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이란 상호를 가진 찻집

[나그네2]

경기도 팔당과 능내리 '봉주르'의 봄날을 건드리다 양평소방서 지나

한적한 산길속의 "프리스타일"이란 상호를 가진 찻집 겸 방 두개의 작은 팬션

고사목 아래 놓인 작은 석인(石人)이 이방인을 반겨주니 내가 더 반갑습니다.

마당 가운데 디기탈리스 한 그루가 종(鐘) 모양의 홍자색 꽃을 활짝 피운 채

지지대에 몸을 의지하고는 낯선 이방인을 빤히 쳐다보며 반깁니다. 

이집의 주 메뉴인 한방 대추차와 사골떡꾹을 끓여내었을 무쇠가마솥은

여름으로 치닫는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중인데,

황토와 돌을 이겨 만든 아궁이와 검은 무쇠솥은 우리들의 노스탈자입니다.

 

주인장이 직접 가꾼 듯 한 시골 마당같은 작은 정원은 온통 초록빛인데

5월의 햇살이 따가운지 숨을 할딱거리는 앙증맞은 연못이 있는가 하면

뿜어져 나오는 하얀 물줄기가 연신 햇살과 맑은 공기속으로 번져 나가는

또 다른 작은 연못도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는 햐얀 포말을 일구며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 만큼이나

우리 눈에 카탈시스를 안겨다 주는것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빛깔 고운 양귀비 몇 송이가 찻집 안쪽 귀퉁이에서 하늘거리며

요염한 웃음을 날리니 몰래 훔쳐보는 유혹이 되기도 하는데 

 

묘종 식재작업이 한창 진행되는지 작은 화분이 널려있는 마당을 비켜서면

바베큐 그릴 아래 하얀 재가 얼마전에 다녀갔을 동아리의 축제를 추측케도 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처마끝에서 흘려나오는 맑은 풍경소리도 좋지만

양귀비가 고개 치켜세운 그늘 자락의 소품 또 한 정겨움을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실, 프리스타일은 외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다듬어진 정원수나

멋진 지중해식 발코니를 가진 그림같은 건물을 생각했다간 큰 오산입니다. 

 

앳 띈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이집이 어쩌면 시골스러운 촌맛이 물씬 풍겨나는,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이 가꾸어 나가야 할 미완의 여백이 있기에 오히려 편안합니다.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하거나 극단의 단아함 같은 고운 수식어가 필요없이

잘나지도 못하면서 미워할 수 없는 끈질긴 삶의 끈을 쥐고서 단지 하얀

백치같은 향기를 가진 들꽃의 순수함이 차라리 프리스타일의 이미지이자

이집 젊은 부부의 이미지이기도 하니 참 순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무렇게 놓아둔 것에게도 보는 사람이 소품이라고 멋들어지게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그만이니 일순간에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찻집 출입문 앞 복숭아 나무에는 복사꽃이 지고 난 그 자리에 애기 복숭아가

대신 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따가운 햇살 속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맑은 공기에 얼굴을 내밀어보면 양평의 풋풋한 풀 내음,흙 내음이

심폐 속으로 깊게  파고 듭니다.

 찻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주인이 직접 만들어 놓은 한지 공예가 벽을 장식하고

주홍빛 한지등불이 벽 한켠을 은은히 밝혀주니 여느 조명등이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입어보고 싶은 한지 저고리와 꽃신하며 역시 한지로 곱게 만든

공예품이 이집 여주인의 맴씨있는 솜씨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죽부인 같은 것에 한지를 넣고 부드러운 간접조명으로 실내 분위기를

토속적으로 연출해 내면 이 만한 미학을 가진 인테리어도 없겠다 싶네요.

 

넓은 창가를 둔 자리에 앉으면 눈부시는 햇살에 여지없이 노출된

자연을 그대로 가슴에 껴안을 수가 있으니 때 마침 흘러나오는 팝송과

우리네 가요를 번갈아 들으면서 대추차 한 모금을 입술에 갖다대면 자연

몸과 마음의 경직이 풀어져서 자연인으로의 해방된 카탈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가두게 만들었던 수 많은 카테고리와 장벽들이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겉치래로 여겨지니 원시를 향한 촌스런 맛이 오히려

사람을 편안케 하니 우리들이 바라던, 격식에서 벗어난 바로 그 안식이 됩니다.  

어느날 문득, 달빛을 머금은 등불의 긴 그림자가 내 기억을 더듬거나, 

뿌연 초록의 시간 하나 떠오르게 되면 작은 소품 하나에도 긴 여운으로 남아

정겨움이 물결따라 흘러오는 일탈의 멋을 부린 휴식처 한 곳이 생각 날테고,

푸른 잎사귀속 호롱 하나에 정겨운 등불 밝히고는 저만치 벗어던져버린

딱딱한 가식 위에서 마냥 노닥거리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빚어놓은 작은 연못가 여인나상(裸像)의 목에 걸린 , 누군가의 잃어버린

언약의 반지목걸이를 보면서 순수가 그리워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젊은 여주인이 땀 흘리며 정성스래 달여 만든 향기짙은 한방 대추차 한 잔으로

실루엣 같은 음악속에 나를 내려놓으며 삶의 타래를 풀어놓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짙은 한약재 내음이 마음 깊숙히 내려앉게 되면 지독한 삶의 애착이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희미한 열정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온 만큼 우리속의 순수는 복잡다단한 문명에 쫓기어

저만치 멀리 서 있지는 않을는지 모를 일이지만,

문설주에 기대 선 젊은 여인은 산길 꼬불거리는 시간을 타고

낯선 이정표 따라 이곳으로 흘러 들어 올 그대와의 조우를 위해

조용히 음악을 켜두고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습니다.

살다보면, 

볏집 끝단에서 흘러나오는  낯설지만 순박한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을테니

그때는 우리가 순수의 시간에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