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5박 6일간의 연수 3일차 셋째날의 행사 |
견학기간 : 1997년 11월 4일(火)~9일(日)
작 성 자 : 李相卿 (나진 전자월드 이사)
♣ 아침 06시에 기상을 했다. 호텔 30층의 숙소에서 창밖을 내려다 보니, 오늘은 날씨가 아주 淸明하다. 東京都는 그야말로 광활한 平野地帶인데 이 평야에 수 많은 빌딩과 주택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멀리 아득한 곳의 地平線에 희미하나마 작은 山이 하나 보였다.
都心이 온통 凶物스러운 시멘트(빌딩과 고가도로 등)로 뒤덮혀 있는 것이 조금은 답답하다. 군데 군데 푸른 숲이 그나마 보이지 않았다면 정말 못살 것 같은 지역이다.
今日(1997년 11월 6일 목요일)의 主要活動 內譯 시 간 일 정 표 세 부 활 동 내 용 Am 09:00 ■ 호텔을 출발 ▶도보로 지하철 驛까지 이동 Am 10:00 ■ 일본 도시개발협회 도착 ▶지하철로 AKASAKA驛에 도착 Am 11:50∼12:15 ■ 도시개발협회에서 점심식사 ▶도시개발협회에서 중식마련(초밥제공) Pm 12:20 ■ 가와사끼로 출발 ▶도시개발협회에서 Bus 대절 제공 Pm 1:00∼1:30 ■ 가와사끼의 시범단지 견학 ▶동경의 외각지 전원주택 시범단지 Pm 1:34 ■ 항북 뉴타운으로 출발 ▶도시개발협회의 전용Bus로 이동 Pm 2:6∼3:00 ■ 항북 뉴타운일대를 견학 ▶Bus창밖으로 견학 및 중간 하차설명 Pm 3:05 ■ 요꼬하마 ‘녹원도시’로 출발 ▶Bus의 차창으로 全지역을 스케치함 Pm 3:55∼5:20 ■ 신녹원도시 일대를 견학함 ▶전지역의 견학 및 모델하우스 방문 Pm 5:20 ■ 저녁를 위해 ‘신주꾸’로 출발 ▶고속도로와 ‘야간 도심을 관찰함’ Pm 7:05∼8:10 ■ 신주꾸에 도착 저녁식사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송교수님참석) Pm 8:30∼9:30 ■ Show관람 ▶환락의 도시가 어떤 곳인가? Pm 9:45∼9:58 ■ 지하철을 이용하여 숙소까지 ▶신주꾸驛에서 이께브꾸로驛 까지 Pm 10:00∼10:20 ■ 東池袋驛에서 도보로 숙소에 ▶이께로부끄 주변을 둘러 보며 귀가
그러고 보니 1960∼1970年代의 初等學校와 中高等學校시절 체육시간에 우리가 체조를 했던 것이 바로 일본式이 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식민통치 시절의 것을 답습 했던 것 같음) 어쩐지 비슷하더라니... 왠지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바로 이 노인네들이 젊은시절, 한때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남아를 침략했고 世界2次大戰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아닌가 싶어서 였다.
1. 日本도시개발협회를 방문 세미나 開催
♣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Am 09:00에 鄭先生(가이드)의 인솔로 우리일행은 도보로 이께로부끄의 驛으로 가서 ‘아카사카’로 向하는 地下鐵을 탔다.
♣ Am 10:00 ‘Akasaka驛에 도착한 우리는 驛의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아카사카 도쿄 플라자 건물 6층의 社團法人 日本 都市開發協會로 갔다.
엘리베이터로 6층에 올라 회의실에 입장하자, 각자의 좌석에는 많은 팜프렛이 준비되어 있었고 낯익은 老紳士(도시개발협의회 전무이사인 花形道彦)와 宋敎授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 일본으로 떠나기 前인 지난 주일(10월 27일), 대학원에서 ‘特講을 해 주신바 있는 花形道彦’와의 만남은 왠지 친숙한 好感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 專務理事께서는 일본의 부동산개발 수법등에 대해 각종 자료와 지도를 펴 보이면서 설명해 주셨고, 특히 오늘 우리와 현장을 동행하면서 보다 상세히 알려 주셨는데 그 정성이 정말 고맙기 그지 없었다.
♣ 오늘날 日本의 不動産開發은 일본의 鐵道會社가 그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日本都市開發協會의 회원’들은 대부분 굴지의 철도회사와 대형의 부동산회사로서 현재 정회원 27개社와 찬조회원 28개社로 구성된 社團法人이라고 하며 그는 本協會에대한 대단한 矜持를 갖고 있었다.
Am10:05 ∼11:35까지, 1시간 30분간 열성적으로 강의해 주신 내용은 아래와 같다.
日本의 不動産開發에 대한 세미나 내용(요약)
① 民營鐵道 會社들의 역할과 活動事項에 대한 해설. ☞ 1906년 최초의 한큐전철로부터 현재까지의 철도회사 연혁설명. ☞ 뉴타운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25개회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 ☞ 사철과 민영화된 철도회사와의 차이점. ☞ 적자운영으로 인하여 국철(JR)이 전부 민영화 됨.(1987년 4월)
② 東京都의 인구 증가에 따른 首都圈의 土地不足 현상 ☞ 1950년대 최고의 인구증가(JR과 7개 철도를 통해 350만명이 이동함.) ☞ 동경도와 수도권(주변 3개현)에 년간 60만명이 증가함. ☞ 뉴타운 건설의 필요성 ∙50년대: 20∼25km반경 ∙65년부터: 40km반경 ∙70∼80년대 45km 반경 ∙현재는 전체택지개발은 수도권 50km반경에는 땅이 없는 실정임.
③ ‘業務代行 방식’에 대한 解說 및 거품경제의 영향 ☞ 요즈음은 땅소유자가 별로 없으므로 업무대행이 부진한 실정임. ∙구획정리시 지가가 상승치 않으면, 개발자는 손해임으로 상업지구의 인접 노상에 Bus를 운행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긍극적으로 지가가 오르지 않으면 투자익을 얻지 못해 어려움으로 근간에는 사업이 답보된 상태임.
④ 地圖를 보면서 今日 방문할 “住宅團地 現場”에 대한 說明.
※위 세미나의 상세한 내용은 녹음기에 담았으며, 노트에 필기하였음. |
♣ 또한 이곳에서 우리가 놀란 것은 會員社에서 이곳 도시개발협회로 파견나온 젊은 한 직원의 그 忠直스런 服務姿勢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정중한 자세로 전무이사의 교육을 도왔고, 중간 중간에 우리에게 자료와 茶심부름을 하였는데 몸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親切性과 禮節이 아주 돋보였다. 꼭 충직한 사무라이를 보는 듯 했다.(아침강의 때부터 우리와 함께 했으며, Bus에도 함께 승차하여 현장을 안내하였고, 야간에 동경도심에서 식사전에 집으로 돌아갔음.)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젊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될 정도로 最善을 다하는 職場人의 참 모습은 아름다웠고 훌륭해 보였다.
♣ 세미나 後, 질의 응답시간에 일행중에 ‘驛주변으로 부터는 통상 얼마의 거리까지 商業地가 造成되어 있느냐?는 질문에 5∼6km정도라고 답해 주셨으며, 참고로 일본의 거품경제 휴유증의 한예를 설명했는데, 이는 ‘도쿄부동산회사에서 수도권의 50km 떨어진 곳에 1980년 한채당 5∼6억円의 고급주택을 지었는데, 지금까지 4채가 팔리고 7채가 안팔려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갑의 하락으로 인해 이미 입주해 있는 사람도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할 만큼, 거품경제의 심각한 휴유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즉 개발을 해도 地價가 上昇하지 않으면 별 볼일이 없기에 철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1910년∼1960년대 까지는 民營鐵道 會社들이 대부분 不動産을 開發하였으나, 60년∼73년까지는 新日本製鐵을 비롯한 大企業들이 모두 參與했고, 심지어 배(船)를 만드는 회사도 不動産開發에 참여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기에 그때를 일컬어 “一億經不動産業(일본의 인구 1억을 비유한 말)”이라 불렀을 정도였으나, 73년 오일쇼크로 인해 地價가 -5%하락함에 따라 한동안 큰 고통을 겪었던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景氣의 好轉과 금융제도의 緩和條件등의 영향과 평소 토지에 대한 所有慾이 남달리 강한 일본인에 있어서는 심지어 海外不動産에 대해서도 엄청난 投資의 붐이 조성되었고, 또 首都圈을 중심으로 한 많은 住宅의 建設이 계속되었지만, 또다시 90년대 初부터 시작된 거품경제는 해외부동산의 투자에 대한 막대한 損失은 물론, 국내의 부동산시장의 沈滯로 인하여 現在까지 日本經濟를 아주 困惑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 오전의 강의를 마치고, 잠시 休息時間을 이용하여 우리는(Am 11:35) 건물 7층에 있는 圖書館을 견학했는데, 부동산에 대한 각종의 도서(예: 주택건설 관계법령을 비롯한 환경평가‧감정평가‧토지 및 개발법규집‧조사단의 보고서‧논문‧기타잡지류 등) 約 35,000餘卷이 소장되어 있었다. 1974년에 마련했다고 하는 이圖書館에는 일본의 부동산에 관한 모든 資料가 빠짐없이 保存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이들은 역시 記錄을 보존하고 保護하는 일에 참 충실한 국민이라는 것을 엿 볼 수 있었다.
♣ Am 11:50 日本都市開發協會에서 세미나장에 마련한 점심(초밥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또한 협회에서 마련한 Bus까지 타고 보니, 협회의 세심한 배려와 융숭한 대접에 그저 감동할 뿐이었다. 우리는 감사의 뜻으로 준비해간 기념품을 전달하고 團體紀念寫眞을 촬영했으며, 곧 이어서 Am 12:20 Bus(최고급의 대형관광버스 였씀.)에 승차한 우리는 가나가와縣의 가와사키(kawasaki-shi 川崎市)市로 직접 現場見學을 위해 출발했다.
2. 1차로 首都圈인 가나가와縣의 가와사키市의 田園住宅地를 견학.
♣ 日本都市開發協會의 주변엔 도쿄플라자를 비롯한 고층건물의 사무실이 많고, 특히 아카사카의 地下鐵驛과 百貨店이 있는 관계로 점심시간대를 맞아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그래서 우리가 탄 Bus는 워낙 대형이라 출발할 때,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도시가 복잡하여 버스의 U턴하기가 힘에 겨웠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버스 안내양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애교스럽 인사에 우리는 그녀가 도데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어도 기분은 몹시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 案內孃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鄭혜순氏는 이시간 이후의 일정표를 말해 주었는데 먼저 ①가와사키市의 田園都市 ②요꼬하마의 港北 뉴타운을... ③요꼬하마의 新綠園都市開發地 등 순으로 견학한다고 설명해 주면서 빨리 빨리 서둘러야만 늦지 않게 동경으로 돌아 올 수 있다고 하며,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신신 당부한다.
정말 숨돌릴 틈도 없는 빡빡한 일정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하나라도 더 보여 주려는 것이니까 조금도 불만은 없다.
♣ Am 12:30 우리의 Bus는 그 유명한 젊은이들의 거리라고 불리우는 우리나라의 압구정 거리와 같은 ‘록뽕기’(六本木)앞를 지났다. 고층의 건물들이 즐비하였고 왠? 地下道와 高架道가 그렇게나 많은지? 온통 시멘트 문화로 이룩된 이도시가 도저히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高架의 도로는 온통 補强工事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베의 地震 以後, 그 영향으로 安全을 위해 어느 곳이나 고가도로에는 보강공사를 全國的으로 實施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진의 피해가 워낙 컷기 때문에 겁을 낼만도 하겠구나라고 느껴지면서도 操心性과 準備性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Am 12:36 우리의 Bus 앞에 이상하게 생긴 검은색의 대형트럭이 低速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그 차량에는 온통 日章旗와 이상한 깃발이 나붓낀다. 그리고 차량에 설치된 대형스피커에서는 뭐라고 마구 떠들어 댄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그것은 日本의 左翼(공산당의 선전차량)弘報車輛이라고 했다. 속으로 참 일본은 재미있고 웃기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의 Bus는 이번에는 대중적인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우는 우리나라의 大學路와 같은 “시비아의 중심지”를 막 지났는데, 멀리 도쿄百貨店과 도쿄플라자(지하철 4개의 전철이 통과하는 곳)가 보였다. 이어 도쿄不動産會社 건물을 지난 우리 Bus는 계속 246번 국도인 ‘나라이 길’을 따라 달리다가 Am 12:43 유료 고가도로인 京兵道路(수도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가이드인 鄭先生은 港北 뉴타운에 대한 25분짜리 한국어로 된 VTR을 방영해 주었다. (VTR에서 방영된 내용은 항북뉴타운 현장의 기록에서 설명하겠씀.)
♣ Am 12: 50 동경의 외곽지를 빠져나온 이곳은 거대한 빌딩 숲은 없어서 한결 시원한 맛이 났다. 비교적 낮은 주택들이 간간히 보이고 어디선가 소박한 흙냄새가 풍기는 듯 했다. 꼭 우리나라의 변두리 도시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덧 우리 Bus는 高速道路의 톨게이트(Am 12:54)를 벗어나 간선도로에 들어섰고, 아주 괜찮아 보이는 좋은 주택들이 잘 조성된 한마을에 진입했다.
♣ 이곳 田園住宅地에는 단층의 개인주택단지만이 있지 않고, 다가구주택과 소형APT단지도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되어 있었고, 별도 상업지구엔 은행과 대형의 쇼핑센터 그리고 주유소를 비롯한 각종의 편이 시설물들이 주택단지 입구에 조성되어 있어서 살기에 참 편하게 한 전원지 같다는 생각이 절로난다.䝘ԔԔёɈ棠㴸ёɈꘘ
♣ 이곳 田園住宅地에는 단층의 개인주택단지만이 있지 않고, 다가구주택과 소형APT단지도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되어 있었고, 별도 상업지구엔 은행과 대형의 쇼핑센터 그리고 주유소를 비롯한 각종의 편이 시설물들이 주택단지 입구에 조성되어 있어서 살기에 참 편하게 한 전원지 같다는 생각이 절로난다.
♣ 대부분의 個人住宅은 木造로 건립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주택 앞에는 나무를 참 많이 심었기에 아득한 느낌을 준다. 맨션과 APT는 고층이 아니고 보통 4∼5층이 었고 높은 APT라야 7∼8층 이내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을 한복판에는 작은 公園이 조성되어 있었고, 어린이와 주부들 몇사람 도시락을 먹고 있는 정겹운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의 Bus는 천천히 마을 주변을 돌았고 차창을 통해 우리는 NEC중앙연구소를 지났는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尖端會社의 硏究所등을 적극유치하고 있다고 했다.
♣ Pm 1:15 우리의 Bus는 공원앞에 잠시 정차했고, 우리일행은 모두 하차하여 마을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리일행을 인솔한 전무이사인 花形道彦 氏는 자신의 집도 이곳에 있다고 해서 우리들은 그집 앞에서 紀念寫眞을 찍기도 했고, 그리고 대지 50여평에 약 2억 5천만円의 건축비를 들여 지은 일본의 롯데케논의 중역집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이곳의 地價는 평당 17만¥(원래는 평당 40만¥이 었으나 최근 부동산의 침체로 인해 내렸다고 함.)정도가 된다고 한다.
♣ 마을 중앙에 있는 公園은 約 1,500餘坪의 규모로 아담했고, 그곳에는 어린이 놀이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주변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공원의한가운데는 竣工記念碑가 놓여 있었는데 神木土地區劃整理組合에서 설립한 것이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이지역 개발은 1974년 부터 토지개발협회장인 도쿄부동산건설의 ‘고도노부로 사장’이 주도하여 만든 것이라 했다.
♣ 이곳은 東京으로부터 약 30여 km의 거리에 있는 관계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東京都로 출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는 ‘타마플라자驛’이 있고 또 대형의 ‘도쿄쇼핑센타’가있어 생활하기가 아주 좋은 곳으로 비교적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田園住宅地 였다. 그런데 이곳 居住者들은 원지역민으로부터는 평판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사람들이 돈을 전부 도쿄에 갖다 바치는 꼴이기 때문이란다. (例: 쇼핑, 지하철 등 모든 것을 도쿄가 갖고 있으니까.)
♣ 이곳 가와사키市의 田園住宅團地는 개인주택과 맨션 그리고 APT가 잘 조화를 이루었지만, 집들의 색상이 좀더 밝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自動車의 칼라는 화려한 색상을 띤 것이 일본車들의 특성인데 어떻게 집들의 색상은 하나같이 흰색과 회색계통의 색깔만을 고집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例: 뉴질랜드의 목조 주택들은 집집마다 색상이 달라서 더욱 자연과 조화된 멋진 풍경을 연출했는데, 일본도 이를 흉내낸 주택들의 모형이 었었는데... 집들의 색상만 다양했다면 결국 완전히 서구형의 모습을 띄었을 것이 었씀 ), 이왕이면 보기 흉한 전기와 전화선도 地下化 시켜서 좀더 미적으로도 보기 좋고,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주택조합에서 대형부동산회사에 의뢰하여 일괄적으로 건축한 건물과 토지주인 개인이 업자를 통해 건축한 집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全體的인 調和를 이루지 못한점도 아쉬운 면이었다.
♣ Pm 1:27 우리는 Bus에 승차하여 진입했을 때의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가면서 주변일대를 차창을 통해서 계속 관찰했는데, 어떻튼 볼수록 탐이날 정도로 잘 만든 주택지라는 부러움을 느끼게 했다.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는 아직도 집을 더 지을 수 있는 터를 갖고 있었으나(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公用駐車場으로 쓰고 있었다.
♣ Pm 1:35 우리는 아주 고급스러운 주택가(우리나라의 평창동과 비슷한 곳)를 지났는데, 도로옆에는 큰 쇼핑센타가 있었고 이어 꽤 괜찮아 보이는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소에는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젊은 학생이 기름을 넣는 車의 유리창을 닦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객에게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아르바이트학생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일행은 가와사키市의 외각지에 위치한 東京都로 향하는 도쿄전철과 타마플라자와 그리고 도쿄쇼핑센타 앞을 통과하여 다음 목적지인 항북 뉴타운지역으로 향했다.
3. 2차 코스인 “港北 뉴타운지역”의 견학.
♣ 항북 뉴타운은 일본이 자랑하는 새로운 형태의 21世紀型의 都市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自國의 도시개발 공무원들의 교육을 위해 VTR등의 시청각교재를 만들어 홍보하고 있을 뿐아니라, 일본을 방문시는 꼭 이곳을 견학 시키는 루트이다.
♣ 요코하마의 부도심으로 개발된 항북 뉴타운은 雜草地의 버려진 땅에 대해 1974년부터 토지조성공사를 시작했으며, 2008년을 완성 목표로 한 장기계획에 따라 현재 약 60%의 개발공사가 진행된 도시라고 말하기에 무척 기대가 컸다.
♣ Pm 2:05 우리의 Bus는 가와사키市의 전원주택지를 떠난지 30여분만에 橫兵市都築區 綜合廳舍의 건물과 간판이 걸려있는 빌딩 앞에 정차했고, 그동안 우리들과 동행하셨던 花形道彦 氏께서는 Bus에서 하차 하시며 인사를 했고, 이어서 이곳의 ‘주택‧도시정비공단 항북개발국의 공보관(키가 아주 작은 사람으로서 성함을 잘 모름)’ 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하여 Bus에 승차했다.
(※참고사항 : 兵자에 물水자변이 컴퓨터에서는 없음으로 그냥 기록하였씀. 즉 일본의 한자는 변형된 것이 많음.)
♣ 이곳 항북뉴타운 지역에서 요코하마까지는 옛날에는 차량으로 약 1시간 20분이나 소요되었는데, 지금은 교통이 발달되어 약 20분만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만큼 항북 뉴타운이 요코하마의 도심지와 가깝다는 부심지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 1960年代初 高度 經濟成長으로 인하여 無計劃的으로 발전시킨 도시를 이제는 計劃된 都市로 만들어 보자는 뜻으로 ꊱ녹지를 최대한 보존하고, ꊲ고향을 연상 시키며, ꊳ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며, ꊴ수준 높은 서비스를 향유하자는 4가지의 슬로건 아래 항북 뉴타운이 건설되었는데, 그 사업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港北 ニュー タウソ事業の槪要
1. 計劃目的 (1) スプロールの防止 (2) 都市農村の確立 (3) 市民參與 (4) 複合多機能都市 2. 計劃地域 (1) 東京都心 から남서 약 25km, 黃兵市の中心部から서북 약 12km (2) 철도 : 동해도신幹線, JR黃兵線, 東急東黃線,동급전원도시선, 市營高速鐵道3号線 도로 : 國道 246号線, 第3京兵道路, 東名高速道路 3. 計劃の槪要 |
區 域(District Name) |
開發面積 (Area) |
計劃人口 (Planned Populatin) |
公團施行地區 Land Readjustment by HUD |
1,317 ha |
220,000명 |
旣 開發 地區 Existing Developed Areas |
67 ha |
80,000명 |
農業專用地區 Exclusive Agricultural Areas |
230 ha | |
その 他 地區 Other Areas |
916 ha | |
합 계 Total |
2,530 ha |
300,000명 |
♣ 이곳 항북 뉴타운은 1960년대 初 부터 지역주민과 토지소유자들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자는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1965년 橫兵市 6大事業發表가 있었으며, 1970년 區劃整理事業區域 事業決定이 이루어졌고, 1974년 工事着手가 되었다.
그리고 1976년 사업추진연락협의회 발족이 있으면서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약 60%의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일본 굴지의 40여개 회사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등 날로 발전되고 있는 新都市라고 한다.
♣ Pm 2:9 우리의 Bus는 도로변에 대형 ‘킹콩의 동상’ 앞을 지났는데 이곳부터 ‘항북센타지구’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Bus에 동승한 공보관이 설명했다.
또한 1993년에 이곳에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었는데, 금년 5월 운송성의 허가를 필했기에 지하철이 하나 더 증설 될 것이라고 한다.
♣ Pm 2:13 우리의 Bus는 공보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도심지로 진입하면서 건설중인 대형건물과 마주쳤다. 이 신축중인 건물이 ‘도쿄百貨店과 한큐 百貨店’이라고 한다. 내년 4월경에 이백화점은 Open된다고 한다. 이 건물 바로 맞은 편에는 이미 완성된 消防署 건물이 보였다.
♣ Pm 2:22 이지역의 민간인이 지은 8층짜리 APT(요코하마 시영APT라고 함)를 보았는데 이 APT는 이미 1977년 8월 1일에 入住했다고 했다. 이어서 대형의 굴뚝이 있는 청소공장 앞을 지났다. 1일 8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쓰레기 처리의 열량으로 溫水를 만들어 풀장과 老人亭 등에 공급한다며 자랑한다. 곧이어 우리의 Bus는 1983년에 이미 개발한 아담한 주택단지를 돌았다.
♣ 도로변에는 대형 철탑이 일열종대로 도로를 따라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는 약 27만 KW의 高壓線 철탑이라고 한다. 주변의 주택가에는 녹지가 비교적 많았다. 公報擔當者는 이번에는 ‘나까마지라이驛’ 광장쪽으로 Bus를 돌리자고 했는데, 이곳을 ‘테마 네오클라시’라 부른다고 했다.
驛 앞에는 ‘나까마이께마 센터’라는 大型의 商街地域이 있었고, 大型 APT團地 그리고 高齡者를 위해 特別히 新築한 맨션도 있었지만, 도데체 뭐가 뭔지 모르겠만 참 都市를 잘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 PM 2:30 案內를 맞은 公報官은 이번에는 公園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공원은 작년 12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 수여한 ‘초록상을 수상’한 공원이라고 자랑한다.
車窓을 통해 일본의 유명한 ‘SAKATA라는 종묘회사’의 건물에 큰 유리온실을 지났고, 이어 가와사키市의 전원주택지에서 보았던 주택들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몇분 後인 Pm 2:33 우리의 Bus는 공원의 입구에 멈추었다.
♣ 공원은 公報官이 자랑할 만큼, 역시 아름다웠다. 특히 공보관은 공원의 숲들이 自然林이라고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 면적은 약 2∼3ha라고 했는데, 步行者 專用道路와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고, 人工으로 만든 시냇물이 흐르는 것이 아주 훌륭했다. 그들은 地下水를 끌어 올려서 약 15km의 시냇물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시냇물에는 팔뚝만한 잉어떼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 공원에는 老人과 主婦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놀고 있었고, 몇몇 사람이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저수지에는 야생의 오리떼(12마리)가 노닐고 있다. 또한 저수지 건너편의 숲에는 에도시대(2∼3백년 前)에 지은 건물 한채가 옮겨져 있었고, 공원능선 뒷편에는 민간인이 지은 대형의 실버타운(1988년에 신축)의 건물이 보였다.
♣ Pm 2:47 공원에서의 좀더 쉬고 싶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아쉬웠으나, 다음의 지역을 또 견학해야 했기에 우리는 다시 Bus에 올랐다.
우리의 Bus는 진입했던 곳을 逆順으로 하여 밖으로 나갔고, 우리는 차창을 통해 다시금 이곳 일대를 좀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 우리가 커다란 ‘킹콩의 동상’ 앞에 다다랐을 때의 시각은 어느덧 Pm 2:55이 었다. 안내를 맞아 주셨던 이곳의 ‘주택‧도시정비공단 항북개발국의 공보관은 작별인사를 나누며, 港北ニユータウン熱供給株式會社건물 앞에서 하차하였고, 우리Bus도 잠시 정차하여 10분간 휴식시간을 갖었다.
(정확한 위치는 橫兵市 綠區 荏田東 4丁目 10-3임)
♣ Pm 3:05 우린 Bus에 다시 승차했고, 이번엔 신녹원도시를 향하여 출발했다.
4. 3차 코스인 新綠園都市의 견학.
♣ 차창을 통해 이곳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볼 수 있었는데 모든 버스가 한결 같이 市營이라는 표시가 된 것을 보니 市에서 운영하는 버스인가 보다.
그리고 APT와 맨션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창문에 ‘별도 유리창을 한 샷시’가 없다. 베란다에는 빨래가 많이 널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래도 섬나라이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탓으로 굳이 샷시를 할 필요가 없어 베란다에 빨래를 늘 널어 놓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m 3:18 우리의 Bus는 新橫兵이라는 표식이 붙은 톨케이트에 진입했다. 고가도로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요코하마(京兵)의 거대한 도시의 빌딩들이 멋지게 보였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우리Bus는 이번에도 채 5분도 되지 않아서(Pm 3:23) 톨게이트를 빠져났다.(요금을 받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들이 었씀)
이제는 국도로 보이는 일반도로를 지나는데 도로변 양쪽은 울창한 숲이 계속되어 상쾌한 기분을 준다.
♣ Pm 3:32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톨게이트에 다가섰다. 일본은 왜? 이리도 돈을 받는 유료 톨게이트(대형Bus 550¥이란 요금표 기록) 많은지? 이번에도 역시 채 5분도 안되어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왔고, 이어서 시가지 지역으로 Bus가 진입했다. 도로에는 온통 지하철 공사로 바쁘다. 약 100m의 구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형포크레인이 10대이상’이 지하철 공사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 각 상점들이 간판아래 ‘橫兵’이라는 글짜가 많은 것을 보니, 우리가 아까 고속도로에서 멀리 내려다 보았던 바로 그 요코하마市로 우리가 들어 왔다는 느낌이 든다. 도로변 주택가에서는 개인주택을 신축하는 모습도 보인다.(철골로 짓고 있었씀) 곧 우리의 Bus는 시가지를 벗어나서 점차 한적한 시골마을로 접어 들었다.
♣ Pm 3:46 도시의 변두리라서 인지 ‘자동차 폐차장’도 보이고, 고물상도 눈에 띄었다. 이어 농촌의 주택 터밭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풍경도 보았다. 흙냄새가 물신 풍기는 우리나라의 농촌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의 Bus는 농촌마을 앞의 작은 산억덕을 힘겹게 오른다. 그런데 그 고개를 넘자, 우리 모두는 와!하고 탄성을 자아 냈다.
♣ Pm 3:50 너무나 잘 정돈된 멋진도시가 눈에 확 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綠園都市’였던 것이다. 웅장한 APT단지와 아주 아주 괜찮아 보이는 개인주택들이 펼쳐져 보인다. 우리의 Bus는 천천히 한 현대식빌딩 앞에 정차했다.
그 빌딩앞에는 이곳 녹원도시건설 사업본부의 직원 7∼8명이 도열을 나왔고,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아 준다.(Pm 3:55)
♣ Bus에서 하차하여 곧바로 회의장으로 안내 되었다. 바로 사가미철도회사(相模鐵道株式會社)의 현지의 문화회관의 건물이라고 했다.(일본은 철도회사가 부동산의 건축, 호텔과 백화점 운영 그리고 운송사업 등도 함) 이 회사의 현장책임자인 ‘하시모토氏’가 약 20분간 브리핑을 하였는데, 이 녹원도시는 그야말로 21세기의 최첨단 도시기능을 완벽히 갖추었다고 자랑할만 했는데, 그 일반적인 현황은 아래와 같았다.
녹원도시의 일반적 현황 |
1. 명 칭 |
中川第一土地區劃整理事業 |
2. 시 행 자 |
中川第一土地區劃整理組合(조합원 200명) |
3. 소 재 지 |
橫兵市泉區綠園 1丁目∼ 7丁目 |
4. 지구면적 |
122.7 ha |
5. 사업년도 |
昭和 49年∼昭和 62年(1974∼1987年) |
6. 사 업 비 |
373億円 |
7. 계획호수 |
4,738戶(內當社 約 4,000戶) |
8. 계획인구 |
18,000人(150人/ ha) |
♣ 특히 도심지에 모든 전기‧전화선을 지하화 시켰고, 공원의 녹지공간이 많아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근린공원의 면적이 2.7ha에 이르고 그중에 어린이들을 위한 공원이 6개나 조성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들을 부럽게 했다.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마치고(Pm 4:20), 하시모토氏는 직원들을 대동하여 직접현장을 안내하여 주었는데, 그들은 퇴근시간이 다달았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위해 정말 정성을 다해 주었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각이라 우리는 이곳의 직원들과 우선 먼저 기념사진을 찍었다.
♣ 相模鐵道株式會社의 文化會館 옆에는 대형APT단지가 조성되어 있었고, 그 옆 우거진 숲속에 우뚝하게 솟아있는 ‘여자대학의 건물’이 보였고, 한브럭의 거리에는 ‘녹원도시의 驛’이 초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조경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한편으론 속도 상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 우리일행은 相模鐵道 안내요원을 따라서 주택지 현장을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면서 사진도 찍으며, 기록하기에 바빴다. 시가지 지구의 7.8ha에 이르는 11개 棟의 건물과 서쪽의 3ha에 건설된 14층건물 6개棟의 일부지역을 견학한 後, 다시 상업지역과 스포츠클럽의 빌딩도 둘러 보고나니, 어느덧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각이 되었다. 우리는 급히 Bus에 탑승하기 위해서 이동했다. 이동중에 작은 언덕위의 단독 주택단지를 지났는데, 보행자의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언덕 밑으로는 지하철이 뚫여있는 광경을 보니, 우리들을 주눅들게 하는 참으로 멋진 전경이 었다.
♣ Pm 4:42 Bus에 승차하여 ‘녹원도시’를 떠났으나, 인접한 경계지역의 마을 역시 1972년에 32ha를 相模鐵道株式會社가 개발하여 주택단지를 조성한 지역으로 무척 청결하고 아름다운 전원의 도시이며 고급주택단지였다. 이곳의 땅값은 오히려 동경도보다도 비싼지역도 많다고 했는데, APT(90m2 기준)는 68,00만¥ 그리고 단독주택은 84,00만¥(우리나라의 원화로는 6억∼8억원)녹원도시와의 경계지대에는 약 43ha나 되는 요코하마市의 공원이란다. 울창한 숲으로 덮혀있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녹지다.
♣ 이곳에서 요코하마 중심부까지는 10∼12Km(지하철로 19분 소요)이며, 東京都心까지는 35Km의 거리라고 한다니, 지하철을 이용하여 동경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Pm 5:00 우리의 Bus는 相模鐵道株式會社 하시모토氏의 안내로 모델하우스에 잠시 들렸다. 이곳의 모델하우스는 우리나라의 모델하우스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직접 집을 건축시는 자재를 그대로 써서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 놓은 상태에서 고객에게 보여주는 모델하우스 였기 때문이다. 외형보다 내부시설을 둘러 보니 더욱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 모델하우스의 내부는 日本人의 性品을 그대로 반영한 듯 오밀조밀했고,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벽체에는 북박이 장이 있었고, 심지어 다다미방의 바닥까지도 창고를 만든 것을 보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주택의 평형은 90.2m2(약 27.28坪)이 었으나 상당히 넓어 보였다. 특히 베란다의 폭을 2m이상으로 한 것은 아주 실용적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리는 20여분동안 여러채가 건설된 모델하우스(평형에 따라 내부구조가 각기 상이하였씀.)를 견학한 後, 감사의 뜻으로 준비해간 기념품을 전달하니 하시모토氏 너무나 감격해 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해준것에 비할 때, 정말 미안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선물이 었는데도 말이다....
♣ 그들은 우리와 헤어지면서 꼭 프랑스 월드컵에 함께 나가자고 하면서 ‘한국이 아랍에미레이트를 반드시 이겨 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한일전에서 기사회생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승리한 것이 오히려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 Pm 5:20 우리는 Bus에 올라 저녁식사를 위해 동경도심의 가장 번화가라고 불리우는 신주꾸로 향했다. 그런데 동경방향의 고속도로가 차량으로 꽉막혀서 오짝달싹을 못한다. 상행선인데 이정도라니... 어떻튼 우리의 Bus는 가다 서다를 수 없이 반복하다가 Pm 7:00경에 야간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신주꾸의 시가지에 진입했고, 신주꾸의 명물인 'Takashimaya의 건물’과 신주꾸역(新宿驛)을 지나서 육교 옆에 정차했다. 이때까지 우리와 동승해서 안내하여 주었던 그 고마운 日本都市開發協會에 파견나온 젊은 직원과도 헤어졌고, 그동안 버스안에서 졸다가 일어난 안내양의 그 간드러진 ‘사요나라’라는 인사를 들으며, Bus에서 하차하여 육교의 건너편에 위치한 ‘한국식당 味仙莊’이라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 식당 안에는 언제 오셨는지 송현부교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바쁘신 중에도 우리를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각 방문지의 협조관계를 훌륭히 수행하여 주신 정말 고마운 교수님이시다.
식사는 소고기부페였는데 섬나라(해양국)라서 메뉴에는 조갯살(일명 가와바시)도 있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족주인 ‘진로소주’에 곁들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 이국땅에서 한잔을 걸치고 나니까, 모두들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틈새를 이용, 일행중 한사람이 신주꾸에 왔다면, 신주꾸의 뒷골목도 한번 보고가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모두들 대찬성이다. 그런데 쑥스러워 할 줄만 알았던 가이드 정혜순氏가 발벗고 나서 안내하겠단다. 그래서 Pm 8:15에 우리는 식당門을 나서서 골목길을 한참을 헤매인 끝에 드디어 SHOW場을 찾았다.
5.신주꾸 뒷골목의 SHOW을 보곤 失望感만을...
♣ 입장료가 무려 1인당 5,000円이란다. 으메 뭐! 이리 비싼가? 그렇다면 아주 괜찮은 구경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우리일행 13명은 거금을 주고 어둑 침침하기 이를데 없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싸이키조명이 요란한 가운데 T자로 된 테이블 위에 일본여자가 그야말로 발가벗고 홀딱쇼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어서 구경했지만, 1명‧2명‧3명‧4명에 이르기 까지 나오는 여자마다 똑같은 동물적인 몸짓이고 단지 얼굴만 다르다는 것 뿐이지 않는가? 점차 천박스럽게 보이기 시작했고,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히려 우리나라의 변두리 술집 ‘나이트 쇼’에는 스트립 쇼걸이 그나마 얼굴이라도 예쁜데 이곳의 여자들은 한결같이 못생긴 여자들이 옷만 벗었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 싱겁기 그지없었다. 은근히 부아가 올랐고, 괜히 들어왔다고 하는 본전생각이 들었지만, 입장한지 30여분만에 以心傳心의 똑같은 생각을 지닌 우리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 한가지 일본사람들의 性개방 문화를 이런 곳에서나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은 장사술이 뛰어난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SHOW場에 입장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외국관광객이었으며 그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아서 몹시도 속상하고 배가 아팠다. 몇몇 늙은 일본인들이 낄낄 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상술의 하나가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 겉으로 화려한 이곳 도심의 한구석에는 이런 퇴폐적인 업소가 수 없이 많이 성업하고 있다고 한다. 일행중의 일부는 Taxi를 타고 호텔로 귀가(먼저 호텔에 가서 단합대회을 하는 팀이라고 느껴졌씀.)했고, 나를 비롯한 몇몇은 도심일대의 거리를 걸으면서 번화한 거리의 사람들의 모습과 상가를 둘러보며 사진도 찍었다. 특히 신주꾸 驛 앞의 고층건물에 부착되어 있는 초대형 멀티영상 광고는 야간이라 더욱 멋지게 보였다. 그리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Pm 10:00이다.
일본 부동산 현장 탐방 보고서 4편은 다음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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