~~~내 힘 장난아니다... 이것도 외관이 바뀐것과 상관이 있는건가? 아무튼
이상한곳에 떨어져 내 모습도 바뀌어 버리고 엄청난 힘도 얻은 것 같다. 좋아~
기죽을꺼 없엇!!!
"후후후후후...."
나는 내가 생각해도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감에 충만한 듯 그 돼지녀석들
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녀석들도 알 수 없는 나의 기운에 위화감을
느꼈는지 한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후후후후...나의 따스한 손길을 기대하라구...♡"
"꾸..꾸르르륵!!!"
별 희안한 비명도 다있네?...암튼 이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믿는 난 돼지들에게
다가갔다.
전 세계에 있는 나 장린은 그리 요조숙녀가 아닌 소녀라서 나름대로 운동신경이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지금 이 돼지들을 손봐주고 있었다. 쉽게 말해 원샷
원킬이었다...하하...이것들 혹시 생긴것만 멀쩡하고 속은 헐은 것이 아닌가 할정
도로 쉽게 나가 떨어졌다. 그렇게 의기양양,용기백배를 만끽하고 있을 때 갑작스런
엄청난 고통이 등쪽에서 엄습해왔다.
퍽!
"꺅!!"
엄청난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는 뒤를 훽! 돌아봤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새로운 돼지머리가 쥐도새도 모르게 다가와 무식한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후
려쳐버린 것이다.
이전 세계에서 느낄수 없었던 생소한 느낌.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몸도 축
늘어져 전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고 주먹조차 제대로 쥘 수도 없었다. 아까
의 용기는 온데간데 없고 남아있는건 눈앞에 보이는 생소한 생명체에 대한
무력한 자신과 시간이 갈수록 자신은 죽음에게 한발짝씩 다가서고 있는 확실
하고도 섬뜩한 느낌뿐이었다.
퍽!
다시 옆구리에 엄청난 고통이 전해지고 다시 퍽! 소리와 함께 복부에 엄청난
타격이 전해졌다. 순간 나는 울컥하고 검은 피를 쏟아냈다. 점점 흐려지는 의
식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내 황금빛 눈동자에는 어느새 눈물이 어려있었다.
그렇게 점점 의식이 흐려질 때 돼지머리의 뒷 쪽에서 또다시 수풀이 흔들거리
는게 보였다.
뭐야...다른 돼지들인가...이상한 세계에 떨어져서 이게뭐야...이런...괴물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지않아...엄마도 없어...친구들도 없어...아무도 없어...난 ...외톨이야...
점점더 흐려지는 의식속에서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림이...'
먼저가서 기다리겠다는 말... 그래...난 아직...죽으면 안되는데...하지만 지금 이
엄청난 고통앞에 나의 의지는 너무나 미약했다. 그렇게 내가 의식을 잃기 찰
나의 순간이었다.
쓰러지는 나의 시야사이로 마치 한국인을 보는 듯한 검은머릴 소유한 남자가 어렴풋이 보이자 알수 없는 향수에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난 의식을 잃었다.
신비의대륙(4)
태초의 숲을 양단하고 있는 거대한 태초의 산맥에는 그 크기를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거대한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절대 존재할수 없는 가지가지
머리색상들의 인간과 유사인종들이 원탁에 모여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눈부신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침중한 분위기 속에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금 느꼈어?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꺼름칙한 기분이 드는건 처음이야..."
무언가 괴로운 표정으로 고운이마를 찡그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는 그 무엇 때문에 괴롭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잠시 동안 다시
침묵에 싸였지만 그때 백금발 소녀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타오르는 붉은 머리의 사
내가 하얀머리의 하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른 중년의 사내에게 눈길을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헬론...왜 엘테미아님의 기운을 느낄수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는거지?
설마 광폭의 붉은 폭염이라 불리우는 나조차도 너무나 안타깝고 그분의 공포가 내 가
슴을 미어놓는군...하하...설마... 내가 공포심을 느낄 날이 올 줄이야..."
자신을 붉은폭염의 가드레일이라 밝힌 청년은 약간 안색이 파리해져 있었고 질
문을 받은 다헬론 역시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의 특유의 수염을 꼬는 버
릇은 여전한 듯 멋들어지게 길른 콧수염을 베베 꼬면서 좌중에 있는 일곱명의
인간 및 유사인종에게 말했다.
"솔직히 엘테미아님은 내가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인간이나 몬스터, 유사인종,
마족,천족,환족, 심지어 드래곤에게서조차 느낄 수 없었던 생소한 기운이야. 엘
테미아님의 기운이 워낙 맑아서 그 기운이 자연과의 친밀도가 너무 높아. 주
위로 퍼지면서 뭐랄 까...엘테미아님의 기운 그 자체가 자연의 기운이랄까? 아
무튼 그런 이유도 있고... 솔직히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잖아? 우리들은...그분의
이름만 알뿐 어떤 드래곤인지...아니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가드레일의 말처
럼 그분의 얼굴에 주름살이 수백만개인지...아님 평범한 노인의 형상인지...그저
지금은 그분이 좀더 자연과 멀어져 인간의 도시에나 다른 자연과 떨어진 곳에서
그분의 피어나 지금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폭출을 하실 때 그 기운을 감지
하고 바로 공간을 열어 달려가야 하는 형편이야..."
다헬론의 부정적인 의견에 모두들 어두운 분위기가 한층더 어두워졌다. 완전히
그 탁자에 엎드린 백금발의 소녀는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제는...그것 뿐만이 아니지...안그래?"
백금발의 소녀의 말에 모두들 움찔하며 어떤사람을 탁자를 쾅하고 내려 치는가
하면 고운 눈을 살짝 닫든지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고 이마에 손을 얹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중 흑발과 흑안의 눈동자를 가진 전사타입의 사내가 모두를 대표해 말을 열었다.
" 그렇군..."
"그래..."
"그럴꺼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침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조금 전에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자신의 가슴을 흔들어놓고 알 수 없는 공포와 안타까움,슬픔,
외로움등 생전 체험한적이 없는 생소한 느낌 때문에 구슬같은 눈물을 또르르륵
하고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은발의 10살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고개
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문젠데?"
은발의 조그만 소녀가 묻자 모두의 얼굴이 팍 구겨지며 그중 빨간머리의 미청년,
가드레일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바보드래곤!!!"
"동감"
"그렇군..."
"그래..."
"우에에에엥~~~뭐야! 나만 빼놓구~ 로오오오드~~~뭐야~?뭐야~~?! 흑 후에엥~!"
모두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은발의 조그만 소녀는 그중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 즉 로드라 불리우는 소녀가 가장 만만해 보였는
지 자꾸 로드의 어깨에 매달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마구 비비면서 어리
광을 피웠다.
"휴~.........에셀리드민...총명하고 아름다운 은빛일족은 이러는거 아냐...뚝!"
로드의 말에 에셀리드민이라 불린 조그만 소녀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듯
후욱~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면서 통통한 두손으로 양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 휴...에셀리드민? 너 지금 기분이 어때? "
" 지금 기분? 뭔가 괴로워서 못 참겠어...무언가 안타깝고...슬프고...아무튼 알
수 없는 기분이야..."
모두들 자신들의 생각을 되새김이라도 하듯 로드와 에셀리드민의 대화를
경청했다. 그리고는 로드는 자신의 손으로 에셀리드민의 조그만 머리를 쓰
다듬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래...에셀리드민의 할머니인 그분의 기분이 우리에게 와 닿는거야...왜
그런지 모르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지금 그분의 안타까움...
공포...슬픔...괴로움...우린 그 괴로움의 이유도 모른채 그분의 이 감정을 고
스란히 받고 있는거야...우린...엘테미아 그분을 소중히 생각하고있고 우린 그
분과 연결되어 있는가봐...지금은 그분의 이 감정을 고룡들만 느끼고 있겠지
만 점점더 그분의 이런 슬픈감정이 증폭되어 전 드래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
면 어떻게 되겠니? 에셀리드민?..."
로드의 말에 에셀리드민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그렇다면!!......"
에셀리드민의 당황스런 외침에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초록머리의 귀가 삐족한
엘프가 말을 이었다.
"그래...아직 우리처럼 마인드컨트롤 능력이 부족한 어린 드래곤들과 그 밖의 광
폭한 홍염의 일족인 레드일족과 암흑의 일족, 암흑의 일족만 하더라도 그분의 이런
안타까운 감정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면 이 이슈테리아 대륙은...아마 하루도 못지나
서 파멸이다."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듯 에셀리드민은 자리에서 벌떡일어나더니 외쳤다.
"그,그러다면 방법은?!!!"
" 글쎄...궁극적인 방법은 현재 불안정한 엘테미아님이 자신이 드래곤이란걸 자각
하고 각성하는것과 현재의 최선의 방법은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고룡들이
아직 어린드래곤들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대륙 전 드래곤을 이 태초의 숲으로 비
상소집해야 하는게 급선무지..."
"하지만...자기잘난줄만 알고 남이 자신을 터치하는걸 극히 싫어하는 우리일족이...그렇게 쉽게 모여들까?"
다헬론이라 불린 하얀머리의 중년의 사내가 나직히 말하자 모두들 머리가 아
픈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거나 이마에 손을 얹고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중에서 로드라 불리우는 백금발의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며 모두에게 말
했다.
"그렇군...시간이 촉박하다! 한시라도 빨리 엘테미아님의 신변을 확보하는것과
전 드래곤을 비상소집해야해! 다헬론! ,엑시드옥션! 페트리샤! ,티제이븐! 너희
들은 전 드래곤의 비상소집을! 나머지 나 로드와 가드레일!, 그리고 에셀리드
민은 엘테미아님의 신변을 확보한다! 시간이 없어 모두 서둘러! 그리고 내일
이시각 중간결과를 서로 보고하기로 하지!"
로드의 명령에 모두들 이의가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얀 빛무리를 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곤 그 거대한 공간에는 어두운 침묵만이 싸늘히 존재
했다.
여신(1)
꿈을...꾸는건가? 지금의 나는... 현재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전 세계의
내모습을 하고 있는 조그만 소녀...길지않은 금발의 머리칼과 조막만한 손...
그래...아마 난 6살때부터 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슬픈 감정따위로 쓸
데없는 회한과 자괴감으로 이 재미있는 세상을 씁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슬픈 소설이나 영화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드라마에서 남녀나 아님 부모자식
간에 꺼이꺼이 하면서 눈물을 질질짜는걸 보면 괜시리 짜증이나서 채널을 코미디
채널로 전환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버지가 없는 나도 이렇게 당당한데 뭐가 그리 슬픈건지...
그렇게 성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 가슴에 슬픔이란 감정은 사라져만 갔다. 아니,
가슴 저 깊숙한곳에 나만의 금지(禁地)처럼 뭍어놓았다...그런데...지금 이 감정은
뭔가...슬픈건가? 외로운건가? 이상한 세계에 혼자 존재하게 되었단 걸 깨달으면서
난 지금껏 쌓아온 그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것 같다. 지금껏 묻어논 내 슬픈 감정
들이 한꺼번에 넘쳐버려서 나를 거센 슬픔의 파도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차라리...이대로 모든게 끝나버렸으면...그때였다.
"......님.....님?"
뭐지? 무언가 내 팔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이 내 머릿속으로 전달되어 온다.
"....신님~!....님!!!"
거참...시끄럽군...난 쉬고 싶다고!! 쳇!!...점점 더 또렷해지는 의식사이로 현재
내 팔을 잡고 흔들고 있는 것이 어린아이의 손이란 것을 지난 16년간의 노련
한(?)경험으로 알수 있었다.
쳇!! 봐서 안귀엽기만 해봐라. 난 날 흔들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따라 달라질
가혹한 체벌을 속으로 구상하면서 왼쪽눈을 슬쩍 떳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떠서 그런지 처음에는 사물이 흐릿하게 투영됐지만 모든 사물을 확실히
분간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사물이 확인되는 순간 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날 흔들고 있던 생물은 초록머리의 윤기가 흐르는 머릴 하고 큼지막한 눈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하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약 7~8세 정도 되보이는 이 꼬
마는 사내아이인지 머리가 그리 길지 않았다.
머리에는 그리 크지 않은 기이한 문자가 새겨진 종교단체에서 교황이 쓰는 모자같
은 걸 쓰고 목에는 하얀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 좋은 천으로 보이지
는 않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천으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을 두르고 있었다.
가슴부분에 또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모자에 있는것과 같은 기이하지만 한편으론
아름다운 무늬가 푸른빛 실로 정성스럽게 수놓아져 있었다.
어깨부터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새 하얀 옷을 걸친 이 귀여운 꼬마 주위로 빨주노초파남보 가지가지 머리색상의 꼬마들은 초록머리의 귀여운 꼬마와 쌍벽을 이루는 하이레벨을 상휘하는 귀여운 생물들이 주위에 널려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매일 검은색 머리 내지는 갈색머리의 귀여운 아이들만 보아오다가 이렇게 다양한 풀컬러의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삶의 의욕이 넘려흘렀다.
후후...나의 환경과 내 모습...모두가 바뀌었지만 내 버릇만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
난 씁쓸한 생각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 와~~~여신님이 깨어났다!!"
"꺄아~~정말이야~저 황금색 눈동자좀봐 어마~어마!!"
내가 눈을 뜬게 그렇게 신기한지 내앞의 귀여운 아이들은 나의 슬픔으로부터의
귀환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처음 눈을 떠서 이런 귀여운 아이들을 보게 된 것
은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리 나쁜곳 같지는 않게 여겨졌다. 갑자기 어두
웠던 마음이 한결 후련해진 나는 아까의 쓴웃음을 뒤로하고 봄의 꽃밭에 만개한
꽃마냥 활짝 웃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안이 썰렁해졌다. 아이들은 큰눈을 더 크게 뜨고는 입을 살짝 벌
린 채 멍하게 서있었다.
아니!!이것들이 내가 웃어주면 뭔가 화답을 해야하는거 아냐!!? 난 스스로 내 웃는
모습이 조그만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인가를 심각하게 고찰하고 있을 때
아이들의 뒤쪽에 있는 석조로 된 문이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들어선 인물은 내앞에 멍하게 서있는 꼬마들과 크기만 다를뿐
같은 옷과 모자를 쓰고 있는 50살은 족히 먹은 인상좋은 할아버지가 였다.
할아버지는 연륜이 지긋한 푸근한 미소를 보내오며 내게 말했다.
"이거...하루만에 여신님이 깨어나셨군요? 허허..."
여신님이라니...갑자기 웬 여신타령? 난 웃음 하나로 아이들을 얼려버릴만큼
무서운 마녀가 되었단 말야!!!누구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거야!!!라고 해줄수도 있
지만 워낙 인상이 좋은 할아버리라 차마 그런 말은 못하고 난처한 웃음으로 공손
히 대답했다.
"여,여신이라뇨? 말도 안돼요...하하...아!...그리고 전 숲속에서 이상한 괴물들을 만
났었는데 어떻게..."
그렇다!! 나는 숲속에서 그 돼지녀석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는 정신을 잃어서
100%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깨어나보니 귀여운것들이 바글거리는 천국같은
곳에 와있는 것이다. 혹시..진짜 천국인가? 그렇게 혼자서 과거를 떠올리고 결과
를 도출하려할 때 그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는 허허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 여신이라 함은 자네의 외형이 이곳 루린셔브링여신님과 비슷하기 때문이지.
아니...꼭집어 비슷하기보단 아이들이 보기엔 아름다운 루린서브링여신님과
필적할 아름다움을 지닌 자네를 보고 그렇게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군...허허..."
"루린서브링?
"허허 그렇다네 여긴 루린서브링님을 모시는 신전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지..."
신전이라니...확실히 여긴 내가 알던 세계는 아닌듯하군...그건 그렇고 보육원이라면
여기 아이들은...
내가 아이들을 둘러보면서 약간 착잡한 눈빛을 보내자 할아버지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 그렇다네...여기 모든 아이들은 어리석은 전쟁의 결과라고 보면 옳겠지...우린 전쟁 때문에 부모를 여윈 아이들을 모아 루린서브링님을 모시는 자유사제로 등극하고는 아이들과 함께 여신님을 모시며 살고 있다네."
"그렇...군요..."
부모들을 잃은 아이라...이 조그맣고 귀여운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제데로나 알까? 후훗...난 어머니라도 계셨지...내가 이 아이들보다 행복한건가? 하지만 지금은 나도 혼자야...아무도 없어...너희들과 똑같아...후훗...좋아! 녀석들!!
동병상련의 기분으로 확실히 서비스 해주지.
난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그대로 내 앞에 있는 초록머리의 귀여운 아이를 두손으로 번쩍 들어올리고는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래도 커졌던 눈이 더 크게 떠지면서 얼굴까지 확~하고 붉게 물든 것이 아닌가...
우씨~~그렇게 기분이 나쁘냐? 흐흑...예전의 내 모습이라면 적어도 이런반응은 안나오는데..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려 하는 찰나 갑자기 주위의 거세게 변동하는 기운을 알아차린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주위 아이들이 모두 나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에엑~?!"
모두들 마녀를 퇴치하려는 용사놀이를 할 작정인지 무작정 내개 달려들었다. 우에에에?? 그렇다고 이렇게 나올 것까지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도!!!"
"내가 먼저야!! 루빈 넌 저리 비켜!!"
"저, 저기 나도..."
"여신님은 오늘부터 내 신부야! 모두 건들지마!!!"
"시끄러!! 여자라고 무시하지마! 여신님!!나도 안아줘잉~~~!"
반전된 상황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아이들의 러브어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을 때 할
아버지의 허허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할아버지 뒤쪽에 있던 석조로 된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나서 들어온 사람은 검은머리를 어깨까지 길른 제법 귀티가 나는 미청년이었는데 굳은 눈매가 제법 강직하면서도 우아하게 생긴 그는 여기 있는 사제복이 아닌 평범한 여행자 복을 걸치고 나를 보고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제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두어번 젓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왠지 검은 머리가 한국을 떠올리게해 이유모를 친근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를 본 할아버지는 '여어~케인군 어서오시게나~' 라며 외치고는 내쪽을 보고 소개라도 시킬마냥 그 청년을 한손으로 가리키고는 내게 말했다.
"이 청년은 케인군이지 자네를 그 돼지같은 오크무리들로부터 구해온 사람이 바로 이청년이야."
"네?"
"........"
여신(2)
이곳 신비한 대륙에 떨어져 루린서브링여신을 모시는 신전의 보육원에서 생활
한지 일주일을 넘어서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점은 뭐랄까...
소년소녀&노인 짧게 생각하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이곳은 로슈레인왕국과
휴벤트 제국사이에 끼어있는 상업중심의 필란트공국이라고 한다. 로슈레인왕국과
휴벤트 제국사이에 공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필란트 지브린대공의 뛰어난
상술과 언변으로 100년동안 이어온 로슈레인왕국과 휴벤트 제국의 전운을 서
로간의 무역을 통해 안정화시키고 로슈레인과 휴벤트도 자기 국경지역이 서로
맞닿는 것을 꺼려하는 입장이라 둘의 나라사이에 있는 필란트 공국은 두 나라
간의 중개역할과 상업무역으로 인한 재미를 쏠쏠히 챙기고 있는 풍요로운 나
라였다.
그 필란트공국의 수도에서 약 120트론(1트론=1km)정도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세워진 보육원이 바로 루린서브링여신의 신전이었다. 워낙의 시골이고 주위의
마을이라곤 여기서 4일이나 걸어서야 작은 마을 세리빈이 나온다. 그러니 당
연히 젊은이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서서히 그 존재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긴...나라도 젊은이들의 낭만과 청춘을 이런 산골짜기에서 허비하기에는 문
제가 있지만 난 조금 특별하다.
왜냐구? 후훗...지금도 난 귀여운 양(?...)녀석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한 마리의
늑대거든 후훗~
" 린누나~여기서 뭐해? "
음...여기는 신전에서 약갼 떨어진 이곳 숲의 정경이 한곳에 보이는 언덕이다.
그리고 뒤에는 초록귀염둥이가 나에게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다. 초록귀염둥이는
자신의 이름을 세빈이라고 했다.
" 세빈이네? 무슨일이야? 이 누나는 너네들 빨랫거리 하느라 팔이 다 빠질지경
이라구~"
"헤헤...내가 그럴줄 알구 이,이거...가져왔어..."
쑥쓰러운 듯 볼이 빨갛게 물들인 초록귀염둥이 세빈은 자신에 손에 들린 빨간
주스를 쏟지 않게 온신경을 집중하면서 이곳으로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는 중
이었다.
후훗...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 난 재빠르게 일어나 한걸음에 세빈에게 다가가서
주스를 잽싸게 가로채 벌컥벌컥 마셧다.
처음에 이런 행동을 보곤 녀석은 어린애답지 않게 여자는 조용하고 한모금씩
조숙하게 어쩌구 저쩌구를 지껄이더니 지금은 내게 꽁깍지가 씌였는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호호호...귀여운 것...
" 세빈~! 이제 점심먹어야지 우리 같이 내려가자~!"
"응~!"
세빈과 함께 언덕을 내려가서 신전의 앞마당에 위치한 어린 자유사제들을 위해
나이가 든 노인사제들이 힘써 조립한 듯 약간은 허술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아
기자기한 놀이터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미끄럼틀이 존재했고 시소도 있었다.
그리고 구름다리라든가 그네등 아이들은 신전의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내가 놀이터에 등장하자 역시 주위의 기운이 변동하는걸 느꼈다.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더니 눈에 불을 키고는 내쪽으로 러브어택을 남발하는게 아닌가..허헛...
이거 인기있어도 피곤하구만...에엑?...내가 웬 할애비말투를....다 그 50살 먹으
신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 사제님 때문이다. 이름이 휴스틴이라고 했던가? 앞으
로 자중..자중...
그렇게 애들에게 둘러쌓여 나는 내가 이전세계에서 알고 있는 동화이야기를 아이
들에게 해주곤했다.
"그래서 백설공주는.....(중략)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여자아이들은 양볼에 두손을 얹고 홍조를 띄며 '어마 어마'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였고 남자아이들도 왠지 기사에 대한 동경이 생긴 듯 레이
디에 대한 비장함이 어려있었다. 후훗...그런데 갑자기 나의 앞쪽에 있던 한 남
자아이가 내 뒤쪽을 가리키고는 '앗!!! 케인형이다!!!' 라고 외치자 나의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 와아아아아앙~~~' 하며 외치고는 모두 내 뒤에있는 케인자식(?)
에게로 빠져나갔다.
써어얼러어엉~~~
제길...흑...또 졌다. 왠지 내 주위에 모든 장난감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암튼 저
케인이란 녀석이 아무리 내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재수없는건 재수없다. 케인은
이곳에서 나와 유일하게 젊은층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케인은 나처럼 이야기로
아이들을 끌어 모으는게 아닌 무식하게 한팔에 아이들을 대롱대롱 매달고는 가
끔 아이들은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꼴사납고 무식하게 놀고 있었다. 흥~!
그러고는 꼭 내쪽을 보곤 승리의 미소를 한번 씨익 지어주곤 다시 아이들에게 둘
러쌓이고 하는게 하루 일과다...아유~웃! 얄미워 죽겠다. 칫!!..저녀석은 올해 22살
로 여기서 3년째 생활한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전 무엇을 했는지 이곳의 고위사제인 인자한 할아버지 휴스틴도 모른
다고 했다.
저녀석은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다. 왜!!왜냐구!! 내가 처음 이곳에서 신기
한 재료들로 요리를 했을 때도 이건 오크도 못 먹는다 라며 내게 핀잔을 주고 진
짜로 숲에 들어가 배고픈 오크에게 주더니 오크들이 목을 부여잡고 '제,제길 독
이다!!!먹지마!!'를 외쳤다고 한다...(이녀석은 왠지 진지한 녀석이라 거짓말 같지
않았다...무식한 넘...오크들에게 죽을 뻔한 나에게 그런소리를 하다니...흑...여자의
섬세함을 눈꼽 만큼도 이해할 줄 모르는 녀석이다. 이때부터 케인은 재수없는 녀
석으로 나에게 찍혔다. 빨래할때도 힘있게 팍팍 못한다느니...그래서 어디 시집이
나 가겠냐는니...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케인을 향해 난 참다참다 못참아서 '그
럼 네녀석이 해봐!!!' 라고 외쳤지만 녀석은 전직이 의심될 정도로 만능이었다...
뭔 사내자식이 요리는 비룡보다 더 잘하고 빨래는 현대의 세탁기보다 더 하얗게
했다...흑...열받아서 회심의 일격을 날려 봤지만 녀석은 전투에도 빠듯한 듯 쉽
게 피해버렸다.(예전 오크한녀석을 때려눕힌 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
다...흑...흐에에잉...열받아...)아무튼 녀석은 모두에게 친절한 녀석으로 통하지만
나에게는 사사건건 시비다. 내가 자기한테 뭔 잘못이 있다고...혹시 이쪽세계에서
의 내얼굴은 남자들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인가? 그렇게 심미관이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누가 뭐라해도 녀석을 언젠가 콱콱 밟아 줄테다.
"까르르르르르~~오빠 한번더~!"
"나도~~!"
"......."
아주 잘들 노는군..칫! 아아~ 잊혀진 존재여...그대 이름은 장린이라...아 쓸쓸해...
이렇게 혼자 상념에 빠지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양손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전해
졌다.
왼손에는 초록귀염둥이 세빈이, 왼쪽에는 빨강귀염둥이 제리가 나를 이끌고 있
었다.
앞쪽에 케인과 그 배신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빨리 밥먹으러 가요~~누나'를 외치고 있었다.
윽...저 배신자들이랑 이제 같이 안놀려고 했지만... 풀컬러 세트의 귀염둥이들을
보자 나의 결심은 봄에 눈이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이에 난 한번 피식 웃고는 아이들과 케인에게 다가가 '그래 가자~' 라고 힘차게
외친후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자상한 아줌마와 수다쟁이 아줌마등등 여럿
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옆사람과 잡담을 하면서 즐겁게 점심준비를 하고 있
었고 할아버지들은 손바닥만한 나무를 깎아서 조각을 만들거나 두사람씩 짝지어
서 체스 비스무리한 것을 겨루고 있었다.
식당에 등장한 우리들을 보고는 모두들 따스한 웃음과 인사로 맞아 주었고 또 아
이들과 나는 그들과 같이 인사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곳 사람들은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그
런 진짜 가족보다 더더욱 행복한 진짜 가족이 아닐까?...하는 생각...정말 이들은
행복해 보였고 나도 정말 행복했다. 이전세계의 어머니와 친구들을 억지로 묻어
버린 후유증이 재발되지 않을 정도로...난 이 행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랬다. 언젠
가 까마득한 오래전에 이런 소망을 빌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상대
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난 나와 그 누구와의 행복의 영원을 바랬던 것 같지만...
그러나 뿌연 안개처럼 기억이 확실치 않아 대충 넘겨버렸다.
아무튼 영원하라~여신의 품안에서 행복한 가족들이여~후훗...
하지만 훗날...난 알게 되었다. 이것 역시 나에겐 이루어 질수 없는 허망한 소원
이라는 것을...
여신(3)
지금은 밤이다. 어둠의 여신이 하루라는 고된 시간을 보낸 모두에게 잠이란 선물
로 모두를 평안으로 인도하는 시간...하지만 난 왠지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는
다. 좀전에 먹은 티귤레란 차를 마신 것 때문인가? 흠...아무튼 난 침상에서 일어
나 잠옷바람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조용히 신전밖으로 나왔다.
그렇고 보니 난 이 세계로 떨어져서 제대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적이 생기자 내 발걸음은 일사천리였다. 내가 자주 즐겨 찾는
신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언덕으로 올라가 그대로 드러눕고는 밤하늘을 감상
했다.
수많은 아름다운 별이 찬란한 빛을 터트리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난 문득
누운 상태에서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 수많은 별들중엔 지구가 있을려나...지금 쯤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내가
있어도 외로우신 분이었는데...갑자기 내가 사라지니 얼마나 외로우실까...아버지도
곁을 떠나고...딸내미 하나 있는것도 소리소문없이 홀로 떠났으니...얼마나 외롭고
슬프실까...
어머니를 생각하자 그동안 애써 밝은 척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눈물
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난...다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걸까...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서 여행을 해야하나...내가 이곳에 존재하면 언젠가 난 '장린'으로서
나를 잊게 되는건 아닐까...이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흐르는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때였다.
내 뒤쪽으로 풀숲이 스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난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뒤를 바라보니 검은머리를 어깨까지 길른 재수없는 케인녀석이 오고 있었다. 녀석은 내곁으로 와서는 나를보고 있었다. 앗!! 눈물!! 그렇다. 난 울고 있었다. 아직도 볼에 촉촉한 기운이 남아있는걸 알고는 내가 울었다는 걸 케인녀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휙~! 하고 돌아서서 조용히 눈물을 닦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네,네가 여긴 어쩐일이야?"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없이 내 옆자리에 턱하니
앉아 버렸다. 난 괜시리 무안해져 짜증나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외쳤다
"야! 허락없이 남의 옆자리에 앉지마!!!"
쓸데없는 투정이었다. 녀석은 정면을 바다보다 내쪽을 스윽~하고 바라보고는
무표정의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울었냐?"
"윽!.....아,아냐!! 내 투명한 눈동자가 별빛에 비쳐서 영롱하게 빛나는 것일...
... 테지!!..."
음...내가 말해놓고 괜시리 무안해 지는군...칫!...녀석은 한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한동안 녀석과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까의 슬픔과 답답함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있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나가는 말투로 녀석에게 물었다.
" 야! 넌말야...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보니 나의 모습과 세상이 모두 바뀐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걸까?...아니면.....원래 존재하지 않았을 이곳에서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녀석의 표정을 보니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는 표정이었다. 으...내가 녀석에게
말한 것 자체가 바보지 바보!!! 난 잔뜩 삐진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을
때 녀석이 입을 열었다.
" 글쎄...그런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쓸데없는 일로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왔을린 없다고 생각해. 그런 고민은 자신의 삶에 그리 좋은 영
향을 끼치지는 않을테니 잠시 묻어 두고 우선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찾아? 뭘?"
내가 묻자 녀석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정면을 보고있었다. 얼굴은 정면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그 어딘가의 무엇을 회상하고 있는
듯했다.
녀석의 대답을 듣는 것은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당연히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남이 나를 인정할수 있는곳. 모든 생물은 나
이외에 다른존재와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의 진리지. 그러니 분명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오는 황당한 일이 생겨났다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그 이유를 찾게 된
다면 어쩌면 바로 자신이 떨어진 그 생소한 세계가 원래 자신이 존재해야할
진짜 자신의 고향인지도 모를 일이지...자신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인연들과 함
께말야..."
난 반쯤 멍한 표정으로 살짝 입을 벌리고 케인녀석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래!
내가 여기로 오게 된건 무슨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꺼야!! 그걸 찾는거야!!
분명 내가 이곳으로 오기전 예림이가 날 기다린다고 했지...예림이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좋아! 아무튼 내가 이곳으로 오게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구나!! 왜
이제껏 이런 생각을 못했지??아 ... 케인도 이런면이 있었군...쓸데가 있었구나 하
하하하... 장린아...너의 생활신조대로 무상&태평의 숭고한 정신으로 살자!!헤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문득 내가 케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있는 것과
녀석도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걸 깨닫자 난 얼굴을 잠시 붉히곤 애써 평정을 가장해 다시 정면을 쳐다보려
하는데 녀석의 손이 어느새 내 오른쪽 볼에 와 있단걸 알게 되었다. 아...갑자기
이녀석 왜,왜이래?.....꼭 무슨 사랑하는 연인 분위기...같잖아...
그때 녀석의 얼굴이 한층더 진지해지더니 내 볼을 쓰다듬고 있었고 난 왠지모르게
저항할 수 없는 따스한 감촉에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렇게 잠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 녀석은 내 볼에 있던 엄지손을 내 눈가에 살짝
스쳐 눈물자국을 없애고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곳에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군...너답지 않아."
"......."
흡!...16세 사춘기소녀의 심장을 두근두근거리게 하는 말을 녀석에게 듣게 되다
니...
에엑~말도안돼!!! 녀석의 말에 두근두근 하는 날 절대 용서할순 없닷!!! 아...
죽는순간까지 난 케인을 싫어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군...
그렇고 보니 녀석은 내게 익숙한 검은머리에 꽤 잘생겼네? 흠..그렇군...에엣?!!
무슨 세상이 망해버릴 상상을 하는거냐!! 이건 내가 허락못햇!!!
그렇게 이것저것 상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괜히 안절부절하고 있다 어느새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왠지 우울한 기운을 띈 아침의 안개와 함께...
그리고 난 그다음날 만날 수 있었다. 나와 케인, 그리고 또다른 젊은이을...
소유에 가려진 행복(1)
그렇게 쓸데없는 망상과 다짐으로 밤을 세우고는 난 내 침대로 좀비처럼 스물
스물 걸어와 풀썩 하고 쓰러져 바로 잠들었다.
창공의 여신이 내리는 축복에 의해 세상을 비추는 생명의 빛은 어느새 머리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신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린이 자주 찾는 작은 언덕위에
두명의 사내가 보였다.
한명의 사내는 평범한 여행자 복으로 검은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허리에는 수
수한 검하나를 차고 있었다. 그 앞에 있는 사내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자와 비슷
한 얼굴에 그보다 약간 작았고 고급원단을 사용한 귀족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걸
치고는 군데군데 반짝이는 화려한 보석이 달려 있었다. 그의 허리에 차여있는 롱
소드는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박혀 있어 누가 보아도 탄성을 지
를 만한 보검이 매달려 있었고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내 이름은 케인...성은...그냥 말하기 싫다. 난 19살까지 필란트 공국을 중심으
로 남쪽에 자리잡은 가이가스왕국의 수도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19년 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주위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하나의 작은 인형에 불과
했다.
그 작고 힘없고 볼품없는 인형이 뭐가 그리좋은지...뭐가 그리 위대한지 마치 신
을 모시는 듯하는 인간들이 너무 싫고 짜증나 난 나의 모든 관절부분을 연결하
고 있던 실을 끊고 이곳으로 도망치듯 가이가스의 수도를 벗어난게 벌써 3년이다.
처음 몇 개월간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어린시절들의 순
수함을 지닌 꼬마아이들에게 이끌려 난 필란트 공국의 외딴 시골에 위치한 자애
의 여신 루린서브링을 모시는 신전의 보육원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여긴 전쟁으
로 인한 고아들이 모여들어 신전에서 그 아이들을 자유사제로 등용하고는 아이들
을 보살펴주는 일을 하는 곳이었는데 제법 어린나이지만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인생을 비관하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많을거라 예상했다.
그리곤 내 작은 힘이나마 내가 어릴적 가지지 못한 순수함을 찾아주고 싶다는 작
은 열망하나를 가지고 열심히 아이들을 보살폈다. 나의 노력과 주위 어르신들의
노력으로 점차 한명,한명씩 부모가 있는 평범한 어린아이들처럼 활발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순수해 지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아이들이 밝아지면서 새로 들어온 아이들을 기존의 아이들이 마음
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 점차 아이들이 밝아지는 주기가 짧아졌다.
그러던 어느날...난 신전에서 멀지않은 숲속을 들어가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고기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 멧돼지를 사냥하러 들어갔다. 언제나 1시간 정도
숲을 살피고 있으면 한두마리정도 발견하여 어렵지 않게 잡아 다시 숲을 나가곤
했지만 오늘따라 간간히 보이던 멧돼지들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더욱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점점 해가 지고 밤이 되려고
해서 나는 할수없이 숲속을 나가야만 했다. 그때였다. 나의 예민한 청각에
지금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잡혔다.
지금 이곳은 신전에서 가까운 곳이라 혹시 신전의 사람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의 근원지
에 도착해 내 눈에 보인 것은 대여섯마리의 오크들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오크들이 한 사람을 몽둥이로 후려치고 있는 광경이었다. 몬스터주제에 감히 인
간을 죽이려하는 광경을 목격한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검을 뽑아들고
단칼에 녀석들을 베어갔다. 녀석들을 처리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천천히 검
에 묻은 피를 털어 버리곤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기 위해 몸을 돌려 쓰러진 사람
에게로 달려갔다. 허나...
난 잠시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나의 시야에 비춰지는 한
소녀는 여지껏 한번도 본적이 없는 붉은빛이 감도는 길다란 은발이 풀밭사이로
흩어져 있었고 흩어진 은빛머리도 감히 에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름다운 곡선
을 띄며 쓰러져 있는 여성을 중심으로 곱게 퍼져있었다. 쓰러진 여성의 얼굴을
보곤 난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져버렸다. 수도에 살면서도 나에게 아부해 오는 딸
을 가진 중년귀족 녀석들의 영애들도, 이쁘다 뭐다 하는 타국의 공주들도 많이
봐와서 어느정도 미의식이 타인보다 높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내 눈앞에 보이
는 여자에게 결코 비할바가 아니었다. 가지런한 은빛의 머리과 눈썹 그리고 길
게 뻗은 속눈썹이 가지런히 눈을 덮고 있었고 아련히 솟은 미려한 곡선의 콧날
과 약간은 벌이진 분홍빛의 아름다운 입술...그리고 백옥같은 눈부신 나신...나신
을 쳐다보자 난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내 어깨에 걸쳐진 망토를 벗고 이 정체모를 여자를 감싸 안았다. 무게도
얼마 나가지 않았고 가까이에서 보니 아찔할 정도로 여인...아니 소녀의 모습은
눈부셨다.
망토로 감싸기 전 보았던 옆구리에 생긴 상처를 보곤 급히 정신을 차리고 신전으
로 데려갔다. 말뿐인 신전은 아니라서 사제들의 치유의 빛으로 치유하고 그녀는 그
다음날 깨어났다. 깨어난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주위의 어린아이들에
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곤 문을 열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았고 우
리 둘은 잠시눈이 마주쳤다.
그녀은 두 눈은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런 생소하고 신비
스런 눈은 생전 본적이 없던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 고개를 젖곤 제정신을 차렸
다. 외관만 보고는 신성한 느낌을 주는 소녀라 조용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그녀
는 생기발랄한 왈가닥 소녀란걸 알게되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있으
면 마치 자기의 장난감을 빼앗듯 아이들을 가로채가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나에
게 한번 날려주고는 생전 듣지못한 아름다운 옛날동화를 아이들에게 예기해주곤
했는데 정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손으로 상황설명까지 해주며 동화를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은 자애의 여신 루린서브링이 이 세상에 강림한 듯 보였다.
하지만 자애의 여신은 요리를 못하는걸까? 그녀의 요리는 극악을 치닫았고 나는
그 요리를 배고픈 오크들에게 먹여보았지만 녀석들조차 '이건 독이닷!'이란 황당
한 어구를 외치며 쓰러지기 일쑤였다. 머쓱해진 나는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고 그
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소리없이 뭐라구 중얼거리고는 내게서 아이들을 가로채
가는 일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나를 이기는 일이라 생각한 듯 그녀는 아이들을 빼
앗긴 나를 보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비웃음조차 얼마나 귀여운 표정인지
그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에겐 왠지모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녀석이 찾아 왔다.
언젠가는 오리라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줄 몰랐던 그는 내가 수도를
빠져 나오기 들고나온 그 '물건'을 돌려 받기 위함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난 그
걸 쉽게 내줄 생각따윈 없었다.
내앞의 단정하면서 어딘가 나를 닮은 사내... 나의 동생 현재 19살의 스타판
폴튼 가이가스가 나에게 애절한 표정으로 외쳤다.
"형님!! 이제 태자를 증명하는 아쿠아블린을 저에게 주십쇼!!"
역시...나를 찾아온 목적은 이 목걸이였구나...스타판...그러나 아직이다. 아직
건네 줄순 없다. 그래서 난 일부로 차가운 표정으로 스타판에게 말했다.
"이 아쿠아블린 없이 귀족들의 세력을 60%이상 2왕자인 너의 세력쪽으로
회유하는게 약속이었다. 너는 가이가스왕국의 귀족세력중 반 이상이 너에게 충성
을 맹세했느냐?"
나의 물음에 나의동생 스타판은 이마를 찡그리며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그건...하,하지만!! 황태자의 표식! 아쿠아블린만 있으면 내쪽으로 더 많은
귀족들을 회유할 수 있다구요!! 아쿠아 블린만 있다면!!"
"난 분명 말했다. 난 네가 나의 자리를 탐했을 때부터 나라에 관심이 없는 나보
단 네가 더 훌륭히 다스릴 것이라고...네가 너의 순수한 자력으로 귀족들의 반수
이상을 회유할 때 결정타를 먹일 이 아쿠아 블린을 너에게 선사하겠노라고...이
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이가스왕국을 위한 마지막 배려다. 지금쯤 폐하께서는 생
사를 넘나들고 계시겠지...이럴때야 말로 너의 총명한 지혜로 귀족들을 회유해 보
거라...너라면 할수 있다고 본다."
"하,하지만!!......"
무언가를 외치려던 스타판은 갑자기 우리들 뒤쪽 숲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자
신의 말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에 나와 나의 동생 스타판은 저 풀숲너머
를 주시했고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붉은 빛이 도는 찬란한 은발의 가히
여신이라 칭할만한 아름다운 소녀가 얼굴엔 물음표를 달고 이쪽을 쳐다보며 다가
오고 있었다.
"어라라?? 케인아냐? 여기서 뭐해? 그리고 옆에 있는 그분은 누구야? 이곳에서
우리 이외에 젊은 사람을 보게되네 헤에....신기한데? "
햇살을 받은 눈부신 그녀의 은발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은빛의 광택을 이리저리
뿌리고 있었다.
그 현란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가이가스왕국의 국왕자리를 이을 나의동생 스타
판녀석도 그답지 않게 품위없이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난 나의 동생 스타판의 눈에 드리워진 그의 눈이 나의 황태자자리를
바라볼 때와 같은 강렬한 소유의 눈빛이 아름다운 린에게 머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유에 가려진 행복(2)
오늘도 역시 따스한 해가 언제나처럼 루린서브링여신의 신전을 밝게 비쳐주고
있었다. 어제 케인과 그의 동생이라고 하는 스타판을 만나 오랜만에 젊은이(?)
들끼리 재미있게 이야기하다 스타판은 볼일이 있다며 그만 헤어지고 케인과 둘
만 남은 나는 왠지 어색해서 금방 신전으로 돌아왔다.
"아...왠지 오늘따라 날씨가 더 푸르군...허허..."
내가 신전 앞뜰에서 어제일을 회상하고 있을 때 내앞에서 인자한 할아버지 휴
스틴이 미소짓고 있었다. 그렇고 보니 휴스틴할아버지의 무표정한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언제나 미소...또미소...저 미소는 평범한 미소로는 보이질 않
는다. 뭐랄까?...해탈의 경지를 깨우치기라도 하셨나? 딱히 휴스틴만 그런게 아니
라 이곳 신전의 어르신들은 모두들 휴스틴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신다. 뭐 보기
나쁜건 절대 아니지만...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해서 휴스틴의 옆자리에
풀썩하고 앉아 물었다.
"휴스틴할아버지~할아버지는 어떻게 매일 웃을수 있어요? 인간답게 시무룩한
표정좀 지어 보라구요~"
"껄껄껄~웃음은 신이 내려준 인간만의 축복이라더지 않느냐~껄껄~난 그 축
복을 한시라도 놓칠수 없다네~껄껄!"
"뭐...나쁘진 안네요...훗...이유는...그뿐만이 아닌 듯 한데요? 할아버지...할아버지
말고 다른 분들도..."
내 말에 할아버지는 껄껄거리며 웃는걸 그만두고 다시 예의 인자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정면을 주시하는 그의 시야엔 무언가의 추억이 아려있는 것
같았다.
"그래...이유라면 있지...나말고 여기 신전 노인들의 공통된 이유가..."
"공통된 이유?"
"뭐...쉽게 말하면 우린 미련이 없다...랄까? 허허..."
"미련...이요?
미련...무언가의 갈망...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어찌보면 추잡하고 추악
하게 변질될 수도 있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들이 살 수 있고
또 발전할수 있는 근본적인 욕구가 아닐까...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욕구가 없는
데 행복할 수 있을까...?
혼자서 끙끙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시 휴스틴할아버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태어나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모두 마쳤다네...모두 죽음앞에 당당할수
있는거지. 미련이 없으니 앞날에 대한 걱정도 없다네...그저 평안하게 우리의
마지막을 안식의 여신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을뿐이지... 이러니 얼굴을 찡그릴
레야 찡그릴수 없다네 허허..."
난 고개를 돌려 햇살이 비추는 휴스틴 할아버지의 옆모습을 보았다. 정말 미련
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모습...확실히 생동감은 없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고목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휴스틴과 잡담을 나누다 내앞에 드리워진 인간형상의 그림자를 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흑발의 사내. 케인이 보였다.
"케인?"
케인을 보자 휴스틴할아버지는 오늘따라 더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외쳤다.
"하하!! 오늘이 그날이군~! 케인군 부탁하네~그리고 린? 자네도 할 일이 없으면
따라가지 그래?"
"네? 어딜요?"
오늘이 무슨 날이라도 되나? 뜬금없이 케인이 오고 할아버지는 나보고 저 재수없
는 .... 아...그 재수없는 감정이 쪼오오~금 얕아졌지만... 그래도 재수없는 케인
과 함께 어딜 가렌다...가긴 어딜가?
"숲이다."
케인의 무미건조한 대답이 들렸다.
"숲?"
"어...오늘 세빈의 생일이지...그래서 저녁에 고기파티라도 할겸 숲으로 사냥하러
간다. 어르신들이 숲에 가는건 조금 벅찰테니 네가 심부를꾼해라."
"뭐!뭐얏!!! 가녀린 여자에게 숲으로 네 녀석의 심부름을 하라곳!!!"
"그래. 그럼 휴스틴이나 꼬마들을 데려갈까?"
"우...그,그건...히잉..."
"할말 없으면 그냥 따라와."
이렇게 해서 난 지금 케인과 함께 신전에서 약 30분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멧
돼지나 토끼등을 사냥하고 있었다. 현재 내 손엔 토끼 두 마리가 들려 있었고
케인의 등엔 멧돼지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흠...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는군...지나가는 비라도 오려나?"
케인이 갑자기 흐려진 날씨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념조로 한마디했다.
"그러네...하지만 적어도 멧돼지 한두마리 정도는 더 잡아야 하는거 아냐?"
"흠...폭우라도 쏟아지면 골치 아플테니 그만 돌아가지."
"에?? 봄에 무슨 폭우??그냥 좀더 있다가..."
내가 녀석의 말에 의의를 제기하자 녀석은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젖고는 내앞을 스쳐지나갔다.
"이걸론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말을 흐리고 고개를 돌려 케인이 나를보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지축을
울리는 커다란 굉음이 나와 케인의 고막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뭐,뭐지~?!"
"꺅!~"
나와 케인은 동시에 놀라 주춤거렸다. 얼마나 큰 폭발이었는지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땅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모를 한기가 내
전신을 감싸돌기 시작했다.
뭔가...불길해...뭐지..이 기분은...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케인은 멍하니 신전쪽을
주시했다. 나도 따라 신전쪽에 시선을 두니 신전쪽에서는 검고 쾌쾌한 연기가 하
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시,신전이!!!"
난 너무나 놀라 손가락을 신전쪽으로 치켜들며 외쳤다. 그리고 들고있던 짐승
들을 모두 땅바닥에 팽개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전쪽으로 달려갔다. 한
5분정도 달려가니 내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괴로웠지만 신전의 아이들과 어
르신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제발...무사해줘...모두들...제발...'
헉헉거리며 겨우 케인의 등을 쫓고 있을 때 갑자기 케인이 멈춰섰다. 난 지친
몸도 쉴 겸 따라 멈추어 서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케인을 주시하고 있을 때 케
인의 혼자서 낮게 읊조리는 욕을 들었다.
"제길...기어코 네 녀석이...제길..."
알 수 없는 녀석을 들먹이며 욕을 하는 케인은 급히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은
빛의 줄에 금빛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운 문양으로 조각된 테를 중심으로 그 가운
데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목걸이를 목에서 풀기 시작했다. 그리곤 급히 그 목걸
이를 내 목에 걸어 주고는 지금껏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상냥한 표정으로 말했
다.
"린...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할께...넌 지금 신전의 반대방향으로 달려가 이곳을
떠나. 내가 준 목걸이를 가지고...그리고...여기서 가까운 폴시안이라는 마을에서
기다려줄래? 만약...3일이 지나도 내가 오지 않는다면 이 목걸이를 가지고 나의
절친한 친우. 로슈레인 왕국의 황태자 리류나드, 리류나드 브렌 로슈레인에게 전
해줘. 부탁이다."
"무,무슨 소리야 케인!!!왜 갑자기!!...."
그러나 난 끝까지 말할수 없었다. 케인이 나를 향해 뻗은 손에서 금빛기류가
돌더니 저항할수 없는 잠의 기운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아....왠지 이대로는 안돼...제발...'
불길한 예감을 끝으로 나는 저할할 수 없는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휴~...이자식...스타판...만약 신전사람들에게 무슨 해라도 끼쳤으면 절대 용서
하지 않겠다. 일루젼!,크리에이트 이미지!!"
케인은 린의 주위를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숲으로 보
이게 만들었다.
그리곤 주저없이 그 자리를 떠나 신전쪽으로 맹렬히 달려갔다.
소유에 가려진 행복(3)
'여긴...'
지금 나는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있다. 하....기절상태에서 의식이
있을 수 있다니...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내속에서
끊임없이 외쳐대고 있는 하나의 의지...
'일어나!!'
하나의 의지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냥 편히 있고 싶은데...만사가 나른다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하고 부자연스러우며 무겁다. 하지만 나의 의지는
끊임없이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
'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
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
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
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일어나!!'
나의 의지가 얼마의 시간동안 외쳤는지 모른다. 알 수 없는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나의 눈커플이 파르르 떨리며 어두웠던 시야에 잿빛 하늘이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잠시동안 정리되지 않는 머리가 어느 정도 맑게 깨어나 있을 때 나는 내안에
무언가가 불길하게 요동치고 있는 술렁임을 느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얼마나 내가 기절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은듯했다.
케인이 나를 재우기전에도 회색빛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씨였고 지금도 그
날씨는 변함이 없다. 약간 어둡기도 했지만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나의 최고속력으로 달려가면서 내 뺨과 팔, 다리등에 나뭇가지가 스쳐지나가 작은
상처가 계속에서 생기고 있었지만 나는 상관않고 계속 신전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계속에서 큰숨을 들여마셔도 가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할 정도
로 달렸을때...심장이 터질정도로 달렸을 때 저 나무 사이로 신전의 모습이 내 시
야에 들어온다.
언제나 햇빛을 받으면 새하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루린서브링여신의 신
전은 현재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검은색의 그을림이 여기저기 보였고 언제나 아
이들이 자주 놀곤했던 놀이터는 부러진 나무파편만이 애처롭게 그를 대신하고 있
었다. 차마 돌려지지 않는 고개를 돌려 신전의 앞뜰에는.............................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내 눈에 비쳐지는 사물이 일렁인다...일렁이고...또 일렁인
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천천히 그곳에 가까이 가자...검게 변한 몇몇의 인
간모양을 하고 있는 딱딱한 물체가 보였다.
-부스럭-
난 소리가 난쪽을 섬광과 같은 속도로 훽~ 하고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가슴에 단도가 박혀 있는 휴스틴이었다.
휴스틴을 보자마자 나는 무언가 가슴에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저 인간은...
저인간은 지금 이순간까지도...
" 이 바보야!! 넌 지금 이순간 웃음이 나와!!? 흑!..."
어르신이고 뭐고 없었다. 난 흥분상태에서 휴스틴이 있는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내팔에 휴스틴의 고개를 두르고 그를 일으키려 했으나 그는 손
을 내저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거에요?!! 예??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자식이!!..."
"쿠,쿨럭!! 허허...이,이거 안 좋은 꼴을...보이는 구만.."
내상을 입었는지 휴스틴 할아버지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왈칵 쏟아내었다. 바
보...고통스러울 텐데도 끊임없이 웃고 있다.
" 이게 뭐에요!! 뭐가 세상에 미련이 없단 말이고 뭐가 세상에서 할 일을 다했
다는 거에요!! 네?! 일어나요! 일어나서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돌봐줘야 하
잖아요!!...어서...어서 일어나서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져 줘요...그래야...그래야 어
르신들의 일이 끝나는 거잖아요...네?"
나의 외침에 휴스틴은 꺼져가는 눈빛을 바로잡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허허...아이들은...이미...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네...껄껄...너무나 착한..아이
들이라...여신께서 욕심을..부리신 모양이더군...허허허...쿠,쿨럭!"
"휴,휴스틴!!"
휴스틴은 다시 검은피를 토하고 나를 잡고 있던 손이 천천이 힘이 풀리며 땅바
닥으로 쓰러졌다.
반쯤 감겨 흐릿한 눈동자를 덮고 있던 무거운 눈커플은 초점을 잃은 눈을 살며
시 덮어버렸고 휴스틴의 심장은 이미 마지막 두근거림을 끝으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고 있었다.
"휴스틴? 휴스틴?....자,장난하지 말고 일어나 봐요? 아이들은...케인은 어디서...
예? 대답좀 해보세요!?.....휴스틴!!!"
무언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른다...도대체 이들이 무슨죄가 있어 이런 변을 당한단
말인가!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겨우 안정을 찾은 아이들...무슨 죄가 있어 다시 어른들의
검에의해 다시 아픔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왜!!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게 죄인가
? 부모없는 아이들을 스스럼없에 대해주고 보살펴준게 죄인가? 왜~왜!! 이젠 앞
이 보이질 않은 정도의 눈물이
내 눈을......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턱에 고여있는 눈물이 하나,둘씩 휴스틴의 연
륜이 세겨진 푸석한 피부로 떨어져 또르르 대지로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꿈에서 깨어나...'뭐야? 개꿈이네...후훗...'이라고 꼭
외칠 수 있기를...그러면 옆에서 세빈과 제리와 아슈즈,유네스빈,세이아,자티양,프
로세인...모두들 내게 달라붙어 재롱을 떨고 또 동화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언제나 황금색으로 빛나던 나의 눈동자는 시리디 시린 은빛의 눈동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은빛의 눈동자...그리고 온몸을 휘젓는 은빛의 기류가
나를 통해 세상에 방출되길 끊임없이 요동치며 갈망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
지만...
'이 모든 것은 현실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잿빛하늘아래 필란트공국 작은시골의 신전에서 구슬프고 애처로운 드래곤 피어가
온 대륙을 향해 처절히 울리고 있었다.
같은 잿빛하늘아래 로슈레인의수도에 위치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황성에서
한남자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손에는 서류한장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었다.
높이가 어른장정 3명을 세워야 될 정도로 높은 문앞에 다다른 남자는 노크도 없
이 문을 벌켝 열고 들이닥쳤다.
"폐!폐하!!! 큰일이옵니다!!! 로슈레인의 외곽의 베블링영지가...베블링 영지가!!...."
로슈레인의 재무대신 피브리츠가 숨넘어갈 듯이 말하자 뭔가 불길함을
느낀 로슈레인의 케스텀국왕은 당황하지 않고 한나라의 재목답게 난리
를 치는 재무대신을 안정시키고 천천히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오?"
"폐,폐하...베블링영지가...레드드레곤의 폭주로 하루사이에 지도에서 사라졌습
니다!!"
침착하게 사태의 보고를 듣던 국왕도 더 이상의 커질수 없는 하이톤으로 당황
하며 외쳤다
"뭐,뭣이?!"
같은 하늘, 같은 시각 휴벤트제국과 가이가스왕국의 국왕의 집무실에도 로슈레
인과 같은 드래곤의 폭주에 의해 영지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
이 가신들에 의해 보고되고 있었다.
전 드레곤 가이가스로 집결!(1)
현재의 태초의 숲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장이었다. 태초의 숲의 면적은 왠만한
제국못지않은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고 또 그 가운데엔 태초의 숲을
양단하는 거대한 산맥이 존재했다.
-콰콰콰콰콰콰~~~-
-쿠르르르르르르-
-스스스슷.....-
태초의 산맥 상공에서 직경 320헤론(1헤론=1m)의 거대한 검은 존재가 포효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존재는 커다란 숨을 한번 들이쉬더니 공포스런 아귀에서 모든것을 암흑으로 감싸 버리는 검은색 산성이 끊임없이 태초의 숲을 녹여버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엘테미아~!! 너의 존재가 무엇이길래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거냐!!"
그 거대한 검은 존재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 했다.다시한번 무시무시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처절하고 공포스런 포효를 내지른 후 거대한 날개로 모든 물체
를 에일듯한 칼날같은 바람을 만들어내며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위용과 함께
다시 숨을 들이마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그 누구의 접촉도 허용할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한 검은존재 앞으로 눈
부신 금색기류가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는 것처럼 천천히 가운데를 기점으로 퍼지더니 거대한 금빛 드래곤의 형상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 금빛의 거대한 존재는 직경 300헤론정도 되어 보였다. 검은 존재보다 비슷한
크기의 존재는 자신의 몸을 한바퀴 돌리면서 원심력을 이용해 자신의 커다란 꼬
리로 그 검은 존재를 힘껏 내리쳤다.
-쿠웅~!!-
거대한 몸에 비례해 지축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검은 존재는 지상에
추락했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중저음의 음파가 태초의 숲에 곤두박질한
검은 존재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엑시드옥션!! 블랙일족의 수장이나 되면서 자신의 감정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거냐!!"
"크르르르르....로드..."
"휴...엑시드옥션...진정해라...지금 전 대륙에서 우리일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마 또 한번 엘테미아님의 감정폭출이 일어나게 될 경우 그때야말로 대륙의 소멸
이다. 지금은 우리 각 일족의 수장들부터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돼!"
"크...하지만!..."
" 그만해라 엑시드옥션! 한시라도 빨리 엘테미아님의 신변확보가 우선이다. 가드
레일! ,에셀리드민!,다헬론, 페트리샤!, 티제이븐! 모두 모여봐!"
로드라 불린 거대한 황금빛의 존재가 외치자 그의 주위로 5개의 빛이 생성되더
니 각각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띤 5명의 존재가 등장했다. 커다란 금빛존재도 그
들에게 맞추려는 듯 눈부신 빛과 함께 한 17살정도 되어 보이는 백금발의 아름
다운 소녀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의 밑에서 쓰러져있던 거대한 검은 존재도 환한빛과 함께 점점 작아
져 흑발의 차가우면서도 강직한 모습의 전사로 변했다. 그리곤 공간이동으로 모
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휴...짧게 말하지...사태가 심각해. 벌써 엘테미아님의 감정에 반응해 폭주한 드레
곤이 블랙일족 3기, 레드일족 4기, 블루, 골드일족1기...그린일족과 화이트일족은
아직이다.
지금 말한건 폭주한 드레곤들이고 아마 대부분 얼마전에 느껴졌던 엘테미아 님
의 엄청난 분노의 감정을 못이겨 꽤나 당황하고 있겠지...다헬론 엘테미아님의 위
치파악은?"
다헬론이라 불린 하얀머리의 하얀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른 중년의 사내가 그리 좋지 않은 낯빛으로 말했다.
"아...필란트 공국의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름조차 없는 시골이 있지. 그곳
에 루린서브링님을 모시는 신전이 하나 있는데...그곳에 제일 유력해. 허나 내가
도착했을땐 누구의 소행인지 모르겠지만 신전은 대부분 불타 무너졌고 그곳에 있
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있더군...
그곳에 엘테미아님이 존재했던건 확실해...그렇나 알수없어...분명 지금쯤 대자연
을 벗어나 도시 어딘가에 있을법도 한데 그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그 어
떤 무언가가 인위적으로 엘테미아님의 기운을 감추기라도 하는 듯이 말야..."
다헬론의 말을 듣자 로드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지더니 얼마안가 각 일족
의 수장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나와 에셀리드민을 제외한 모두들...지금 폭주중인 드레곤들을 진정시키고 최대
한 한곳으로 모아줘...그래야 너희들의 피어도 제대로 먹힐테고...아무튼 힘든 일
이지만 모두 부탁한다. 나와 에셀리드민은 필란트공국으로 엘테미아님을 수색하
기로 할게. 시간이 없어 모두 서둘러!!!"
로드의 말이 끝나자 로드와 에셀리드민을 제외한 다섯 드레곤들은 눈부신 광영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머지 로드와 에셀리드민도 그들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
졌다.
한편 막 숲을 빠져나온 듯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화려한 백색의 마차가 50명의
흑기사와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가이가스의 수도쪽으로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안에는 길다란 은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애처로이 누워있었다. 그
녀의 목에는 푸른빛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혀있는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온몸이 밧
줄로 결박된 상태였다. 마차의 덜컹거림에 그 소녀는 잠에서 깬 듯 눈커플이 떨
리며 힘없이 들어올려졌다.
* * *
우음......온몸이 나른하다...지금 난 작은 돌맹이 하나 쥘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
다. 깨어나자 마자 내가 할수 있었던건 고작 깊은 한숨과 한줌의 눈물을 흘리는
것 뿐...
'미안해...얘들아...그리고 어르신들...케인..미안....'
현재 나는 두팔과 두발 모두 결박 당한채 은밀히 가이가스의 수도로 끌려가는 중
이었다. 가이가스는 필란트 공국에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와 브람스란 강을 건너
면 바로 가이가스의 수도였다. 브람스강에서 말로 2일만 달린다면 가이가스의 수
도 펠브리튼이 나온다.
'어쩌다...아니, 왜? 이렇게 됐을까..제발...누군가 도와줘...이런거...너무 싫어...'
한방울의 눈물과 함께 난 2시간전의 일을 회상했다.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게
된 휴스틴은 죽어서도 그 미소를 풀지 않았다. 그 미소를...이젠 다시 볼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내가 이 이상하고 신비한 대륙으로 건너와 처음으
로 사랑한 사람들...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버린 난 한없는 괴로움과 슬픔에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내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휴스틴...말해줘요...도대체 누가 무었 때문에 이런짓을...흑..."
편안한 미소로 누워있는 휴스틴에게 나는 들려오지 않을 질문을 하고 있을 때였
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쪽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들려왔다.
"후훗...누가 그랬나면 내가 그랬고 무엇 때문에 이런짓을 벌였나면 바로 너 때문
이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을 바
라봤다.
내 뒤에는 어느새 다가왔는지 모를 전신을 검은 갑주로 뒤집어쓴 흑빛 기사들
이 100명쯤 도열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내게 추잡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내
가 보였다. 그사람은...기괴스럽게도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황당함과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안고 경악하듯 외쳤다.
"너,너는.....!"
"쿠쿡..."
전 드레곤 가이가스로 집결!(2)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악몽같은 현실을 내가 안겨준 장본인을
그리 오래 만나지도 안았고 또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의 친형을 해치면서 까지 이런 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도,도대체 어째서...케인은? 케인은 너의 형이잖아!!"
나의 외침에 녀석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한발짝씩 내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이 오는 녀석을 향해 주체할 수 없는 증오를 실어 쏘아보았지만 녀석은 그다
지 상관이 없는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바로 내 앞까지 와서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은빛 머리칼을 가져가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고는 향취를 느끼는 득 했고 비
록 머리칼에 신경이 없어 흔한 감촉조차 느낄 수 없었지만 왠지모를 소름과 오
한, 그리고 나의 증오가 녀석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이거 놔!! 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짓을 벌였지? 여기있는 아이들과 어르신들!... 도데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이리 잔혹하게 생명을 짓밟아 놓는 거냐!!? 네가 뭔데!! 너희같은 개자식들 때문에 부모를 잃고 겨우 맘잡고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는데!... 세상의 모든걸 잃고 아이들만 바라보고 사는 어르신들이었는데!...너희들은...
도데체 왜!......"
난 계속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증오로 가득 차있던 내 가슴은 다시 통제할 수 없
는 슬픔으로 가득찼다. 잠시 증오로 막혔던 눈물이 슬픔의 둑을 넘어 또다시 흘
러내린다.
난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케인의 동생이라는 스타판...스타판...
내 절대 잊지 않으리라...녀석의 눈을 보니 알 수 없는 광기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눈에 맺혀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싫어...너무나 기분이 나쁘며 오싹
하다...
녀석은 굽혔던 다리를 펴고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역겨운 입
술을 열어 비릿한 음성을 나에게 토해낸다.
"내가 누구냐고? 빌어먹을 백성새끼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가이가스의 차기 국왕
이지 크크큭...널 처음본 순간 난 깨달았지...넌 내꺼일 수밖에 없다. 이 나라와
함께 넌 나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크크큭...난 조용히 너만 불러 나의 왕궁으
로 데려가려 했는데...여기 꼬맹이들과 늙은이들이 제법 거센반항을 하잖아? 이
거 공무집행죄에다 황실모독죄까지 해서 나도 눈물을 머금고 즉참형을 행했을 뿐
이라고 크크큭...
어때? 나에게 잘보이면 가이가스의 왕비도 될 수 있다고~? 모든 권력과 부와 명
예를 한꺼번에 쟁취하는 거야! 어때 멋지지 않아? 크크큭...물론 넌 밤에 좀 고생
이 심할 테지만 말야...킥...나에게도...그리고 나의 손님들에게도 말야...큭큭..."
"개자식!...죽여버리겠어......"
내가 전에 살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죽음은 사고사(事故死)나 노사(老死), 아니면
병사(病死)가 대부분이었다. 특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총이나 칼에 의해 죽
음을 당할 수도 있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위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
부분이었다. 누군가의 명령하나로...그것을 아무 꺼리낌 없이 아이들과 어르신들
을 죽여버리는 이곳처럼 지옥같은 곳은 아니었다. 이처럼 슬픈 현실을 내가 안겨
주곤 실실 웃는 스타판이나...스타판 뒤에서 날 더러운 시선으로 꼬나보는 재수없
는 흑기사녀석들을 보며 난 생전 처음으로 살심(殺心)을 느꼈다.
무언가 올라온다...나의 뜨겁게 박동하는 심장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요동치고 무
형의 힘의 배출을 원한다.
무형의 힘이 갑자기 내 심장에서 단전쪽으로 소용돌이치듯 그 기운들이 은빛기류
가 되어 내 주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나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스타판과 저 뒤의 흑기사들이 움찔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했지만...
후훗...늦었어...너희들...모두......
"너희들...모두...미워..."
-콰콰콰콰콰콰콰-
손을 들어올려 내몸에 피어오르는 은빛기류는 나의 의지에 따라 내손으로 뭉쳐
졌다. 그리고 역시 나의 의지에 따라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되어 내앞에 더러
운 오물보다도 못한 녀석들을 날려버린다.
"허어어억~!!!"
"커헉!!"
"크아아악!!"
갖가지 비명들과 함께 녀석들의 반은 나의 은빛기류에 이리저리 날라다니며 신전
이든 숲의 나무든 모두 쓰러져버린 아이들의 놀이터든 아무곳에 내팽개쳐 지고
있다.
이에 녀석들은 고통에 울부짖는 녀석들도 있었고 아예 기절한 녀석들도 있었다.
난 아직 16세의 소녀...살인에 익숙하지도 않고 또 바라지도 않는 나의 깊숙한
마음이 내 은빛기류에 전해져 내눈에 죽은 흑기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훗...너희들도 아프면서...너희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발악하면서...너흰 편하게 삶
을 영위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운좋게 마법사의 도움으로 은빛기류에 휘말리지
않은 스타판과 나머지 개자식들...사이좋게...사라지는 거야...너희들 모두 미운 사
람들이니까...
다시 은빛기류가 스타판을 향하자 녀석은 낭패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제,제길!! 저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런 산골의 신전에 처밖혀 있던거
야!!? 크아악!!!...이봐 스테이샨!? 뭔가 방법이?..."
스타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은빛기류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옆의 스테이샨이란
검은 로브를 걸친 마법사에게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스테이샨 역시 낭패의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이리저리 피하느라 바쁘기만 할뿐 스타판에게 뭐라 할 처
지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
-쿠르르르르릉-
다시 나의 은빛기류에 의해 폭음이 이어졌고 내 주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은
빛기류가 한층더 거세져 이제 지상으로부터 50크로(1크로=1cm)정도 떠올라 나
의 옷깃과 은빛머리칼이 요동치는 은빛기류에 맞춰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
* * *
흑기사와 스타판들은 비록 자신들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녀석이 칼날같은 은빛기류를 마구 쏴대고 있는 린이었지만 현재의 린의 모습은 자신들이 공격당하는 것조차도 잊을 만큼 은빛기류에 둘러싸인 채 너무나 차가워서 아름다운 그녀의 은발과 여신조차 고개를 떨굴 정도로 매혹적인 그녀의 얼굴과 가녀린 몸매에 홀리지 않은 인간은 몇몇 되지 않았다. 이에 스타판의 두눈에서 더욱더 강렬한 소유의 기운이 린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쪽 구석에 조용히 실드를 형성하고 있던 스테이샨은 정신력이 강하고 늙은이에 속했기에 은빛기류에 둘러싸인 린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깐 넋을 잃었지만 그녀의 펄럭거리는 모습에 무언가를 발견한 듯 그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리곤 살짝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며 잠시 후 스테이샨은 멍해있던 스타판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며 그와 동시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한층더 강해진 은빛기류가 내 손에서 저녀석들에게로 쏟아지고 있다. 후훗...하늘
위에있는 나의 착한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모두 속이 원없이 승천할 수 있도록...
너희들을 그냥 두진 않겠어...
다시 손을 들어 이제야 말로 끝을 내기 위해 더많은 은빛기류들이 내손에 뭉쳐지
기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멍청히 서있던 스타판이 내 쪽으로 맹렬히 달려오며
스테이샨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스테이샨!! 지금이다!!!"
스타판의 외침에 스테이샨이라 불린 노마법사는 지금까지 축척해논 모든 마나덩
어리를 한손에 모아 나에게 쏘아 보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지금 달
려오고 있는 스타판에게 신경이 모두 쏠린 상태라 쾌속으로 쏘아진 마나덩어리
를 피할 겨를이 없었다.
'이런!!!...'
낭패의 기색이 역력한 상황 속에서 난 멍하니 절망하고 있었고 거의 코앞까지 다
가온 마나덩어리는 무시무시한 속도와 기운으로 나를 덮치려 할때였다.
나는 스테이샨이 쏘아보낸 마나덩어리와의 충돌로 예상되는 충격과 고통에 미간
을 찡그리며 눈을 꼭 감으려 하는 찰나,
갑자기 나의 가슴에서 푸른빛의 기류가 생성되더니 그 푸른빛이 내게 쏘아진 스
테이샨의 마나덩어리를 모두 흡수하기라도 하는 양 쾌속의 마나덩어리가 내 목에
걸려 있는 아쿠아블린, 케인이 헤어지기 전에 건네준 이 푸른보석의 목걸이에게
로 모두 흡수되었다.
의외로 허망한 사태에 흑기사들은 동그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고 나도 안도
하는 한숨과 함께 다시 끓어오르는 분노로 나의 은빛기류들을 다시 쏘아 올리려
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이럴수가!....."
좀 전까지만 해도 무한의 힘처럼 느껴지던 나의 은빛기류가 지금은 아무리 내가
원하고 소망해도 나의 의지를 벗어나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 안간힘을 써서 끌어
내려할때마다 이 푸른 목걸이가 환하게 빛날 뿐 나의 은빛기류는 모두 침묵했다.
나의 이런 당황하는 모습에 내게 달려오던 스타판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내게
달려들어 쾌속의 일격을 나의 명치에 찔러 넣었다.
아찔한 고통과 함께 나의 시야가 흔들리며 끝내 숨막히는 괴로움과 함께 내 맘
을 표현하기라도 한 듯한 우중충한 무채색의 하늘이 보였다.
'애들아... 휴스틴,케인, 그리고 어르신들...미안...미안해...'
그렇게 난 용서받을 수 없는 용서를 갈구하며 의식을 잃어갔다.
전 드레곤 가이가스로 집결!(3)
가이가스의 수도 펠브리튼...
관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황성이 그 당당한 위용
을 뽐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엊그제의 우중충한 날씨가 거짓말같이 눈부신 햇살
과 함께 지상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허나 이 따스한 햇살도 사물에 의해
가려진 그림자까지 비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황성의 후문쪽으로 은밀히 이어진 관도를 따라 황가의 문장이 화려하게 새겨진
6두마차가 4,50명의 흑기사들과 함께 황성으로 입궐하고 있었다. 황성에 입궐한
마차와 기사들은 맨 앞줄에서 대장인듯한 흑기사가 손을 저어 제스쳐를 취하자
나머지 흑기사들은 마차와 대장을 향해 경례를 붙이고 각각의 배치된 연무장으
로 뿔뿔히 흩어졌다.
기사들이 흩어지자 남은 흑기사들의 대장은 황가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열려진 문에선 검은 색 로브를 걸친 노마법사가 먼저 내렸고
그 다음은 검푸른 머리에 화려한 보석이 박힌 보검을 차고 있는 대략 19살정도
의 청년이 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붉은빛의 은발과 이세상사람이 아닌
듯 한 청초하면서도 어딘가 신비스러운 소녀를 안고서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었
다.
그 아름다운 여인...아니 소녀는 바로 린이었다. 린은 의식을 잃은 듯
원수같은 스타판에게 안겨 있는데도 반항한번 하지 못한 채 짙은 속눈썹의 아름
다운 눈커풀은 열려질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검은색 로브의 노마법사 스테이샨은 린에게 걸은 슬립마법을
해제한 후 스타판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고 흑기사단장역
시 제 2왕자파답게 스타판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절도있게 사라졌다.
드디어 둘밖에 남지 않은 스타판은 흥분이 되는지 연신 듣기싫은 기괴한 웃음을
날리며 린을 들쳐업고 황성 뒷뜰의 세워진 탑에 은밀히 이어진 통로를 통해 자신
의 거처인 제 2왕자궁, 로르트롬궁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자신이 황성에 오기전 흑기사단장에게 자신의 궁에 모든 시녀들과 인부들을 궁
밖으로 내보냈으니 자신을 방해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 * *
어두운 곳...이제서야 익숙해진 자신의 하얀손과 은빛의 머리칼...허나 지금은 이
공간이 너무도 어두워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
'세빈,재린,아슈즈,유네스빈,세이아,자티양,프로세인...휴스틴...어르신들...그리고
케인...
내 사랑스런 아이들과 나의 가족같은 친절한 사람들을 잃었다. 충분히 수상할 법
도 한 나를 아무런 스스럼없이 대해주던 착한 사람들...이제는 그 사람들을 다시
는 볼수도, 만날수도 없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정답은 명쾌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마차가 멈추고 내가 누군가에게 안겨 어디론가 이동되
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 이 소름끼치는 기분...알 수 없는 오한과 증오가 피어
나는 걸로 보아 날 안고 있는 자식은 스타판일 것 같다. 지금은 너무 힘들다...너
무나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다시 의식이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잠식되는 것을
느꼈다.
-스윽....스윽....-
"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의 의식이 점점 선명
해지고 온몸의 신경도 예민해져 있을 때 난 알 수 없는 외부의 접촉으로 눈을
떳다. 의식이 들자 느껴진 건 부자연스러운 팔과 다리...내 팔목에는 투박한 모양
의 금빛팔찌가 차여있었다. 내 엉덩이에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으로 보아 여긴 침
대가 분명했다. 난 침대 왼쪽가에서 등에 커다란 쿠션을 베고 앉아 있는 형태였
고 나의 두팔은 팔찌가 차여진 손목부터 시작해 천장까지 이어진 밧줄에 묶여 두
손을 어깨보다 더 넓게 벌리고 손을 천장을 향해 들어올린 포즈였고 나의 다리
는 나의 치부가 훤히 보이도록 발목에 묶여진 밧줄이 양쪽 가에 솟아난 침대기둥
에 묶여져 여자에겐 가장 부끄럽고 치욕스런 포즈가 되있는 걸 알수 있었다. 난
깜짝놀라 이런 부끄러운 포즈를 어떻게든 제대로 잡아보려 했지만 투박하고 질
긴 밧줄에 의해 난 꼼짝도 할 수 없이 두손은 천장을 향해 들고 있었고 나의 두
다리는 양쪽으로 침대기둥에 묶여진 밧줄에 의해 활짝 벌리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양쪽 어깨에 리본형식으로 묶여진 속
이 비치는 잠옷형태의 원피스였고 속옷은 모두 벗겨 있었다. 그리고 아쿠아블린
...내 목에는 아직도 아쿠아블린이 걸려 있었다. 어째서 그가 아쿠아블린을 내버
려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케인이 내게 맡긴 아쿠아블린이 아직도 네게 있어 지금
이상황에서 유일하게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시...싫어..."
이런 치욕스런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더욱이 그 사람이 증오해 마다않는 스타판이라면...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침대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음흉한 얼굴을 하
고 있는 스타판이 내앞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난 그런 스타판을 보자 발
작이라도 난 사람처럼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외쳤다.
"이 개자식!! 이거 당장 풀어 이자식아! 네가 그렇고도 인간이며 왕자란 말야?? "
"후훗....입이 거칠군...재갈을 물려놀 걸 그랬나? 크큭..."
녀석은 나의 외침에 별 반응없이 비릿하게 웃어넘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서서
히 내 얼굴에서 그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나의 다리사이로 시선이 고정되고는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싫어...죽고싶어. 제발 그런 추잡하고 역겨운 눈으로 보지마...누구라도 도와줘...
제발...저런 녀석에게 내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난 살아갈 수 없어...그냥 죽어버릴
꺼야!!...
난 최대한 다리를 오므리려 노력했으나 튼튼한 밧줄이 나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
았고 스타판은 점점 나에게 다가와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몸을 이곳저곳을 탐하
기 시작했다.
아...이 소름끼치는 기분...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난 알고 있었다.
꿈많은 사춘기 소녀라면 당연히 관심이 한번쯤 가는 이성과의 성관계...물론 난
꿈많은 소녀였기 때문에 나의 상상에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런 관계를
맺으면 상큼한 오랜지맛과 함께 황홀한 기분을 느낄거라고 한번쯤 소녀다운 상상
의 나래를 펼친적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의 행복을
빼앗아간 증오스럽고 저주스런 남자다. 온몸이 끔찍한 독사 수천마리가 기어다니
는 기괴하고도 음침하고 끔찍스런 기분이었고 그의 손이 나의 흰 살결을 지나칠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괴로움에 미쳐 울부짖고 있었다.
그 추악하고 더러운 손이 어느덧 나의 목 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 제발...누구라
도 좋아...이 순간을 넘길수 있도록 도와줘...제발...흑...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래
...어차피 난 혼자잖아? 내가 지금 이세계에서 없어져봤자 슬퍼할 사람이 누가 있.
을까...? 아무도...아무...
'먼저가서 기다릴께...사랑해 엘테미아...'
삶을 포기하려 할때 문득 어디선가 아련한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현재 스타판
에 의해 나의 감각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가슴에 울화가 터져 내 심장을 터트
리려 하고 있었고 먹은 것이 없지만 역겨운 기분에 자꾸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오르락거리고 있었다. 최악의 상태인 내 안에 울리는 하나의 감미로운 목소리...
왜...지금에서야...
이 신비의 대륙에 오기전 예림이가 내게 했던말...먼저가서 기다리겠다는말...난
예림이를 찾아야한다. 아직 죽을수 없다...하지만...지금 현재 모든 걸 버리고 죽고
싶다...제발...아무라도 좋아...도와줘...제발...도와줘...도와줘......
혼자서 지금 이 최악의 상태를 잊어보려 노력하고 있을 때 내 목에서 걸린 목
걸이...케인이 내게 맡긴 아쿠아블린이 어느새 스타판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크크큭...케인형...정말 고마운 인간이야...죽어서도 동생을 위해 아쿠아블린을 너
에게 쥐어주다니...크큭...이 아쿠아블린이 뭔지 아나? 이 아쿠아블린은 아무것도
못하는 등신같은 왕족들을 위해 자신의 기척을 지워줌과 동시에 대량의 마나를
주입하면 이 목걸이 스스로 결계를 만들어 자신의 마나는 물론 외부의 마나에 의
한 마법공격도 무효화시키는 역할을 하지...자신도 마나를 쓰지 못하고 외부의 마
나에 의한 마법도 소멸시키는 왕족들을 위한 도구...크크큭...정말 아무것도 못하
는 등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황태자의 표식이랄까?"
녀석의 말에 난 깜짝놀라 외쳤다.
"그,그러다면 그때 내 힘이 갑자기 사라진것도!!......"
"크큭...머리가 좋군 그래! 맞았어 그때 스테이샨이 날린 마나덩어리를 아쿠아블
린이 흡수해서 네 주위로 결계가 발동한 거지...그래서 네 힘이 봉인당하고 넌 아
무힘도 쓸 수 없는 보통의 여자가 된거라구...크크큭!"
녀석은 정말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내 목에 걸린 아쿠아블린을 거칠게 잡아당겼
다. 의외로 목걸이는 내 목에서 쉽게 풀려졌고 녀석은 잠시 목걸이를 주시하더
니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크큭...힘을 모으려고 쓸데없이 애쓰지는 말도록. 너의 팔에 차여진 팔찌는 마나
를 봉쇄하는 팔찌니까...크하하하!! 이 황태자의 표식! 아쿠아블린만 있다면 이제
내가 국왕이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 크하하하! 이 아쿠아블린도! 이 가이가스
란 왕국도!! 그리고 아름다운 네년도! 모두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이
다! 크하하하하하!"
녀석은 미친 듯이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고 나는 녀석의 말에 힘을 모아보려 했지
만 역시 모아지지 않았다. 다시 절망의 눈물이 내 눈에서 볼을 타고 또르륵 흘려
내렸고 난 간절히 소망했다.
'제발......누군가가 도와줘...제발...'
린은 그렇게 그 어딘가의 누구를 향해 확률없는 도움을 청했고 스타판은 모든 것을 자신이 쟁취한 사실에 도취되어 커다란 광소를 내뱉고 있었다. 허나...스타판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이가스의 황성주위엔 대자연도 존재하지 않았고 린의 기척을 지워버리던 아쿠아블린도 이미 그녀에게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그녀의 기운이...그녀이 간절하고도 슬픈 감정의 폭출이...이슈테리아 대륙 전체에
폭주하고 있는 전 드래곤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크르르르..."
전 드레곤 가이가스로 집결!(4)
지금의 내겐 죽고싶다는 감정뿐이었다. 지금 이순간 증오해 마다않는 남자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죽음의 끝에서 예림이의 한마디가 나를
삶의 한구석으로 내보내려 하고 있지만 현재 내 눈앞에서 독사같은 음침한 눈으로
자신의 옷을 하나씩 끌르고 있는 스타판을 보니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증오 그리
고 삶에 대한 회한이 든다.
'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
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
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
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
속으로 수천번을 수도없이 외쳐봤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세계에서 나의
존재를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들은 얼마전 내앞에서 새빨개진 눈으로 자신을 추
잡한 시선으로 보고있는 남자...스타판에 의해 모두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는걸...
지금껏 살면서 남자의 알몸은 처음보는 것인만큼 두근거릴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두려움과 증오뿐이다. 나를 무력하게 당하도록 만든 스타판과 지금상황에서 무기
력한 자신에 대한 증오뿐...나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져간다...그는 옷을 다 벗
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그리고 손을 뻣어 내몸을 탐한다. 점점더 삶에서 멀
어져가는 난 내 살결에 닿는 그 꺼름칙하고 기괴한 느낌에 마지막 발악을 외친다.
"저리가!! 싫어~~~!!!!"
이슈테리아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가이가스왕국의 수도 펠브리튼의 황성에서 처연하고도 가련한 드래곤피어가 맑은 하늘에 청량하게 울려퍼진다.
* * *
내이름은 티디엠...난 7살먹은 어린소녀다. 난 엄마와 함께 가이가스의 변두리 마
을인 로롱턴의 에메세른산 중턱에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언제나 엄마와 함
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고 지금도 어머니는 나를 위해 점심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
는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산속에 지어진 우리들의 오두막근처에서 약초를 캐고
있었다.
약초를 캐고있던 나는 태양으로 인해 환했던 주변이 거대한 그림자에 휩싸이자
놀란눈으로 태양을 가리고 있는 그 무엇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눈을 비
비며 한참을 태양을 가린 그 거대하고 붉은 존재를 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위대
한 존재를 보게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약초를 뿌리치고 잽싸게 오두막으로 달려
가 스튜를 끓이고 계시던 엄마에게 외쳤다.
" 엄마!~엄마~ 나 봤어요! 봤다구요!!"
나의 두서없는 말에 엄마는 잠시 의문의 표정을 짓다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로 내
게 말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티디엠 무엇을 보았지?"
"엄마!! 나 드래곤님을 봤어요!! 엄청나게 커다란 붉은 드래곤님이라구요~"
"풋~"
티디엠의 엄마인 로세이샴은 전설에나 나올법한 드래곤을 보았다는 딸의 말에 피
식 웃고는 귀여운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로세이샴의 귀여운 딸인 티디엠
은 자신의 말을 엄마가 믿어주지 안자 뾰로통한 표정으로 로세이샴을 올려다봤
다. 로세이샴은 알고있었다. 여기서 딸의 주장을 무시하면 어린 딸은 상처를 받
을 것이고 어린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란다는 말에 로세이샴은 딸의 머릴 쓰다듬
으며 말했다.
"후훗...나도 살아생전 본적이 없는데 우리 티디엠은 굉장한 드래곤님을 보았구
나? 이거 엄마가 샘나는데? 근데 티디엠..."
티디엠의 어머니인 로세이샴은 환상과 현실의 차이를 다른쪽으로 우회시켜 딸에
게 가르치려 했으나 그녀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사방이 밤이 된 듯 어둠
에 휩싸이고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이 미세한 진동에 떨고 있었다. 로세이샴은
이 알 수 없는 사태에 불안감과 호기심을 느껴 딸아이를 품에 앉고 급히 밖으로
나와 하늘을 주시했다.
"이...이럴수가..."
로세이샴은 방금 자신이 본 것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딸아이가 붉은색 드
래곤을 보았다는 말을 자신에게 할때만 해도 어린아이의 꿈에서나 나올법한 일
로 치부해 믿어주는 척 하면서 속으론 부정하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올려다본
하늘에는 커다란 태양을 가리고 있는 육중한 몸과 거대하고 웅장한 두쌍의 날개
를 퍼덕이며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또 하나의 검은 드래곤이 보였던 것이다. 그
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채 몇분이 지나지 않자 또다시 창공을 가르는 공기의
파열음이 뒤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푸른비늘을 가진 거대한 드래곤
과 그보다 약간 작아 보이는 드래곤은 햇빛을 받아 흰색의 비늘이 찬란하게 빛나
는 아름다운 드래곤이 다시 자신과 딸의 머리위로 자신들에게 날카로운 공기압
을 선사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드래곤들이 쏜살같이 날아간 방향을 보며 로세이샴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 그곳은 수도 펠브리튼쪽인데..."
휴벤트제국의 북부에 위치한 드레이크 백작가의 영지인 샤트락스는 발달된 항구
와 무역에 이로운 황금의 해로를 확보해 대륙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번창한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항구에서 일하는 어부들과 여행자들로 언제나 북적였던 샤
트락스는 오로지 뜨거운 불길만이 치솟고 있었고 샤트락스의 영지민들과 여행자
들은 갑작스레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레드드래곤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가기
바빴다. 허나 모두가 떠나갈 때 자신의 영지를 버리고 갈수 없다며 자신의 저택
에 홀로 남은 드레이크가의 가주(家主) 드레이크 드 훼르텐백작은 자신의 저택
에 펼쳐진 정원이 현재 레드드래곤에 의해 무참히 밟혀지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
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백작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레드드레곤
은 백작의 저택을 향해 갑자기 숨을 들이마쉬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동안 숨
을 들이 마쉬던 드래곤은 저택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그의 입주위가 환하게 빛
나기 시작했다.
'이젠 끝이군...'
드레이크백작은 자신이 여지껏 다스려온 영지와 그간 함께했던 가족들...모두가
죽음직전에 떠올린다는 아련한 추억의 주마등을 겪었다. 이 위대하고 강력한 드
래곤앞에서 이제 기정사실이 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결정타가 드레곤의
아가리에서 뿜어질 찰나...
아무리 기다려도 온 대지를 녹여버릴 레드드래곤의 브레스가 자신을 덮치지 않
자 드레이크 백작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곤 레드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드드래곤은 들이마셨던 숨을 급하게 허공에 뿜어내고는 거대한 두 날개를 펼
쳐 들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정원에 수많은 공기의 칼날을 만들어내며 창공을 향
해 수백미터까지 올라간 레드드래곤은 태양빛보다 강렬한 빛을 사방으로 뿌리며
어디론가 공간이동 되어 사라졌다.
의외의 사태에 어리둥절하던 드레이크 백작은 멍하니 있다가 한마디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는...살아있는 건가......?"
이슈테리아 대륙의 남동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태초의 산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
을만큼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드래곤의 산맥'이 있었다. 현재 드래곤의 산
맥 주위에 넓게 펼쳐진 평원은 하늘을 더럽히는 검은 연기와 각종 폭발이 난무하
는 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었다.
전 대륙에서 갑자기 자신을 덮쳐오는 감당치 못할 감정에 휩쓸려 이지를 잃고 폭
주하는 드래곤들을 막기 위해 다헬론,가드레일,페트리샤,액시드옥션,티제이븐은
각 일족의 수장의 의무로써 자신들의 연륜과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폭주하는 드
래곤들을 철저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허나 처음엔 몇기의 드래곤들만이 폭주의
상태로 대륙을 파괴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드래곤의 수는 점점더 많
아졌고 자신들의 가슴속에 울리는 엘테미아의 슬픈음성이 더더욱 힘들게 했다.
아무리 강력한 고룡들이라 하더라도 겨우 다섯이서 수많은 일족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 이런 미친새끼들아!! 지상 최강의 마법종족의 프라이드는 어따 내팽개치고 이따
위 개지랄을 떠는거냐?!"
폭주하는 드래곤들을 막아서면서 힘이 부치는지 이를 악물고 있던 액시드옥션은
마인드컨트롤도 제대로 못하는 일족을 향해 분노의 일갈을 퍼붓고 있었다. 허나
액시드옥션은 알고 있었다. 우리일족에게 쏟아지고 있는 이 감정들이 얼마나 거
부하기 힘든 생소한 감정인지를...자신조차 지금 엘테미아의 구슬픈 도움의 외침
에 모든것을 때려치고 그녀가 있는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허나 그는 알수 없
었다. 엘테미아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를...그리고 그의 심정은 다른 드래곤들
도 마찬가지 였다.
"제길...엘테미아!!! 고작 늙은이 주제에...너의 존재가 무엇이길래!!........"
액시드옥션이 지금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인 엘테미아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는 찰나
였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던 다른 일족의 수장들...가
드레일,페트리샤,티제이븐,다헬론...그리고 엘테미아의 감정에 못이긴 채 이지를
잃었던 폭주하는 드래곤들까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드래곤들은 일제히 침
묵과 함께 발광하던 짓도...그 발광을 저지하는 일도...모두 멈춰버렸다.
-스스스스스스스-
드래곤의 브레스와 각종 궁극마법등의 난무로 초록물결이 넘실거렸던 드넓은 평
원은 이미 황무지가 되버린 저주의 땅이 되어 있었다. 저주의 땅에 스산한 바람
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드래곤들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거대한 날개를 펴고 창공으로 떠올랐다. 일
족의 수장들도...폭주하던 드래곤들도...모두들 창공으로 떠올라 한마디의 말도 없
이 눈부신 하얀빛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지옥의 아수
라장을 방불케 했던 평원은 을씨년한 바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 드레곤 가이가스로 집결(5)
로드와 에셀리드민은 필란트공국의 산골짜기신전에서 느꼈던 엘테미아의 채취를 통해 그 기운을 정령들에게 각인시켜 필란트 공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샅샅히 뒤지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바람이 가지 못하는곳이 없는 만큼 바람의 정령 실프가 엘테미아를 찾지 못할 리가 없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엘테미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령이 이틀동안 샅샅히 수색했지만 지금까지 못찾았다는 것은...
'필란트 공국에 엘테미아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허탈해진 로드와 에셀리드민은 자신들의 정령을 모두 불러들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흐흑...엘테미아님은 어디계신거야~~우아아아앙"
10살정도의 은발의 소녀, 에셀리드민은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로드에게 울고불며 투정부렸다. 로드도 자신이 예상한 필란트공국에서 엘테미아를 찾지 못하자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휴...한시라도 빨리 엘테미아님을 찾아야해...오늘 오후부터 시작된 엘테미아님의 감정이 범상치 않아...터질듯한 두려움에 떨고있어...불쌍하신분...어떤 개자식이 감히 엘테미아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건지..."
-뿌드득-
17세정도로 되보이는 백금발의 아름다운소녀에게서 나올법하지 않은 분노의 이갈림소리가 아름다운 로드의 이빨을 통해 소리나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구슬프고도 아릿한 슬픔의 외침이...두려움에 떨고있는 외침이... 수천번이나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가련한 엘테미아의 외침이...자꾸 자신의 드래곤하트를 옭아매고 있었다.
엘테미아님이 위기에 처해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드는 홧김에 자신의 브레스로 필란트공국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지혜의 금빛종족의 수장이란 자리는 그냥얻은 자리가 아니었다. 좀전부터 에셀리드민은 계속 한방울씩 눈물을 떨구고 있었고 전 대륙에 있는 모든 드레곤들이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기분을 느낄거라고 로드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테미아님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공포를 느끼실때...과연 로드는 자신이 그런 아픔을 겪고도 살아나갈 자신이 도저히 생기질 않았다. 이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드레곤 전 종족의 사활이 달린 문제로 대두되었다.
"아,안돼!!!!"
갑자기 에셀리드민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소리쳤다. 로드는 에셀리드민이 갑자기 자신 앞에서 울며 소리쳤지만 그 이유를 로드는 묻지 않았다. 자신도...너무나 잘알고 있었기에...
오후부터 계속 들려온 엘테미아님의 아릿한 도움의 외침이 어느 한순간에 끊어졌다. 불안했고 또 불길했다.
'제발...엘테미아님...무사히 계셔만 주세요...'
로드는 빌고 또 빌었다. 계속되던 외침이 들리지 않자 로드는 자신의 드래곤하트가 부서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오한이 자신의 온몸을 휘젓고 있었다. 로드는 느낄수 있었다. 엘테미아가 하나씩...하나씩 포기해 가고 있단걸...그녀의 삶도...꿈도...희망도...모두 버리고 있었다. 결국 포기의 끝은....
'죽음...'
로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단어가 떠오르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자신마저 포기하면 안된다. 지금 다른곳에서는 가드레일,다헬론,티제이븐,액시드옥션,페트리샤...이들 모두 가슴에 슬픔을 앉고서도 자신의 일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힘내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로드는 다시 머리를 재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필란트공국에서 엘테미아님을 실프가 찾지 못했다면...대략 예상되는 국가는 로슈레인...휴벤트...마지막으로 가이가스...위치상으로 로슈레인이 가장 가깝고 또한 휴벤트도 그리 멀지않아...하지만...공국의 남쪽 끝에 있는 브람스강을 건넌다면...가이가스....'
로드는 시간도 촉박하고 오후부터 계속 들려오던 엘테미아의 도움을 요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없이 여기서 에셀리드민과 갈라져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로드는 고개를 돌려 굵은 눈물을 구슬프게 뚝뚝흘리며 울고있는 에셀리드민에게 말했다.
"에셀리드민!! 그렇게 울지 말고 넌 지금 당장 로슈레인으로 가! 난 휴벤트로 가서 엘테미아님을 찾아볼테니까! 시간이 없어! 에셀!..."
그렇나 로드는 에셀리드민의 이름전부를 부르지 못했다. 가슴속 깊은곳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엘테미아의 목소리...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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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신공 케케케케!!
첫댓글 절단 하지마1!!!!!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