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비가 꼭 와야 할까요?
- <살인의 추억> 경남 사천 촬영현장
109번 신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클라이맥스라고 했다. 궁금해서 시나리오를 들춰봤다. 영화의 막바지, 두 형사가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 박현규에게 린치를 가하며 자백을 받아내기 일보 직전이다. 과연
중요해 보인다. 꼭두새벽부터 4시간을 달려 경상남도 땅 끝 사천읍 죽봉마을 촬영장에 도착한 게 오전 10시 30분. 억수같이 퍼붓는 비. 이상하다. 분명히 하늘은 쾌청한데….
“하아∼ 도끼로 머리를 찍어대는 것 같구만”
“내가 그랬거든. 젊은 놈들이 뭘 이 정도 갖고 그래?” 25m 크레인 위에서 뿜어낸 물이 제 머리에 쏟아져내리기 전만 해도 송강호는 그러면서 웃었다. 앞서 이틀간 촬영에서 다른 두 배우가 흠뻑 젖어 내뱉은 신음이 괜한 엄살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50w 대형 열풍기 앞에 선 그는 내내 입을 다물었다.
다른 때처럼 제 연기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어
보인다. 하긴 도끼로 머리를 찍어대는 고통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조금 전 따뜻한 난로가 있는 컨테이너 안 소파에 앉아 자기가 연기하는 형사 박두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뭔가 생각이 많던 그다.
“자기의 직감, 그거 하나만 믿고 수사하는 경찰입니다. 그러다 결국 이 사건으로 지
한계에 부딪쳐버린 인간이죠.” 마침내 박두만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109번
클라이맥스 신. 송강호의 인내심도 한계에 부딪혀버렸다. 웬만큼 추워야 연기고 나발이고 할 게 아닌가. 이게 무슨 북극곰 수영 대회도 아니고 말이야. 성능 좋은 열풍기
덕에 잔뜩 얼어붙었던 몸뚱이가 빠르게 해동된다. 시골 형사처럼 보이려고 8kg이나
찌웠다는 뱃살, 슬그머니 허리띠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래도 박해일은 억울하다. 어느 어르신께서 TV 뉴스 카메라에 대고 “1·4 후퇴 이후 이렇게 추운 건 처음이야” 하며 고개를 내저은 지난 이틀의 기록적인 혹한. 영화
20도에 육박하는 날씨라지만 허허벌판 죽봉마을 경전선 철로 위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가 우스울 정도다. 여기에 사천읍 소방서에서 직접 공수해 쉴새없이 뿌려대는 물을 뒤집어썼다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할까. 거짓말 아주 약간만 보태면 살수차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잠깐 사이 꽁꽁 얼어붙은 물줄기를 박해일은 가장 먼저 맞고
또 가장 많이 맞았다. “물 맞았어요? 어때요? 차죠?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니까.”
아직도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송강호 옆에서 박해일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춥다 한들 앞서 이틀간 자기가 겪은 풍상에는 못 미칠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사천 촬영 사흘째인 오늘도 박해일은 선배들보다 먼저 빗속으로 내던져졌다. 가슴을
19번 난자당하고 음부에 모나미 볼펜과 포크가 꽂힌 채 살해당한 여중생 시체가 발견된 날, 이성을 잃은 형사 서태윤(김상경)과 박두만에게 쫓기던 용의자 박현규(박해일)은 이곳 철로 위에 가로눕는 것이다. 관객들조차 박현규과 진범일 거라는 심증을 굳혀가던 무렵, “빗물인지 눈물인지, 물기가 그렁그렁하는 눈빛”과 “울음이 복받치는지 들썩이는 어깨”만으로 모두를 헷갈리게 만들어야 하는 장면. 사천 촬영 분량에서
박해일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고 그러니 더 많은 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첫날, 매서운 추위와 싸우느라 하루 종일 2컷밖에 찍지 못했다. 둘째 날에 7컷
찍었다. 갈 길이 멀다. 특히 어렵게 기차를 섭외했으니 예정한 분량을 반드시 다 찍어야 한다. 다섯 량짜리 무궁화호 열차 하루 빌리는 데 1천만 원이라니. 다 못 찍고 또 부르면 그게 다 돈이련만. 수갑을 찬 박해일이 달려오는 기차를 피해 몸을 날리는 37번
컷 하나에만 벌써 한 시간째다. 기차와 배우가 타이밍을 맞추느라 허비한 시간도 시간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철길을 뒤덮어버리는 얼음 녹이다 시간 다 간다. 아무래도
제 스케줄대로 찍기는 오늘도 글러먹은 듯하다.
“구로사와, 펠리니, 다 지옥불에 있다니까”
서울 형사 서태윤을 연기하는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이 두번째 영화다. 그런데도 마치 데뷔작을 찍는 배우처럼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캐스팅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보여주는 게 참 신기(?)했다. <생활의 발견> 때는 보여줄 시나리오가 아예 없다고 했는데. 봉준호 감독이 손수 그린 예쁜 콘티는 더욱 감동이다. 홍상수 감독이야 콘티 같은 거 안 키우는 걸로 유명하다. 러시 필름을 보러가자고 할 때는 문화적
충격마저 느꼈다. "러시? 바쁘게 달려갈 일 있나?" 다들 유머려니, 웃어 넘겼지만 김상경은 진지했다. 가장 믿기 어려운 일은 술 마시는 장면을 찍을 때 일어났다.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니. 아니 그러고서 어떻게 술 취한 연기를 한담? 결국 김상경은 진짜
술을 퍼 마셨다. 이게 다 워낙 남다른 영화를 데뷔작으로 선택한 원죄지 뭐, 아무 소리
안 하고 5개월을 버텼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천읍 소방서 물에 젖은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남다르기로 치면 이 영화도 만만치 않은 것만 같다. 영하 20도에 하루 종일 찬물을 뿌려대는 것부터가 도무지 남과 같지 않은 짓 아닌가.
“감독님, 그날 비가 꼭 와야 할까요? 비가 오다가 갰을 수도 있잖아요.” 12월 한 달
동안 양수리 촬영소에서 세트 촬영에 매진하면서도 김상경은 늘 오늘의 이 촬영, 109번 클라이맥스 신을 걱정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실제 범인이 비 오는 날 빨간 옷
입은 여자만 골라 범행을 저지른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굳이 범행 다음날까지
비가 내릴 필요가 있겠냐는 게 김상경의 애교 섞인 주장, 아니 소망이었다. 그러나 봉감독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감독 중에 천당 간 사람 없어. 구로사와 아키라, 페데리코 펠리니, 지금 죄 지옥불에서 타고 있다니까.” 배우를 괴롭혀 지옥에 가더라고 비를 뿌려대겠다는 데야 더이상 할말도 없다. 게다가 감독의 독기를 자극한 건
어쩌면 김상경 자신일지도 모르니.
지난해 8월 12일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천도제를 지낸
날이었다. 천도제는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실제 화성 사건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이
마음에 걸린다던 감독이 고심 끝에 마련한 자리였다. 무사히 천도제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던 감독과 출연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배우들이 기어코 사건 현장에
가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화성에서 찍는 장면이 하나도 없으니 따로 가서 보기라도 해야 느낌이 살 것
같다는 논리였다. 그 시각이 밤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결국 일행은 실제로 86년 9월
15일 1차 희생자 이완임 사건을 필두로 91년 4월 3일 10차 희생자 권순상 사건까지
10여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경기도 화성군 사건 현장을 둘러봤다. 시체가
발견된 배수관을 들여다보며 배우들은 지금도 대한민국 어느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진범의 당시 행적, 그 ‘살인의 추억’을 공유하려 애썼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상하게 그날도 비가 왔다.
배우들이 이렇게까지 열성을 보이는 데야 내가 감독이라도 감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꼭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테고 배우들이 자신을 믿고 따라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한 겨울에 비? 까짓 거 오밤중에 살해 현장을 찾아간 배짱이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이젠 모든 걸 체념한 김상경이 차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송강호는 박해일의 관자놀이를 쥐고 흔드는 35번 컷을 찍고 있다. 비를 너무 세차게 뿌려서 NG, 중천에 떠오른 햇빛 때문에 NG, 지나가는 기차 속도가 안 맞아서 또 NG…. 흠뻑 젖은 두
사람이 오들오들 떨며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손오공을 따라다니는 비구름처럼 배우들 머리 위에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을 때 김상경은 얼마 전 홍상수 감독과 통화한 내용을 들려줬다.
“아직도 찍고 있니?” “네.” “뭘 그렇게 오래 찍어?” “이 영화는 감독님 영화랑
달라요. 세트도 있고… 하여간 오래 걸린다니까요.” “아이고, 엄청 대작 찍고들 있나보네. 일만 하지 말고 술 좀 마셔.”
안 그래도 김상경은 비 맞는 촬영 때마다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고 있다. 빌어먹을 범인이 비 오는 날만 골라 범행을 저질렀으니 비 신이 빠질 리는 없고, 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동원한 다양한 민간 요법의 일환이었다. 삼겹살을 먹으면 위장이 활발하게 운동하면서 덜 춥다는 정두홍 무술감독의 충고도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살수차로 비를 뿌리는 와중에 촬영장 한켠에서는 삼겹살을 굽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물에 젖은 삼겹살을 먹으며 인생을 논하고 얼어버린 삼겹살을 씹으며 공포의 삼겹살이란 이런 것이구나 깨달음도 얻었다. 예상치 못한 ‘(식)생활의 발견’이었다.
농촌 스릴러의 국토대장정
경상도에서 학교를 나와 부산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한 송강호가 평생 전라도에 갈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하면서부터는 되려 전라도를 벗어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몸을 담근 순창의 개울이 전라도였다.
<살인의 추억>은 지난해 8월 27일 전남 장성군에서 첫 필름을 돌렸다. 80년대 농촌
풍경을 비교적 온전하게 간직한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봉감독은 이 영화를
“농촌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용어로 부른다. 따라서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참혹하고 미스터리한 연쇄 살인 사건과 어울리지 않게 그 시절 농촌의 무료하고 지리멸렬한 풍경이어야 했다. 그러나 “도시의 뒷골목이 아니라 파란 논 위에서 무심하게 발견되는 시체”들을 표현하기가 그토록 힘들 줄은 미처 몰랐다. 촬영 장소를 물색해놓고
막상 촬영하러 갔더니 그새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는 통에 부랴부랴 다른 촬영지를 물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도무지 한 장소에서 한두 신 이상의 그림을 얻을 수가 없었다. 옆 동네로, 다시 그 옆 동네로 논이며 야산이며 농가를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전라도 행정 구역은 거의 다 주름잡았다.
장소를 해결했다 싶으면 이번엔 계절이 문제였다. 애당초 봉감독이 생각한 배경은 “벼가 출렁이는 가을”. 익은 벼가 고개를 숙여 논두렁의 시체를 무심히 굽어살피는 정도의 계절을 포착해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전라도의 추수가 빨랐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감독의 연출 의도를 집약적으로 제시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오프닝 장면(형사 박두만이 경운기를 타고 등장하는 문제의 장면!)을 아직 못 찍은 상태였다. 행여 추수가 끝나버릴까 전전긍긍. 다행히 전남 부안군 계화면 어느 추수 직전의 논이
제작진을 살렸다. 여름이다 싶었더니 어느새 가을이고 가을이다 싶었더니 어느새 겨울. 제작진에게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배우들의 살수차만큼이나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이날 클라이맥스를 촬영한 경상남도 사천은 <살인의 추억>에서 유일한 경상도 로케이션이다. 하루 온종일 물 뿌리며 촬영해도 될 만큼 왕래가 드문 기찻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이 곳은 1주일에 한두 번 인근 공군 기지로 들어가는 화물 열차 외에는 오가는 열차가 없다. 이로써 <살인의 추억>은 제주도만 빼고 남한의 모든 행정 구역에서 촬영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곳 사천 촬영현장이 경상남도의
삼랑진과 전라남도 송정리를 동서로 잇는 경전선의 지선에 해당하는 기찻길이다. 그러므로 109번 신은 영화의 내용적 클라이맥스일 뿐만 아니라 지난 5개월여 동안 영호남을 넘나들었던 파란만장한 유랑의 궤적을 압축하고 있는, 공간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것이다.
아까부터 송강호는 김상경을 세번째 메다꽂고 있다. 박현규가 진범임을 확신하고 사살하려는 서태윤과 확신이 서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박두만이 실랑이를 벌이다 달려오는 기차를 피해 몸을 던지는 109번 신 36번 컷. 송강호가 김상경을 밀치는 설정인데
아무리 매트리스를 깔았다 해도 조금만 벗어나면 날카로운 암석이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때 박해일은 이들과 반대쪽 방향으로 몸을 날려야 한다. 세 사람의 호흡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기차를 등지고
서 있는 박해일의 목숨은 전적으로 송강호의 손에 달려 있다.
“박두만이가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해. 안 그러면 큰일 난다고.”(봉준호 감독) “글쎄,
뭐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잘 안 될 수도 있지. 핫핫핫.”(송강호) “ ^^;; ”(박해일)
모두들 송강호의 농담이 단지 농담으로 그치길 바라면서(누구보다 박해일이 그것을
바라면서!) 다섯번째 테이크가 시작됐다. 아까보다 더 많은 비가 뿌려지고 박해일은
울먹이고 기차는 출발했다. 망원 렌즈로 당겨 잡아 찍으므로 화면상으로는 실제 기차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기차가 그다지 빠르게 달려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속 물을 뿌려댄 철로 바닥은 이미 반질반질하게 얼어버린 상황.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클라이맥스고 뭐고 “이 영화를 故박해일에게 바칩니다” 크레딧이나 준비해야 한다. 세 사람을 향해 돌진해 오는 4439번 기관차. 어… 어… 일부 스탭의 낮은 신음이 터지는 순간 “비켜!” 감독의 외침과 함께 셋은 동시에 몸을 날린다.
“오케이!” “배우들 옷 갈아입으세요.” 마침내 온종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크랭크인 135일째 82회차 촬영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은 이제 8번의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일주일에 걸친
사천 촬영을 마친 후 군산과 홍성을 거쳐 1월 19일 서울에서 마지막 촬영을 하게 된다. “시골 여자들까지 챙겨줄 여력이 없던” 5공 말기 맹목적 돌진의 시대, 집단적이고 이기적이고 “한 마디로 X 같은 시대”, 엽기적이고 지능적인 범죄 행각으로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그 불구적 미스터리의 이면에서 우스꽝스러운 해프닝과 어처구니없는 인간 군상들을 포착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자칭 농촌
스릴러 <살인의 추억>은, 오는 5월에 개봉한다. 그때가 되면 송강호의 “도끼로 이마를 찍는 것 같은 아픔”과 봉준호 감독이 “정수라의 입을 찢고 싶”을 만큼 다급했던
로케이션의 순간순간들이 모두 낭만적인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한 가지 섬뜩한 사실은 어쩌면 영화가 상영되는 객석 어딘가에 사건의 진범이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당이 시키는대로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는 허수아비를 사건 현장에 세울 정도로 간절했던 당시 경찰들의 바람과 달리, 범인의 사지는 아직 멀쩡할 것이다. 그 옛날 ‘살인의 추억’에 잠겨 지그시 눈을 감을지 모를 그에게 이 영화는 과연 무엇일까. 부디 109번 클라이맥스 신, 울먹이는 박현규를 보며 그 역시 울음을 터뜨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자리에서 확 잡아버리게.
사진 김선태 기자
2003.01.21 / 김세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