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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턴~, 하나, 둘, 셋, 넷, 딥~ 자, 눈을 맞춰요 눈. 그렇지.”
19일 자정 홍대 앞 B호프집은 1950년대 로큰롤이 유행했던 미국 멤피스로 돌아간다. 20대의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들이 우루루 몰려온다. 핫 윙에 맥주잔을 드는가 싶더니 재즈 음악이 나오자 눈짓을 하면서 한 쌍씩 무대로 돌진한다. 파트너를 바람개비마냥 팔랑팔랑 들어 넘기는 ‘에어’ 동작을 할 때마다 여자들의 치마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고, 남자들의 멜빵이 팽팽해진다.
이들은 스윙 댄스 동호회인 ‘딴따라 댄스홀’ 회원들. 올해 초부터 갈고닦은 춤을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대학로의 바에서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연극배우·극작가·만화가·공연기획자·스타일리스트 등 여러 장르 예술인 5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이 동호회는 무대 설치부터 공연, 테이블 세팅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송년회를 계획하고 있다. 200여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바를 일반인에게 개방해 스윙의 매력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체크 무늬 복고풍 원피스를 입은 박수진(19·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1년)씨는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기분이 짜릿하다”며 “몸치로 소문난 제가 춤 잘 춘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극배우 오동주(33)씨는 “연극은 대사에 의존하지만 스윙은 몸으로 상대방과 소통하는 느낌이어서 좋다”고 말했다.
#2. 20일 오후 7시 압구정동의 살사바가 40~50대 중년으로 가득 찼다. 중년의 살사 댄스 모임 ‘살사로’의 회원 250여 명이 춤으로 송년 파티를 열었다. 주부부터 회사원, 부동산 중개인, 한복 디자이너까지 직업이 다양하다.
김선영(53·주부)씨는 “처음에는 20~30대 사람들이 파트너로 선택해주지 않아 서운했는데 이 모임에 가입한 뒤 지방 파티까지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권오현(48·주부)씨도 “쿠바 여행을 가 춤의 의미를 알게 됐다”며 “중년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놀이공간이 없는데 세련된 파티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권씨는 지난해 런던과 뉴욕에 있는 딸들에게 놀러 가서도 살사바를 찾았다. “다른 송년회에 가면 허전하고 뭔가 빠진 듯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거 말고도 있는데’란 생각도 들고요.” 권씨의 귀띔이다.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나영새(박건형 분)는 장채린(문근영 분)에게 말한다. “춤출 때만큼은 날 사랑해줘.”
민숭민숭한 송년회 퇴치법의 하나로 추천되는 레퍼토리가 춤이다. 춤을 곁들이면 송년회 분위기는 저절로 ‘업’된다. 파트너와 스킨십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파티를 풍성하게 만든다. 문화평론가 박사(여·37)씨와 이명석(37)씨의 말이다. 이들은 올해 초 스윙 댄스에 푹 빠졌다. 20년대 미국 찰스턴에서 흑인 노예들이 시작한 이 춤은 재즈에 맞춰 춘다. 라틴 댄스와 비슷하지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파트너를 자주 바꿀 수 있어 젊은 층에서 인기다.
“2003년 터키 여행을 하다가 민속춤을 추는 음식점에 갔어요. 춤을 알면 훨씬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그 음악에 맞춰 춤출 수 없다는 게 어찌나 야속하던지…. 그 후론 삶이 곧 춤이고 파티인 인생을 살고 있어요.”(박사)
지인들과 특별하게 교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뭉친 춤 동호회는 송년회 풍경이 어느 모임보다 활기차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벨리댄스·힙합 등 혼자 추는 춤에서 살사 스윙 등 사교를 위한 소셜(social) 댄스로 이동하는 추세다.
소셜 댄스로 각광받는 것이 6박자 미국 댄스 스윙이다. 100여 개의 동호회에 5만 명의 온라인 회원이 송년을 아쉬워하며 연일 스윙 파티를 열고 있다. 스윙족(族)의 주 활동 무대인 ‘스윙바’도 유례 없는 대목을 맞고 있다. 신림동, 합정동, 건국대 입구 등에 있는 서울의 7개 스윙바는 자리가 없어 예약을 하지 못할 정도다. 신림동 ‘올 댓 스윙바’ 사장 이사야(31)씨는 “최근 드라마 ‘경성스캔들’, 곧 개봉할 영화 ‘모던보이’ 등에 스윙댄스가 소개되면서 일반의 관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 외에도 부산·대구·김천·제주 등에서 동호회 활동이 활발하다. 동호회 ‘스윙시티’의 클럽장 한여름(31)씨도 동호회원 30여 명과 함께 29일 졸업공연을 앞두고 7주간의 집중 연습에 들어갔다.
동호회원들은 송년회를 준비하기 위해 밤새도록 연습하고, 복고풍 의상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뒤진다. ‘딴따라 댄스홀’의 클럽장 노진환(30)씨는 “여름엔 홍대 프린지 페스티벌에, 가을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뛰쳐나갈 만큼 열정이 넘쳐요. 이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 밤을 새울 만하죠”라고 말했다. 이명석씨는 “송년회 때 돈 쓰고 술 마시는 데 지친 사람들이 춤을 즐기고 정보도 나누고 인맥을 형성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교문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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