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12-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주님의 임재가 있는 떡 상 곧 왕의 잔치 석상에(주님의 동무 양떼들의 모임) 참여하여 하늘의 양식과 그 말씀 안에 있는 생수의 영을 누린 그녀의 첫 번째 색다른 예배모임 참석에 대한 체험을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그녀가 늘 참여하던 율법적인 산당모임 즉 오늘날의 세상교회의 모임에서 행하던 종교의식에 치우친 형식적인 예배와는 너무도 다른 체험을 했으며 그녀는 깊은 속에서부터 진심을 토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찾고 찾던 참 예배의 실상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율법적인 교회생활에 길들여진 신자들은 주님의 임재가 있는 모임에 와서도 자신 안에 조성 된 이론이나 교리들 때문에 처음에는 그 마음이 높아진 상태로 참여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에 따라 그 모임을 여러모로 조사하면서 생각을 굴리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성경지식 자랑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그 심령과 골수를 찌르고 영과 혼을 나누시는 때에는 양심의 찔림을 받고 자신의 헛되이 높아진 교만함을 보게 되어 그때에야 진실한 회개를 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빛이 영에 임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진리의 하나님께 거꾸러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율법적인 사역자들은 자신의 높아진 생각들과 헛된 이론들 때문에 그 마음에 조성된 견고한 진을 파하는 하나님의 침을 받아 그 속에 조성 된 견고한 진이 파쇄(破碎)되어야 하며 이미 굳어진 그의 관념과 그 속에 체계화 된 이론들은 길가의 밭과 같이 굳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날카로운 괭이로 파고 갈아엎으시기 전에는 절대로 복종하여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거듭나기가 어렵습니다(고후10:4-7, 12-18).
그런데 진리를 찾고 찾던 술람미 여자는 왕의 식탁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그 상에 진설되는 진미의 풍요를 누렸으며 영과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나드 기름을 그분에게 쏟아서 나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주님의 장사를 위하여 자기가 생전에 모아둔 나드 기름 곧 삼백 데니리온 이상의 값어치가 나가는 귀한 향유를 주님께 붓고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은 마리아에 대한 기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온 동네 사람에게 어떤 죄인인지 잘 알려진 죄인이었지만 주님은 그녀를 지극히 사랑하셨으며 그녀가 지금까지 당하던 모든 수치와 설음을 대변해주시면서 많은 죄들을 하나님께 사하심 받은 자는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증거하시고 그녀의 지난 모든 죄들을 한꺼번에 용서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한번은 주님의 상에 참여하여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단번에 청산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산 체험이 있어야만 진실한 주님의 제자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아 1:13-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이)자는 내게 몰약 (꾸러미가 되시나니 내 품 가운데 누우시리로다) 향낭이요. - 내가 진정 사랑하는 이는 내게 몰약 주머니가 되시나니 밤새도록 내 젖가슴에 누우시리로다.(직역//KJV 참조)
주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힌 큰 죄인이었던 술람미 여인의 신앙고백인데 그녀가 사랑하는 주님에 대하여 이같이 고백하는 것은 이제야 주님의 구속에 참여하는 실제를 깨달은 내용이며 십자가의 도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그녀의 품(영혼 깊이)가운데 잠드실 것을 고대하면서 주님은 내게 몰약 향낭이라 한 것은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심을 인하여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큰 죄인인 자기를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랑한 진실한 사랑에 완전히 매혹되고 이끌리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나같이 큰 죄인을 사랑하여 자신을 죽는데 까지 내어 주어 의인으로서 죄인 중의 죄인인 자신의 친구가 되어 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한다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는 것이니 이제는 자신을 구속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주님께 나드 기름을 부은 마리아는 주님의 고난을 자신의 가슴에 묻기 위하여 즉 주님의 장사를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 줄 사람이 없는 나 같은 죄인을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나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되 자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함은 너무도 엄청난 사실로서 자칭 의인들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복음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에 대하여 자신의 젖가슴에 고이 간직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내 자신이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을 장사한 바위에 판 새 무덤이 내 가슴이라는 사실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주님의 상에 참여해도 자신의 나드 기름을 쏟아 붓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동네에서 그녀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다 아는 분이지만 그녀를 큰 죄악으로 인한 눌림과 비방과 조소에서 건지려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으며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되셨고 거기서 안식일을 쉬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헌신하기를 원하는 그녀의 젖가슴에 들어가서 편안히 안식하시다가 다시일어나시고 영광을 받으실 수가 있었습니다.
스바에서 솔로몬에게 왔던 여왕은 수많은 수행원들과 엄청난 물품들을 갖고 와서 솔로몬에게 기꺼이 드리므로 솔로몬은 그 물품들로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을 방비하는 방패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주님의 큰 사람을 입어 그분의 구속에 참여한 우리의 헌신은 주님의 집인 하늘의 참 장막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데 사용되는 가장 귀한 재료들입니다.
주님이 내 가슴에 장사되어 쉬실 수있는 젖무덤(어린 아기들의 안식처)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이제부터는 주님의 씨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생명들을 잉태하고 해산하여 그 사람의 가슴으로 먹이고 잘 양육시켜서 주님의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을 그분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고 나의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 할 때에 참된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내 자신의 영혼에 참 평안과 찬 된 안식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술람미의 진솔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랑하는 상대자로서 인격적인 대상으로 지으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반응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들을 주는 것만이 최고의 기쁨이요 참된 만족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술리미 여자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먹어야 생존의 가치와 의미가 있고 참으로 행복한 것이며 나를 죽도록 사랑하신 주님을 위해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내가 할 수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내가 이 땅에 생존하는 유일한 목적임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왜 그렇게 무언가 알 수 없는 목마름 때문에 방황하며 헤매었으며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지를 참되게 깨달았고 이제야 영혼의 참 만족과 참 안식처를 찾아 인생의 모든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입니다.
아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염소 새끼의 샘이라는 뜻)포도원의(죄인들이 이생에서 거할 처소 즉 갓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에 대한 영적인 비유) 고벨화 송이로구나(향내 나는 꽃, 화장품의 원료로 길렀음). -
염소 새끼의 샘이라는 의미를 가진 엔게디는 다윗이 고난 중에 사울의 핍박을 피해서 피신 한 곳이며(삼상23:29-24:22) 고난당하는 다윗을 따르던 소수의 무리들은 다윗의 모든 고난에 필연적으로 동참해야만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주님은 자신에 대하여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노래한 뜻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광야 길을 걸으신 주님의 인생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향기를 빗댄 예언적인 표현이요 주님이 앞서 가신 길을 걸어야 할 술람미 여자의 신앙고백입니다.
아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
주님의 그녀에 대한 칭찬의 말씀인데 그녀는 이제 영적인 눈이 열려 자신의 영혼이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헤맸던 이유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찾고 찾던 그 무엇은 곧 자신의 창조자인 주님의 사랑을 원하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주님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임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에 원시한 눈이 열린 그녀의 순결한 눈을 비둘기 눈으로 빗대어 칭찬 하신 것입니다.
아 1:16-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석가래로구나(우리 집의 대들보는 백향목이요 서까래는 잣나무로구나). -
주님이 그녀의 순결하고 단순하며 원시한 눈을 칭찬한 말씀에 대한 그녀의 화답인데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까닭은 그녀의 안력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주님께서 사람의 눈을 보실 때는 마음 눈이 밝아져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눈입니다.
성경에서는 눈을 영 혹은 등이라고 하며 눈이 밝은 자란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의 영을 의미하며 사단에게 속아서 금령의 실과나무를 바라보는 눈은 사실상 우준해진 마음으로 사물이나 사건들을 보는 눈이니 선악을 아는 지식이 밝아진 눈은 타락한 인간본능으로 아는 뱀의 지혜와 지식에 속아서 하나님께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을 이해할 수 없도록 가려진 눈을 의미합니다.
일곱 날의 빛과 같이 밝아진 눈과 우준한 자의 눈은 곧 산 자의 영인 마음눈과 죽은 자의 영인 타락한 인간의 본성적인 지혜와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사랑이신 주여, 주님이야말로 어여쁘시며 화창한(비온 뒤의 청명한) 하늘이십니다(출24:10). 주님과 나의 (침상-안식처)는 푸른 초장입니다-
술람미 여자가 주님의 사랑의 은어로 칭찬을 듣고 주님을 청명한 하늘이라고 화답한 것은 주님의 영을 맑은 하늘로 보았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다는 뜻이며 주님과 자신의 침상을 푸른 초장으로 화답한 것은 생명의 풍성이 넘치는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본대로 노래한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을 주와 그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과 같고 도마가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고백이니 술람미 여자의 마음눈이 열려서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므로 영생을 얻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 술람미 여자에게 생명력이 넘치는 푸르른 침상이 있는 집의 백향목 대들보와 잣나무 서까래는 주님의 교회는 반드시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주님의 교회에는 반드시 집을 지탱하고 보전하는 든든한 아들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여자가 우리집이라 한 것은 주님의 양들과 함께 하는 교회 즉 하나님의 집에 대한 이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교회를 세우는 기초는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세우는 것이라는 크나큰 경건의 비밀에 관한 분명한 이상을 보았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딤전4:14-16).
아가서 제 1장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