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之五/권지오, 記 /기 .......18-22p
해설과 번역/나천수
1. 永慕齋記(영모재기)/永慕齋記
<해설>
◯永慕齋는 전남 나주시 보산동 133번지에 있는 광산김씨 재각이다.
2. 思誠齋記(사성재기)/思誠齋記
<해설>
◯思誠齋는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 전주최씨 입향조 崔仁寬의 號이다.
◯思誠齋는 경남함안군 휴천면 목현리에 있는 진주강씨 재각이다.
3. 永思齋重建記(영사재중건기)/永思齋重建記
<해설>
◯ 永思齋는 전남 나주시 세지면 벽산리에 있는 광산김씨 재각이다.
영사재는 벽류정공 諱 운해(運海)의 세일사를 재계하는 재실, 영언효사(永言孝思)의 뜻으로 영사재라 하였다. 옛 건물이 있었으나 퇴락하여 1923년에 지은 건물이다
4. 月淵齋記(월연재기)/月淵齋記
<해설>
◯月淵齋는 검색되지 않는데 月淵亭은 있다.
1525년 (중종 20)에 한림학사등을 지낸 월연(月淵) 이태(李兌, 1483 ~ 1536) 선생이 기묘사화 후 낙향하여 세운 정자이다.
임란 때 소실된 것을 1757년 후손 이지복이 복원하였다. 후로도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월연정은 담양의 소쇄원과 비교되는 정자이다.
밀양에 있다.
5. 悠南齋記(유남재기)/悠南齋記
<해설>
◯겸산유고 권지일 詩에 “追次李靑田注書魯悠南鍮鐸兩賢酬唱韻(추차이청전주서노유남유탁양현수창운)/ 注書 李靑田과 悠南 魯鍮鐸 두 현인의 酬唱한 詩韻을 뒤늦게 차운하다.”란 기록으로 보아 魯鍮鐸이란 인물과 관련된 것 같다.
6. 喜懼堂記(희구당기)/喜懼堂記
<해설>
◯喜懼堂은 박협(朴悏/1610년/광해2) 의 號이다.
◯ 尹德殷(1717~1776)의 호가 희구당이다.
7. 南莎亭記(남사정기)/南莎亭記
<해설>
◯南莎亭은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마을에 있는 함평이씨 南莎 李啓善에 의해 1938년에 건립되었다.
8. 何求亭記(하구정기)/何求亭記
<해설>
◯何求亭은 고종 때 서예가 윤용구(尹用求/1853-1937)이 건립한 정자이다.
전남 고흥에 있다.
9. 晩悔亭記(만회정기)/晩悔亭記
<해설>
◯晩悔亭은 울산의 태화강변에 있다.
◯부사 박취문(朴就文/1617-1690)이 지은 것인데 호가 晩悔堂으로 조선 말기에 소실되었다.
2011년도에 울산시가 본 정자를 복원하였다.
10. 石下齋記(석하재기)/石下齋記
<해설>
◯石下라는 호를 가진 자는 일제강점기의 화가 金禹範이다.
11. 思敬齋記(사경재기)/思敬齋記
<해설>
◯思敬齋는 전남 나주시 공산면 백사리에 있는 광산김씨 충숙공파(忠肅公派)의 재각이다.
12. 愛竹堂記(애죽당기)/愛竹堂記
<해설>
◯愛竹堂이란 호를 가진 분
① 愛竹堂 諱 玉振煥公(1852∼1926 )에 이르러는 巨濟都有司로서 平生을 學文硏究와 後進養成에 盡力하시어 그 名望과 學識을 널리 떨치셨다.
13. 南石齋記(남석재기)/南石齋記
<해설>
◯겸산유고 시에 “ 題南石齋沈鍾大(제남석재심종대)/南石齋를 제하다. 沈鍾大”란 기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규장각 자료에 議政府官報課/第三千三百四十一號/光武十年一月四日 木曜에보면 “前博士 沈鍾大 光武九年十二月三十一日” 의 敍任及辭令이 나온다.
14. 蒙養齋記(몽양재기)/蒙養齋記
<해설>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禮林書院에 讀書樓, 蒙養齋, 直方齋 등이 있다.
15. 石隱亭記(석은정기)/石隱亭記
<해설>
◯겸산유고 시에 “石隱老人壽帖序(석은노인수첩서)/石隱老人 축수 시첩 서문”이 관련된 듯하다.
◯흥성장씨 秋扇錄에 보면 “曺氏 石隱亭韻”가 있다.
몽암 장재경(1897-1959)의 문집이다.
16. 白隱堂記(백은당기)/白隱堂記
<해설>
◯ 白隱集은 白隱 李鎭萬(1675-1752/羽溪李氏)의 詩文集이다.
벼슬로 令達의 꿈을 버리고 오직 性理學과 道學硏究에 專念하면서 白隱居士로 自處하였다. 늦으막에 白隱堂을 짓고 유연자적하면서 힘써 後進을 길렸다. 著書로 白隱堂文集과 大成集設 10冊이 있다. 自銘自箴하였다.
17. 棣華亭記(체화정기)/棣華亭記
<해설>
◯棣는 규장각 異體字에서 찾아냈음.
◯棣華亭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이다.체화정은 효종 때 진사
이민적(李敏迪, 1702~1763)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그 후 순조가 효자 정려(旌閭)를 내린 바 있는 용눌재(慵訥齋) 이한오(李漢伍)가 노모를 체화정에 모셔 효도하였다고 한다. 체화정은 이민적이 형 옥봉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우애를 다지던 장소로 유명한데, 이로 보아 정자 앞 연못의 이름을 ‘체화지(棣華池)’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체화’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詩經)』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이헌석이다.
18. 獨醉亭記(독취정기)/獨醉亭記
<해설>
◯獨醉亭은 장흥읍 덕제리 송산마을 위쪽에 있는 정자이다.
◯1933년에 金炳庸이 건립하였다.
19. 鄭氏祭閣重建記(정씨제각중건기)/鄭氏祭閣重建記
20. 錦史亭記(금사정기)/錦史亭記
<해설>
◯금성나씨대동보 저자는 羅承煜, 발행인이 錦史亭이다.
錦史亭이란 정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혹 史가 誤記 아닐까.
21. 俗隱堂記(속은당기)/俗隱堂記
<해설>
◯眞城李氏 李龜星의 號가 俗隱齋이다.
◯이구성(李龜星)은 1756(영조 32, 병자)~1835(헌종 1, 을미).
1790년 사마시(司馬試) 합격. 의금부도사 종묘직장 등 역임. 1809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이듬해 하양현감에 임명됨. 이후 양현사의 이건 시사단의 중수 청량정사의 신축 등 향토(鄕土)유적 보존에 힘씀. 저서:俗隱集.
22. 錦愚堂記(금우당기)/錦愚堂記
<해설>
◯ 한말의 유학자 林相熙의 제실(祭室)인 학림정사(鶴林精舍)가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외등마을의 어등산 기슭에 있다.
林相熙의 호가 錦愚이다.
23. 紫荊亭記(자형정기)/紫荊亭記
<해설>
◯紫荊亭은 함평군 월야면 월계리에 있는 金相純, 金相麟이 건립한 정지이다.
◯紫荊은 박태기 나무란 뜻
24. 獨醉亭記(독취정기)/獨醉亭記
<해설>
◯겸산유고 기문에 獨醉亭記가 두 번 게재된 것은 오류이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자로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독취정은 검색되지 않는다.
25. 雲湖亭記(운호정기)/雲湖亭記
<해설>
◯겸산유고 시에 “追次柳氏雲湖亭(추차유씨운호정)/柳氏 雲湖亭을 뒤늦게 차운하다.”가 있는데 관련이 있는 듯하다.
◯綾州邑誌 卷2 樓亭項에 보인다.
「州西二十里 雲浦同 雲湖 宋相彦 棲雲 宋相龜 講道誨之所」라 나오는데 棲雲의 孫 載涵과 雲湖의 曾孫 鍾이 重創하였다.
1975년에 7대孫 勝敎가 재 중수 하였으나, 2.3년전의 태풍 때 도괴되고 말았다.
26. 翠柏堂記(취백당기)/翠柏堂記
<해설>
◯翠柏堂은 宋나라 韓琦의 堂號이다.
◯積城李氏 文科篇에 보니 李允義 가 호판으로 취백당이다.
27. 映湖亭記(영호정기)/映湖亭記
<해설>
◯映湖亭은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위치하여 조선 순조 7년(1807년) 이집경이 건립한 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에 중건하였다.
◯한말 유학자 吳永煥, 崔燉亨, 李殷雨, 羅蓉澤, 金萬福, 洪昌植 등 7人의 詩韻이 陰刻된 현판
과 張錫祚, 權五鎭, 張在雲, 金檍起 등 4人의 詩韻이 陰刻된 현판 등 <영호정운(映湖亭韻>이 유명하다.
28. 錦沙亭記(금사정기)/錦沙亭記
<해설>
◯錦沙亭은 나주 왕곡면, 전북 정읍시 신외면 두 개소에 있다.
◯필자가 이미 금강11인 현계에서 소개하였듯이 錦沙亭의 옛 이름이 錦江亭이다.
◯겸산유고 시에 “題錦沙亭韻羅宗煥(제금사정운나종환)/錦沙亭을 제하는 韻 羅宗煥”가 있는데 이와 관련 있는 듯하다.
29. 花樹亭記(화수정기)/花樹亭記
<해설>
◯花樹亭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234 綾城具氏(능성구씨)의 花樹亭(화수정), 광주 화수
정, 염암화수정, 함양 화수정 등이 있다.
◯겸산유고 시에 “花樹亭韻(화수정운)”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듯하다.
30. 石松堂記(석송당기)/石松堂記
31. 風樹亭記(풍수정기)/風樹亭記
<해설>
◯송강 정철도 風樹亭에 대한 시문이 몇수 있는데, 막상 풍수정은 어디에 있는지 발견되지 않는다.
정철의 別風樹亭에서 西湖 風樹亭이라고 하였다. 서호 옆에 풍수정이 있다는 말이다.
◯西湖가 절강성 서호라면 풍수정은 절강성 풍수정을 빗대어 지은 글로 보인다.
◯퇴계 선생 제자의 문집 서원 누정에 風樹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풍수정인 듯하다.
32. 丁氏褒忠閭移建記(정씨포충려이건기)/丁氏褒忠閭移建記
33. 孝子贈童蒙敎官松齋成公旌閭記(효자증동몽교관송재성공정려기)/孝子로 童蒙敎官에 증직된 松齋 成公의 旌閭記
34. 晩翠堂記(만취당기)/晩翠堂記
<해설>
◯晩翠堂은 경북유형문화재 제169호)로 퇴계의 제자 만취당(晩翠堂)김사원( 金士元 1539 ~ 1601)공이 1582년(선조 12)건립한 건물이다.
◯경상북도 영주 이산면에 있는 만취당(晩翠堂) 김개국(金蓋國,1548~1603)이 1587년에 건립한 정자의 편액이다
35. 錦坡亭記(금파정기)/錦坡亭記
<해설>
◯錦坡亭은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데, 금파(錦坡) 박종량(朴宗良)(1804-1876)이 100여
년 전 영육을 위해 세워 강학하던 곳으로 편액(扁額)은 공조 판서 박재덕의 글씨이며 금파집(錦坡集) 판각 등이 보관되어 오고 있다.
36. 龍岡精舍記(용강정사기)/龍岡精舍記
<해설>
◯龍岡精舍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길리에 있는 김해허씨 문중 자료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8호이다.
37. 松蘭齋記(송란재기)/松蘭齋記
38. 鶴山亭記(학산정기)/鶴山亭記
<해설>
◯鶴山亭은 겸산유고 시에 “鶴山亭柱聯(학산정주련)/鶴山亭 기둥에 써 붙인 글”과 관련 있는 듯하다.
◯鶴山亭은 경남 창원에 있고, 또 하나는 밀양 박산에 통덕랑(通德郞) 백익령(白益瑩)의 추모재이다.
39. 聽琴齋記(청금재기)/聽琴齋記
<해설>
◯달성군 다사읍의 능성구씨(綾城具氏) 세천문중(世川文中) 휘(諱) 유한(有漢)이 영조조(英祖朝)에 청금재(聽琴齋)를 짓고 후학을 교도(敎導)하였다.
◯ 聽琴齋는 함안군 휴천면 목현리에 있는 진주강씨 군위공(軍威公 이경 利敬)파 종회의 재각이다.
40. 孝子李公碑閣記(효자이공비각기)/孝子李公碑閣記
41. 沈氏晩翠亭記(심씨만취정기)/沈氏晩翠亭記
<해설>
◯晩翠亭은 광주 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419번지에 있으며 시 문화재자료 제26호이다.
조선말 監役을 지낸 晩翠 沈遠杓(1853-193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지은 정자이다.
42. 松塢記(송오기)/ 松塢記
<해설>
◯ 松塢는 구한말 안동 金濬模의 號이다.
43. 月湖亭記(월호정기)/月湖亭記
<해설>
◯月湖亭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월산마을에 있는 밀양손씨 孫基洛(號 月湖)의 정자
◯月湖亭은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에 있는 정자이다.
44. 溪隱亭記(계은정기)/溪隱亭記
<해설>
◯溪隱亭은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천마을 뒷산 중턱에 있다.
계은정은 高宗代의 인물인 楓山人 溪隱 洪大植이 은거하며 지냈던 자리인데, 그가 죽은 9년 뒤인 1927년 봄에 그의 아들 洪丙憙, 泰憙가 선친의 藏修하던 곳을 기념하고자 여기에 정자를 짓고 계은정이라 이름 하였다.
46. 省掃臺記(성소대기)/省掃臺記
47. 百忍堂記(백인당기)/百忍堂記
<해설>
◯百忍堂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안포리 53에 있는 경산 이씨의 선조인 이감·이번·이흥문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인 이주, 이륜이 현종 2년(1661)에 세운 건물이다.
◯百忍堂은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朴守弘과 그의 아들 朴震煥을 기리기 위한 일제강점기 재실.
48. 羅氏孝烈閣記(나씨효열각기)/羅氏孝烈閣記
49. 聾窩小記(롱와소기)/聾窩小記
<해설>
◯聾窩는 전주최씨 문충공계 도사공파 21세 교관공 최광악 호로
전북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 용사동에 정려가 있다.
1854年 12月 命旌되었다.
50. 晩翠軒記(만취헌기)/晩翠軒記
<해설>
◯晩翠軒은 남노명(南老明 ; 1642∼1721)의 號로 정자 명칭이다
51. 三先生壇享記(삼선생단향기)/세 先生을 단에서 제사 지내는 記文
52. 白癡軒記(백치헌기)/白癡軒記
53. 友竹軒記(우죽헌기)/友竹軒記
<해설>
◯友竹軒은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高麗洞 유적지 내에 있다.
◯高麗洞은 고려말 성균관 진사 茅隱 李午가 고려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숨어 사는 곳이다.
紫薇亭, 景矛堂, 友竹軒이 있다.
54. 習齋記(습재기)/習齋記
<해설>
◯習齋는 崔濟學의 號이다.
그는 1882년(고종2년)-1959년 대 인물로 일제강점기 유학자,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탐진, 전북 鎭安郡 聖壽 목동출신이다.
1894년(고종 31)에 부친이 김개남(金開男)의 동학당 부대에 의해 피살되자, 13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검(長劍)으로 복수를 한 뒤에 부친상을 치르겠다고 하였다. 이에 큰형이 말리면서 집안에 가둬두었으며, 얼마 후 김개남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상을 치렀다.
◯1906년(광무 10) 4월 최익현이 일으킨 태인의거(泰仁義擧) 때 참모직을 맡아 의병 소집 및 군비(軍備)를 편성하여 활동하다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4개월 간 감금을 당했다가, 최익현이 대마도(對馬島)에서 순국하자 부산으로 운구(運柩)를 모셔다 정성스레 장례를 치룬 후 고향 진안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후로는 두류산(頭流山)을 오르내리며 통한(痛恨)의 시간을 보내다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청암면(靑岩面) 학동(鶴洞)으로 옮겨 은둔 생활을 하였다.
7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방사동에 자리하고 있다.
55. 止齋記(지재기)/止齋記
56. 靑田記(청전기)/靑田記
<해설>
◯ 독립운동가 靑田 安武(1883-1934) 장군을 말하는가?
◯ 靑田 李象範 화백을 말하는가.
57. 惺齋記(성재기)/惺齋記
<해설>
◯惺齋는 金台錫(1875-1953)의 호로 서예가이며 항일의식을 지닌 문사이다.
58. 溪隱記(계은기)/溪隱記
<해설>
◯溪隱은 나주 다도 도래마을에 있는 溪隱亭을 말하는가?
59. 晩啞記(만아기)/晩啞記
60. 新齋記(신재기)/新齋記
<해설>
◯ 新齋 崔山斗를 말하는가
광양읍 우산리 교촌에 己卯名賢 최산두를 기리는 新齋書院 鳳陽祠가 있다.
61. 健齋記(건재기)/健齋記
<해설>
◯ 겸산의 교남일기에 보면 “不能遽辭更留一日作健齋記(불능거사경류일일작건재기)/황급히 사양할 수 없어 다시 하루를 머무르며 健齋記를 지었는데”란 구절이 있다.
◯이 경우는 健齋 崔正愚를 말한다.
62. 孝亭記(효정기)/孝亭記
<해설>
◯孝亭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다.
63. 浪庵記(낭암기)/浪庵記
<해설>
◯겸산유고 序에 “浪庵居士金公實記序(낭암거사김공실기서)/浪庵居士 金公實記 序文”란 것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듯하다.
64. 竹史記(죽사기)/竹史記
<해설>
◯竹史는 顧庵 李應魯(1904-1989) 화백이 젊어서 전주에 살 즈음에 사용했던 아호이다.
◯죽사는 都景郁(1854-?)의 호이다.
65. 竹坡記(죽파기)/竹坡記
<해설>
◯죽파(竹坡) 오성술(吳成述, 1884.5.15~1910.9.15) 의병장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의거할 것을 결심하고 김태원(金泰元) 의진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일 창평(昌平) 무동촌(舞童村)전투에서 일본 헌병 요시다[吉田]를 비롯한 수 명을 사살하였고, 1월 10일에는 군자금 모금을 위해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습격하여 3명을 살해하고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나주에서는 밀정 황도현(黃道玄)을 살해하고 재산을 탈취하였다.
같은 해 4월 광주 무등산(無等山)전투에서 김태원이 전사하자 의진을 수습하고 의병장이 되어 항전을 계속하였다.
1909년 1월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모리[森十內]의 집을 습격하여 물품을 탈취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묘소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다.
※竹坡가 의병활동 중 읊은 시
生平自謂我無愁 /내 평생 시름없는 사람이라 자위했건만
天步艱難是可憂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져 그 걱정뿐이네.
酒褒微醺罔晝夜 /술 속의 취기는 밤낮이 없건만
書中大義有春秋 /글속의 대의는 춘추를 지녔구나.
傾家不顧千金富 /집안이 기울어도 천금 부자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投筆唯思萬戶候 /붓을 내던지니 오직 백성 시중들 생각만 하네.
處世難知心內事 /세상살이에 마음속 일을 알기 어렵지만
慨然此外更何求 /분노 그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출처 : 광산구문화유산해설사 http://cafe.daum.net/gsc2007
66. 錦圃記(금포기)/錦圃記
<해설>
◯錦圃遺稿을 남긴 사람은 임정한(林鼎漢 : 1825 ~ 1884)이다.
본관 醴泉. 자는 聖元. 호는 錦圃. 應晦의 子. 외조는 함안(咸安) 趙鷹圭. 향리(鄕里)의 유림강회에 참석하여 성리학(性理學)의 요지를 조리 있게 논변(論辯)함. 후학교육에 전념. 저서:錦圃遺稿
67. 湖隱記(호은기)/湖隱記
<해설>
◯겸산유고 序에 “湖隱遺稿序 (호은유고서)”가 있는데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겸산유고 詩에 “錦坡亭遇朴湖隱薰陽(금파정우박호은훈양)/錦坡亭에서 湖隱 朴薰陽을 우연히 만나다.”란 내용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금성토평비에 보면 “이때 고을 안 인사들이 또한 의병을 일으켜 안팎에서 의지하고 도울 계획을 세우니 柳紀淵,林魯圭,閔周植,柳秉植,林漢相,朴薰陽,吳錫煥,羅史集,林炳翰,鄭在衡,羅燾鉉,李祺宇가 그 두목으로, 다른 고을에는 없는 일이다. ”에서 박훈양이 바로 이 사람인 듯하다.
68. 愚軒記(우헌기)/愚軒記
<해설>
◯곽기영(郭基永)은 1885년-1967년 대 인물로 호가 愚軒이다.
성리학자(性理學者)로 한학(漢學)과 한의학(韓醫學)에 조예(造詣)가 깊었다.
69. 訥溪記(눌계기)/訥溪記
<해설>
◯訥溪遺稿는 禹悙의 문집이다.
禹悙은 1567[명종 22]-1652[효종 3])대 인물로 의병장을 하였다.
70. 南岡記(남강기)/南岡記
<해설>
◯이승훈(李昇薰) (1864 ~ 1930) 호 남강(南岡)이다.
71. 晦亭記(회정기)/晦亭記
<해설>
◯晦亭 閔在南(1802∼1873)
72. 石愚亭記(석우정기)/石愚亭記
<해설>
◯겸산유고 序에 “石愚亭唱酬錄序(석우정창수록서)”가 관련 된 듯하다.
◯石愚亭은 여주이씨 문순공파 諱 漢弼의 아들이 石愚公으로 石愚亭을 세워 선대를 기렸다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였다.
73. 松圃記(송포기)/松圃記
<해설>
◯제헌의원(制憲議員) 오택관(吳澤寬/1888-?)의 號가 송포(松圃)이다.
74. 晩靑記(만청기)/晩靑記
<해설>
◯만청 김박연의 시문집이 만청유고이다.
75. 松坡亭記(송파정기)/松坡亭記
<해설>
◯송파정(松坡亭) 和順郡 東面 菊東里 入口 岩壁上에 있으며 全州人 松坡 李德 賢의 暮年 休息所로서 그의 5子 李天洙, 穆尙, 炳文, 奇榮, 奇洪 등이 誠金 醵出하여 築亭한 追慕亭이라 한다. 현재는 岩壁위에 터만 존재한다.
76. 錦湖堂記(금호당기)/錦湖堂記
77. 晩巖記(만암기)/晩巖記
78. 後柏記(후백기)/後柏記
79. 瑞隱記(서은기)/瑞隱記
<해설>
◯서은(瑞隱) 김철순(金哲淳:1891∼1938)
◯獨守亭은 담양군 남면 연천리(潭陽郡 南面 燕川里) 산음동(山陰洞)에 있다. 조선 초기에 瑞隱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정자이다.
현재의 독수정 건물은 고종28년(1891)에 후손에 의해 재건된 것이며, 1915년에는 떼 지붕을 기와지붕으로 바꾸고 1972년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80. 錦沙記(금사기)/錦沙記
<해설>
◯錦沙 河潤九인가
81. 東溪記(동계기)/東溪記
82. 錦軒記(금헌기)/錦軒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