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관점에서 본 CCM
Ⅰ. 들어가며 : CCM의 정의와 연구범위
연구에 앞서 오늘날 불분명한 뜻으로 넓게 사용되고 있는 CCM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범위를 우선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보통 CCM이라고 하면 좁게는 현대적이고 기독교적인 대중음악이라는 의미인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이라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CCM의 인식에 있어서 세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이것에 부담을 갖기 시작하는 기성세대와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고 즐겨하는 신세대를 나눌 때 사용하는 말이 CCM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되어지는 CCM은 단순한 기독교적인 대중음악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예배 시에 사용되는 경배와 찬양(Worship & Praise), 가스펠(Gospel)과 연주음악(Instrumental)등도 뭉뚱그려 CCM의 장르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아 CCM을 단순한 기독교 대중음악이라 부르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최근의 CCM은 기독교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음악적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연구에는 CCM의 정의와 연구범위를 먼저 정의하되 주로 좁은 의미에서의 전통적인 CCM의 개념과 최근 들어 엄청난 기세로 일어나고 있는 예배찬양인 CWM(Christian Worship Music)도 CCM의 범주에 포함할 것이다.
1. 연구할 CCM의 정의
전통적인 CCM은 미국의 블랙가스펠(Black Gospel)등으로부터 태동하여 다양한 현대적 장르(재즈, 락, 메탈, 블루스, 포크, 컨트리 등)의 음악적 장르를 기반으로 한 기독교적 대중음악으로 정의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대중적인 의미 외에도 오늘날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예배찬양(CWM)과 또 하나의 젊은 세대를 향한 모던 워십댄스의 발전형인 CCD(Contemporary Christian Dance)을 포함하려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CCM을 단순한 기독교적 대중음악만으로 인식하지 않고 예배에도 사용하는 예배음악으로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CCM이라고 할 때는 기독교적 대중음악이며 모든 기독교인의 예배와 생활에서 사용되어지는 음악이라고 정의하려고 한다.
2. 연구 범위와 내용
CCM의 연구 범위는 매우 넓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CCM의 연구 범위를 세 가지로 한정하려고 한다.
1)CCM의 신학적인 가치
주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살펴 CCM을 신앙적인 측면에서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CCM의 예배 사용 시의 수용 여부
현실적인 차원에서 신학적인 관점에서 연구된 결과를 토대로 현대 공적예배 시간에 CCM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3)CCM의 문제점과 미래발전적인 대안 제시
문제되어지는 CCM의 요소와 그것을 극복할 만한 부분의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신학적 관점에서 본 CCM
오늘날 CCM의 수용여부에 있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점은 다름 아닌 공적예배 시간에 CCM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사실 20여 년 전만 해도 CCM은 한국교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최덕신, 송정미, 박종호 등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한국적 CCM 음반들을 내놓고 있었지만 교회에서는 이런 곡들이 교회 내로 들어오는 것(특히 공적 예배 시간 내에)을 거의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87년 온누리 교회에서 하 스데반 선교사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두란노 경배와 찬양/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이 한국 교회 내에서 CCM이 교회 내로 들어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불과 몇 년 사이에 CCM이 기독교 음악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었던 상황을 훌쩍 넘어서 예배 시간에 사용되어지는 것이 오히려 앞서 가는 교회로 인식되는 대전환이 일어나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CCM이라고 하면 경배와 찬양이라는 예배음악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디사이플스, 어노인팅, 다윗의 장막 등이 주도하는 모던워십적 성향을 지닌 경배와 찬양은 그야말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점차 일반 교회에도 예배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비단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니며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물론 아직도 보수적인 교회들과 신학계에서는 CCM이 예배 찬양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고 전자악기들의 수용에 부정적인 견해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CWM을 위시한 CCM장르의 음악들이 교회의 예배와 성도들의 삶 속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CCM을 어떤 의미에서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신학적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해야 한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로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신학전반을 발전시켜 온 한국교회의 신학적 토대의 특성상 개혁 신학적 지지를 얻어 내지 못하고 단순히 문화적인 코드 차이로 CCM을 이해한다면 그 수명이 길지 않을뿐더러 변질과 타락이 일어날 것은 명약한 일이다. 분명 CCM은 교회 내와 바깥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불신자들과의 접촉점으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CCM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배음악의 활성과 대중음악으로서의 CCM의 상대적 몰락이라는 측면이다. 이것은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펜더멘탈이 워낙 약한 한국 CCM계에서 하나의 특정한 장르로 편중되는 현상은 후세대에게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CCM을 교회와 신학계가 하루빨리 바른 신학적 가치관으로 CCM을 재정립하고 투자와 후진양성에 힘써야 된다. 이를 위해서 우선 현재의 CCM의 신학적인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CCM의 신학적인 측면을 검토할 때는 결국 두 가지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데 하나는 수직적 음악(Vertical Music)으로서의 측면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의 음악을 지칭하게 되는데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예배음악이다. 오늘날 CWM으로 인지되는 CCM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나타나는 음악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수직적 측면에서의 예배음악의 전통이 강하게 내려왔다. 이것은 예배의 경건성을 나타내는 데에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져 왔으나 예배와 삶을 분리시키는 폐단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또 하나는 수평적 음악(Horizontal Music)인데 이것은 현실적인 삶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리어지는 음악을 말하는데 이것은 웨버의 동화모델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과 속이 만나지는 이 수평적 음악에서는 세속적 음악적 기법과 악기 등을 사용하여 동시대의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CCM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음악적 관점을 중심으로 우선 공적예배에서의 수직적 음악을 중심으로 한 CCM의 측면과 일반 생활 속에서의 수평적 음악을 중심으로 한 CCM의 측면으로 크게 나누어 신학적인 장단점을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1. 공예배시의 CCM의 긍정적 측면
예배음악으로서의 CCM의 문제를 살펴볼 때는 반드시 신학적인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는 예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적예배는 그 시대와 교회의 신학적 가치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전행위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예배음악에서 CCM을 사용할 때는 CCM이 그 가치에 부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우선 보아야 할 것이다.
CCM중에서 공적예배 때에 사용되어지는 음악은 위에서 언급한 CWM계열의 음악들이다. 즉, 경배와 찬양이 주가 되는 워십음악인데 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찬양이 중심이 된 예배갱신 운동에서 CCM은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CCM이 예배 시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회중의 예배에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찬양은 예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예배 그 자체이다. 한국교회가 그 동안 설교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예배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계시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찬양이라는 예배의 대 명제를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로 인해 예배는 모든 것이 설교에 맞춰져 버리게 되었고 찬양대의 찬양도 [예배를 돕는 보조수단]정도로 목회자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찬양역시 예배 전에 [준비]차원에서 드려지는 것이며 예배 시간 내에 드려지는 찬송도 설교를 듣기 전에 마음을 열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심각한 신학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찬양을 신나게 부르고 힘차게 부르는 것이 성령의 임재로 생각하는 것 역시 같은 차원에서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이러한 일선 목회자들의 찬양에 대한 신학적 부재로 인해 그동안 예배에 있어서 찬양은 그야말로 찬송가 외에는 부를 것이 없는 심각한 편중 현상을 가져 왔다.
이러한 문제는 곧 젊은 세대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현상을 빚게 되었으며 기성세대 역시 예배 내에서의 찬송가만이 [거룩한]것이고 그 외의 것은 속된 것이라고 하는 이분법에 빠져 삶과 예배가 나뉘게 되는 괴리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곧 예배의 경직성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예배가 [드려지는]것이 아닌 [구경하는]것으로 악화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상당 수 해결하게 된 것이 바로 CCM의 역할이다. CCM은 찬송가로 국한된 예배찬양의 한계를 단숨에 확장시켰으며 특히 젊은 세대가 예배 안으로 들어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CCM으로 인해 촉발된 예배의 경배와 찬양 운동은 성령의 임재를 좀 더 뜨겁게 느끼고자 하는 회중의 욕구를 훌륭하게 만족시켰으며 이로 인해 예배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정도의 큰 변화가 9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예배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이다. 시편22편3절에서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즉, 예배는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찬양이 그동안 예배에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CCM의 공적예배에 미친 가장 큰 긍정적인 내용은 찬양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게 했으며 예배의 경직성을 벗고 회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세대를 교회의 예배 속으로 인도하고 특히 전통적인 찬송가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들에게 찬양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해 준 것 역시 CCM이 공적예배에 미친 긍정적인 측면이다. 문화적인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들의 다양한 욕구와 정서를 충족시켜 줌으로서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게 찬양을 부르게 하였고 CCM이 가지고 있는 대중성과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방법의 찬양과 예배형태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한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불신자들을 교회로 초청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들이 교회예배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과 이질감에서 벗어나 친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CCM의 음악적 요소가 긍정적으로 작용했음도 빼놓을 수 없는 긍정적 측면이다.
2. 공예배시의 CCM의 부정적 측면
기성세대와 보수적 진영에서 가장 부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것이 CCM이 가지고 있는 가사의 신학성 부재와 곡의 세속성이다. 이에 대해 안양대 김철륜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말했다.
“복음성가는 본래 부흥집회에서 불린 노래들로서 신앙부흥집회나 전도 집회에는 합당하지만 예배 찬송으로는 적당치 않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논의되어온 일이다. 이런 논의가 많이 일자 근례에는 가사의 문제점을 벗어나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내용으로 하는 복음성가가 많이 나오는 것도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복음성가는 가사의 내용뿐 아니라 예배의 경건성을 해치는 곡조에도 유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예배는 받는 대상이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예배에 드려지는 찬송에 분명 복음성가는 부적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필자의 견해는 복음성가를 교회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배 외적인 노래와 예배 내적인 노래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다면 복음성가는 절대로 예배 내적인 음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에서는 불릴 수 없는 노래이다”
이러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 보수적 신학자와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견해와 일치한다. 이러한 내용의 가부에 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논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가사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은 분명 CCM의 한계이자 부정적 측면이 될 수 있다. 예배찬양에 있어서의 음악적 해석은 사실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즉, 예배의 수직적 측면과 수평적 측면을 고르게 만족할 수 있는 신앙 고백적 내용과 신학적인 배경이 CCM 가사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이것은 자칫 예배를 인간의 만족과 여흥을 위한 것으로 전락시킬 대단한 위험의 소지가 있다.
또한 너무나 젊은 세대의 감성만을 위주로 한 CCM은 오히려 예배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과 찬양이라는 측면을 벗어나 자신의 감성적인 만족을 위해 찬양을 사용하게 되는 현상을 빚게 되며 이는 결국 예배가 하나의 쇼케이스(Showcase)나 공연이 되어 버리는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 열린 예배의 한계와 구도자 예배의 한계점에서 여실히 들어나는 문제이다. 너무나 불신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예배는 하나의 공연이 되어 버리고 예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려 주인공이 마치 불신자와 외부인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면은 간과해서는 안 될 CCM의 한계이자 문제이기도 하다.
3. 신앙생활 속에서의 CCM의 긍정적 측면
공적 예배 시간에 사용되어진 CCM이 주로 CWM을 위주로 한 경배와 찬양의 음악이라면 일반 생활 속에서의 CCM이야말로 CCM이 본래 가지고 있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CCM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뜻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기독교적 대중음악이라는 측면에서 CCM이 가지고 있는 생활 속에서의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불신자와의 접촉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CCM은 불신자들도 공유할 수 있는 음악적 장르를 통해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말하며 그들과 그것을 나눌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불신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나 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 한 [가시나무새]등과 같은 곡들은 일반인들에게도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부정적 편견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곡들이다.
이러한 CCM의 기능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세계관과 복음관을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부분이 아직 활성화가 많이 되지 못했지만 CCM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교회의 역할과 세상에서의 가치관 확립에 대한 내용을 지닌 CCM들이 많이 불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CCM의 세상 속에서의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둘째, 기독교인들에게 건전한 문화생활과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먹고사는 것에 인생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는 사회가 아니다. 먹기 위해 일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즐기기 위해 일하는 사회로의 진입이 된지 오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 역시 이러한 문화적인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는 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차원에서 CCM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CCM을 부르고 즐김에 따라 좀 더 건전한 문화적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 욕구 또한 만족 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CCM은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세속적 문화에 빠지기 쉬운 십대와 청년층에게 CCM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어른들과 같은 기성세대에도 삶 가운데 은혜를 누리고 신앙생활의 연장이 될 수 있는 좋은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CCD와 Instrumental CCM은 청소년층과 기성세대에게 하나의 훌륭한 문화적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워십댄스의 성격을 계승한 CCD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힙합과 비보이(B-Boy)열풍과 맞물려 교회마다 찬양 팀처럼 댄싱 팀을 구성하게 할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으며 가만히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온 몸으로 자신의 신앙과 감정을 나타내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최근 많이 나오고 있는 연주음반들은 기성세대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예전의 클래식 류의 찬송가 연주에서 벗어나 재즈나 블루스 등의 다양한 연주 형태로 제작되어 음악 감상적인 측면에서 또 심리적인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셋째로 CCM을 통해 교회 바깥에서도 전도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많은 본격적인 현대적 CCM 사역자들이 등장한 이래로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역자들이 배출되어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선교단과 찬양 팀이 있어 이들을 통하여 많은 콘서트와 집회를 열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음악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찬양사역자들로 인해 CCM은 불신자들을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CCM자체가 기존의 경직된 교회 체제에 반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자들에게 전하고 그로 인한 회심과 전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미국과 영국의 부흥운동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CCM은 이러한 교회외적인 사역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 신앙생활 속에서의 CCM의 부정적 측면
아이러니하게도 CCM의 부정적인 시각은 긍정적인 시각의 반대선상에 대부분 놓여 있다. 즉,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에 따라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부정적인 측면들도 역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CCM은 세속적인 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감각적이고 오락적인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관을 형성하여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CCM의 대중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방향으로 더욱 타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러한 지적은 CCM의 세속적 측면과 강하게 맞물려 지적되고 있는데 CCM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라 상업성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에 의해 지지되어진다. 태생이 이러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 그 음악적 효과 역시 거룩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지기 보다는 사람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춰진 대중음악으로서 그치게 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지적이다.
둘째로 음악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찬양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록이나 헤비메탈 등의 음악은 그 태생이 가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성적인 방종, 사회적 반항 등의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예배에서 사용되어져서는 안 되며 기독교인의 음악으로도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악기들이 언급되어지는 것은 찬양에 있어서 악기 사용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실례로 록음악을 하는 상당수의 아티스트들이 마약이나 섹스 등의 삶의 방탕함과 무절제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셋째로 CCM은 기독교 음악이 아니라 대중가요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이 나타나는 데에는 CCM들이 가지고 있는 가사의 신학적 부재와 객관적 신앙의 고백들이 빈약한데에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많은 CCM들은 치열한 고민 없이 그저 곡에 맞는 가사를 붙인 듯 한 인상을 주는 곡이 상당히 많으며 CCM가수들이나 작곡자들 또한 사역자로서의 소명의식 없이 자신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들을 가지고 곡을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는 단순한 수직적 음악과 수평적 음악의 분류가 아니며 오히려 CCM가사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주님이나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다 CCM일 수는 없다. CCM은 기독교적 대중음악이라는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나 기독교적 가치관과 복음관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민의식 없이 음악적인 표현에만 치중한 CCM은 기독교적 음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Ⅲ. 정리하며 : CCM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
1. CCM의 현재와 한계
이상에서 살펴 본 CCM의 예배와 생활 속에서의 장, 단점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으며 참고해야 할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CCM은 교회내외에서 이미 깊숙이 관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거의 다 찬양 팀을 가지고 있으며 전자악기들을 동원하여 예배 시간에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다. 각종 예배 때에 워십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CCM을 가지고 성도와 불신자 모두에게 노래하고 있다. 사실 CCM은 논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미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며 또한 더욱 깊고 넓게 적용되어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보수가 진보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결론이 되어 지기 마련이다. 다만 그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성세대가 거룩하게 여기는 찬송가 역시 그 찬송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도저히 교회에서 불릴 수 없는 속된 가락에 붙인 곡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고 난 지금에는 예배 때에 훌륭하게 은혜롭게 불리는 찬양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CCM역시 당대에는 언제나 보수적인 계층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다. 많은 CCM들 중에 예배 시간에 부를 수 있는 곡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되는데 이것은 가사가 가지는 신앙고백이 교회 공동체에서 인정될 때 결정된다. 그러한 차원에서 CCM의 수용여부는 교회와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채택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예배음악과 기독교적 대중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악기들도 마찬가지 차원에서 수용되어질 것이며 이것은 마치 과거에 피아노와 오르간이 악마의 도구로 매도당하다가 근래에 이르러 거룩하고 경건한 악기로 인식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적인 차원과는 별도로 우리는 끊임없이 CCM의 개선과 가치에 대해 재고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문제가 현실적 CCM의 모습이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CCM의 위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우선 예배에서 워십음악들이 주축이 된 CCM들이 많은 호응을 얻고는 있지만 점차 경배와 찬양음악들이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전락해 가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더 많은 찬양 팀들이 더 전문화되고 더 어필할 수 있는 음악적 장르를 통해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경계할 내용이다.
경쟁적으로 교회마다 찬양 팀들을 양성하고 교회마다 다양한 예배 문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의 찬양이 자취를 감추고 나면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 집회와 별 다를 바 없는 예배공연이 되고 말 것이다. 일부 유명한 찬양 팀이 있는 교회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그렇지 못한 교회의 예배는 비어가는 오늘날의 현실은 우리에게 깊은 각성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가 목적이 아닌 OOO찬양 팀이나 OOO리더를 보기 위해 예배에 참여한다면 이는 예배의 목적과 가치를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와 신학계에서는 끊임없는 예배의 중요성과 찬양의 위치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적용하게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경배와 찬양 CCM보다 더 큰 문제는 일반 CCM음악이다. 현재의 CCM시장은 거의 고사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준 높은 CCM음악을 만들 수 없는 환경이다. 1990년대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과 찬양사역자들이 주류를 이뤘던 것과는 상이하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현상은 소위 과거에 [떴던] 음반들을 중심으로 리메이크하여 재편성한 컨필레이션(편집)음반들이 대거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트리니티나 파워스테이션 등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이러한 컨필레이션 음반들은 가뜩이나 메마른 CCM시장을 거의 고사상태로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상업적인 이유에서 더 이상 음반회사들과 기획사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디지털 음원의 복제와 배포로 인해 많은 찬양들이 저작권자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퍼지게 됨으로 사역자들의 활동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저작권에 대한 자각이 희미하고 더욱이 CCM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가 퍼져 불법적으로 복사해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CCM계의 문제점은 분명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단순히 CCM의 이론적인 타당성만을 붙들고 안주한다면 CCM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왜곡되고 잘못된 모습으로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게 될 것이다.
2. CCM의 미래적 발전 가능성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자각이다. CCM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훌륭한 예배음악이며 기독교적 음악이다. 음악과 악기는 그 자체로 아무런 선악의 의미가 없는 중립적인 것이다. 누가 사용하며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음악적 장르나 악기의 선택이 찬양과 세속음악의 경계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CCM이 교회 내에서 사용되어지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 CCM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소모적 논쟁을 하루빨리 중지하고 CCM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야 될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CCM계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우선적 대안은 첫 번째로 CCM 사역자들의 전문적 양성이다. 현재 CCM사역자들은 거의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준비되어지며 교회와 학계, 교단 어디에서도 전문적으로 양성되어지지 않았다.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교회와 교단, 학계, 성도들 모두가 많은 수고와 준비를 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모두 그동안 CCM을 등한시하고 수준 낮은 하류분야로 인식한 오만함 때문이다. 찬양사역자와 음악목회자의 양성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서 준비할 것의 성질이 아니다. 목회자 양성과 마찬가지로 교단에서 정식으로 인준하고 준비되어진 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수진과 시설에서 부름 받은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음악적인 부분과 더불어 신학적인 교육과 적용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 없는 것이다.
또한 일반 성도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CCM음반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사고방식은 결국 CCM 시장의 도태를 가져오게 되며 그 피해는 결국 성도들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지금도 많은 CCM사역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 스타급의 사역자들이 있긴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며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자신이 수고한 결과인 음반과 음악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성도들과 교회는 적어도 CCM음반들과 악보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음반회사나 사역자들도 현대의 트렌드를 따라 정규앨범의 판매와 더불어 싱글앨범이나 유료사이트를 통한 단곡판매 등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사용자들의 의식전환이 더 좋은 CCM음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며 이러한 기반 위에 더 좋은 음악들이 나와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을 풍요롭고 은혜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Ⅴ. 참고문헌
1. 한영기, 복음성가? 찬양? 워십?, CCMer 2006년 3월호
2. 양동복, 새로운 대중음악 CCM,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0), CCM의 역사 부분 정리
3. 김용민, CCM에 대한 이해3, 극동방송 자료 발췌(인터넷 주소 : http://prophetess.egloos.com/30459)
4. 양봉수, 한국교회 예배찬송 중 CCM 사용에 관한 연구, 광신대 신학대학원 석사논문(2005)
5. 김철륜, 교회찬양학개론, 호산나음악사(2000),
6. 정지현, CCM의 문화선교적 활용방안,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석사논문(2005)
첫댓글 CCM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CCM=복음성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CCM이라는 말 자체가 동시대에 사용되는 모든 크리스챤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개념의 예배음악 및 교회음악, 복음성가를 포함한 대중문화적 크리스챤 음악, CCD와 CWM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의 말입니다.
따라서 클래식한 교회음악은 거룩한(?) 것이고 CCM은 젊은이들이나 하는 유행가적이고 저급한 음악이라는 개념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언향 교회의 예배사역 가운데 바른 개념의 CCM음악을 연구하고 이를 예배와 기독교음악에 접목하고자 하는 사역은 바로 이러한 잘못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음악은 현대의 것으로, 메세지는 영원한 것으로...
CCM을 사랑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써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습니다. CCM은 워낙 다양한 음악장르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라 각각의 목적과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CCM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기초가 되어야겠지요.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곳에 나와있는 부정적 측면은 단지 CCM이 아니라 모든 찬양에 대한 문제로 인식됩니다. 검증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사실 찬송가 역시 제작 당시에는 각 나라의 민요 등 널리 불려지는 곡들에 가사만 붙인 것들도 많으니까요.(외국의 국가 중에도 찬송가의 음률이 있으니) 저역시 메탈이나 하드락 같은 종류의 음악에 대해서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만 글 내용 중 밝혔듯이 이시대에 부정한 것이 다음 세대에 거룩한 것이 되는 것처럼 결국은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역시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기관과 전문가를 그에 맞게 대접할 수 있는 교회적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겠지요.(사실 아직도 찬양인도자에 대해 전혀 전문가로 인식하지 않을뿐더러 대우 역시 전문사역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교회가 대다수로 보이네요.) 한번 더 나가면 어떻게 그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을 만들것인가 하는 문제들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여기서 논의할게 아닌듯 하구요 ㅋ
그래도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들과 가끔 선후배들과 토론이 되는 부분들이 정리되어 있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복음성가를 듣다보면 처음인데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곡들이 많은데 아마도 짜집기,도용 등등 베낀 듯한...찬양도 방법이 정당해야 합니다 저작권 중요합니다.하느님의 뜻에 따른다면 악기나 음악의 장르보다는 사람의 문제이고 결국 CCM의 바른 발전에는 정경의 태생과 같이 힘든 과정이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