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항산-삼수령 구간(20210221)
하사미동 외나무골 입구-예수원-장암밭재·구부시령 갈림목-장암밭재 쉼터-
덕항산-새목이-구미사봉-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새목이-노루메기-피재(삼수령)
산행거리 : 17.4km
소요시간 : 6시간 30분
1. 백두대간 마루금에 올라서기(제천휴게소-외나무골 입구-장암밭목재)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절기를 지난 2월 21일 백두대간 덕항산-피재(삼수령) 구간 산행을 떠났다. 송백산악회 버스가 제천휴게소로 들어가서 정차, 15분 휴식을 준다. 제천휴게소 맞은편 우뚝하게 솟은 송학산이 멋지다. 아름다운 풍경이 미세먼지 탓에 부옇게 들어온다. 10시 40분,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 입구에 버스가 도착, 하차하기가 무섭게 출발한 선두 대원들은 벌써 외나무골 골지천 나무다리를 건너 마을길로 내빼고 있다.
외나무골 입구의 나무다리는 골지천 위에 놓인 다리로서 차량이 다닐 수 없고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인도교이다. 바람이 거칠게 불어댄다. 모자가 바람에 벗겨져 날아가다가 하마터면 한강의 최상류 골지천에 빠질 뻔하였다. 다리 난간 앞에서 사연이 많은 등산 모자를 가까스로 구출했다. 다리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난간 앞 의자에 앉아서 골지천을 거슬러 올라 골지천의 뿌리샘 검룡소를 찾아보는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부리나케 앞서가는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을 따라 나무다리를 건넌다.
농특산물유통센터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예수원’ 건물이 보인다. ‘예수원’은 성공회(聖公會) 토레이(R.A. Torrey Ⅲ, 한국명 대천덕) 신부가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는 기도와 노동을 중심 가르침으로 하여 1965년에 설립한 기독교수도원 공동체라고 한다. 지난해 12월 20일 매봉산에서 삼수령으로 내려올 때 길 오른쪽에 있는 삼수령한우목장을 보았는데, 이 삼수령목장이 ‘예수원’에서 운영하는 구체적 실천 현장임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예수원’ 오르는 길 왼쪽에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왼쪽부터 고 대천덕 신부님 추모비, 2009년에 세운 예수원 설립 44주년 기념비, 레위기 23장 25절에서 발췌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구절을 새긴 비석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토지의 공적개념이 희미해지고, 오직 사유와 개인 자산이라는 자본주의 틀에서만 토지를 바라볼 때 공동체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은 험악해져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에서 비종교인인 나는 ‘토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토지의 공적 소유 개념의 확장을 염원한다. 우리 사회의 부동산 투기와 주택가격의 천정부지(天井不知)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시민들의 건전한 공동체의식과 토지의 공적개념의 실천화라고 생각한다.
외나무골 계곡 왼쪽 산비탈에 세워진 예수원 공동체 건물들을 흘깃 살피며 올라가니, 장암밭목재와 구부시령 갈림목에 이른다. 오른쪽은 구부시령 오르는 길, 왼쪽이 장암밭목재 오르는 길, 왼쪽 계곡으로 들어서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을 건너 무덤을 지나서부터 고도를 높인다. 급경사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 해발 1030m 장암밭목재 쉼터,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섰다. 외나무골 입구 나무다리에서부터 약 40분이 걸렸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었다. 북쪽으로는 광동댐 수몰지 이주민들이 정착한 귀네미마을의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다. 저곳에는 다음번에 가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 덕항산과 구부시령, 건의령을 거쳐 피재(삼수령)에 이르는 산행이다. 자, 출발이다. 피재를 향하여.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동 외나무골 입구
외나무골 입구의 외나무골 나무다리를 건너 산행을 출발한다. 이 나무다리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이다.
2. 칼날이 사라진 바람 속을 행진하다(덕항산-구부시령-건의령-피재)
장암밭목재에서 덕항산까지는 400m, 10분도 안 걸려 순식간에 덕항산에 이른다. 덕항산 정상은 해발 1071m 표지물과 이정목, 삼각점 등 표지판들이 세워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정상표석은 없다. 예전의 정상표석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새로운 정상표석을 세우기 위해 준비 중인가? 다음에 올 때는 정상표석을 만날 수 있을까?
낙엽송 숲과 참나무 숲을 내려가 마른 수풀이 나뒹구는 안부(鞍部)에 이르니 덕항산에서 600m, 구부시령까지 600m를 표시하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새목이재일 게다. 새목이재를 올라섰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잠시 뒤 구부시령이라 적힌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산봉에 이른다. 그러나 이곳은 구부시령이 아니고 해발 1007m 구미사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옆 나무줄기에 묶인 하얀 판을 보니 구미사봉이라 적힌 글씨는 지워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구부시령은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돌탑이 세워져 있고 구부시령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고개이다. 왜 이런 잘못을 고치지 않을까? 삼척시와 태백시에서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빠를수록 좋을 텐데. 결혼할 때마다 서방이 죽어서 아홉 서방을 모신 슬픈 여인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구부시령(九夫侍嶺)으로 내려가서 잠시 숨을 돌렸다.
낙엽송 숲을 지나 두 번째로 힘든 산비탈을 오르니 1055봉, 구부시령에서 15분이 걸렸다. 12시 14분, 이곳에서 대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배가 고프지 않아 대원들과 헤어져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선다. 홀로 걷고 홀로 쉬고 홀로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거세게 불어온다. 그러나 그 바람은 칼바람이 아니다. 겨우내 칼날을 쓴 때문일까? 바람은 무늬만 거셀 뿐이지 날이 서 있지 않다. 칼날이 사라진 바람은 봄기운을 실어서 씨앗을 싹틔운다. 푸른 새싹들을 키우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바람 속을 행진한다. 춘기를 맞아들인 몸이 씨앗을 키우는 듯 내 몸도 자꾸 열기를 뿜는다.
건의령 3.9km 후방의 안부(鞍部) 지점을 지날 때 점심을 먹고서 뒤따라오던 마야님과 학가산님이 나를 앞질러 1161.6봉을 힘차게 오른다. 나는 아주 힘들게 1161.6봉에 올라섰다. 고도계에 나타난 산봉의 높이를 확인하고, 걸어온 산봉들을 뒤돌아보고, 앞을 가로막는 넘어야 할 산봉들을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운다. 삼밭골 갈림목인 한내령으로 내려가는 979봉에서 산들님과 연두님을 만나 앞길을 열어 주었다. 한내령(삼밭골 갈림목)에서 활짝 트인 골짜기 건너편 푯대봉 능선 조망이 일품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우회하여 ㄷ자 방향으로 올라서면 961봉이다. 오후 1시 41분, 이곳에서 20분 동안 점심을 먹는 동안 내 뒤에서 따라오던 모든 대원들이 앞서서 나갔다. 2시가 넘었다. 맨 꽁지에 서서 다시 출발한다.
푯대봉 오르는 능선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멀리 끝에 매봉산 바람의언덕 풍력발전기들 풍경이 들어왔다. 아침에 덕항산 능선에서 가까이 북쪽 귀네미마을 위의 풍력발전기들을 보면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산행 끝자락은 매봉산 풍력발전기들 아래의 피재이다. 저 바람의언덕 아래 피재(삼수령)로 가야 한다.
푯대봉 삼거리에서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켜난 해발 1009.2m 푯대봉을 다녀와 건의령(한의령)으로 내려간다. 푯대봉과 건의령 사이의 산비탈은 산불 피해지역으로 생태 복원을 위해 어린 소나무들을 심어 키우고 있다. 산불로 인한 피해지에서 살아남은 한 그루 소나무가 화마가 할퀸 그 자리에서 애처롭게 우뚝하다. 생명을 삼키는 불행의 나락에서 생명을 지킨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눈시울이 흐릿해졌다. 저 소나무는 생명의 존엄성 그 위에 서있다.
고려의 충신들이 삼척에 유배당한 공양왕이 살해되자 이 고개를 넘으며 관모와 관복을 벗어 고갯마루에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여 태백산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건의령(巾衣嶺)에는 이런 전설을 적은 설명안내판과 산불 피해지 복원 후원자 기록비, 산신당이 세워져 있다. 지금은 건의령 터널이 뚫려 태백과 삼척을 연결해 준다. 언제던가, 예전 백두대간 능선을 산행할 때 건의령 터널공사가 한창이었었지. 그때 상사미마을에서 건의령으로 올라가 백두대간 능선을 산행하거나 백두대간 능선을 산행한 뒤 건의령에서 상사미마을로 내려갔었는데, 지금은 건의령을 통과하여 남진하면서 건의령 위 산봉에서 상사미마을을 내려다보며 지난 일을 추억했다.
건의령에서 500m를 오르면 묘지가 나오고 동서로 이어지는 숲길과 빈터가 나온다. 삼수령 후방 6km 이정목이 세워진 이곳에서부터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해발 961m 산봉우리를 넘어서 내려갔다가 올라서면 볼품없는 소나무들과 참나무들이 살아가는 평지 같은 산봉에 삼수령 4.7km 후방을 표시하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해발 960.2봉인 듯한데 여기서 울창한 푸른 소나무 숲을 거쳐 내려가면 삼수령 3.5km 후방, 기둥에 새목이라고 쓰인 이정목이 있는 새목이재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높은 산봉을 우회하여 산허리를 걸어 산죽밭을 내려가면 삼수령 2.8km 이정목이 세워진 휴식공간에 이른다. 이 휴식공간은 산림습지를 조성하고 숲가꾸기 부산물로 의자와 계단 등을 제작하여 지역주민들이 산책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성한 백두대간 산책로 휴식공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산림교육장 산책로가 나있는데, 백두대간은 이 산책로가 아닌 곧바로 오르는 능선이다. 이곳에서 956봉 오르는 게 힘이 들다. 오르는 도중 뒤돌아보면 푯대봉과 건의령 비탈의 숲 복원지 풍경이 환히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귀네미마을의 풍력발전기 모습이 아련히 잡힌다.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리라고 위안하며 힘을 낸다. 마지막 고비 959봉 급경사 오름길에서 낙원님과 오기님 부부와 재회한다. 점심을 먹은 961봉에서 헤어진 뒤 2시간 30분만에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이 산봉에서 945봉을 넘어 내려가면 임도가 나온다. 삼수령 800m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목이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임도에서 왼쪽 숲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노루메기인 듯, 삼수령 400m 후방을 나타내는 이정목이 서있다. 삼수령 조형물과 삼수령 정자가 있는 삼수령 공원은 지척이다. 삼수령 조형물은 오십천과 한강, 낙동강을 길이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여 조성한 조각물이다. 이곳은 큰피재로 불렸으나 동쪽의 오십천과 북쪽의 한강과 남쪽의낙동강이 분기하는 고개라 하여 삼수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지난해 12월 20일 매봉산에서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는 서녘으로 해가 많이 기울었는데 이번에는 아직도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삼수령 큰피재에서 송백 임시본부를 찾아 내려가는 길, 남쪽 매봉산의 바람의언덕 풍력발전기들이 서녘에서 쏟아 붓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칼날이 사라진 바람 속을 걸어온 산행의 대미를 매봉산 풍력발전기들이 윙~윙~윙~ 바람을 일으킨다. 멀리 광동댐 수몰지구 주민들이 이주한 귀네미마을 풍력발전기들도 윙~윙~윙~ 화답한다.
지구를 살리자
너나없이 소리치자
지구가 그랬다
너희 동네나 잘 살려
자연을 지키자
너나없이 소리치자
자연이 그랬다
너 자신을 잘 지켜
-박노해의 ‘그랬다’ 전문
정면 뒤쪽 뾰족한 산봉이 점심을 먹은 1055봉, 왼쪽 산봉이 1161.6봉, 정면 산봉이 979봉, 그 오른쪽 산봉이 961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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