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사진] 경기 남양주시 수석동에 있는 조말생(趙末生) 묘역과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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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변북로를 타고 구리방면으로 죽 따라 나가다가 외곽순환고속도로 토평IC를 지나 와부(덕소)와 팔당 방면으로 이어지는 6번국도로 접속되는 도로의 중간쯤에서 '강북정수장' 약간 못미쳐 이 '조말생신도비' 안내입간판이 눈에 띈다. 버스정류장 간판을 보니 정류장 이름은 '석실입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남양주시 수석동인데 이곳에 이르기 조금 전에 '수석동 토성'이라는 또 다른 안내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부근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말생 묘소와 신도비는 안내판에 써 있듯이 200여미터 남짓한 곳에 있으므로 도로변에서 멀지 않고, 찾는 것도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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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영모재'라는 재실 뒤편을 통해 묘역에 오르면 사진에서 보듯이 '석실서원지' 표석(1987.9.17일 경기도에서 세움)이 있다. 이곳은 서원철폐령 때 없어진 석실서원 터였는데, '조말생'을 비롯한 양주조씨 일가의 묘소들이 원래의 자리를 금곡 홍릉으로 내어준 뒤에 이곳으로 한꺼번에 이장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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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높은 자리에 '조말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그 아래쪽으로 후손들의 묘소들이 층을 지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양주 금곡에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이미 소개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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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말생 묘역에서 한강쪽으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시원하다. 날씨가 흐려 흐릿하지만 강 중간쯤에 교각공사가 한창인 곳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이다. 바로 그 부근에 와부(덕소)도 코 앞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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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에서 물러나와 다시 조말생 묘소 쪽을 바라다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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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조말생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 신도비는 '영모재' 재실 쪽으로 내려가지 말고 언덕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금세 찾아낼 수 있다. 이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안을 살펴보면, 이 신도비는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8호'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도 아니고, 문화재자료도 아니고 그야말로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지정문화재도 아닌 '고작' 향토유적이란다. '향토유적'은 문화재보호법의 테두리에도 속하지 못한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시군자치구에서 제정한 조례를 근거로 하는 아주 낮은 단계의 관리형태를 말한다. 누가봐도 이 신도비는 '향토유적'이 아니라 마땅히 '도유형문화재' 혹은 최소한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남양주시 문화재관계자 혹은 양주조씨 문중의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도 이건 '향토유적'으로 눈밖에 나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지정문화재'의 범주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관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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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비석이 세워진 것은 "숭정후 80년(정해)" 즉 "숙종 33년 (1707년)"인데, 원래 양주 금곡동 묘적산 자락에 있던 것을 1900년 9월에 묘지가 먼저 옮겨오고 나서 다시 한참이 지난 1938년 5월에야 이것을 마저 옮겨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비석의 귀부를 보면, 그 모양과 크기가 그야말로 '용가리'급이다. 여느 것과는 달리 꽤나 크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것을 옮겨오는데만 10킬로미터의 거리를 4개월이 걸렸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비신(碑身)의 옆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각(追刻)되어 있다.
"光武四年庚子九月因洪陵封標遷奉于同郡水石里乾坐原距故山南十里後三十九年戊寅五月徙舊碑立新崗記事之終始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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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일대가 음식점과 가건물 등이 드문드문 둘러싸고 있어 보존환경이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 역시 한강을 내려다 보는 풍치가 그럴싸 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 비석은 '향토유적'이 아니라 '경기도 유형문화재' 혹은 '경기도 문화재자료'와 같은 문화재보호법 상의 정식 문화재로 지정관리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랄 따름이다.
(정리 : 2006.6.12,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