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임 첫모임을 다녀와서 2008년 제2기 사무관승진리더과정교육 제4분임의 첫번째 모임을 강원도 동해시를 방문하여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그 과정을 여기에 기록해 보고자 하며, 비록 짧은 글 솜씨이지만 이해하여 주시고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바란다. 우리모임을 위해 수고해주신 동해시 류재만과장님과 함께 참석해 주신 김정미총무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과 직장에 행복만이 충만하시길 바란다.
■ 모임개요
○ 일 시 : 2008. 6. 28 ~ 29. (1박2일)
○ 장 소 : 강원도 동해시
○ 참 석 : (서울) 김시환, 박광덕부부, 권오룡. (인천) 김명석 (대구) 김돈희부부, 서자원부부 (동해) 류재만, 김정미총무 찬조 참석
○ 잠자리 : 망상오토캠핑리조트 펜션
○ 돌아본 곳 o 첫째날 : 천곡천연동굴(제5경), 무릉계곡(무릉반석, 삼화사) o 둘째날 : 능파대(제1경)
■ 사진으로 보는 즐거움
【천곡천연동굴】
m,, 연장 1.4km 규모의 천연 석회석 동굴로서 생성시기는 약 4~5억년 전으로 추정된다.
성 물이 서식하고 있는 환상적인 지하궁전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며 나머지 700m는 보존지구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천곡천연동굴에 도착하여
천곡천연동굴의 석순
천곡천연동굴의 석순
【무릉계곡】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수많은 기암 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태고의 신비와 전설 속에 무릉계곡은 이 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이다.
고, 조선 선조때에 삼척부사로 재직 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 하였다고 한다.
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무릉계곡 전경
무릉계곡에 오르는 길가에 설치한 향토시인 최인희 시비
(무릉반석)
돌로 펼쳐져 있는 것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주변의 기암괴석과 함께 자연절경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암석에 수놓여진 갖가지 기념각자의 석각이 이채롭기도 하다.
1571년에 4대 명필이요 사선의 일인자인 봉래 양사언이 반석상에 새긴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 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란 12자와 하행방서로 옥호거사서 신미중춘(玉壺居士書 辛未仲春)이란 초대형 석각이 있어 옛 선인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무릉반석 전경
무릉반석에 새겨진 글씨들
무릉반석에 대하여 설명중인 류재만 시인
무릉반석 위에서
무릉반석을 돌아보며
무릉반석 하류쪽 전경
무릉반석 위에서 - 서자원부부
무릉반석 위에서 - 박광덕부부
무릉반석 위에서 - 이번엔 같이
(봉래 양사언석각)
현과 함께 각 시대의 명인들의 필적들이 현자되어 있고 부근에는 금란계원명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무릉선 원중대천석두타동천>이라는 석각은 무릉계곡의 신비한 경치를 노래한 내용으로 양사헌의 글씨로 추정되고 있는데, 양사언은 초서와 대자를 특히 잘써서 안평대군 김구.한호와 함께 조선전기의 사대명필중 한 사람으 로 손꼽이는 인물이다.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라고 쓴 7자의 옥호를 옥대라고 볼 수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것과 같이 가히 용이 폭포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과 다툴만하다'라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양사언의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다른 견해로는 이조원(1758-1832)의 호가 옥호이므로 그가 쓴 글씨라고 하나 신빙성이 적다. 또 다른 견해로는 1750년에 삼척부사로 와서 2년동안 있었던 옥호자 정하언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있다. 정하언은 어제 편제와 창경궁 편액을 썻을 정도로 글씨가 뛰어났다. '옥호 거사서신미' 라는 7자에서 신미년은 정하언 부사가 재임기간인 1751년과 일치하고 있다.
아울러 양사언의 글씨로 추정하는 사람들은 그가 초서의 대가로 정평이 났었고 인근 강릉부사로 왔던 때가 신미년인1751년이며 , 또 그가 바로 전임부사인 정두형의 상을 조문하기 위해 무릉계에 인접한 비천동을 다녀갔다는 기록, 그리고 삼척지방의 구전이나 최만희 가 쓴 책자 등에도 양사언의 글씨라고 기재된 점으로 보아 양사언의 글씨로 보고 있다.
전 양사언석각 - 무릉반석 오르는 길가에 있음
(금란정)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금란정 전경
(삼화사)
가진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삼공암, 측연대, 중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절과 관련하여 세가지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삼화사사직〉 .〈진주지〉등에 의하면, 이 절은 신 라 선덕왕 11년(642)에 지장율사가 흑연대를 창건하여 그 시초가 되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사를 지어 삼공암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와 아울러 현존하는 유물들을 감안하면 삼화사는 대체로 신라말에 창건되었 다고 볼 수 있다.
이 절은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덨던 것을, 사찰을 포함한 인근지역일대가 1977년 쌍용양회 동해 공장의 채관권내에 들 어가자 무릉계곡내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여러 가지 창건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삼화사는 고려 공민왕 16년(1367) 풍우로 퇴락된것을 란옹스님이 중건하였으며, 조선 선조년간에 왜군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현종 원년(1660)에 지금의 중대사터로 이건하여 중대사로 불리었다가 영조24년(1748)에 다시 구지에서 중건되어 삼화사로 하였다. 선 조 20년(1820) 절과 부속암자들이 전소되었다가 1824년에 조회염스님이 중건하였다.
1929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정원용.이기연 등 여러 사람들이 협력하여 중건하였으며, 1869(고종6) 화운과 덕추스님이 단청하 였다. 1873년 (고종 10)에 신당, 1896년에 승당이 건립되었다.
이와같은 여러차례의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창을 거친 삼화사는 1905년에 삼척지방의 의병들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06년 일본 은 의병의 거점파괴라는 이유를 붙여 대웅전.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이듬해인 1908년 대웅전.요사채.칠성당 등을 다시 건립하여 유지해오다 1977년에 개발지역에 편입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삼 화사의 구지에는 당시의 건물지와 기단축대, 초석일부가 지표에 노출되어 있고,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백자 등의 유물들이 산재 되어 있다.
현재의 삼화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범종각.육화로.천왕문.요사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삼층석탑과 철불목조지장보살상, 부도 및 비가 있다.
삼화사로 들어서며
삼화사 원경
삼화사로 들어서며 바라본 무릉계곡 - 상류쪽
삼화사로 들어서며 바라본 무릉계곡 - 하류쪽
삼화사 입구 - 사천왕문
삼화사 - 대웅전과 석탑
삼화사 석탑과 전면의 암벽
삼화사 경내의 청동불상
삼화사 경내에서 - 김돈희부부
삼화사 석탑
삼화사 외부에 있는 연못의 연꽃
삼화사 외부에 있는 연못의 연꽃
삼화사 외부에 있는 연못의 연꽃
삼화사 외부에 있는 연못의 연꽃
삼화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약수 - 변강쇠 약수란다
【망상해수욕장과 오토캠핑장 및 펜션】
으로 은빛 모래를 밟으며, 드넓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해풍에 가슴을 열고 드넓은 동해의 품에 안겨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이 해수욕장내에 국내 최초로 조성된 자동차전용캠핑장은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 맑은 비취빛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친화적 레저공간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2002년 제 64회 FICC 세계캠핑캐라 바닝대회(2002. 5. 16 ~ 5. 27)가 열린 곳이다.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오토캠프장, 캐라반(일명 캠핑카), 캐빈하우스(통나무집), 아메리칸코테지(목조연립형주택) 등의 친환경적이 며 자연경관 보존형 시설을 중심으로 조성된 상설 캠프장에서 자동차와 텐트, 목조 숙영시설을 이용하는 가족단위의 새로운 신레 저 문화활동 공간이다.
해수욕장과 함께 가족단위 휴양은 물론이고 기업체 및 단체 대학생들의 연수나 M/T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시설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공동취사장, 공동화장실 및 샤워장, 코인 세탁기, 매점 및 휴게식당, 카페테리아, 클럽하우스, 놀이터, 해림정(팔각정자) 산책로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조성되어 있어 어느 휴양지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즐거운 휴식과 다양한 레저 활동을 접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이곳은 2002년 제 64회 세계캠핑캐라바닝동해대회를 계기로 자연친화적인 레저공간으로써 자동차를 이용한 가족단위 사계절 국민관 광 휴양시설입니다.
망상리조트 펜션에 도착하여
망상리조트 펜션에 도착하여
망상리조트 펜션 전경
망상리조트 펜션 전경
망상리조트 오토캠프장
망상해수욕장 전경 - 북쪽 백사장
망상해수욕장 전경 - 남쪽 백사장
동해시 어달리라는 곳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식사중
식사를 마치고 목청을 가다듬다 - 망상해수욕장입구의 노래방에서
열창중인 박광덕 사모님
우리도 같이 놉시다...ㅋㅋ
김정미 총무님이 참석하여 - 인사중
한곡 안할 수 가 없지요...ㅎㅎ
조용히 경청중
다시 펜션에 도착하여 - 조개와 새우를 꿉다!
조개와 새우가 맛있게 익어가고
무엇이 그리 즐거우신지 - 류재만 시인
이런 분위기에 한잔 안할수는 없지!
【능파대 - 촛대바위】
바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특히 아침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는 해상선경이다.
했던 곳으로 주변에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에 집현전 제학이었던 심동로가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양성을 위해 건립한 지방문화재 "해암정"이 위치하고 있다.
능파대 입구에 있는 "해암정"
능파대 북쪽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해안선
능파대 북쪽 해안선을 배경으로
능파대의 촛대바위
능파대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능파대 남쪽부의 돌섬과 해안선
능파대 남쪽부의 돌섬을 배경으로
김돈희부부
능파대 전망대에 올라선 권오룡사무관님
능파대 촛대바위와 그 절경
능파대 남쪽부의 돌섬
능파대를 내려오며 뒤돌아본 전경
추암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능파대 전경
능파대를 돌아본후 주차장에서
다시 겨울연가 촬영지에서 커피를 즐기기 위해
겨울연가 홍보사진
겨울연가 홍보사진
겨울연가 배경이된 주택 - 지금은 카페와 민박집으로 이용중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가 숙박을 한 방 - 당시는 침대가 없었음
소나무 분재와 바다
추암해수욕장 전경
연리지 카페에서
연리지 카페에서
연리지 카페에서 - 김돈희부부
연리지 카페에서 - 멋있읍니다! 류제만 시인님!
연리지 카페에서 - 박광덕부부
연리지 카페에서 서자원부부
연리지 카페에서
연리지 카페에서 - 참석자 전원이
연리지 카페에서 - 배용준과 최지우?
연리지 카페에서 - 요렇게 할려고 했는데...ㅋㅋ
추암교에서
추암교에서
추암역 전경 - 부지런한 김시환동장님!
추암역 계단을 내려서는 김시환동장님!
※ 1박2일의 일정을 마치고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아쉬움만을 가득 안고 헤어짐을 맞이 했습니다!
11월 대구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다음 모임엔 회원 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기대를 해봅니다!
모두들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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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존경하옵는 대구 서자원 과장님과 미스코리아인지 미스대구인지 예쁘기만한 미인 사모님! 덕분에 좋은 추억거리 만들었습니다. 특히 서과장님께서 사주신 묵호항 복지리는 지금도 속이 든든합니다. 동해에만 시인이 있나 했더니 대구에도 명시인이 있군요. 글솜씨가 아주 매끄럽습니다. 등단하셔도 될 듯....이 모임후기 두고두고 보면서 자랑할까 합니다. 다시 뵐 때까지 모두 건강하십시요. 열 명의 연리지 주인공 평생 화이팅!! - 권오룡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의 여행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셨으니.. 감격 !감탄! 카페 산울림에 들어가서 유럽 여행기도 아주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팔공산은 무슨 공원?' 답을 몰라서 가입이 안되네요.. 답좀 가르켜 주이소..
자연공원입니다!
서자원 사무관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진 솜씨가 작가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우리분임에 참가하지 않으신 분들의 이야기가 없는지 궁금하네요.
강원도에서 부부모임이라..강원도에 참 좋은 곳이 많네요. 이번 휴가는 강원도로 갈까..보는 사람까지 흐뭇하게 하는 좋은 만남,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