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바다/
푸른 창공과 파란 바다는 검은 장갑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가 붉게 물들이며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었다. 산산이 흩어지는 물보라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생물들이 기지개를 펴는 것 같다. 갈매기는 새 봄을 맞아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먼 바다로 향하여 날아가 보고 싶은 내 마음과 같은가보다. 시선이 말하는 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까~악 까~악 아침잠을 깨운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갈매기 되어 멀리멀리 날아가 딴 세상에 가보고 싶다. 행복이 자잘 대는 아이들의 놀이터 마냥 즐거운 세상을 보고 싶다. 봄은 내 노곤한 생각을 또 한 번 잠에서 깨운다.
겨울 내내 쌓였던 눈 더미는 바다가 몰고 오는 순풍에 녹아 시냇물 만들어 바다에 안긴다. 하늘과 산에서 따로 놀다가 다시 하나 되어 바다를 이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듯이 하나 되어 알콩달콩 대며 행복한 함박웃음이 나라의 살림을 살찌우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생각하게 한다. 각자가 가는 길은 달라도 인생에 있어서 최후의 목표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우리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셨다. 그 중 하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씨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깊은 고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갈매기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먹 거리를 어디다 쌓아두는 곳도 없다. 과식도 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유희를 하다 배가 고플라 하면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하듯 들어가 한 마리 생선을 물고 하늘로 치솟으며 만찬을 즐기면 된다. 먹는 것도 또 하나의 기술이다. 갖가지 모습으로 날개 짓을 하다가 힘들면 물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전혀 바쁜 모습은 언제나 찾아 볼 수가 없다. 날개에 묻은 물기를 말리려면 조용히 바위에 내려 앉아 출렁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 구절 시를 읊는다. ‘갈매기 나래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갈매기의 유희를 바라보며 인간들은 꿈을 키우고 도전을 한다. 정말 아이러니 하다. 꿈속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높은 배움을 바탕으로 사회적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푸른 언덕위에 그림 같은 집에서 사랑하는 님 과 함께 귀엽고 예쁜 아이들 낳아 행복한 삶을 나는 바라고 이제껏 살아왔다. 갈매기와 나는 누가 더 행복한 것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행복한 것인가? 상한선은 없다. 나의 능력의 한계일 뿐이다.
배움의 목표, 사회적 지위의 목표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제껏 아쉬워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 건강도 점점 시들어 간다. 숨 가쁘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왜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 왔나 바보처럼 굴러다녔네 하고 자책을 한다. 갈매기 보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인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고 지켜온 것에 안도의 한숨을, 양 팔을 최대한 높이 쭈~욱 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슴속 깊이 들어 마신다. 바다의 봄바람이 몸속을 파고드니 시원함을 느낀다. 아~아 나의 노년이여 건강하게 즐거운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하늘 높이 소리치며 몸부림을 한다.
아들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재롱을 떠는 모습을 옆에서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크니 눈앞에서만 아른거린다. 감염 예방 정책인 거리 두기 실행이 언제 해제가 되려나? 하는 걱정이 또 죄 없는 가슴을 압박을 한다. 아무런 문제없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즐거웠고, 괴로웠고, 슬프고 애달았던 날들 이제는 뒤안길로 보내려 한다.
그저 지나온 크고 적었던 일들은 흔적에 불과 한 것, 쌓아둔들 쌓아 있으랴 지우려 한들 지워지랴. 이 몸 하나만을 위하여 저 갈매기처럼 하루하루를 건강 지키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게만 살고 싶다. 갈매기야! 갈매기야! 나와 함께 자유자재로 바다위로 날아다니자. 모든 것 잊어버리고 이 순간만을 위하여 즐거운 기교의 날개 짓 펼쳐보자. 갈매기의 꿈을 따라서 날아가자. 날아 가보자. 돌덩이 같은 굳어버린 이내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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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아온 봄빛/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가 정답게 들린다. 가냘픈 아기 숨소리 같다. 아, 봄! 봄빛은 어머니의 품속 같이 따스하다. 비취빛 파릇한 여린 싹이 흙을 들어 올리는 소리다. 봄의 전령이 땅속으로부터 오는 구나. 양지바른 밭둑에는 쑥이 올라와 있고 냉이도 선을 보였다. 춘래 불사춘이라 하지만 어느새 마음은 꽃망아울이 부풀어 올라 창문을 열고 봄바람을 맞이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1940년대만 해도 춘궁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은 밭둑이나 논둑에 앉아 쑥도 뜯고 냉이를 캐서 끼니에 보태었다고 했다. 아낙들은 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면서, 비탈길을 오르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얼굴도 가시덩쿨에 긁히면서 집에서 굶고 있을 식구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였다고 한다. 겉보리가 날 때까지 춘궁기를 보내느라 먹지를 못하여 부황이 나서 병이들기도 하였단다. 이토록 모든 생물들에게는 봄의 계절이 있었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봄은 모든 만물이 새로운 희망을 펼치는 오행에서 목(木)은 봄을 뜻한다. 사계절의 시작으로 봄은 탄생을 의미한다. 새로 움이돋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시기이다. 이래서 누구나 봄은 기다려진다.
어미 닭이 품었던 알을 부리로 콕콕 쪼는 소리와 함께 삐악삐악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다. 아직은 낯선 듯 비틀거린다. 초롱 속에 부직포를 깔아 따뜻하게 해준 다음 병아리를 옮기고 좁쌀을 넣어주었다. 콕콕 좁쌀 찍는 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정답다. 병아리들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다 30년 전 일이 생각났다. 건설현장에 쌓아놓은 자갈 더미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던 남매를 만났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돌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이름은 뭐냐고 물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더 큰소리로 물었다. 건축주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집에 있는 막내딸과 비슷한 또래 같아서 말을 거는 중이라고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손짓으로 부른다. 옆집에 사는 아이들인데 여섯 식구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청각장애인 가족이라고 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데려가 진찰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여자애의 할아버지를 만나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 거절을 하신다. 나를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심부름하는 아이로 데리고 가려나 생각하셨나 보다. 건축주가 보증을 서서 겨우 청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비인후과에 데려가 검사를 하니 정상아라고 했다. 가족이 말을 안 하니 혀가 굳어있을 뿐이라고 한다. 내 가족의 일처럼 기뻤다. 막내딸이 다니는 사직동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님께 부탁을 드려 유치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퇴근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였으나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데려왔다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한 달을 불편하게 보냈다. 막내딸이 같은 또래지만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 말을 가르쳤다. “엄마, 엄마 아빠, 아빠---” 한 달이 되니 세 살 정도의 아이만큼 말문이 열렸다. 아이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아~”하며 인사를 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안겼다. 예쁜 짓을 하니 남편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토요일마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세신에게 부탁하여 목욕을 시켰다. 아이를 데려온 지 두 달 정도 되자 눈만 반짝이고 구릿빛 피부였던 아이는 조금씩 촌티를 벗고 변해갔다. 막내딸과 같은 원피스를 사서 입히니 동네에 딸 부잣집에서 밖에서 딸을 낳아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편이 이런 소문을 알게 될까봐 미안하고 마음이 늘 조마조마 했다.
어느날 아이의 작은 엄마가 찾아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조카딸이 잘 있나 보러 왔단다.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사촌끼리 정도 쌓고 토요일마다 데리고 가서 목욕도 시키고 일요일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두 번 목욕을 시키고 데려와서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시골집으로 보내라고 한다. 이제 겨우 말문이 열려 재잘거리는 아이를 보내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유치원에 선납한 수업료도 연말까지라 데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엉뚱한 소문으로 신경이 쓰였다. 하는 수없이 초등학교 입학할 봄날에 아이를 시골로 보냈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얻는 마음으로 막내딸과 함께 학교에 다니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공직자인 남편에게 뉘가 될까봐 고심을 하였던 일이 지나놓고 나니 그 때는 생각이 짧았다.
어느덧 고희에 이른 세월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봄이 오고가도 뒤돌아보면서 후회하는 일이 많다. 주차하는 소리와 대문 여닫는 소리에 창밖으로 눈이 간다. 인(人)꽃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여섯 명이 움직이는 꽃으로 내게 다가온다. 봄꽃과 인꽃이 어울려 방실거린다. 잔디가 파릇한 마당 안은 금세 생기가 넘쳐난다.살랑대는 미풍도 좋고 아이들 가벼운 옷차림도 좋다. 세월 속에 저물어가는 나도 꽃이 되는 계절, 그 애도 기억하고 있을까? 나와 여섯 살짜리 그 애와 인연이 되었던 지난날의 봄이 아련히 회상되었다.
봄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마음에 가득히 머문다. 나무도 꽃을 피우워 매화와 눈을 맞추니 뜰 안에는 향기로 가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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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느 봄날 /
주변의 온 산들이 붉게 물들었다. 8년 전 그때처럼 진달래가 만개한 것이다. 유난히 화창하고 포근했던 날, 어머니는 이승의 소풍을 마치고 아끼고 사랑했던 자식들과 손주들의 손을 놓으셨다. 어느 해보다도 진달래꽃이 아름다웠던 모래재를 넘어 고향으로 가셨다. 어릴 적 밭에 가신 어머니를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듯이 기다리고 기다려도 다시 오시지 않으셨다. 유독 손이 많이 가시던 아버지를 어찌 두고 가셨는지, 애달파하시던 아버지도 7개월 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느라 몇 년을 성묘하지 못한 딸이 왔다. 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손주와 손녀가 어려서 안 된다고 하다가 이번에는 날씨도 좋고 따뜻하며 녀석들도 제법 커서 잘 걸어 다니니 함께 가기로 했다.
손주들이 자라면 함께 냉이를 캐면서 봄을 즐겨보려고 작은 호미를 두 개 사서 준비 해 두었었다. 그래서 성묘도 하고 봄나물도 캐려고 어머니가 마지막 가시던 그 길로 출발했다. 그날처럼 햇살도 좋고 진달래도 피고 개나리도 피어 그때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주와 손녀가 “할머니, 왜 울어요?” 한다. 그 말을 들은 딸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지금 산소에 가고 있지? 그 산소가 외할머니 엄마, 너희들 엄마의 외할머니 산소거든. 그래서 외할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우시는 거야.” “아, 그렇구나. 슬프다.” 한다.
산소에 도착하여 손주와 손녀의 손에 호미를 쥐어주며 냉이를 캐라고 했더니 온갖 잡초를 모두 캐고 있었다. 여기도 파고 저기도 파고 조그만 밭을 모두 파 일굴 기세로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녀석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막내 동생네 가족이 도착하고 함께 성묘할 때는 쫓아와 넙죽넙죽 절을 잘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유난히 예뻐해 주셨던 외손녀의 아들과 딸인 외증손이 와서 절을 했으니 말이다. 성묘가 끝났다. 음식은 먹을 생각도 안하고 다시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내려간다. 늘 제 어미와 함께 다니면서 체험활동을 많이 했어도 자연 속에서의 활동은 재미있는가 보다. 집에 가자고 하니 냉이를 더 캐면서 놀고 싶단다. 실제로 봄꽃들을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개나리꽃이 별 모양으로 생겼다고 신기해하는 손주들, 이런 체험놀이를 어디서 해볼 수 있을까?
손주들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자연관찰 시간이 되었다. 쑥도 뜯고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캐고 꽃다지도 캤다. 캔 봄나물을 가지고 잎 모양도 살펴보고 조금씩 씹어 맛도 보았다. 쑥을 맛보며 쓰다고 퉤퉤 침을 뱉더니 달래는 맵다고 하였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이 정말 신나보였다.
그러다가 손주가 할아버지 산소 위의 언덕에 있는 진달래를 보았다. 호미를 던지더니 진달래가 있는 곳으로 마구 뛰어갔다. 먹을 수 있는 꽃이라고 퍽도 좋아했다. 주변의 작은 나뭇가지들이 위험하기도 했지만 잘 피해 다니며 한줌씩 꽃을 따고 꺾어 가지고 왔다. 꽃을 한 송이씩 먹어보고 꽃술을 가지고 어렸을 친구들과 함께 하며 놀았던 꽃씨름을 손주와 손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재미있다고 자꾸 해보자고 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잠시 후엔 음악시간이 되었다. 서방님이 밭두렁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오셨다. 손으로 쓱쓱 비틀어 껍질을 통째로 벗겨내셔서 호드기를 만들어 주셨다. 손주와 손녀는 외할아버지처럼 소리를 내보려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몇 번 이고 불어 보더니 손녀가 먼저 뿌우~~ 하고 소리를 냈다.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즐거워했다. 이번엔 호드기 길이를 다르게 하여 불면서 소리를 비교해 보고 가는 것과 굵은 것도 따로 만들어 불어보면서 너무 신기하고 재미가 있단다. 딸과 손주와 손녀까지 함께 호드기 합주를 했다. 가늘고 굵고 높고 낮은 소리들이 멋진 화음을 만들어 골짜기를 울렸다. 행복의 울림이 산 골골로 스며들었다.
8년 전 그날은 그렇게 아프고 슬퍼서 앞산이 메아리를 토해내도록 울었는데, 오늘은 손주들과 함께 혼유석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시고 뭐라고 하셨을까 많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산소라는 곳을 처음 와본 녀석들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손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행복했다. 성묘를 마치고 실컷 재미있게 놀기까지 하고 산을 내려올 때는 노느라 지치고 힘들어 하는 외손녀를 외할아버지가 업어주시기도 했다.
이제 집으로 간다.
또 엄마와 멀어진다. 진달래꽃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도 저 멀리로 물러서서 손을 흔든다. 우리는 다시 꽃길을 달려 집으로 오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꽃이 좋고 봄볕이 좋아 그만 꽃 속에서 길을 잃으셨나보다. 그래서 8년이 지난 오늘까지 오시지 못하시나 보다.
저녁엔 손주들과 함께 뜯은 쑥으로 쑥완자탕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데친 쑥에 소고기를 넣어 갈아서 양념을 한 후 손주들에게 주었더니 미끄럽고 촉감이 좋다며 동글동글하게 잘도 만들었다. 완자를 끓는 육수에 넣었더니 잠시 후 동동 떠올랐다. 3대가 밥상머리에 마주앉아 봄별을 받아 향기 물씬 풍기는 쑥완자를 한 알씩 입에 넣었다. 손주들의 사랑과 봄이 모두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가족 모두의 사랑이 봄별과 함께 집안 가득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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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봄날은 간다/
봄날의 앞장을 열었던 노란 산수유, 개나리꽃도,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던 벚꽃도 진지 오래고. 이젠 영산홍 붉은 꽃이 지고 파란 잎으로 채색되며 봄날은 간다. 앙상했던 은행나무가지에도 제법 은행나무로서 위엄을 갖추며 파란색으로 물들고, 연초록빛 버드나무 가지들은 물감을 칠하듯 푸름이 더해져 어른스러워지며 봄날은 지난다.
연초록 여린 새싹에 반짝 이는 이슬방울은 햇살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아지듯 봄날은 가고, 싱숭생숭한 봄바람에 송홧가루 사방으로 흩어지며 봄은 간다. 여인들의 잠자리 날개 같은 하늘하늘한 옷차림에서도 봄날은 지나고, 점심만 먹으면 나른하여 눈꺼풀 속으로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꿈속인가 일상인가 일장춘몽 속에서도 봄은 흘러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장사익의 애절한 노랫가락에서도 봄날은 간다.
어디 봄날만 가는가? 오면 가고, 가면 오는 것을 세월이라 부르지 않던가.
‘會者定離’라고 가는 것이나 오는 것이나 똑 같이 반복하며 윤회하는 것일 텐데, 우리는 만남과 이별로 구분하여 기쁨과 눈물로 가슴앓이를 하며 사랑을 맞이하고 보내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을 채우고 남을 것 같이 삶의 전부인 양, 뜨겁던 사랑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듯,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던 사람도 언젠가는 잊혀져간다. 우리 삶 주변의 모든 삼라만상이 가면 다시 오는 윤회를 반복하는 듯 보이지만, 지난 사랑이 다시 오는 사랑과 똑 같은 사랑이 될 수 없듯, 지금 지나는 봄이 내년에 다가오는 봄과 똑같은 봄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똑 같은 봄 일진데, 지나는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불가에서는 죽으면 환생하여 새롭게 태어나 윤회한다고 말하지만, 우리 삶은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므로, 한번 가면 다시 올 수 있는 것일까. 하늘로 가기 전까지의 삶의 여정을 우리는 인생이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람쥐 체 바퀴 돌듯 우리는 돌아가고 그 자리에 다시 오는 듯하다. 똑같이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그 자리가 같은 자리일까. 내일이 다시 온다고 오늘과 똑 같은 그 자리일 수 있는 것인가. 같아 보이지만 또 다른 하루 일 뿐인 걸. 다시 온다고 같은 봄날일까. 매년 똑같은 봄이 반복되는데 느끼는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날은 갔다 다시 오고, 나도 다시 오겠지만 또 다른 내가 거기 있을 뿐인걸. 모든 것이 똑 같이 반복하며 윤회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똑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이 쌓여,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지금과 비교하여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세월이라 부르나 보다.
먼 옛날에 있었던 내가 지금의 모습일거라는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앞으로 몇 십 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주변의 모든 것들도 변하여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일 테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고 있기에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봄은 지고 또 다시 내년에 이 자리에 모여 꽃을 노랗게, 하얗게, 빨갛게 물들이며 지금처럼 화사하게 다시 필울 수 있을게다.
내가 지나고 있는 봄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봄날은 무엇을 남기고 지나고 있는가. 다시 오는 봄은 지나는 봄날과는 어떻게 다른 계절이 될 수 있을 것일까. 수없이 반복하며 보냈던 봄 중 육십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미련이 묻어나는 아쉬움을 떨어지는 영산홍 꽃잎 속에 묻어본다.
다시 만날 봄날의 두려움이랑 아지랑이 속으로 날려 보내며, 또 다른 미지의 새로운 봄을 기다려 본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나를 살찌우는 봄날을 기대하며, 마지막 가는 봄바람의 꼬리를 살며시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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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내의 봄날/
우리 집 탁상용 달력에는 자그마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아내의 무릎관절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이 되자 아내의 손길이 바빠진다. 병원에서 갈아입어야 할 옷가지와 간단한 생활용품을 이것저것 챙긴다. 그러면서 반찬은 무엇 무엇이 어디에 있고 세탁기는 이렇게 돌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집을 나서면서 뒤돌아보니 아픈 아내가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을는지? 하며 걱정이 앞섰다.
50여 년 전 아내는 빈농인 우리 집으로 나 하나만 바라보고 시집을 왔다. 농사라야 예닐곱 마지기의 논과 비탈진 텃밭 한때기가 전부였다. 당시 나는 시골의 자그마한 직장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었고 월급이라야 쥐꼬리만큼 받아온 것 같다. 아침에 동이 트면 아내는 약속이나 한 듯 밭으로 논으로 농사일을 하러 나갔다. 1년 내내 그리했다. 이처럼 아내는 40여 년의 긴 세월을 그 힘든 농사일로 근근득신 僅僅得身살아 왔다.
지금 아내는 고희 古稀를 훌쩍 넘었으며 허리는 구부정하고 이마에는 인생 계급장 같은 주름살도 조금씩 보인다. 우리 집으로 시집올 때의 고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씌운 듯 반백이 흩날린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내는 무릎이 아프다며 걷기를 싫어한다. 가끔 등산을 함께 가자고 하면 번번이 싫다고 한다. 혼자 산을 오르면 적적하고 외로움도 밀려온다. 어느 때는 산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조잘대면 “시끄러운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그랬나 보다. 처음에는 아내가 조금 밉기도 했으나 지금은 애처로운 생각이 나의 가슴을 억누른다.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가까운 지인의 안내로 무릎관절로 유명한 청주 “마디사랑병원”을 아내와 함께 찾았다. 공교롭게도 교육자 선배의 아드님으로 병원 원장이었다. 다소 긴장의 순간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아내의 환경을 소상히 말씀드리니 답을 하신다. 여러 해 동안 쪼그려 앉아 농사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무릎연골이 닳아 그렇다고 하며 병명은“퇴행성 관절염退行性關節炎”이라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수술하고 인공관절을 넣으면 어느 정도 건강은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날 입원을 하고 또 다음 날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없는 집으로 시집을 와 무릎연골이 다 닳도록 농사일을 했으니 말이다. 이토록 나는 무엇을 했나? 나 하나만 바라보고 시집을 온 것인데ߵߵߵ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며 창틀에도 날아와 살며시 내려앉는다.
두 어 시간이 흘렀나 보다. 불교 신자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아내를 걷게 해 달라고빌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들어서는 아내를 보자마자 손을 잡아주며 “여보 나야, 많이 아팠지?” 하며 말을 건네도 답이 없다. 울컥 눈물이 나온다. 10여 일의 병상 생활을 마치고 집을 들어서니 베란다에 있는 화분은 목이 마른 듯 색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으며 창틀의 먼지도 뽀얗게 쌓여있다. 그동안 주인이 없는 흔적을 꽃이 알아보는 것일까?
그 후, 아내는 나와 같이 무심천 산책로를 매일 걷는다. 평지에서 걷는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의 권고이자 부탁이기도 하다. 계단을 오를 때는 아내 혼자서 한 계단 두 계단을 오른다. 참 신기하고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가끔 뒤에서 박수를 보내며 몰래 따라가기도 했다. 이제 아내의 건강을 되찾았으니 더 바랄 게 없는 것 같다.
무심천 산책로에는 명 命을 다한 갈대숲이 누렇게 우거져있고 물가에는 황새가 이리저리 다니며 먹잇감을 찾는다. 여기에 흰색의 갈대꽃은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우리 두 내외의 머릿결도 갈대꽃을 닮아서인지 하얀 면류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갈대는 내년 봄을 맞이하는 푸른색 뿌리를 내밀고 있다. 후손을 위해서이다. 말 못 하는 갈대이지만 사는 방식은 사람과 흡사한 것 같다.
“봄날” 어학사전에 의하면 “봄철의 날”을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만물이 소생하고 새싹이 움트며 꽃을 피우는 봄날을 그리워하며 기다린다. 여기에 새 생명의 기 氣를 더해주니 더욱 봄을 그리워하는가 보다.
지난날의 아내는 없는 집으로 시집을 와 그 벅찬 농사일을 수없이 많이 했다. 책을 매도 몇 권이 될 것이다. 더욱 무릎의 연골이 다 닳도록 농사일을 했으니 말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남편으로서 아픈 아내를 위해 무엇을 했나?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온다.
아내의 10여 년간 아팠던 무릎관절도 이젠 다 건강해졌다. 아내 곁으로 따듯하고 새싹이 움트는 봄날이 다가온 것이다. 오늘도 무심천 산책로를 아내와 함께 걸으니 제2의 삶을 봄날이 기다려주는 것 같다. 아! 봄날이여ߵߵߵ 아내 곁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늘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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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봄날에 //
집 마당 한켠,가지에 꽃눈을 품고 서있는 매화나무가 겨울 둥지를 헤집는 소리 들리는 봄날이다. 지난 겨울 매섭게 휘몰아치던 삭풍도 그 꿋꿋함에감탄한듯 잠잠하다.
아직 겨울 그림자가 남아있는 문밖 뜨락에 꿈쩍도않고 추위를 온몸으로 견딘 노루귀 꽃도 싹띄울 채비를 한다
머지 않아 노란 복수초도 살아 있음을 노래 하겠지
생명이 용솟음치는 소리 없는 외침이 자연의 섭리속에 찿아드는 날이다.
봄이면 식물들이 만발하는 시기에 맞춰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열린다.
언제 부터인가 노천 산야에 피어나던 야생화를 사람들이 곁에두고 키우기 시작했다.
이 야생화가 우리와 친숙해 지면서 야생화 동호회가 생기고 또 야생화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나도 그에 편승해 십여넌 전부터 농업 기술센터 후원으로 활동하는 동호회를 조직해 참석 하면서 시작된 야생화와의 동거~
강한 생명력과 소탈함이 나에게 용기로 다가와 주었다.
야생화 전시회는 매년 진행되어 나도 그 반열에 서서 야생화를 구입하고,키우고,실패하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이들을 돌보는 일이 기쁘고 즐거운 나의 일상이 돌줄이야!
훌륭한 작품으로 키우기 위해 곁가지를 자르고 병해충을 막아주며 거름주기로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등 산모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듯 정성의 젖줄을 대고 골고루 나눠 먹였다.
야생에서 자라던 꽃이 인간의 과분한 보살핌에 놀란듯 서둘러 반짝 개화해 버리고 마는 꽃도 있고 봉우리만 머금고 벙어리가 되는꽃,볼품없이 헤벌쭉 늘어져 버리는 꽃도있다.
두고온 옜집이 그리워서 일까, 행여 빼앗긴 자유를 되 찿고픈 시위인가---
사람들은 개화시기와 행사 시기가 일치 하기를 위해 노심초사 입이 마른다.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보여지는 것들처럼 욕심을 버리니 꽃들과도 대화가되고 친구가 되는것을---
건강하고 화사한 몸짓으로 화답해주는 꽃송이들!
정녕 축제의 날이다.
솟구치는 생명의 환희가 하늘을 나르듯 펄럭인다.
이날을 바라 혹독한 겨울을 겪어낸 식물들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뿌린대로 거둔다' 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뒤로 울컥, 내게서 비껴만 있던 행복이 가슴팍에 와락 안겨옴을 느끼며 말이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희망을 주고, 안식을 주며, 공기까지 정화해주는 고마운 식물들- -!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해야할 반려식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오늘도 이들 에게서 정직함을 배운다.
이들 처럼 화사하게 웃고 푸르던 날을 회상하며 이봄 젊음을 꽃피울 주인공들을 위해 뒤안길에서 힘껏 응원 하련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가 없을것 같기에 서운할 지언정
봄꽃들은 예 처럼 내 뜨락에도 화사하게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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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봄날/
해마다 이맘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땅 위의 녹음을 스치고 달려온 훈훈한 봄바람이 코끝에 풋풋한 향기를 뿜으면 그동안에 얼었던 내 마음은 아지랑이가 되어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마치 연분홍빛 복숭아 꽃봉오리처럼 누가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수줍게 따라나설 모양새다. 봄나물을 캐러도 가고 싶고, 봄 햇살이 좋은 날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아난 가로수를 따라 한적한 시골길로 드라이브도 하고 싶다. ‘봄바람은 처녀 바람’이라는데 중년 바람도 만만찮겠다 싶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 인생에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또 오려나?
햇볕이 따스한 봄날이면 늘 그리운 장면이 있다. 햇살이 담뿍 든 쪽마루에 걸터앉아 지인들과 먹거릴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친정은 산밑의 동향집이라 해가 짧았다. 어쩌다 우리 집 마루에서 친구나 동생들과 노닥거릴 때면 너무나 빨리 그늘이 져서 몹시 아쉬웠다. 나는 그런 우리 집이 불만이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인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 “난 강원도 그 고라데이에서 제천으로 나와 처음으로 열 칸짜리 우리 집을 사서 이사 나올 때가 내 인생 최고의 봄날이었다.”라고 회상하셨다.
사람의 감정은 이렇게 입장에 따라 다르다. 나는 너무나 싫었던 우리 집이 아버지께서는 가장 뿌듯해하시던 집이었단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인생의 봄날을 생각해 본다. 이성과의 사랑, 새집을 처음 사서 입주했을 때, 첫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회사에서 전국 최고의 영업 실적으로 주목받던 젊은 시절 등 많은 순간이 교차한다. 그중 최고의 봄날은, 자신감 부족으로 대인기피증을 이겨내고 전국에 있는 모든 직원 위에 우뚝 선 그때가 아닌가 한다.
암 선고로 서너 달을 병상에서 보내신 아버지께선 따스한 봄날에 가족 모두가 새싹이 파릇파릇한 들판으로 봄나들일 한번 해보는 게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셨다. 3년이라는 남보다 긴 군대 생활로 자부심이 강하셨던 아버지께서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난 새싹들처럼 그 희열과 경이로움을 당신의 의지로 경험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랬다면 아버지 인생의 봄날도 바뀌었으려나? 하지만 아버진 그 소박한 꿈을 못 이루시고 정초에 허무하게 떠나셨다. 아버지의 그해 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간절한 꿈이었다. 그 후론 으레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올해도 다시 보게 되는 이 봄이 인생 최대의 봄날이 될 수도 있음을 그때 알았다.
아버지의 소망을 잘 알기에, 친정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선 아쉬움을 남겨드리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처럼 말기 암으로 다시 찾은 봄에선 꼭 꽃놀일 같이 가자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햇볕이 반짝 든 어느 날, 갑자기 스치는 아버지의 얼굴에 나는 어머닐 무작정 휠체어에 태웠다. 환자한테는 아직 찬 기온이라 패딩과 이불로 꽁꽁 싸매고는 병실을 나와 무심천으로 향했다. 당시 꽃을 보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저 개나리도, 벚꽃도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하시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과 눈빛에 너무도 가슴이 저리고 애잔했다. 그래도 참 고맙다셨다. 며칠 후, 어머닌 당신과 똑 닮은 오월의 작약 꽃잎이 되어 스러져가셨으나 내가 어머니께 해드린 마지막 최선의 봄날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렇게 어머닐 보내드리고, 곧이어 갱년기 증세로 고생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예전 같지가 않다. 젊은 시절 내내 내 꿈을 다잡아주던 조병화 시인의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꿈을 지녀라, 봄처럼 새로워라’라는 시의 구절은 어느 날부터, 부지런함보다는 ‘천천히 가면 좀 어때’, ‘새로워라’라는 말보다는 익숙함에 위안을 받고 있었다. 건강으로 인해 열정도 사라지고, 감성이 둔해진 상태에서 올해 다시 맞게 되는 봄은 도전과 용기를 갖기엔 부담이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가수인 방탄소년단의 '봄날'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요즘 그들의 생에서 봄날을 맞고 있다. 세월호로 잃은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약해지지 마’라는 시로 유명한 일본의 ‘시바타 도요’ 시인은 99세의 나이에 봄날을 맞았다. ‘풀꽃’이라는 시가 마중물이 되어 봄날을 맞았다는 나태주 시인은, 그 시를 약한 이들에게 좀 더 용기를 주고픈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약자를 위한 배려다. 그들의 봄날도 나이보다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함을 일깨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봄날’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잃었던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바로 그날이 ‘봄날’이 아닌가 한다. 다시금 젊은 시절의 나를 다잡아준 시를 읊어본다. 약자와 함께하는 인생 제2의 봄날을 위해서, 오늘도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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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 인생 최고의 봄날 /
2020년 경자년은 우리부부가 함께 맞은 화양연화의 해 였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70여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올 한해에 기쁜 일들이 봇물처럼 밀려와 공허했던 가슴을 보람으로 채워주었다.
푸른솔 문학에서 수필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고 수필작가로 등단을 하였다. 또 샘터 문학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다. 그리고 1년 동안 고대하였던 특허도 등록 되었다. 이어서 가을에 샘터 문학에서 시 부문 본상을 또다시 수상하게 되었다. 아내 또한 샘터문학 시 부문에서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고 시인 등단을 하였다. 아들의 늦은 결혼도 축복이었다. 이런 기쁜 일들이 연이어 찾아와 나와 아내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다. 올해가 우리 부부의 “버킷 리스트” 대여섯 개가 줄지어 이루어진 인생의 봄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월정사를 다시 찾아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감회에 젖어 탑돌이를 하였다. 왕복5시간을 달려 찾는 월정사는 올해 열한 번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월정사에서 가까운 동해의 주문진 바닷가 백사장을 걸었다, 겨울 바다의 거친 파도 소리가 중학교1학년 첫 음악 감상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이탈리아 나폴리의 민요인 “Funiculi, Funicula" 로 변하여 힘차고 경쾌한 희망의 노래로 들려온다. 동해 밤바다의 파도 소리에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아내는 내가 하고자하는 모든 도전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 주었다. 이제 나도 아내를 위해 아낌없는 후원자가 되어 주려고 한다. 도전에는 미지의 세계를 배워가며 꿈을 이루는 성취감이 있다. 가수는 자기가 부른 노래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고들 한다. 나의 삶도 노래와 함께하려는 마음으로 노래를 선택해서 즐겨들었다. 20대에는 “Simon And Garfunkel 의 El Conder Pasa"듣기를 좋아했었고, 휴대폰에는 “ABBA의 I have a dream”을 컬러링과 벨소리로 오래 저장해 놓았었다, 지금은 "Frank Sinatra의 My Way“로 통화하는 기쁨을 맛본다. 사막의 시계는 태양이듯이 내게 주어진 환경에 내 생활이 맞추어졌었다. 내 삶은 주어진 환경이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야만 했다. 자기보다 나은 발상에 많은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현실에 실망하지 않고 불평불만이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 한 적은 없다. 내가 헤쳐 나가야할 내 몫의 삶이였으니까.
“용기 있는 사람만이 도전하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고 실천하며 도전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도전해야만 “버킷리스트”가 하나씩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며 도전 하노라면 이제 이런 도전할 기회가 다시 또 못 올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생각에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 아마도 젊어서 배움의 때를 놓쳐서 나이 들어가며 배움이 고파서 도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
2021년 신축년의 희망찬 태양을 맞아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70세 노인의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는 또 어떤 세상으로 열릴까. 턱수염도 자연스럽게 자라게 두고 흙냄새 나는 도자기 공방에서 열심히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위시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서 도전 할 것이다. 우리부부가 각자 정리해 놓은 시를 백자 청자에 옷으로 입히려고 한다. 100여개의 시를 입힌 도자기를 굽는 날 시원하게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자축하고 싶다.
아내도 이제는 시인이 되었으니 작품으로 내 놓은 40여 편을 책과 도자기에 함께 담는 모습을 본다면 나또한 큰 행복일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는 훌륭한 시는 비록 아닐지라도 삶이 시가 되어 “위시 리스트”를 하나 더 이룰 수 있다면 황금부자가 된 느낌으로 함께 기뻐 할 것이다. 늙어가며 새벽잠이 없어지는 것은 아마도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더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남은 시간들을 보람으로 채워 보라고 주시는 마지막 선물인가보다. 새롭게 떠오르는 2021년의 태양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봄날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신축년의 봄이 내게 남은 몇 개의 봄날 중에 첫봄이 될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을 여생의 첫날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내게는 최선인 것 같다. 내게 남은 시간을 안다면 때로 힘이 들 때 엄살도 부려보고 꾀병으로 쉬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치인 것 같다.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듯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직무유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황금 졸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아 쟁여 놓은 그 많은 재물을 저승길에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수의에 주머니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살아온 인생 진솔하게 한권의 책 속에 담아 가슴에 품고 자작시로 옷을 입힌 도자기로 무덤가에 병풍을 두르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미리 얘기해 두었다. 꿈이 없는 20대가 노인이고, 꿈이 있는 60대가 청년이라고 한다. 저 높은 곳으로 가는 그날까지 청년으로 겸손하게 살고 싶다.
“버킷 리스트”가 제로가 되는 그 날 까지 IQ136으로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을 더 노력해서 또 다른 화양연화를 맞고 새로운 봄날을 염원하는 자기계발을 위한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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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봄 나 물/
따스한 봄볕이 마루까지 나를 깨우러 왔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스멀거리는 아지랑이 꿈결 같으나 현실 같지가 않다. 만물은 빛깔로 냄새로 소리로 몸짓으로 꽃으로 저마다 살아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봄이 오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 나만 초대받지 못한 것일까. 봄이 오는 소리는 마음으로 느끼고 향기를 맡으며 눈으로 보아야 화사한 봄이 전해진다. 봄은 이름만으로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냉이를 처음 본 순간 벌써 봄이 왔다. 논둑에 잔설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언 땅을 뚫고 불쑥 얼굴을 내민 검붉은 냉이를 보고는 반가웠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냉이를 보면 우리는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인다. 그윽한 향기와 달고 삼삼한 냉잇국은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과 입맛을 달래준다. 봄날 들판에 나가보면 혹한을 이겨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나물이 사랑스럽다. 마른 풀숲에 묻혀 숨죽여 속삭이며 살아가는 가녀린 들꽃을 본다. 움츠리고만 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냉잇국으로 입맛을 달래준 후에 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봄나물은 단연 쑥이다. 인적이 드문 산속이나 논둑 밭둑 제방 둑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싹이 고개를 쏙 내밀면 온 세상에 봄이 온 것이다. 쑥은 향과 맛이 좋아 구황식물로 쑥국 쑥개떡 쑥버무리 등 여러 가지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쑥차도 만든다. 또는 약재료, 쑥뜸용으로 쓰이며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효능이 많아 쓰임새가 다양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쑥국을 좋아하셔서 어머니는 봄이면 어린 쑥을 뜯어서 쑥국을 자주 끓이셨다. 처음엔 쑥 향이 싫었는데 자주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좋아졌다. 쑥개떡을 만들어 참기름 소금을 바르면 고소한 맛과 은은한 쑥 향이 맛을 더욱 돋운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던 그 맛을 추억해 보며 그리운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 본다.
남편이 봄을 타는지 입맛이 없다고 해서 쑥국을 끓였다. 고깃국보다 맛있다며 밥맛을 찾기도 하여 자주 끓였다. 애 탕국을 끓이는 쑥은 어린것일수록 맛이 있고 향도 순하다. 나는 옥상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어 가꾸며 즐겼다. 어느 날 문득 오염되지 않고 농약 걱정 없는 옥상에서 쑥을 길러 보고 싶었다. 들에서 참쑥을 캐다 옥상에 심었다. 쑥은 추운 겨울이 되니 잎이 시들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다. 흙으로 덮어주고 비닐을 씌워 주며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두 달 후 궁금해서 비닐을 들춰 보니 흙이 꽁꽁 얼어있었다. 얼마 후 다시 올라가 보니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흙의 단단함을 흔들고 풀어주어 부드러워졌다. 물은 새싹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미리 준비하는 듯 보였다. 싹들은 헐거워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필사적으로 흙 위로 싹을 밀어 올린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솟아오른다. 어린싹이 어떻게 흙을 밀쳐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러한 생명현상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이른봄 어린 쑥은 향기와 함께 파랗게 올라와 반가웠다. 언 땅을 힘들게 올라온 여린 싹에 칼을 대기가 민망해 집게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따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본다. 멸치 육수를 만들어 된장을 풀고 날 콩가루를 묻힌 쑥을 넣어 쑥국을 끓였다. 부드럽고 연한 쑥이 혀를 감싸며 향긋하고 구수함이 봄 최고의 진미다. 열흘 후 옥상에 올라가 보니 새순이 그새 자라 쑥을 뜯어 가족이 좋아하는 쑥국을 끓일 수 있어 고마웠다. 뜯고 나면 새순이 어찌나 쉽게 올라오는지 여러 번 채취 할 수 있었다. 쑥국을 봄 내내 먹을 수 있어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이 자잘한 기쁨이 삶의 원동력이 되고 보람을 안겨주기도 한다.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옥상 작은 텃밭이 아쉬워 망설이기도 했다. 쑥이 당뇨에 좋다고 해서 봄이 되면 쑥을 뜯으러 다녔다. 쑥은 양지바른 곳이면 척박한 땅에서도 제초제를 뿌린 땅에서도 먼저 자란다. 논두렁 밭두렁 찻길이나 제방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싹이 고개를 내밀면 온 세상에 봄이 온 것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 쑥이지만 농약과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은 쑥을 뜯으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쑥은 3~4월이 뜯는 적기이고 단오 전에 뜯어야만 좋다고 한다. 늦으면 억세고 질기며 쓴맛이 나서 약쑥이나 말려서 모기를 쫓는 데 쓰기도 한다.
작년 봄에 눈여겨 두었던 비탈진 둑으로 쑥을 뜯으러 갔다. 멀리 보이는 산빛이 나무에 물이 올라 푸른빛이 완연하다. 봄이 기지개를 켜니 온 세상에 활기가 넘친다. 시든 풀과 잔디 속에서 올라온 쑥을 손으로 뜯는다. 쑥잎은 꽃샘추위를 이기려고 미세한 털이 있어 연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진다. 쑥 옆에 있는 제비꽃 민들레 이름 모르는 들꽃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나물을 뜯을 때는 급한 것도 없이 삼매경에 젖어 든다. 봄이면 나에게는 쑥을 뜯는 것이 기쁨이고 큰 행사다. 따스한 봄볕 속에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롭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쑥이 비닐봉지에 가득하다. 쑥이 어려서 많이 뜯지는 못했지만 쑥개떡을 만들 생각에 발걸음이 즐겁다. 쑥을 삶고 쌀을 불려 가루로 빻아와 쑥개떡을 만들었다 . 가족이 먹을 것은 동글납작하고 예쁘게 만들었다. 나의 건강식은 쑥 반죽을 조금 넣고 서리태콩은 듬뿍 넣어 손으로 꾹꾹 주물러 못난이 쑥떡을 만들었다. 간식이 아니고 식사 대용으로 먹는다. ‘설음 중에 배고픈 설음이 크다더니 배고파 눈물 날 때도 있었다. 탄수화물은 줄이고 포만감을 느끼는 데는 섬유소가 많고 단백질이 풍부한 콩 쑥떡 만한 것이 없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쑥개떡 맛에는 못미처도 못난이 콩떡이 맛있었다. 가족들과 나누어 먹으며 행복에 젖는다.
시간이 여유로울 때 쑥을 많이 뜯어 삶아 냉동실에 보관한다. 일년 내 못난이 떡을 만들어 건강식으로 먹는다. 이렇듯 건강에 좋은 쑥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다. 봄은 나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여름으로 접어들면 봄나물 뜯기는 멈춘다.
자연은 엣날부터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무상으로 베풀어 오고 있다. 먹거리뿐만 아니고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빛나는 밤하늘,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 그리고 생기 넘치는 숲,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은혜에 우리 대부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은 지치고 상처받은 인생을 기대고 쉬면서 위로받을 유일한 휴식 공간이며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침묵 속에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봄비가 내린다. 메마른 인간의 대지를 촉촉하고 부드럽게 적셔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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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겨울 속 봄날/
여전히 겨울인데, 봄내음과 동백꽃 욕심에 마음이 먼저 봄을 찾아 멀리 왔다.
추위를 밀어낸 남해안의 해풍(海風)이 멀리서 온 나의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반기면서 피곤한 심신을 보듬어준다. 봄바람은 파도를 못 만드는지 남해바다가 잔잔하다. 늦겨울인지라 움트려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적으로 참 좋은 계절이다.
이제 나도 세월나이로 인해 고민은 줄어간다지만, 더 이상 반복되는 계절나이에 쉽게 휘말리거나 약해지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내 생각나이는 새파란 봄날이고, 활동나이는 아직도 쨍쨍한 한 여름이다.
오늘은 땅끝 마을 해남의 두륜산줄기 위봉산의 투구봉아래 작은 암자 성도사를 찾았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바위산이 절경 속 비경(秘境)이다. 남해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틈새 속 성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대웅전은 거대한 바위와 오래된 동백나무 숲 터널사이에 앞산위에 걸린 커다란 여의주 바위가 꼭꼭 숨겨놓은 천혜의 요새 명당요새이다.
만개한 붉은 동백꽃 열기는 부처님도 수줍게 한다.
그래서 성도사는 지리적으로 구한말 의병활동과 농민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한 의(義)로운 역사적 가치를 간직한 하늘과 바다사이에 바위산과 역사가 감춰놓은 호국사찰이다.
바위산과 동백나무숲이 다도해와 어우러진 광경(廣景)은 평소 충청도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풍경이다. 위봉산 정상부근의 커다란 바위 아래 터 잡은 작은 암자 성도사는 그냥 그대로가 바로 처마 끝 제비집이다. 그 바위틈 제비집 앞뜰이 다도해이니, 풍광(風光)을 보는 자체가 참선수행이요 심신수련이다
다도해를 떠다니는 섬들과 위봉산의 흰 바위산이 이른 봄바람에 동백꽃을 품으니 이곳에는 이미 봄이 와 있다. 남해 바닷바람과 두륜산 산바람이 서로의 봄을 경쟁하듯 번갈아 나를 감싸준다. 두 바람 모두가 계절과는 상관없이 내게도 낯설지가 않고 포근하며 정겹다. 내가 찾고 일찍 만나러 온 남해바다의 바로 그 봄바람이다.
암자의 낮은 담장 끝 기와위에 떨어진 빨간 동백꽃 몇 송이는 산새들을 부르는 듯 더 빨갛다. 오늘은 절집인지라 요사체 마루에 혼자 앉아 무념(無念)으로 나 스스로를 관조(觀照)해 보려하니, 다도해의 절경이 가만두질 않는다.
요사체 앞 돌계단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와 엄마의 손을 잡고 힘겹게 올라온다. 노란 모자에 파란 신발을 신은 어린 여자아이는 절보다 나를 먼저 유심히 쳐다본다.
엄마와 할머니는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아이는 법당 앞마당에서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혼자 잘 논다. 절집 흰 강아지가 그 아이를 반기며 주변을 맴돈다.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고 친해 보인다. 어린아이는 이 절에 자주 온 듯 모두에 익숙해 보인다. 마음으로 보면 파란새싹인데, 눈으로는 노란 봄꽃처럼 귀엽고 예쁜 아이다.
공양주보살이 아이에게 과자를 주며 눈빛으로 나를 가르키자, 아이는 내게 다가와 과자하나를 건넨다. 웃음으로 고맙다는 답을 하며‘엄마 할머니 따라 법당에 들어가지’라고 말을 건네자 그 아이는‘저안에 큰 인형이 무섭다’며 뒷걸음이다. 내손에 종이와 볼펜을 보더니, 고개를 내밀며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는다. 그냥 편하게 미소와 고개로 대답을 했다.
얼핏 할머니가 내 연배인 듯한데,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마냥 고마웠다. 절에서 아이만도 못한 괜하고 부질없는 욕심인데도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곁눈질을 하면서 얼른 모자를 고쳐 쓰고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저 아이에게 오늘 좋은 추억의 모델이 되어주고 싶었다.
다시 내가 화가의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풍경인데도 다르게 보이고, 풍경들이 내 품안으로 달려오는 듯 새롭다. 그렇구나, 모든 것은 분명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다. 남도의 짙은 봄 향을 마음에 가득 담고, 덤으로 예쁜 동자승과의 인연도 닿았으니 말이다.
문득 오대산 상원사에서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던 중 문수동자에게 등을 씻어달라고 하고는 아무에게도 임금의 등을 씻어주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자, 문수동자 또한 세조에게 누구에게도 자기가 등을 닦아주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이 생각난다.
요사체 앞 바위에 앉아 아름다운 비경(秘經)과 나만의 사색(思索)에 귀여운 어린 도반을 만나 봄바람에 취하다보니, 시간이 멈춘 듯 반나절이 반시간 같았다.
나는 먼저 일어나면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 절인사로 합장 반배로 이별인사를 하니 옆에 있던 강아지가 먼저 꼬리로 배웅을 한다. 아이는 나직히 손을 들어 답한다. 고맙다. 오늘은 네가 부처이며, 나의 문수동자이구나.
그래 이제 나도 가끔은 어린아이 마음으로 나의 삶을 추슬러 보자.
이쯤에서 남은 인연은 훗날 내 인생의 또 다른 세월인연의 봄날을 위해 남겨두고 돌아선다. 쉬엄쉬엄 산을 오를 때보다도 더 여유롭게, 산에서 보물을 찾듯이 느리고 느린 사뿐걸음으로 하산한다. 봄바람마저 내 뒤를 따르니, 발걸음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하다. 너무도 조용해서 일까, 내가 밟는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래고 뒤따르던 봄바람도 놀랜다. 올 때는 차가운 겨울바람 이였는데, 갈 때는 가벼운 봄바람이다.
오늘 해남에서 만난 동백꽃 봄소식을 얼른 무심천 벚나무에게 전해주어 봄맞이 채비를 서두르라고 해야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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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봄의 향연(饗宴)/
따스한 봄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오면 남해안으로 겨우내 모진 북풍한설을 견뎌내고 양지바른 곳에 어여쁘게 피어난 봄의 전령사를 찿아 나선다. 남해안은 쪽빛 바다와 많은 섬들과 고깃배들도 볼 수 있어 좋다. 봄이 제일 먼저 오기도 하지만 소나무 등 침엽수가 많지 않다. 대체로 나무들이 크지 않고 활엽수 잎들이 피어 나기전에 춘설이 녹아내리고 따사로운 햇빛이 잘드는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든 춘화들의 향연으로 가득하여 눈은 물론 마음까지 호사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금오산 들머리에 도착하였다. 향일암을 날머리로 부푼 설레임을 안고 봄의 향연에 빠져든다. 능선을 따라 양지바른 곳은 어김없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데 노루귀와 산자고가 제일 먼저 활짝 웃으며 무언의 인사로 우리를 반긴다. 봄꽃들은 사방에 군락을 이루며 흐트러지게 피어있다. 고혹적인 자태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그들과 말없이 나누는 대화와 은밀한 눈맞춤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봄의 전령사인 산자고는 한국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튤립종으로 ‘자애로운 시어머니’ 라는 전설을 가진 야생화란다. 햇빛을 받아야 꽃잎이 펼쳐지고 밤이 되면 꽃잎을 닫는단다. 어릴적 친구들과 뒷동산에서 산자고꽃을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루귀는 ‘인내’의 꽃말을 가졌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꽃이 피고 잎이 날 때 솜털이 뽀송뽀송하고 잎 모양이 마치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이같이 불린단다.
봄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눈을 밀어내고 꽃을 피운다는 복수꽃이 반기고,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숙이는 보랏빛이 일품인 얼레지는 흔하게 사방으로 널려있다. ‘바람난 여인’이 꽃말이란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수줍은 듯 미풍에 한들한들 거리고 있다. 멀리 계곡쪽 비탈에는 듬성듬성 동백꽃들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한겨울에 꽃을 피워 동백(冬柏)이라 한단다.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애틋한 그리움의 전설이 있단다. 꽃잎들은 떨어져 아름다운 꽃길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어찌나 화려하고 곱던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고향의 민둥산은 참꽃(진달래)이 온통 붉은빛으로 가득 했었다. 그러나 산이 울창한 숲으로 변한 지금은 진달래가 보기 쉽지 않은데 이곳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남해 바다의 멋진 풍광들이 해무(海霧)가 걷히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여수(麗水)‘ 말그대로 너무나 곱다. 고깃배가 유유히 물길을 헤쳐 나가고, 바다에 비친 싱그러운 봄 햇살은 봄꽃 만큼이나 상큼하다. 남해 바다의 해풍과 해무는 모든 식물과 야생화를 잘 보듬어주어 이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게 한몫 했으리라.
꽃은 며칠 사이에 금세 피어난다. 하지만 지루한 장마와 가뭄, 그리고 혹한의 겨울과 꽃을 피우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뎌야 한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더욱 뿌리를 깊숙히 내리고 양분을 저장하여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봄을 기다렸으리라.
모진 겨울을 지켜낸 꽃은 진한 향기를 간직할 수 있으나 겨울을 나지 못한 꽃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향은 덜하다. 나무 밑에 춘란(春蘭)이 다소곳이 눈 맞춤 인사를 한다. 난(蘭)은 빼어난 자태와 품위로 기질이 한결같이 곳곳한 선비를 닮았으며, 아름다운 꽃에 그윽한 향기에 매료되어 많은 시인(詩人)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을 눈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으며 걷다보니 안타깝게도 양지쪽 나무 밑에 흙이 군데군데 파여있다.
춘난 이든 야생화든 소유하고픈 욕망에 자연을 훼손하여 집안에 가둬 놓은들 해풍과 해무로 자연속에서 피워낸 꽃과 향기만 같을 수 있으랴. 금수강산이 우리 모두의 정원이요 화원인 것을, 자연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여 참된 삶을 살아감이 어떨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중략) 도종환님의 시처럼 우리의 삶도 시련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 내야만 비로서 참된 인생으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성공적인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묵묵히 참고 노력한 결과물일 것이리라.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가지만 베품의 향기는 천리(千里)를 가고 인품의 향기(德)는 만리(萬里)를 간다’ 라고 했다.
봄의 향연을 만끽하고 나면 심미적(審美的) 쾌락을 느낀다. 그 쾌락은 생활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항상 즐거움 속에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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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봄 날/
하늘은 맑고 햇살이 고운 아침이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치는 신선한 바람이 상큼하고 감미롭다.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한다.
너른 들판에 가득 핀 앙증맞고 귀여운 작은 꽃들, 나풀나풀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 뛰며 좋아라하는 꼬맹이들, 새들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봄은 기쁨이고 희망이고 설렘이다.
흙담 아래서 소꿉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도 어른거린다. 깨진 사금파리 살림살이에 진흙을 개어 떡도 만들고 종발 굽에 다식도 박고, 풀잎나물로 밥상도 차렸다. ‘여보, 진지 잡수세요. 얘들아, 밥먹자.’소리도 정겹다.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서서 헛손질을 하며 맛있다고 후루룩 쩝쩝 깔깔대며 시끌벅적 재미가 한창이다. 거만스레 배를 쑥 내밀고 입을 썩 닦으며 ‘잘 먹었네’ 하기도 하고 ‘놀자’를 외치며 고무줄놀이나 사방치기로 팔짝팔짝 뛰며 놀이 삼매경이다. 살포시 웃음이 번진다. 추억은 꺼내 볼수록 정겹고 티없이 맑은 성정을 퍼올린다.
온 세상을 뒤흔들고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의 횡포로 한 해가 넘도록 마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임이나 외식은 물론, 명절이나 대소사의 만남까지 자제하는 요즈음이다. 언제나 이 답답하고 지루함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오가며 어울리는 세상이 되려는지 착잡하다.
입과 코를 가리고 집을 나서도 마음을 달랠 곳은 생태 둘레길이나 유수지, 작은 개울 길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숲길이라 잡념도 없이 걷기에는 최상의 명소다, 날도 좋고 바람도 쐬일 겸 밖으로 나섰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들의 지저귐이 생기를 돋운다. 개울가에 꽃잔치가 벌어지고 물오리가족이 날아들기도 하는 작은 개울길은 4계절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짠, 짠, 하하하하하하~~” ‘무슨 소리지?’ 귀를 열고 주위를 살핀다. 맞은편 길이다. 마치 기쁨에 못이겨 가슴에서 퍼 올려 거침없이 쏟아내는 웃음소리다. 시끄럽지도 짜증이 나지도 않는다.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책 나온 다정한 손녀와 할머니인 것 같았다.
‘하나 둘’ 작고 예쁜 목소리에 허스키한 할머니의 씩씩하고 호탕한 답가가 개울가를 쩡쩡 울렸다. 서로 고개만 까딱하고 표정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걷는 데만 열중한 사람들로 적막강산인 숲길을 웃음소리가 흔들어 깨운다. 신선한 충격이다. 덩달아 웃음이 터지고 호기심과 즐거움을 보탠 그들이 보고 싶었다. ‘운동 끝’이었나? 멀어지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아쉬웠다. 그들의 모습처럼 봄은 조용히 가만가만 오지만 생명이 움트며 열리는 세상은 활력이 넘친다. 어둡고 긴 한 해의 짓눌렸던 감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후련하다. 보물을 얻은 듯한 이 기분을 어떻게 말할까. 두렵고 침울한 더께를 훌쩍 벗겨주려 백신과 함께 저벅저벅 힘찬 걸음으로 밝아온 희망찬 신축년 소의 해가 반가운 봄날이다.
상쾌한 기분이다. 마냥 걷고 싶다. 유수지로 발길을 돌렸다. 도랑을 끼고 조성된 유수지 둑에는 가로수 아래로 긴의자, 운동기구가 즐비하고 화장실과 시계까지 갖추었다. 잇달린 너른 채마밭, 큼직한 돌과 영산홍 포기들, 들풀로 둥그렇게 담을 이룬 아랫길에 미끄럼방지로 깔린 바닥은 잔디밭을 걷는 듯 감촉도 만점이다. 운동장에서는 족구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기운차고 연을 띄우며 즐기는 가족들, 자전거나 로울러를 타는 아이들, 볕 바른 언덕빼기에는 새하얀 털로 몸단장을 하고 나와 앉은 고양이가 부러운 듯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한 켠에 자리한 데크로 놓은 다리 곁으로 운치있게 조성된 갈대밭을 지날때면 불어오는 바람에 터벙한 머리를 일렁이며 서걱대는 잎새들의 노래가 들판에 나선 듯하다. 열 바퀴를 돌아도 한 시간이면 족하니 안전하게 건강을 즐길수 있는 노약자들의 쉼터로도 안성맞춤이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빠르게 걷는다, 앞지르는 쾌감이 쏠쏠하다. 악몽같던 아픔을 이겨낸 상급이다. 땀에 흠뻑 젖어도 발걸음은 시원시원 가볍기만 하다. 고통이 큰 만큼 기쁨도 큰 것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 누가 막을건가.
나른한 졸음을 동반하며 살며시 오지만 얼음장을 녹이는 포근하고 다감함은 봄의 매력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움츠렸던 짓눌린 가슴을 활짝 펴고 고운 봄을 환호하며 크게 한번 웃어보는 거다. ‘짠,짠, 하하하하하하’ 온 세상이 기쁘게 즐겁게 힘차게
온 몸이 깨어나고 생동감이 넘친다. 참 좋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