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번영은 아프리카가 없이 불가능했다.” 이 말은 프랑스의 드골이 남긴 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 아프리카. 16․17세기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이 이곳이 독립된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유럽인들에 의한 착취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를 통해 유럽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천혜 자연의 대륙을 자기들 마음대로 잣대를 놓고 반듯하게 국경을 분할했으니 그곳에서 지금도 종족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다 유럽인들 때문이다.
어디 이뿐이랴. 그것도 부족해 노예 매매까지 했으니 당연 유럽이 부유해졌을 수밖에…. 그렇지만 그때부터 아프리카는 슬픈 대륙으로, 가난의 땅으로 존재한다.
커피를 소개하다보면 왠지 이런 역사가 못마땅하여 가끔씩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된다.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많은 커피 생산국들 역시 강자들에 의한 착취의 대상으로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커피를 탓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의 중심인 케냐의 커피
빅토리아호(Victoria L.) 적도 부근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 나일강 (Nile R.)을 가진 아프리카. 그 중앙에 세계 제3의 대호(大湖)인 빅토리아호가 있고, 동쪽 끝에는 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5,895m)과 케냐 산(5,199m), 서쪽에는 루웬조리 산(5,119m) 등 빙하와 만년설이 있어 화산군과 함께 웅대하고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
이 대륙 최대의 하천인 나일강(6,632km)과 콩고강(4,370km)이 쌍벽을 이루며 흐르고 있고 1871년 H.스탠리가 D.리빙스턴과 극적인 대면을 했던 탕가니카호(Tanganyika L. ; 바이칼호 다음으로 깊은 호수)도 그 깊이를 더 한다.
이런 아프리카의 빼어난 자연 속에 커피가 자라난다. 청나일(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하는 것을 백나일,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것을 청나일이라 부르며 두 지류는 수단에서 만나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흐른다)의 고원에서 생산되는 에티오피아 커피 다음으로 유명한 커피가 바로 케냐 커피. 케냐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19세기 남 예멘으로부터였지만 실제로 경작된 것은 20세기부터였다. 20세기 초반에 샌 오스틴 선교회에 의해 레이니옹의 부르몽 나무가 소개되면서 정부와 영세 농민들이 커피에 본격적인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은 세계의 커피 산지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로 콜롬비아를 선정했다.
콜롬비아 커피의 생산 모델은 그들에게 케냐 커피산업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케냐 커피는 현재 아프리카 커피의 모델이 되었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 커피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 중에서 케냐 커피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표현한다.
케냐는 좋은 커피를 정선해서 잘 가공하고 있으며, 구매자들이 값과 품질을 비교하여 선택하기에 편하게끔 제도화되어 있다. 그래서 케냐 커피는 샘플과 실제 구매품 사이에 빚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최소화되어 있거나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케냐 커피의 수요자들은 케냐만큼 커피를 잘 길러서 파는 나라가 없다고 평한다. 이러한 평가대로 케냐에서는 커피나무의 뿌리를 뽑거나 훼손시키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이렇듯 커피는 생산뿐 아니라 경매 시장과 판매, 유통에 이르기까지 시스템화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커피로 평가받기 어렵다. 비교적 이름난 커피들은 생산국 나름대로 기준을 설정하여 통합, 통제하는 방식을 취한다. 케냐 커피 역시 마찬가지.
케냐 커피는 해발 1,500m~2,100m의 고지에 있는 영세한 농장에서 재배되는데 갓 수확된 커피열매는 곧 바로 공동 세척장을 거쳐 신속하게 협동조합으로 옮겨지며 이후 케냐 커피국으로 운송된다. 이들 커피의 경매는 주로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매주 이루어진다. 민간 수출업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경매를 통해 수출되는 최고품은 PB(피베리)이고 그 다음이 AA++, AA+, AA, AB로 분류되는데 이것들은 또 다시 등급별로 세분화된다. 나이로비 경매시장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조건에 따라 알맞은 커피 생두를 구입하면 된다.
경매를 통하지 않고도 구매자들이 몇 군데 특별한 산지의 커피를 구입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구매할 수가 있는 반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실패할 확률도 높아진다.
케냐 커피는 짙은 향기 속에 진한 신맛, 와인 맛, 과일 맛을 담고 있으며, 깊고 진한 풍미를 지닌다. 케냐 커피 특유의 신맛은 높이 평가되는 맛으로 덜 익은 듯한 과일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신맛 덕분에 여름을 위한 커피로 각광을 받는다. 부드럽고 상쾌한 신맛은 휴식 시간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이 케냐의 커피들은 케냐 산에서 수도인 나이로비로 이어지는 광활한 하이랜드 지역에서 자란다. 또 우간다와의 국경 지방에 있는 엘콘 산의 비탈에서 소규모 단위로 재배되기도 한다.
케냐를 대표하는 커피는 ‘케냐 AA'와 ’케냐 AB'다. 이것은 각기 콜롬비아 슈프리모와 콜롬비아 엑셀소를 견본으로 해서 만들어진 기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케냐 커피에 간혹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보다 정선되고 특화된 케냐 커피라고 보면 된다.
미국과 유럽의 커피회사들이 시중에 내놓는 케냐의 특별한 커피들로는 ‘케냐 스말딜 AA', ‘케냐 마사이 AA', ‘케냐 키리냐가 AA', ‘케냐 키코록 AA', ‘케냐 블랙베리 AA' 등이 있다. 이 중 케냐 블랙베리는 열매가 검은 케냐 커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케냐에서는 블루마운틴과 코나의 변종도 생산된다. 이것들은 ‘케냐 블루마운틴’, ‘케냐 코나’라는 상품명을 갖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탄자니아
탄자니아의 커피 산업은 그들을 점령해 지배했던 독일과 영국에 의해 발달했고 일찍부터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아 명품의 반열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탄자니아 커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헤밍웨이와 그의 소설이었다.
헤밍웨이가 프랑스로 건너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와 탄자니아 커피와 킬리만자로 산은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탄자니아 커피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마침내 유럽인들은 탄자니아 커피에 ‘커피의 신사’라는 별명을 부여함으로써 ‘커피의 황제’ 블루마운틴, ‘커피의 귀부인’ 모카와 함께 3대 커피의 하나로 등극시켜주기도 했다.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킬리마는 ‘산’, 자로는 ‘빛나는’이란 뜻을 갖고 있다)산은 해발 5,895m의 거봉이면서 메루 산과 이어지는 탄자니아 커피의 주산지이다. 특히 산의 남쪽 비탈에 위치한 모시 지방과 아르샤 지방에서 좋은 커피가 많이 생산된다.
이곳의 커피는 세계 시장에서 ‘프라이드 오브 킬리만자로(Pride of Kilimanjaro)'나 ‘픽스 오브 킬리만자로(Peaks of Kilimanjaro)' 혹은 ‘탄자니안 모시’, ‘탄자니안 아르샤’라는 상호가 붙곤 한다.
그러나 킬리만자로라는 상호는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이름이다. 실제로 세계 시장에서 ‘킬리만자로’라는 상표보다는 ‘탄자니아 피베리’라는 상표의 상품들이 많이 유통된다. 1893년 제쉬(Jesuit)에 의해 유럽에 소개된 이후로 각광받는 탄자이아 피베리는 하나의 열매 속에 하나의 생두를 가진 커피인데, 탄자니아에서는 오히려 일반 커피보다도 많이 생산된다.
케냐 커피만큼이나 향기로우면서 더 부드러운 탄자니아 커피는 일반적으로 깔끔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 매우 섬세한 향기와 입안 가득 차 오르는 풍미도 갖고 있다. 또 와인 향과 과일 맛을 지녀 부분적으로는 케냐 커피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수마트라 카로씨 커피를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커피를 마시고 난 후에는 부드럽고 좋은 흙 냄새의 여운이 남기도 하고 드라이한 감각으로 남기도 하기 때문인데, 미식가들은 이를 야성적임 또는 와일드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보다 단순하게 탄자니아 커피를 설명하면 ‘가장 아프리카 커피답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탄자니아 경제와 정치는 불안정하다. 이는 커피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1969년부터 1985년 사이의 1등급 탄자니아 커피의 12% 정도가 케냐로 밀수되어 케냐 커피로 바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탄자니아 커피는 85%가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고 민간 수출업자에게 팔려지면서 구매자들의 좋은 평가를 얻어내 밝은 미래가 점쳐지기도 한다.
그 밖의 아프리카 커피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동쪽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섬이다. 서쪽으로는 내륙의 모잠비크가 보이고, 동쪽의 먼바다에는 커피의 성지 중 하나인 레위니옹이 인접해 있다. 이같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인지 이 섬은 연간 100만 포대에 달하는 많은 커피를 생산한다. 또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1989년에는 커피산업을 민영화하여 많은 규제를 푼 나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최근에 커피 경작지를 5만 헥타르 정도 확산할 계획인데 만일 이대로 나아간다면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커피 산업의 폭풍의 눈으로 떠오를 정도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대학로에 있는 필자의 사무실로 생두 문제로 L씨가 찾아왔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교포로 이 나라 커피가 유럽에서 양질의 평가를 받고 있으니 국내에 수입을 해볼 수 있냐는 것이었지만 필자의 답변은 “노(No)"였다. 기대를 갖고 왔던 L씨에게는 미안했지만 18톤이나 되는 생두를 수입했다가 낭패를 보면 큰일 아닌가 싶어 아직 국내 상황이 열악하며 인식이 부족해서 판로에 문제가 있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커피가 국내에서 유통된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뾰죽한 묘안이 없음에야….
앞서도 언급했듯 중앙 아프리카의 많은 커피 생산국들은 케냐를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맛만 비슷할 뿐 커피 산업은 실패한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첫머리가 ‘Z'로 시작하는 두 나라,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분투가 눈에 띈다.
짐바브웨는 100년 전부터 양질의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해 왔으나 1920년경에 해충에 의해 전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1950년부터 인도와 케냐의 커피 농부들이 짐바브웨로 이주하면서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할 기틀을 갖추게 된다.
짐바브웨의 커피 재배지역은 모잠비크 접경과 가까운 치마니마니 산맥에서 동북쪽에 밀집돼 있다. 특히 동부고원 쪽의 치팡가가 유명한데 이 중에서도 피나클, 파펠, 라 루씨에 농장 등이 손꼽힌다.
피나클 농장의 경우 단 8곳의 선택된 농장에서 스크린 사이즈 19를 표준으로 한 제품들만을 엄선한다. 파펠 농장은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 아주 작은 단위로 커피 재배가 이루어지는데 좌우로 완벽히 대칭을 이룬 완벽한 원두만을 상품으로 인정할 정도로 관리가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미국 시장에는 ‘짐바브웨 코드 053’이란 상표명의 커피가 일반적으로 유통되며, ‘짐바브웨 치팡가’, ‘짐바브웨 로데시아’, ‘짐바브웨 라 루씨에’라는 상표도 간혹 눈에 띈다. 짐바브웨 커피는 신맛이라든가 과일 맛 등은 케냐 커피와 비슷한데, 레몬 향과 같이 톡 쏘는 커피 맛으로 케냐 커피에 비해 농도가 짙고 와인 맛과 향기가 강하다.
잠비아는 나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국가로, 1920년에 케냐와 탄자니아로부터 커피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케냐 커피의 맛과 비슷하지만 달콤새콤한 향이 내포되어 마치 좋은 건포도 느낌을 주는데 이 향기는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또 케냐 커피에 비해 전반적으로는 조금 가볍고 부드러워 저녁 이후에 마시기 좋은 커피라는 평판을 얻는다. 몇몇 전문가들에 의하면 잠비아 커피는 1996년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미국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잠비아 커피 상품은 ‘잠비아 마팡가’, ‘잠비아 므퐁웨’, ‘잠비아 테라노바’ 등이 있다.
부룬디와 르완다는 서로 교전하면서 커피산업이 황폐화되었다. 두 나라 모두 커피 산지가 접경지역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커피를 생산한다.
특히 르완다 커피는 부룬디 커피보다 유명하다. 이곳의 커피에는 다른 커피에서 맡을 수 없는 지극히 독특하면서도 훌륭한 ‘풀같은 향기’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 시장, 특히 미국에서도 찾기 힘들만큼 소량 생산된다.
말라위와 우간다 또한 좋은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고 있지만 역시 내전으로 인해 커피 산업은 활발하지 못하다. 말라위 제품은 미국에서는 ‘말라위 리 캉가라’와 ‘말라위 마팡가’라는 상호가 눈에 띄고, 우간다 제품은 ‘부기수’가 유명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커피산업은 북쪽에 집중되어 있다. 중부나 남부는 서리의 위험 때문에 커피를 재배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구매자들이 이곳의 커피가 케냐보다도 더 중앙 아프리카 커피답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중앙 아프리카의 자이르(콩고)와 서부해안의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 시에라리온, 상아 해안이라고도 불린다), 앙골라, 카메룬 등은 로부스타 커피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 중에서 카메룬은 변종의 블루마운틴과 같은 좋은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동북쪽에 위치한 바밀레케와 바모운 지역이 아라비카 커피들의 집산지이다.
서아프리카의 세인트헬레나 섬은 아프리카로부터 2,000㎞, 브라질로부터는 3,500㎞ 떨어진 대서양에 위치하는데,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이 끝난 1815년에 추방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 섬에는 1732년 예멘으로부터 커피가 들어왔다. 다른 곳의 커피도 몇 번 재배가 시도되었지만 최초에 심어진 커피들만이 야생으로 남아 있다가 1980년 이후 데이빗 헨리라는 사람에 의해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한 혁명이 시도되고 있다.
나폴레옹은 1821년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생전에 그는 이 섬을 가리켜 “이 섬에서 얻을 만한 것이라고는 커피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말인가. 어차피 더 좋은 것이 나온다고 해도 모두 유럽인들의 차지가 되었을 텐데….
첫댓글 아프리카 커피연합회 홍보담당자 인거 같습니다. 제가 가진 약간의 샘플이 있는데 이것도 기회가 된다면 커피통 회원님과 시음을 해야 겠네요. 위에서 나온 마다가스카르입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