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99년 11월 9일 일요일 일반법회
● 주제 : 정산종사 법어 응기편58장
● 김제원교무님 설법
● 타이핑 : 일반7단 문혜은
991109-일요법회설법-정산종사법어 응기편58.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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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을 수행정진기도 결제입니다.
종교가에 어떤 사이비 종교라 해도 기도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천지의 기운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기도를 통하여 나의 서원을 다지고 정진을 하자는 것입니다.
미로를 만들어 동물에게 그 미로를 통과하여 먹을 것을 찾게 하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찾는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다를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한쪽 미로에서 동물이 먹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른쪽 미로에 있는 동물은 처음 미로에서 먹이를 찾은 동물보다 시간이 덜 걸립니다. 두 미로에 있는 동물이 전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미로에 있는 동물이 먹이를 찾았는데 저 미로에 있는 동물이 먹이를 찾는 시간이 단축 되었단 말이지요.
제네럴 일렉트릭 이라는 회사는 에디슨이 세운 회사입니다. 우리는 에디슨 덕에 이렇게 마이크를 쓰고 전기도 쓰고 합니다. 어떤 누군가의 공덕으로 우리가 영향을 받아서 편리하게 전기를 쓰고 하듯이 어느 한 쪽의 공이 다른 세계의 어떠한 곳에 위력을 미칩니다.
기도의 원리와 미로의 동물 원리는 같습니다.
기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하는데 그 위력이 신기하게 다 미칩니다. 핸드폰은 유선이 아니라 무선입니다. 무선으로써 여기저기 통하는 것이 신기하듯이 기도라는 것도 우주의 진리와 무선 통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위력이 없이 큰 일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 자기가 정말로 이 세상의 큰 포부와 경륜으로 살아보겠다 하는 사람은 수많은 인연의 도움도 있어야 하겠지만 우주의 기운을 받아야 하고 본인의 마음을 안으로 확실하게 힘 있게 챙겨야 하기 떄문에 기도가 매우 필요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 인간이 강한것 같지만 참 약합니다. 수행기도 참회기도 정진기도 축원기도 천도기도 해원기도 등 여러 가지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번주에는 수요공부방에서도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이번 기도 기간에 안암교당 교도라면 교당에서 기도를 하시고 도저히 멀어서 못하겠는 사람은 집에서라도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문은 카페에 있습니다. 가능하시면 새벽이나 오전에 오셔서 기도를 하시면 은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을에는 놀기도 좋지만 수행도 하고 수능 시험도 있으니 기원도 하고 참회도 하자는 의미입니다. 교당에 따라 백일기도 천일기도 삼천일기도 등등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년에 몇 번 합니다. 음력 정초기도 , 관등기도 , 수행정진 기도 합니다.
일주일간이라도 바쁘다 하지 마시고 오롯히 하셨으면 합니다. 서로 기도의 기운도 밀어주고 위력도 받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김원덕님께서 자료준비를 잘 해서 발표하셨습니다. 교무보다 더 열심히 하신것 같습니다. 송자명 대봉도 이십니다. 제타원님이신데 지금 89세 이십니다. 사진보다 실제 인물이 훨씬 더 낫습니다. 원불교 여자 교무님들이 수도를 하다보면 인물이 좋아지십니다. 제가 그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정말 촌스럽다가도 나중에 되면 할머니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팔타원님의 경우도 백세가 넘었는데도 이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셨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느냐 ? 얼굴이 이뻐서 그런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뻐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복중에 최고의 복이 지혜의 복이며 스승을 만나는 복입니다. 그 중에 하나 더 끼워넣고 싶은 것이 인물복입니다. 그거는요 짓지 않고는 못받는 복입니다.
단생에도 이렇게 인물이 바뀌듯이 일단 복은 짓고 볼 일입니다. 저도 복을 좀 더 지었으면 키가 좀더 올라갔을 것인데 말입니다. 다행히 교무 할 만큼은 지은 것 같습니다. 목소리도 주시고 인물도 장동건 보다 못해도 보기 싫지는 않습니다. 제가 간사때 어떤 여자 아이가 출가하겠다고 제게 왔었습니다. 그런데 키가 너무 작습니다. 여자가 교무가 되려면 키가 145이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은 140정도입니다.
키가 작더라도 키 재는 순간에 발을 슬쩍 들어 올려 버리면 될것을요.
그렇지 않습니까? 간절하면 그 키재는 순간 발꿈치 들어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생각할 때 서원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것 같습니다. 간절했다면 속일 생각이라도 들었을 겁니다. 실제 그런 교무님이 계십니다. 키가 안되는데도 어찌 잘 넘겨서 지금 교무님 하고 있습니다.
키가 작은 것도 다 지은바입니다. 인물이 못나고 잘난것도 , 인연도 모두 지은바입니다. 알아서 짓도록 하십시오. 우리 자명 대 봉도께서는 복을 지으시니 단생에도 저렇게 인물이 바뀌십니다. 2차 방언공사 할 당시에 팔산님 아드님 되시는 형산님이 너무 힘들어 죽겠길래 대산 종사님께 죽겠다 못하겠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너무 힘들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니 대산종사님께서 넘어오는 간을 씹어 삼켜라 라고 하셨답니다. 출가만 그러겠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재가 교도들도 죽고 싶기도 하고 죽이고 싶기도 하고 할 때가 한 두번 일까요?
엊그제 LG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요새 인본주의다 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안주고 잘 어루고 구슬려서 사람을 키워쓸까 연구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가과정에서 성과에 관한 사항을 마지막에 어쩔수 없이 넣었다고 합니다. 기분을 좋게 하면 성과가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기분 좋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과라는 말에는 인내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실질적이지 않고 생활과 연결이 안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과로 연결이 되겠습니까? 성과주의와는 다르니 오해는 마세요. 저는 지금 인내가 없이 성과가 나올 수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자! 우리 제타원님은 경상도 거창에서 오셨지요. 제타원님의 부모님께서 증산도를 찾아서 원평으로 넘어오시게 됩니다. 원평에는 도꾼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증산도 산하의 집단이 4개정도 있습니다. 그 중에 본부 몇 개가 원평에 있는 것이지요.
제타원님의 오라버니께서 원평교당으로 야학을 다니셨습니다. 근평교당도 그러합니다. 근평교당도 원불교가 야학을 하던 교당입니다. 근평교당 출신들이 원불교 야당을 안다닌 학생이 거의 없습니다. 원불교를 안다니면 간첩 같을 정도로 원불교 출신이 많습니다. 제타원님도 오빠가 야학을 해서 자기도 원불교와 인연이 되어 출가까지 하게 되신 것입니다. 어린이 교화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지금 동대문 근처에 예전에는 이대병원이 있었습니다. 더 전에는 동대문 부인병원이었습니다. 팔타원님 집은 동대문에서 대학로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지금은 팔타원님 집을 이승만 전 대통령께 뺏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부인들을 공출해 갈 때 우리 선진님들이 그 공출을 피하기 위해 팔타원님의 병원에 계시게 됩니다. 우리의 목숨을 보존하고 회상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동대문 근처에 서울 성곽이 죽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대문 안에 절이 들어올 수 없었지요. 그래서 성밖 가까이에 절들이 주로 있었고 서울교당과 돈암교당도 성밖 가까운 곳에 있던 교당들 중 하나입니다. 경동고등학교 근처에 육타원님등이 사셨습니다.
제타원님도 그 부인 병원에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나중에 회상에서 공익부장도 하시고 정산종사님께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옆에서 시자도 하시고 그랬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 출가해서 대종사님께 자명이라는 법명을 받습니다. 얼마나 이쁩니까.
유일학림 1기 생이기도 하십니다. 지금까지 살아계신 어른이십니다. 제타원님께서 공출을 피해 동대문 부인병원에 갈 때 정산종사님께서 해주신 법문이 응기편 47장에 있는 법문입니다.
그리고 응기편58장은 송자명 선진님께 따로 편지로 하신 법문입니다.
함께 다시 봉독하시겠습니다.
[ 응기편 58장 ]
송자명에게 편지하기시를 몸은 산천의 격활에 있으나 마음은 법회의 일석에 있으며 일은 백천만 가지가 비록 다르나 정신은 신성의 일념에 근원하여 부지런히 부지런히 잘 힘쓰면 이것이 나를 떠나지 않는 공부요 바로 부처의 경계에 오르는 도가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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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삼천의 격활에 있다. 막힐 격에 멀 활 자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막히고 걸림이 없지요. 그래서 마음은 법회의 일석에 있다. 법에 연해있다 그말입니다. 일은 백천만가지가 달라도 정신은 신성 일념에 준해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결국 종교가에서는 깨달음마저도 신이 없이는 어렵고 의두까지도 신으로 뚫습니다. 교단의 주인도 신으로써 되고 수많은 경계도 신으로 이겨냅니다. 그런데 중간에 신의 뿌리가 약하거나 신이 경계에 흔들리거나 신의 그릇이 작거나 하면 중근의 병이 유난히 많이 오게 됩니다. 중간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다 신이 흔들려서 그럽니다. 그러나 본인의 그릇이 작은것도 있지만 주변 인연들이 신이 서도록 안내를 못해준 것도 있습니다.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자 하셨습니다. 경상도라 대종사님의 말투는 따라할 수 없지만 먹는 것 까지도 똑같이 하려고 하셨다 합니다. 스승의 언행과 지와 덕을 모시고 받들고 닮아가고 하면서 스승의 도를 체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연이 두터워 지는 것이지요.
인연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야기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지요? 원기 100년에 들어온 사람은 내 잡기장에 적어둔 사람이다 라구요. 특별한 인연이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엊그제 회의때 교구장님께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금년하고 내년에 그 대종사님의 잡기장안에 써 있는 명단을 조금더 우리가 넣어보자. 입교운동을 해보자 이겁니다. 원기 100년안에 원불교에 입교라도 된 사람은 매우 홍복입니다. 원불교가 작은 종교라 아직을 몰라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어중간이 똑똑한 사람들이 원불교가 별것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신이 약한 것은 몰라서도 그럽니다. 눈에 보기에는 원불교가 작아 보이고 대종사님이 어떤 분인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나중에 법회의 내용을 원불교와 불교의 차이와 비교로 꾸며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같은 불법이지만 대종사님께서 어떻게 새 시대에 맞는 주세불로 오셨는지에 대해서 제가 설법을 준비해보고자 합니다.
마음은 법석에 그리고 정신은 신성일념이다 . 부지런히 오르면 이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다. 하시지요. 이것을 제가 더 구체적으로 대산종사님 법문에 근거하여 설명할까합니다.
1. 대서원 ------(1) 진리 (2) 스승 (심사 /심우 / 심계 ) (2) 법 (4) 회상 2. 대정진 3. 대불과 4. 대불공 ----(1) 불석신명 (2) 금욕난명 (3) 희사만행 5. 대합력 |
1. 대서원
자. 우리 종교인의 최대 염원은 깨치는 겁니다. 실행까지 의미합니다. 깨치지 못하면 중생이고 중생놀음하다 죽습니다. 첫째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 첫째는 대서원입니다. 서원이 딱 서야 출발입니다. 서원만 있으면 껍데기 이고 대정진이 붙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정진을 하는 것은 결국 부처의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대불과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불과를 얻고자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불공을 해야 합니다.
불공을 하면 무엇을 얻습니까? 자유를 얻습니다. 자유를 얻으면 마음이 자유자재 합니다. 자유를 얻으면 일체 생령을 위하여 대 합력을 해야 합니다. 허공법계 일체생령을 위해서 합력을 해야 합니다. 대서원을 세우고자 함에는 스승을 모셔야 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삼세제불, 그리고 가까이 직접 내가 구전심수로 나의 어려운 점이나 힘든점을 제도 받을 수 있는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스승중에도 심사, 마음의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최대의 출판회사로 스웨덴에 본부를 가지고 있는 회사 사장이 지영석이라는 한국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발표중 가장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멘토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성공을 하려면 멘토, 즉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그중에 심사가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가 없다면 그것은 한 생의 고아이지만 마음의 부모가 없다면 그것은 영생의 고아입니다. 스승을 모시려면 나에게 자력이 있어야 합니다.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원력이 없으면 스승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자력이 없으면 스승을 무서워서 피합니다. 스승이 무서운 사람은 자력이 없는 겁니다. 내 체면, 내 치부를 감추고 싶어하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다보니 스승이 부담스럽고 무서운겁니다. 스승은 모시고 싶어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서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모실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서원이 간절하다면 알아서 찾아갑니다. 기다리지 않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 보면 이타원 삼타원님같은 어른들이 대종사님을 생불로 모시고 그러셨지 않습니까? 대종사님께서 이분들을 뵐때 따듯하게 정을 건네기도 하시기도 하시지만 주로 <니가 원하는게 뭐냐>를 먼저 묻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거기에서부터 오롯한 만남이다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원력이 없으면 사제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다음 스승은 심우입니다. 동지 스승을 말합니다. 생사와 고락을 같이할 만한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스승이 있고 동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설사 스승이 있고 동지가 있어도 내 안에 스승도 있어야 합니다. 심계를 말합니다. 아무리 타력으로 스승이 있어도 내 안에 내 스스로 심계가 없으면 그것도 빈 껍질입니다. 삶의 가치과 좌우명 이라고도 세상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원불교의 심계는 가치관이요 표준이요 서원을 말하기도 하고 30계를 넘어선 심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저의 심계는 이 세상 한명도 미워하지 말자입니다. 중간에 그런데 미운 사람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없었는데 하다보니 미운 사람이 생깁니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미운 마음은 들었으나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은 없습니다. 하는 짓이 밉지 사람이 밉지는 않습니다.
스승은 우리에게 법을 내줍니다. 그래서 스승입니다. 깨쳐서도 스승이지만 법을 내어주셔서도 스승입니다. 삼학 팔조을 내어주셨고 이것을 풀어 우리는 정기 11과목 상시 12가지로 훈련합니다.
회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스승님도 골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승이나 법은 믿는데 교당이라는 회상은 믿지 않습니다. 대산종사님은 사종의무를 받드는 것이 회상을 받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조석심고/ 법회출석/ 보은헌공/ 입교연원 ]이 사종의무입니다.
원불교 회상을 확실히 믿는 것은 이 네 가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교당에도 보면 인연은 교당인연을 찾습니다. 한의원가고 미용실 갑니다. 그러나 사종의무를 지키지 않습니다. 인연만 걸고 다닙니다.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이 아예 하나가 되어버려야 합니다.
진리를 깨치고 스승을 모시고 법을 실천하고 사종의무 시행으로 회상을 받들면 이것을 바탕으로 서원이 세워집니다. 개인적 서원 가정적 국가적 서원등이 다 이 네가지(진리, 법, 스승, 회상)로 바탕지어지면 됩니다. 서원과 믿음이 둘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법기는 이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이 하나가 된 정도가 그 사람의 법기의 크기입니다.
2. 대정진 / 3. 대불과
이런것들을 일과속에서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것이 대정진입니다. 일과속에서 대정진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침에 수양정진 낮에 보은불공 저녁에 참회정진 이것이 상시응용주의사항에 다 있습니다. 대정진 대적공을 하되 천지도 모르게 해라. 귀신도 모르게 사람도 만물도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정진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양심스승에 대조하는데 누가 알겠습니까? 내 안에서 심계로써 하는 실제적으로 하는 실질 공부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물이 옵니다. 불과라는 선물이 오는 것이지요.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삼계의 스승 사생의 자부입니다. 복과 혜과 족족하신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에 대한 인정은 진리가 주기도 하지만 스승과 동지가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가 불공해서 자기가 자기에게 주는 겁니다. 교무님이나 단장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진짜 나를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4. 대불공
(1) 불석신명
(2) 금욕난명
(3) 희사만행
불공은 어떻게 하는냐?
첫째는 불석신명입니다. 전탈전여입니다. 다 뺏고 다 줍니다. 부처는 그냥 주지 않습니다. 서가모니부처님도 다 뺏고 부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도 그렇게 부처가 되셨습니다.
정산종사님도 재산 다 바치고 부처가 되셨습니다. 송자명 선진님께도 스승님이 죽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몸을 넘어서고 몸을 이겨서 불공하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죽자고 하면 살고 살자고 하면 죽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그러셨지요. 이것이 불공입니다.
둘째는 금욕난명입니다. 이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젊을때는 노는 재미 남녀욕에 중년에는 명예욕에 말년에는 금전욕에 삽니다.
우리는 이 욕심이 일으킨 일들을 참회하고 메꾸느라 에너지 쓰면서 나머지 생을 삽니다. 저 욕심들에 일어난 거짓과 상처를 매우려다 거의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힘듭니다. 자기만 힘들겠습니까? 사람들 이야기 다 내어놓으면 소설하나 됩니다. 그 난행을 참고 넘어가는게 힘듭니다. 어려분, 원불교 다니다가 떠난 사람들 보면 자존심 상처, 돈거래, 자기욕심 조절 못하고 자기 불공 못해서 떠나게 됩니다.
세 번째 불공은 희사만행입니다. 희사라는 것은 사실 복을 지으라는 것보다 내 욕심을 덜어라, 나를 비워라 하는 뜻이 더 큽니다. 내 업을 내가 지워라 그 이야기입니다. 선업으로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해하면 안됩니다. 나를 놓은 공부가 희사입니다.
예전에 서울회관에서 사건이 났습니다. 돈이 없어서 난 사건인데 그때 원불교 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자분들은 은비녀 은숟가락까지 내어서 원불교 살리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단상에서 까지 외치던 사람은 결국 아무 희사도 하지 않았더랩니다. 인간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나중에 법호 나오고 항마위 나오고 하면 절대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데이터 나오면 분명하게 명확하게 나옵니다. 출석, 희사등 일생 내가 얼마나 했는지...출석과 희사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희사불공을 통해 나를 비워서 무아의 나인 부처가 되라. 그게 불공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 자유를 얻습니다. 삼천대천세계 육도사생 인과윤회의 자유를 얻습니다.
원불교 만나서 항마위가 안된 사람은 불효자라고 합니다. 서원이 약했거나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에 소홀히 했거나 정진할 떄 실제로 정진하지 않고 형식만 채웠거나 한겁니다.
여러분, 형식만 채운사람들은 사회에서도 공부는 좀 잘했어도 회사에 가면 대 퇴짜입니다. 실제에서 잘 못하는 겁니다. 어떤 과제를 주면 해내지 못합니다. 원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결석을 하고 교전을 몇 번씩 보아도 실제로 자기 마음에 대조하지 않으면 쓸모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5. 대합력
지금까지 한 이야기 다 모아보면 결국 쓸모있는 사람이 되자는 겁니다. 진리를 깨쳐서 쓸모있어서 어디가서나 도움이 되고 대 합력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합력을 해야 합니다. 내 주견을 놓고 내가 밀어주고 무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주견이 많으면 합력이 안됩니다.
우리교당 교도님들을 그래도 착한 것 같습니다. 다른 교당에서는 어떤 일을 할 때 파벌이 생겨서 합력을 잘 안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툭 터버리는 것인데 그것을 잘 못합니다.
오늘 말한 이것을 이렇게 표준잡고 10년했는데 도인이 안된다면 나한테 오라고 하십니다. 산송장이라는 표현을 하시지요?
오늘 원불교에 처음 오신 분은 오늘 설법이 어렵지만 오래 다니신 분은 오늘 법문이 엄청 좋으셨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따로였는데 오늘 법문으로 하나로 설렵이 되실 겁니다.
질문없으면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