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해 주려는 지 오늘 아침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다. 가을이면 이런 눈이 시린 하늘을 늘 보며 산 우리는 당연시한다. 그러나 서울에 내린 어느 외국인이 돈으로 살 수 있다면 한국의 가을하늘을 사고 싶다는 넋두리는 새겨들을 만하다.
창문 밖의 푸름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미당 ‘서정주’ 님의 ‘푸르는 날’이 절로 떠오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로 시작되는 노래다. 어제 동고동락하던 산우들의 면면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른 아침이다. 어제의 기억을 미당 선생의 푸르른 날을 그리며 나침반 삼아 간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송창식’ 님의 말을 들어보면 미당 선생께서 이 시가 곡 붙이기가 좋을 거라며 한번 해보라 했단다. 마친 후 들려드리니 아주 흡족하시더란 일화가 있는 시이기도 하다.
푸르른 날/ 미당 시, 송창식 노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자유인 산악회 호남정맥 3구간은 염암부락재에서 구절재까지다. ‘경각 내장 추월산’군을 경각산군, 묵방산군, 고당산군, 내장산군, 추월산군, 광덕산군, 설산군으로, 세분하면 이번 3구간은 ‘경각산군’ 중 염암부락재(310m), 365봉(365m), 오봉산(513m), 293봉(293m), 초당골국도(190m)이며, 이어지는 ‘묵방산군’인 분기점3(350m), 묵방산(538m), 가는정이(190m), 성옥산(389m), 왕자산(444m), 구절재(230m)다.
요즘은 15일 마다 돌아오는 정기 산행을 위해 운기조식(運氣調息) 하고 있다. 그러다 3구간을 앞두고 지인들의 반강제적인 약속을 거절하지 못해 명정(酩酊)이 5일로 이어졌다. 머리까지 아팠다. 솔직히 나는 산에 들 자격이 없다. 그러나 산은 넓은 포용력으로 나 같은 부류도 받아주기에 이를 구실로 슬쩍 버스에 오른다. ‘정상교’ 회장이 ‘이 동지’가 몸이 회복되었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저런 핑계로 후기를 시작하는 게 내 한계다.
후기에 참고하기 위해 정읍 문화원과 임실 문화원에 전화를 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얻어온 자료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껴서다. 서점을 드나들어도 딱히 입맛에 맞는 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전화 받는 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짜고 맞춘 듯이 답변을 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산이 없어요. 예전처럼 책을 만들고 싶어도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다만 우리가 정리해 놓은 자료를 일부 보내줄 수는 있어요. 착불이라도 받아보시려면 주소 불러 주세요.”
허나 기대와 달리 배달된 자료는 기대 이상이었다. 두 도시 합쳐서 8권을 보내왔다. 홈페이지를 통해 고마움을 알렸다. 오늘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음지에서 자신의 고향을 지켜나가는 이런 이들이 있는 한 지역 문화의 꽃은 지지 않는다.
사흘을 앞두고 다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한글날인 9일엔 수원 경기대에서 양재까지 걸었다. 일상에선 모래주머니를 찼다. 이러는 게 최소한의 예의겠지만 반복되면 곤란하다. 시간 나는 대로 인터넷에 들어가 자료를 보며 예습도 마쳤다. 덜 회복된 몸이 제발 잘 따라주기를 바라며 배낭을 꾸렸다. 뒤늦게 접한 조카애의 아시안 게임 마장마술에서 연속 2관왕 소식이 발걸음을 가볍게는 했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게 산행이다. 이번 산행 들머리 역시 어둠 속 오름이다. 야간을 겸한 장거리 산행이 부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인간의 감정인 7정(七情)이 짧은 순간 수없이 반복된다. 역설적으로 이런 산행은 기분 좋은 고통이며, 안전 산행 후에는 절대 만족이라는 선물이 기다린다. 이래서 스스로들 미쳤다고 하면서도 다시 만나나 보다.
신도림역에 9시 경에 도착하여 김밥과 인절미를 사고 늦은 저녁을 위해 삼겹살집에 앉았다. 정맥 당일엔 이런 식의 식사를 한다. 막걸리까지 한 잔 곁들이니 10시 4분 전이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지난번 불참한 ‘너와나’ 님이 전처럼 앞자리에서 특유의 미소로 반긴다.
‘맥주 한 잔 해라’
‘방금 막걸리 마셨다. 지난번에 오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아프시다. 오늘도 겨우 시간을 냈다.’
‘본받을 일이다.’
‘아니다 이것도 길이다. 인생의 길’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특히 요즘엔 더 와 닿는다. 이런 고운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전까지 일었던 야간 산행에 대한 부담을 불식시키기 딱 좋은 멘트였다. 그것도 꾸밈없는 자연산이다.
새벽 두시 넘어 도착한 들머리(鹽巖고개)가 지난 번 내리다 봐둔 새카만 능선이다. 30여 분 정도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몸을 풀고 장비를 확인하다 보니 뭔가 허전했다. 헤드랜턴이 없었다. 분명 오기 전 두 개에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챙긴 기억은 또렷해도 보이질 않았다. 배낭을 비우고 하나씩 넣으며 봐도 없다. 아차 싶었다. 랜턴은 버스에 두고 내린 보조 가방에 있었다. 이 모습을 ‘정 회장’과 블랙홀 대장이 봤다. 동시에 말이 나온다.
‘나에게 여분이 하나 있다.’
‘아직도 이런 실수를 한다.’
‘나도 아이젠을 두고 온 적이 있다. 그러면서 더 세심하게 보게 되는 거다.’
그들을 배려로 내 앞에도 불이 비쳐졌다. 왼쪽어깨에 달고 방향이 360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랜턴이다. 처음보고 처음 사용해 본다. 심호흡 한 번 길게 하고 스틱을 꽉 잡았다. 잡고 보니 스틱 하나가 나사가 풀렸다. 할 수 없이 ‘한문희’ 총대장처럼 하나 만 집고 오르게 된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나침반을 자주 꺼내보다 습관이 되었단다. 게으른 나 하고는 이유가 다르다.
숲길 교육 시 초반 30분 안배가 그날 산행을 좌우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뒤쪽에서 호흡을 고르며 걸었다. 거친 초반부를 정 회장’의 설명에 집중하며 올랐다. 첫 메뉴는 옥정호 구절체 축제 마지막 날과 운암댐이였다.
힘깨나 쓰고 어렵게 오른 첫 봉우리에서 얼마 가기도 전에 내리막길을 만났다. 경사 또한 오름과 같았다. 밤이라 전체를 볼 수 없으나 이러면 삼각형 구조다. 흙길에 밧줄이 길게 매있어 긴장 속에 서너 번을 연결하면서 내렸다. 와중에 어깨 랜턴이 익숙하지 않아 불빛을 여러 번 놓쳤다. 나중엔 아예 손으로 방향을 잡으며 내렸다.
경사가 심한 길을 여러 명이 끌다시피 내리다 보니 먼지가 많이 일었다. 불빛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내 산행 경험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주로 내뱉는 식의 호흡을 하며 적응해 나갔다. 오르고 밧줄로 내리고 하는 식이 계속되었다. 무의식적으로 털기까지 했다.
앞에 있는 시커먼 봉우리를 오르니 앞선 일행들이 쉬고 있었다. 주변에 비박하는 텐트가 여러 동 있었다. 이들은 갑자기 찾아든 불청객에 잠이 깨었을 거다. 자연을 느끼는 방법이 다를 뿐 이런 불편은 피차 감수해야 한다. 까만 오봉산(五峰山)에 표지석이 있었다. 뒤 오던 일행을 반기며 ‘이 팀장’이 묻는다.
‘바위 없는 산에 밧줄 맨 거 봤나.’
‘희양산에서 봤다.’
‘거긴 높기나 하지’, 블랙홀
먼저 오른 일행들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모양이다. 시간은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어제 강화에서 캐온 6년근 파삼을 꺼내 일부에게 돌리고 홍주를 한잔 마셨다. 60도 독주다. 그 한 모금이 다리에 힘을 준다. 마치 전기 통하듯 순간적으로 느낌이 온다. 호기심 있는 이들도 조금씩 맛을 본다.
물안개로 덮인 새벽 옥정호가 신비감을 준다. 해가 뜨면 안개는 사라지고 옥같이 맑은 물이 나타난다. 사시사철 단 하루도 똑같이 않은 옥정호의 퍼포먼스는 찾는 이들에게 설렘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보름이 사나흘 지났으나 달이 아직 원에 가깝다. 검은빛 지상에다 검은 구름을 피해 출현을 반복하며 또 다른 색감을 선사한다. 옆의 블랙홀에게 아래 내용을 물으니 기상천외한 답을 한다.
‘혹시 한참 전 서진 룸싸롱 사건 기억하나.’
‘그렇다. 여기와 관련이 있나.’
‘그 무리들이 사고 후 이곳으로 피신해 낚시를 하다 잡혀갔다.’
‘그러면 그들은 신선 세계에 살았다. 룸싸롱이나 옥정호나 신선 세상 아닌가.’
오봉산은 경각산군에서 이름이 있는 봉우리 중 하나다. 아직은 어둠이라 볼 수 없지만 ‘전북 100대 명산’을 쓴 저자는 정상에서 동으로 옥정호, 서로 모악산, 남으로 무등산 내장산 강천산 회문산 추월산 등이 아른거리다 하고, 북으로는 경각산과 고덕산이 다가온다고 적었다.
오봉산은 행정구역상 완주군 구이면, 임실군 운암면에 경계해 있는 산이다. 정맥을 경계로 도시가 많이 나뉜다. 대간은 도를 가르기도 한다. 험한 산줄기로 인해 각양의 삶이 만들어 지고 고정되어 전해온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다. 시인은 꽃을 말했지만, 독자들은 그 꽃에다 자신의 의미를 준다. ‘의도의 오류’다.
초반부에 ‘정 회장’이 설명해준 운암댐은 이랬다. 자료를 보고 요약했다.
‘운암면에 있는 운암댐은 1925년 동진 수리조합에서 운암발전소를 세울 때 만든 댐이다. 동진강의 상류와 분수를 이루는 왕자산과 성왕산을 뚫어 수계를 바꾸면서 그 물을 동진강으로 유입시켰다. 호남평야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흉년이 들 수밖에 없는 쓸모없는 땅이 부지기수였다.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던 호남평야에 운암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의 물을 수로를 변경하여 정읍, 김제, 부안 등지로 내려 보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만들고 과도한 수세를 요구했기 때문에 민중이 들고 일어났던 동학혁명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또한 섬진강 수력발전소는 정읍시 칠보면에 위치한 유역변경식 발전소로서 전력을 생산하고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섬진강 하류 2km 지점에 섬진강 본류를 횡단하는 중력식 콘크리트 댐을 축조하여 약 6km 수로를 이용하여 발전한 뒤 동진강으로 방류하고 있다.‘
종주는 특성상 주로 마루금을 걷는다. 스치고 지난다는 표현이 결례가 아니라면 이런 구조에서는 산 아래 지방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역사와 문화를 그려낼 방법이 없다. 후기에 인용 자료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다시 말하면 나는 수원 토박이란 말이다.
오봉산은 구이면 백여리 소모마을을 가운데 두고 다섯 봉우리가 마치 말굽 모양으로 타원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오봉산 정상 이정표에 소모마을 방향이 이래서 있나 보다. 이 다섯 봉우리를 가지고 1봉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고 하나, ‘전북산사랑회’에서 지역 노인들의 의견을 존중해 정상인 제1봉에 이정표를 설치하고, 북쪽 방향으로 2,3,4봉 그리고 치마봉을 제5봉이라 부르기로 했단다.
이번 구간에서 두 개의 삼각점(三角點)을 만났다. 삼각점은 기본측량에 의해 설치된다. 직각좌표에 의해서 전개한 위치를 표시한다. 국토 전역 각 지점의 평면 위치 또는 거리는 바로 삼각점의 경·위도를 이용하여 결정된다.
높이의 기준은 m이며 소수점 한 자리까지 나타낸다. 표시는 화강암이나 금속판에 ‘+’자를 새겨 중심을 표시한다. 삼각점에 표시된 ‘+’ 자는 흔히들 동서남북 방향 표시로 알고 있으나, 이 보다는 중심의 의미를 갖는다는 의견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현재는 1등~4등 삼각망도라 하지 않고 정밀 1차 또는 정밀 2차를 기준점 망도라고 한다. 1차는 삼각형의 거리가 약 10~15km, 2차는 1차에서 세분화한 것으로 삼각점간 거리가 3~4km 간격의 삼각망을 형성한다. 전국에 설치된 1~2차 삼각형의 숫자는 약 15,000여 개이며, 주로 산봉우리나 높은 지역에 설치되어 있다.
지난번 ‘이 팀장’이 찍어 올린 삼각점을 읽어 보자. 네모진 시멘트 구조물 가운데 ‘+’를 기준으로, 좌상에 ‘갈담’ 우상에 ‘804’ 좌하에 ‘1984’ 우하에 ‘재설’이라 되어 있다. 그걸 읽어보면 갈담은 1;50,000 지도 도면 이름, 804는 삼각점의 등급 앞자리와 고유번호의 조합, 1984은 설치년도, 재설은 다시 설치했다는 말이다.
삼각점의 기준이 되는 지점은 지구상에서 본초자오선에 의한 동·서경과 적도에 의한 남·북 위도로 나타낼 수 있으나, 거리상의 불편을 고려하여 각국마다 경·위도를 기준한 기준점을 설정해 놓고 이로부터 삼각점을 설정하여 삼각망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나라 경·위도 원점은 수원 국립지리원에 있고 이는 1985년 12월 27일에 제정한 것이다. 이전에는 남산 정상 팔각정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봉산을 내리면서도 먼지에 시달렸다. 내리고보니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조금을 걷다 다시 산으로 든다. 와중에 일행 한 분이 오르고 나서 다시 이 아스팔트로 내린다하기에 솔깃했다. 옆에 있던 ‘정 회장’ 눈치도 그렇다는 걸 어둠에서 읽었다. 내가 산에 들지 않고 그냥 걷겠다니 자신도 먼지 때문에 힘들었다며 동의한다. 이래서 우리는 강화와 셋이서 옥정호변 도로를 따라 내렸다.
아이러니(irony) 하게도 이런 행동이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맥을 이어가는 대다수가 악착같이 그 맥 속에 난 길을 밟는다. 이걸 조금 넓게 이해하면 그 맥을 따라 가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후자로 자위하고 앞으로 걸을 길은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다.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고 한 ‘김용택’ 시인의 말이 의미도 이런 게 아닌가 한다. 역시 의도의 오류다.
달 한 번보고 물 한 번 보던 ‘정 회장’이 어김없이 감성어린 표현을 한다. 나도 달빛을 벗 삼아 걷고 있는 장돌뱅이들을 머리에 그리고 있던 중이었었다. 이심전심인지 그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눈같이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을 구절초 꽃에 대비시킨다. 그렇게 우리는 걷고 있었다. 이어서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를 읊는다. 분위기에게 맞게 낭송함에 나도 따라 외었다. 때마침 보름달도 구름에 달 가듯이 가고 있었다.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갑작스런 질문이 들어온다. 나그네가 빨리 걸었을 까 천천히 걸었었을까가 요지였다. 이 분위기에서 교과서대로 암울한 세상이 어떻고 하는 답을 말하는 것은 현학(玄學)적이고 융통성 없이 살았다고 혼날 판이다. 이걸 피해 답을 내느라 잠시 머리가 아팠다. 그냥 걸으며 느끼기도 바쁜 판에 떨어진 회장님의 물음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이런 리듬으로 걸었다.
나는 술 익는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가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거라며 천천히 걷는 다는 의견을, ‘정 회장’은 일단 빠르게 걷다 술 익는 마을에 와서는 천천히 행동했을 거란 의견을 냈다. 나그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쉴 자리라고 의견을 더했다. 역시 의도의 오류다. 지금까지 ‘의도의 오류’라는 표현을 3번 했다. 화자와 청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말로 보자.
난생 처음으로 옥정호에 와서 이른 새벽길을 한참 걸었다. 이런 식으로 주린 배를 원껏 채웠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보니 호숫가에 집 한 채가 있었다. 옆엔 운암정이란 멋들어진 정자도 있었다. 당연히 그리로 올랐다. 시야가 허용하는 만큼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았다. 시원한 바람이 차게 느껴지기에 남은 홍주를 꺼내 홀짝이다 들은 대화다.
‘막걸리 있나. 임실 막걸리냐.’
‘막걸리는 있다.’
‘안주도 있나.’
‘두부가 있다.’
이 시간에 이런 데서 막걸리 운운하니 환청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분명한 것은 하나가 ‘정 회장’이 목소리다. 고개를 흔들고 보니 길카페란 큰 글씨 옆에 작은 글씨로 참새와 방앗간이란 애칭을 적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영락없는 백제인 얼굴에 구수한 지역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첫 인상에도 호감을 느끼는 남잔데 입고 있는 바지가 여자 몸빼바지다. 조금 뒤 나온 여자 분과는 나이차가 제법 있어 보였다.
‘몸빼바지다.’
‘한 번 입어보니 이리 편할 수가 없다.’
이러는 사이 ‘너와나’ 일행이 왔다. 이래서 우리는 ‘최귀철’ 대장, ‘불고’ 님 까지 여섯이다. 찬바람을 피해 안으로 들었다. 천장이 낮고 좁은 곳이라도 옥정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국적 없는 요리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인 어느 명승지 화려한 식당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이게 진정한 로얄박스다.
이런 자리엔 늘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 주인공은 생일을 맞은 ‘너와나’ 님이 다. 생일상은 두부 한 모에 막걸리 한 병인 소박하지 그지없는 차림이래도 마음을 나누는 다섯 명의 벗이 빈상을 채우고 있었다. 시인이며 수필가로 유명한 ‘김소운’ 님의 수필에 나온 쪽지 그대로 ‘왕후의 밥, 거지의 찬’이 재현되었다.
생일 케이크는 깨진 초코파이에 성냥을 꽂았다. 파이는 배낭에서 꺼냈고, 요즘 보기 힘든 성냥은 주인이 제공했다. 그는 오래되고 귀한 조양 성냥갑을 망설임 없이 뜯었다. 주인공이 한숨에 불을 끄자 박수소리와 ‘해피버어스 데이’가 동시에 울렸다. 이런 게 퍼포먼스다. 이런 훈훈함에 차갑던 옥정호 바람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몸빼 사장님은 올해 63세란다. ‘정 회장’님이 작은 형과 동갑이라며 더 좋아하며 둘이 껴안고 사진을 찍고 우리도 함께 찍었다. 그때 정자 옆 문화재급 나무에 어디선가 참새 떼가 날아왔다. 마작을 추릴 때 나는 촤르르륵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다. 이래서 참새와 방앗간이란 소제목이 간판 옆에 자리했나 보다.
나도 그와 헤어지기 아쉬워 이별시로 유명한 고려조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벽에다 남겼다. 그 집 벽면이 명구로 채워져 얻은 힌트였다. 역시나 붓은 없었어도 굵은 매직이 있었다. 주인은 손님에게 자랑한다며 해석을 부탁했다. ‘송인’은 당시 중국에서도 탄복한 시다. 후인들이 시회 시작 전 세 번을 읊었다는 시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대동강을 옥정호로 바꿨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갠 언덕 위 풀빛 푸른 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玉井湖水何時盡(옥정호수하시진, 옥정호 물은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錄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우리가 이러는 사이 산 속엔 땀을 흘리며 걷는 이들이 있기에 혹시나 하고 산정을 쳐다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시 걷는 몸이 가볍게 흔들린다. 해장술이 아닌 아침술 영향이다. 술에 젖은 몸이 절경이라는 안주에 금방 꼬리를 내린다. 일행이 아침식사를 하는 운암삼거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짱해졌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블랙홀이 고맙게도 먼저처럼 캔맥주 하나를 주기에 모르는 척하고 받아 음미하며 마셨다. 역시 이번 안주도 회색빛 옥정호다. 나 홀로 이런 상쾌한 아침을 즐겼다.
매번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닌지 꺼낸 김밥이 영 아니었다. 한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에게 ‘정 회장’이 소세지 넣은 라면을, 최 대장이 불고기를 건네준다. 미안한 맘에 입으론 마다하지만 손은 이미 그릇을 들고 있다. 그래 이 맛이야 소리가 절로 났다. 이때 앞에 카메라를 맨 모터맨 왔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아 당연히 물었다.
‘먼저 번 다녀오려던 국사봉에서 오는 길인가.’
‘아니다. 일출을 기다리려고 1시간 30분 기다렸다. 해가 뜨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옥정호를 따라 가려고 일어서는 데 내 맘을 읽었는지 ‘정 회장’이 지역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묵방산은 반드시 올라야 한다함에 다시 산으로 들었다. 후반부는 내리고 바닥 치는 전반부에다 잡목을 더했다. 최선을 다해 걷다 묵방산 1.3km, 삼거리 1.0km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났다. 운암삼거리 다음 목적지가 5km뒤니 작은 목표점에서도 아직은 초반부다.
앞 쪽으로 봉우리가 떡 버티고 서있다.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높이에 경사다. 한번 힘을 쓰고 오른 봉우리가 묵방산이기를 바랬으나 그건 그저 바람이었다. 이정도 거리가 1.3km라는 상식을 넘는 판단이 지금의 내 상태다. 조금 걷다보니 봉우리가 계곡 아래로 이어졌다. 다시 내리고 오르라는 식이다. 지금까지 느껴온 호남정맥 산은 대체로 높이에 비해 난이도가 높았다.
사람 키보다 훨씬 웃자란 잡목 숲 사이로 길이 났다. 가시나무도 심심찮게 있다. 당연히 속도가 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런 길을 헤치는 지 스스로 묻고 답하고 하다 보니 작은 임도다. 다시 경사진 봉우리에 드려는 데 뒤늦은 식사를 하고 온 모터맨이 먼저 간다며 앞으로 나와 오른다. 올라가는 우리 속도가 모테라토라면 그는 알레그로다. 타고난 능력인 지 만들어 진 능력인지는 모르나 존경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악지맥 삼거리에서 ‘정 회장’이 지맥을 경계로 만경강과 동진강이 나뉜다고 했다. 역시 산자분수령이다. 묵방산 정상은 정맥 길에서 100m 벗어나 있었다. 지금껏 대간이나 정맥 길에서 아무리 이름 있는 산이라도 의도적으로 알바를 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지금 구간이 ‘묵방산군’이니 대표하는 산인 묵방산을 다녀오는 건 어쩌면 예의다. 함께한 일행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막상 도착해보니 표지석 대신 코팅한 종이가 정상임을 알리고 시야는 흐린 날로 그리 좋지 않았다.
앉은 김에 쉬어간다고 우리는 다시 배낭을 내렸다. 강화가 커낸 키위를 하나씩 나누고 물도 마시고 쉬는 사이, ‘이 팀장’이 시계를 보더니 길을 서두르자며 일어난다. 거기다 옆에 있던 ‘판종’ 씨도 선행자들의 기록을 보더니 그들보다 늦다고 한다. 얼결에 떠나는 ‘이 팀장’의 뒤를 강화와 둘이 바짝 쫒았다.
묵방산 내리막도 역시 삼각형 반대 변이다. 오르며 우리는 스틱과 몸 기울기로 경사도를 산출했었다. 45도까지는 아니라도 급한 경사는 분명했다. ‘이 팀장’은 이런 길을 쉽고 빠르게 잘 내렸다. 나는 뛰다 시피 따라 내렸다. 와중에도 한쪽이 짧은 내 스틱을 보더니 칼을 커낸다. 맥가이버 폼으로 잠깐 손을 대니 감쪽같이 고쳐졌다. 그러면서 ‘내가 엔지니어’라며 씩 웃는다. 너무 빨리 내려서 그렇지 역시 믿음직한 팀장이었다.
내린 길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길고 경사도 심했다. 이 길을 쉬지 않고 거짓말 조금보태 몇 분 안에 내렸다. 분명 오버 페이스다. 잠시 숨을 고르며 들어선 마을 입구에 있는 집 정원이 볼 만했다. 현대미술관 정원처럼 설치 미술이 많았다. 단지 이집 주인은 인공을 가미하지 않고 자연에서 얻은 소재를 그대로 늘어놨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이 팀장’ 까지도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에 담을 정도였다.
마을을 지난 구릉에서 쉬고 있던 일행들이 일어난다. ‘이 팀장’이 물을 보충한다며 인적 없는 마을로 든다. 역시 ‘이 팀장’은 사막에서 물 길어 나오는 이런 행동이 어울린다. 다가가보니 구릉이 단군 할아버지와 관련 있는 기념비적 묘소였다. 남향은 아니지만 옥정호를 마주보고 있다. 인상적일 정도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뒤늦게 일어서는 사진작가에게 한 장 부탁하고 싶어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래서 마음의 고향을 삼으려던 임실 어느 시골마을 가을 풍광은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정경이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무가 더욱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물을 떠오는 ‘이 팀장’에게 구절초 축제 계획을 말하니 고맙게도 늦은 사람들과 함께 탈출하란다. 양해를 얻고 나니 마음이 가벼웠다. 묘소 잔디에 드러눕다 시피 길게 앉아서 정취에 빠지며 ‘정 회장’ 일행을 기다렸다. 내리막을 나르다시피 오니 이런 보너스가 있었다. 얼마 뒤 도착한 일행은 물도 보충하고 배낭을 내리기도 했다. ‘판종’ 씨는 묘소 한 부분 한 부분을 세밀히 사진기에 담는다. 또 궁금해지기 시작해 오자마자 물었다.
‘그렇게 의미 있는 묘소였나.’
‘아니다. 가족묘에 참고하려고 담았다.’
‘정 회장’에게 구절초 축제 얘기를 하니 일행들도 호기심을 보이는 눈치다. 그러면서 ‘이 팀장’에게 탈출한다고 말했다 하니 우리에게 탈출이란 단어는 없다며 앞으로는 ‘힐링’이라는 표현을 하잖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요즘도 흔히 듣는 ‘웰빙’과 서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유사점은 느리게 살며 여유를 되찾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은, 웰빙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더 가치를 찾는 거라 볼 수 있겠고, 힐링은 경쟁으로 잃어가는 삶의 본래적 의미를 되살리자는 방향이라 볼 수 있겠다.
‘정 회장’이 바로 길로 내리지 말고 한 번 더 진행하자고 해서 다시 산길로 들었다. 그리 많이 걷지 않고 마을 들머리에서 쭉 빠진 소나무 군을 만났다. 내리니 버스대기소에 ‘가는정’이라는 지명 있고 정읍시라는 이정표도 있다. 산 하나 넘으며 임실군에서 정읍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길 건너 음식점 마당에 자리 잡았다. 지도를 열심히 보던 ‘정 회장’이 한 곳으로 모이란다.
우리는 구절초 축제 참가로 의견을 모았다. 오늘 난이도로 볼 때 운동은 충분했다는 말도 나왔다. 산 아래 문화 체험도 중요시 했다. 조금 뒤 내려온 ‘너와나’ 가슴엔 노란 꽃이 꽂혀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에 2차 파티를 열었다. 가게 하나 없는 마을이라 소주는 음식점에서 조달했다. 마지막으로 내린 회원도 합류해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이래서 모두 8명이 남았다. 이때 무전기를 통해 ‘이 팀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디냐.’
‘가는정이다.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
‘안 된다. 빨리 서둘러라.’
‘구절초 축제로 의견이 모아졌다. 연락을 위해 무전기 하나는 필요하다.’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고 결국 축제 팀은 양해를 얻어냈다. 히치하이킹이냐 걷느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중 ‘너와나’ 특유의 수완으로 음식점으로 가족 행사에 온 차 하나를 빌렸다. 결과를 기다리던 일행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8명 중 4명이 먼저가고 뒤에 4명이 가기로 했다. ‘정 회장’ ‘최 대장’ ‘강화’ 내가 걸었다.
다시 옥정호반 길이다. ‘정 회장’이 최근에 난 길이란다. 자세히 보니 이 도로를 중심으로 아래 위 부분 경사가 심했다. 2~3부 정도 능선을 질러 길을 낸듯하다. 도로부터 호수 인접 사이에 숲이 생겼다. 그 숲에는 탁구공만한 감나무가 특히 많았다. 나무가 공중에 있어 따고 싶어도 딸 수 없다. 열매만 남은 감나무를 중심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그 자체가 한국화다.
도로 위 산기슭에는 쑥부쟁이 군락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도 가도 만난다. 구절초 축제 가는 길임에도 구절초는 보기 어려웠다. ‘정 회장’의 끝없는 강의가 낯선 나그네를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여지없이 질문이 날아든다.
‘전에 내가 야생화 정의에 대해 말했었다. 말해봐라.’
‘솔직히 기억에 없다.’
‘그러면 쓰는가. 다시 들어라. 야생화란 들에 피는 풀꽃 중 원예적 가치가 있는 거를 말한다.’
옥정호반가 도로를 한 시간 가까이 걷다 ‘정 회장’과 ‘이 팀장’이 전화를 했다. 회원 셋이 도로를 내렸으니 픽업을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4명을 내려주고 오는 차를 만났다. ‘너와나’ 님이 다시 타고 왔다. 차가 그냥 지나칠까 우려해 다시 왔단다. 이 차에 더 태울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 애마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래서 길에 앉아있는 세 명을 보고도 일단은 그냥 지나쳤다.
구절초 축제장 입구에 먼저 온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서 행사장까지는 3.5km라는 안내판이 있다. 언뜻 봐도 그 거리에 전체가 차다. 행사장은 섬진강 지류인 냇가를 끼고 들어간다. 축제 마지막 날이라 길옆에 만개한 구절초가 흐드러져 있다. 냇가는 억새가 점령했다. 이 자체 대단한 볼거리다. 내가 가을날 정취와 술에 취해있는 곳은 정읍시 산외면이다.
극심한 정체에 이미 지친 몸이니 남은 일행들이 산 하산 예정 시간인 2시 30분까지 3.5km를 다녀오기는 산술적인 계산으로도 어려웠다. 차선책으로 분위기에 더 취해보려고 작은 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가지고 오는데 ‘정 회장’이 부른다. 지역 노인에게 지름길을 알았다는 말에 두말없이 가자고 했다.
3.5라는 숫자에 질린 나머지 일행은 버스에 오르고 ‘정 회장’ ‘너와나’ ‘강화’ 나 넷이서 용감한 선택을 했다. 가다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이런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판단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걷는 속도가 차보다 몇 배는 빨랐다. 얼마가기도 전에 노인의 말대로 개울을 끼고 빠지는 길이 나왔다. 그곳에 있는 행사 요원에게 물으니 10분 정도면 충분하단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냇가를 건너기 전 다리 구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리 이름은 ‘능교’다. 직전에 있는 이곳에서 찍은 영화 속 사진 안내판이 있어 가보니 전우와 타짜와 남부군 촬영지다. 여기서 뜻밖의 횡재를 했다. 소설과 영화를 통해 머릿속에 각인되어 반드시 찾겠다던 그 다리다. 내 짐작으론 회문산 언저리로 알고 있었기에 기대도 없었다. 20여 년 이상 앓던 다리체증이 이런 식의 우연으로 단방에 뚫리다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오늘 이거 하나면 충분했다. 이게 여행의 매력이고 발품의 덕이다. 이러니 구절초도 뒷전이 됐다. 다리 감흥에다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옥같이 맑은 물에 취하다보니 어느새 금강산 옥류담까지 상상하고 있다. 나에게는 이런 다리였으니 이글을 쓰는 13일 오후 8시 20분에도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저녁식사를 거르고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배가 고프지 않다.
구절초 축제와 옥정호의 연계성은 전문가의 입을 빌린다. ‘정 회장’에게 구절초에 관해 충분히 들었고 현장을 봤지만 다리 감상을 쓰다 더 이상 진행할 힘이 소진됐다. 이래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자료가 10월 2일자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가 쓴 기사다. 여행전문가답게 정확히 보고 또 표현도 아주 좋았다. 제법 긴 기사를 축약해서 읽어 본다.
‘정읍과 임실에 걸쳐 있는 호수가 있다. 섬진강 젖줄인 옥정호(玉井湖)다. 여느 호수와는 풍경부터 다르다. 물줄기는 넓게 퍼져 있지 않고 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굽이굽이 에둘러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가을이면 그야말로 동화 같은 가을 색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옥정호 물안개는 선경을 펼쳐내고 눈꽃처럼 활짝 피어난 구절초(九節草)는 청초한 향기로 그득하다. 산하가 온통 붉고 화려하게 물들어 갈 때 구절초는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을을 이야기 한다. 아름드리 솔숲 사이로 난 구절초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자연의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옥정호 가을여행의 시작은 구절초다. 추령천이 망경대를 돌아가는 초입, 노루목여울을 지나자 산속에 하얀 눈이 쌓였다. 솔 숲 사이로 소복소복 쌓인 눈은 바로 구절초다. 구절초는 산과 들이 붉고 화려하게 물들어 갈 때 소박하면서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가을을 이야기하는 꽃이다.
구절초 공원은 소나무 숲 사이에 펼쳐져 있다. 구절초꽃동산의 면적은 10만㎡로 동양 최대다. 야트막한 산자락 능선을 따라 이어진 꽃들의 향연을 보면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듯한 환상에 빠진다. 산책로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내음이 풍겨온다. 상쾌하고 기분 좋아지는 내음이다.
옥정호는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과 순박한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이미 흘러간 이제는 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옛 모습이 옥정호 주변에 오롯이 남아 있다. 옥정호는 그래서 어머니를 닮았다.
옥정호가 유명한 것은 물안개다. 옥정호 가을 풍경의 절반은 물안개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벽녘 물안개가 호수를 감쌀 때면 그야말로 선경이 따로 없다. 옥정호의 물안개를 제대로 보려면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가을철이 가장 좋다.
거울 같은 호수에는 붕어를 닮아 붕어섬으로 불리는 '외앗날'이 살포시 떠 있다. 파란 하늘과 채 걷히지 앉은 구름들이 그대로 호수에 담긴 모습이다. 담백한 수채화 같은 옥정호 풍경이 눈과 마음을 취하게 한다.‘
이곳 토박이 ‘김용택’ 시인도 구절초를 노래했다. 섬진강을 노래한 이들은 모두 저문 섬진강에 꽂혔다. 김 시인이 본 구절초는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실핏줄에서였을 거고, 그것도 수십 년 경험이 응축되어 나왔을 거다. 역시 토박이가 노래한 것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이런 토박이들은 다다익선이다.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너머 그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구절초를 노래한 시인 중 촌철살인 ‘안도현’은 이렇게 썼다. 그는 17살 때 ‘박용래’ 시인이 ‘여름 모자 차양이 숨어있는 꽃/단추구멍에 달아도/머리핀에 꽂아도 좋을 사랑아’라고 노래한 '구절초'를 읽고 좋아했지만, 정작 구절초를 알게 된 것은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자책도 그답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구절초에 대해 조금 더 들어가 본다. 역시 인터넷에서 차용해 왔다.
‘어린 시절 우리는 국화처럼 생긴 것은 모두 들국화로 불렀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개망초 따위는 모두 다 '들국화'라고 불렀던 것이다.
우리가 들에서 흔히 보며 들국화라고 하는 것은 쑥부쟁이이다. 쑥부쟁이는 흔히 무리지어 피며 논두렁, 밭두렁, 텃밭에 무리지어 핀다. 또한 꽃대에 한 송이만 피우는 구절초와는 달리 줄기 하나에 가지가 여러 갈래 갈라져 꽃을 가지 끝에다 피운다.
가을의 대표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들국화는 국어사전에는 나오지만 식물도감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들국화를 산국(山菊)의 다른 이름 또는 감국(甘菊)의 강원도 방언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용례와는 동떨어진 설명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는 노랗게 피는 산국이나 감국 꽃보다 하얀 구절초 꽃을 들국화로 알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백과사전류나 안내문도 구절초를 흔히 들국화로 소개하고 더러는 쑥부쟁이, 벌개미취도 ‘들국화의 일종’이라고 부르는 형편이다.‘
# 힐링 덕분에 두어 시간을 벌었다. 이러다 보니 이번 하산주는 산이 아닌 구절재 도로가에서 가졌다. 이번엔 오끼나와 명주 포성이다. 구간 마다 특징이 있듯 우리 ‘정 회장’의 주류 선택도 기다리게 만드는 아니 그가 즐겨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본인이 좋아하는 단어고 또 그런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당사자는 모르는 거 같다.
식당으로 오다 운암댐 물관을 봤다. 이래서 운암댐은 내 기억 한 구석에 영구적으로 남을 거다. 산등성을 타고타고 내리는 거대한 통이다. 기획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거대한 물줄기를 돌려 땅을 살렸다. 1920년대에 이런 착상과 공사를 했다는 자체가 인간 승리다. ‘정 회장’ 목소리가 바로 날아온다.
‘이 동지 운암댐 봤지’
‘이에쓰’
옆 자리 ‘최 대장’에게 이곳을 흐르는 게 만경강이라 물으니 바로 동진강이라 한다. 그는 김제가 고향이랬다. 지평선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야생화라고는 쑥만 보고 자랐다고도 했다. 이 좋은 고향에서 태어나 좋아하는 산도 이리 많은데 왜 서울까지 와서 사냐고 하니 대답이 걸작이다.
‘이런 걸 진즉 알았으면 가지 않았쥬.’
혼날 얘기지만 이번엔 홍주를 시작으로 막걸리 소주 맥주 포성에 매실주까지 마셔댔다. 조금씩 맛을 보기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뒤풀이에 어울리는 폭탄주 두어 잔을 더했다.
한우 마을에 목욕탕이 없었다. 차선책으로 ‘정 회장’과 산내면을 흐르는 냇가에서 땀을 씻었다. 이건 기막힌 경험이다. 목욕을 마치고 보니 블랙홀 대장이 빌려준 랜턴이 없었다. 다시 냇가로 가서 이 잡듯 봐도 없다. 이런 깜박거리는 일만 없으면 금상첨환데 꼭 이런 게 하나 따라 붙는다. 랜턴은 버스에 있었다. 오늘은 랜턴을 보조가방에 두고 오지 않나 이런 일을 벌이지 않나 얼굴이 화끈거린 날이기도 했다.
완주자를 기다리다 우리는 다시 상에 모였다. 힐링을 위해 추가로 걷고 남은 회비로 육회 1/2인분을 시킨 자리다. 겸사겸사 ‘너와나’ 님의 3차 생일파티를 겸했다. 화려함은 없어도 분명 특별한 생일날로 기억할 것이다.
이번 뒤풀이는 정읍 산내면 소재 한우 마을에서 있었다. 회원들을 배려하는 임원진의 배려로 전주식 한식이나 정읍 한우를 맛보는 즐거움이 늘 따른다. 아직도 갈 길이 머니 그와 비례한 즐거움도 많을 거다. 여타 산악회에서도 이러는지는 모르나 이 모임의 구성원들 마음은 이미 하나다.
장거리 산행에 지친 이들은 뺏긴 영양을 한우로 채웠다. 물론 호남정맥 팀의 구호 ‘의리’가 힘차게 울리기도 했다. 잔을 채운 ‘이 팀장’은 힘든 산행 후유증으로 건배사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아참 건배사가 뭐였지요.’
이렇게 웃고 마시다 내가 힘이 다 빠졌다. 앞에 앉은 회원에게 변4또가 누구냐고 물었다. 옆에 ‘부뜰이’ 님이 바로 그라고 했다. 다시 보니 훈남이다. 이런 실수는 애교다. 연조가 아직 그럴 때다.
이러다 단잠에 빠지고 꿈도 꾸었다. 신도림에 도착하니 10시 경이다. 집에 가봐야 씻고 잠시 눈을 붙인다 해도 바로 일어나야 기에 집에 전화를 하고 마지막 천안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집에서는 중요한 날 꼭 이런다는 문자가 왔다. 숙소에 들어와 본 시계는 정오를 15분이나 넘기고 있었다.
우리 팀장 이름은 ’이형도’다. 몇 번 만난 나보다는 대부분이 그를 훨씬 많이들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짧은 시간에 느낀 그는 한마디로 남자다. 거기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맥을 집어가는 덕분에 우리는 늘 좋은 선물을 받고 있다. 그는 굵은 선에 섬세함도 겸비했다. 조금 전 핸드폰을 열어보니 그에게 이런 문자가 와 있었다. 내 판단은 이번 구간을 산 위에서 걸었던 산 아래에서 걸었던 모두 30km는 족히 걸었다고 감히 말한다.
‘호남 3회 실거리 30km 먼 장거리 여행 고생 하셨습니다. 끝까지 완주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박수 보냅니다. 편안한 한 주 되세요.’
‘이 팀장’ 말을 하다 보니 더 하고 싶어졌다. 이것도 팔자다. 어떤 때는 교정을 보다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의 능력을 IQ 이론으로 풀어보자. 1983년 하버드대의 ‘가드너’ 교수는 1900년 초 프랑스 ‘비네’가 지능검사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 ‘다중지능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기존의 문화가 지능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IQ 점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보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탐구하였다.
‘가드너’는 지능을 ‘문화 속에서 가치가 부여된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과물을 창출하는 능력’으로 정의하였다. 전통적인 IQ 개념은 학교 내에서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 지식이나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가드너’의 정의는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있다.
가드너가 처음 제시한 인간의 지능은 음악적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언어적 지능, 공간적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이해 지능이었다. 그리고 여덟 번째 지능인 자연탐구 지능을 새롭게 목록에 첨가하였다.
기존 IQ 점수 하나만 가지고 머리가 좋네, 공부를 잘 하네 하던 시절은 끝났다. 한 줄 세우기 교육을 받은 기성세대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든지, 학창시절 책을 뒷전에 둔 친구들이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말을 우리는 수없이 들었다. 이를 ‘가드너’ 이론에 접목하면 고개가 끄덕여 질 거다.
우리는 솔직히 주말 꿀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배낭을 멘다. 새벽어둠에도 험한 산을 오르고, 우거진 잡목숲길 헤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나무며 꽃이며 새들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러는 요산자들 특히 ‘이 팀장’을 비롯 출중한 산행 능력을 갖춘 회원들은 여덟 번째 자연탐구 지능이 특출한 사람들이다.
시인 ‘김상용’님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어느덧 가을도 깊어 가고 있다. 태풍의 영향인 지 바람도 제법 차 창문을 닫았다. 주역에서 자주 나오는 원형리정(元亨利貞)은 차례로 춘하추동 사계를 말한다. 성균관대 ‘이기동’ 원장의 주역 상용문구 풀이를 보면 ‘리(利)는 가을에 결실을 하듯 거두어들이는 일, 수확을 하는 일, 성과를 이루는 일, 정리하는 일을 한다. 여름에 늘어져 있을 경우에 말해지는 리는 결실을 하라는 뜻이고, 겨울이 올 것에 대비하여 말해지는 리는 정리를 하라는 뜻이다.’로 정리하고 있다. 밤이 깊은 가을날 시 한수 읽고 잠에 들자. 오늘은 시로 시작해 시로 맺는다. 시로 맺음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제 저녁 식사하러 가야겠다. 물론 속세에선 막걸리는 사절이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시, 박인희 노래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가을편지/ 고은 시, 김민기 노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도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은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첫댓글 수고하셨음다.. 앞으로도 쭈~욱 "그리운 것들은 산 주변에 있을겁니다. ^^ ^^
감사 드립니다 그 많은사연을 함께했음이 ...
![생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29.gif)
![축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님들의 덕분에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많은공부가 됩니다 ^^
산행기 감사 합니다 "낙엽이 사라진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
참 많이도 가시넝쿨 헤메였습니다
그냥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한 자료와 정보들이 많아서 밑 줄 쳐가며 공부해야할 거 같아요.
호남정맥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그 땐 더 의지를 갖고 공부하는 자료로 소중하게 활용하겠습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산행기 잘읽고 갑니다.함께한 그길이 다시 생각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호남정맥의 맛이 더해갑니다.
길카페 참새방앗간 주인장의 몸빼차림의 늠름한 모습등...
문화충돌의 현장을 즐기며 호남정맥을 내려가고있습니다.
호남정맥의 흐름을 잡아가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후기를 써가는 영호동지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산행 종착지는 단풍의 고향 내장산과 백양산의 갈림길 추령고개....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