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 주요테마 : 서울에 있는 옛 고궁터를 찾아간다. |
현장학습 장소 :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덕수궁 |
현장학습 일시 : 2005년 10월 22일 (토) 오후 1;00 - |
동행인 : 아빠, 엄마, 현화, 지혜, 성호 |
연관된 교과목 : 사회 5-2. 1단원,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문화, 옛도읍지 |
현장학습 관련 사이트 :www. ocp.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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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단봉문 → 돈화문 → 금천교 → 궐내각사(진선문) → 정청 → 상서원 → 인정문 → 인정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수라간 → 경훈각 → 산실청 → 부용지 → 부용정 → 규장각 (주합루) → 영화당 → 불노문 → 연경당 → 차고 → 돈화문
1. 창덕궁은 언제 지어진 건물인가 ?
-조선의 건국이 1392년 태도 이성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395년에 경복궁이 완성되었고 태종 이방원 때인 1405년 경에 완성되어 제 이 궁이 되었다.
2. 자연스런 산과 땅의 모양을 헤치지 않고 지어져 조선 시대 5대 궁궐중 가장 빼어난 모습을 하고 있는 궁궐이름은?
-창덕궁이다. 경복궁은 빤듯하고 정확하게 건물이 나열되게 지어서 넓어 보이는 대신 창덕궁은 자연의 모양을 그대로 활용하여 좀 더 좁아 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로 알려져 있다.
3. 창덕궁의 정문의 이름은?
-돈화문
4. 창덕궁 안에 있는 건물중 국보 제 225호로 지정되어있으면서 창덕궁 건물의 중심건물로 여러 행사를 치르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던 곳은?
-인정전
5. 창덕궁 안에 있는 건물중 왕비가 지내던 건물로, 일제시대 1920년 다시 지어 원래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등을 들여놔 현대적인 실내장식으로 꾸며진 곳은?
-희정당
6. 창덕궁의 건물중 보물 815호로 원래는 왕이 잠을 자던 침전이었던 곳이었으나 나중에는 주로 사무를 보는 건물이었던 곳은?
-대조전
7. 창덕궁의 건물중 보물 8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금님과 신하들이 나라일을 의논하던 곳으로 청색 기와를 얹은 것이 독특한 건물인 이곳의 이름은?
-선정전
8.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궁궐후원으로 조선시대 왕실이 풍류를 즐기던 휴식처로 원래는 ‘금원’이라 불렸지만 일제시대 이렇게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 정원의 이름은?
-비원. 원래는 금원, 후원, 북원 이라고도 불리웠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비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9. 정원에 있는 오래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두 그루의 이름은?
- 따로 이름은 없지만 1000년 된 느티나무와 750년 된 향나무가 있었다.
보고 느낀 점: 궁궐을 보면서 임금의 위엄과 권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 임금님은 이렇게 호화스럽게 사는데, 백성들은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하니 좀 가슴 아프기도 했다. 또 몇 백년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옛 조상들의 세밀함과 섬세함, 정확성에 또 놀랐다. 역시 한민족은 똑똑했다.
청계천도 다녀왔다. 원래 성 안으로 흐르던 이 계천은 1970년 대에 막히고 위에 도로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복구 공사를 해서 시공창물과 다를 바 없었던 청계천이 맑은 계천으로 탈바꿈하였다. 청계천의 변신한 모습을 보기 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때라서 사람들로 붐볐다. 참 도시 속에 흐르는 맑은 계천을 보니 마음까지도 맑아지는 줄 알았다. 참 잘 꾸며 놓았다. 역시 말로만 듣던 청계천 기대를 져버리진 않았다. 앞으로 청계천이 좋은 관광지가 되어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고 배운점: 품계석이 18개가 아니라 12개인 이유는 종3품까지는 정과 종을 나눠서 세웠는데 나머지는 품계들은 종을 정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종3품, 정종4품, 정종5품, 정종6품.... 등등
또 궁궐 지붕 위에 가끔씩 작은 인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잡상이라고 해서 궁궐을 보호해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지붕위에 올라가 있는 잡상 수에 따라서 그 건물의 중요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1908년에 처음으로 순종이 창덕궁에 전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정전에 보면 예쁜 등잔들이 거물 안에 많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단청이라고 궁궐 건물 마다 그려져 있는 화려한 무늬가 있다. 이것은 첫 번째로 목재가 썩거나 벌레들이 먹는 것을 방치해주었다고 하고, 또 미신적인 효과와 미적인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왕이 타는 가마를 어연이라고 하는데 어연은 궁궐 내에서 타는 가마와 궁궐 밖에서 행차할 때 타는 가마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주정소란 지금 식으론 왕의 개인 조립식 휴게소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왕이 행차를 하거나 궁궐 밖으로 나갈 때에 평소에는 들고 다니다가 잠깐 쉴 때 설치하는 것이다. 특히 정조대왕이 많이 썼다고 한다.
종2품 이상의 관리들이나 신하들도 가마나 초헌이라고 하는 의자를 타고 다녔는데 이런 높은 신하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평교차라고 한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인데 이 이름의 뜻은 크게 만들 다는 뜻이다. 이 건물의 특징은 용마루가 없다는 것인데, 이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대보자면, 용은 왕을 상징하는데 용이신 왕이 주무시는 곳에 또 다른 용이 있으면 충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용은 부부간의 사이를 좋지 않게 한다는 것과, 만드려고 했는데 미완성이라는 말이 있다.
낙성제는 후궁들이나 왕의 첩들이 사는 곳인데 여기에는 최근까지 왕족이 산 것으로 유명하다. 1980몇 년 까지 순종의 첩 윤씬가.. 하여간 왕족이 살았다고 한다.
비원에 있는 큰 네모난 연못의 이름은 부용지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정자의 이름은 부용전인데 부용지는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말에서 중간에 있는 작은 섬 모양은 동그랗게 그 연못은 네모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부용은 연꽃이라는 말이다. 왕들은 부용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낚시를 하곤 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2층 건물에는 한 층 당 이름을 따로 주었는데 부용지 연못 근처에 규장각이라고 많이 알고 있는 이 건물도 이름이 따로 있다. 1층에는 주로 ‘각’을 끝에 붙이고, 2층에는 주로 ‘루’를 붙인다. 그래서 이 건물의 1층 이름은 규장각, 2층은 주한루로 1층은 도서실, 2층은 열람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불로문이라고 작은 문이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안 가본 친구에게 견학을 다녀오고 난 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다면 꼭 다녀오도록 하여라... 그리고 가서 관광할 때는 꼭 가이드한테 바싹 붙어서 잘 쫓아다니면서 악착같이 배우도록 하여라.
현장학습을 가기 전 준비하며 읽었던 책 이름;
-한국사 편지, 등 한국사에 대한 여러 책들
현장학습 후 아쉬웠던 점이나 다음 견학을 위해 더 준비되면 좋을 사항들이 있다면 어떤것?
-그냥 잘 준비 되었던 것 같다. 근데 현장학습 꼭 학습적인거 말고도 재미있는데 가끔씩 가도되나요? 예를 들어 애버랜드라던지..
사용된 비용: 어머니께 물어봅시다.
관람 감상문
제목: 2005년 10월 22일 현장학습체험- 창덕궁, 청계천, 교보문고
주제: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하자
개요: 1)현장학습 2)회손 된 우리 문화재 3)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하자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일, 현장학습 체험 날이다. 우리가 현재 한국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창덕궁을 찾아가게 되었다. 오늘이 학교 안가는 날이라서 그런지 우리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창덕궁을 보러왔었다. 가이드가 나와서 창덕궁의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면서 돌고 있었는데 마이크를 들고 있는데도 하도 사람이 많아서 가이드 가까이 있지 않으면 한 마디도 안 들렸다. 그래서 성호와 나는 하나의 지식이라도 더 얻어가려고 악착같이 팬과 노트를 들고 가이드를 쫓아다니면서 적었다. (결국 엄마, 아빠는 현화 때문에 뒤쳐지고 말았다^^v) 그 악착같은 노력의 대가로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전 같았으면 가이드의 설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다시 흘려버리거나 집중하지 않은 채 지루하게 끌려 다녔을 텐데.. 그 전까지 지루하기만 했던 가이드가 이번만큼은 재미있고 신선한 지식을 전해주었고 I actually had fun while I was touring 창덕궁. I almost wondered why I had thought this was boring once.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특히 역사와 과학에도 눈을 뜨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 큰 성과이고 발전인 것 같다. 와.. 정말 창덕궁은 컸다!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컸다! 아무리 한 나라의 임금이라고 해도 어떻게 한 사람의 집이 이렇게 클 수 있는가? 정말 한번 구경하는데 1시간 20분이 걸리고 다리가 아플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왕의 위엄과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의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백성들은 하루 끼니 챙기고 걱정하느라 바쁜 가운데서 왕은 그렇게 큰 집에서 많은 것들을 거느리고 살았으니 말이다. 창덕궁을 구경한 다음 우리는 근처에 있는 청계천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청계천 공사가 끝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으로 몰렸다. 비록 청계천이 open한지 좀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청계천 물은 정말 맑았다.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한 때는 하수구보다도 더러운 도로에 덮인 물이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청계천은 내가 듣던 만큼 실망시켜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끝이 없었다! 걷는데 다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하여간 서울 한복판에 개천을 복구해 놓으니 참 맑아 보이면서도 신선해보이고 좋아보였다. 앞으로 청계천을 통해서 서울이 한층 더 빛났으면 좋겠다. 배고팠던 우리는 교보에 들어가서 거기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먹고, 나는 외국서적 코너에 가서 영어 책에 열중했다. 역시 새 책들과 지식으로 가득찬 서점은 내게 천국일 나름이다. 영어 책 몇권 사고, 타임즈 잡지도 구독 신청하고, 옛날 영화 DVD도 많이 샀다.
그런데 내가 오늘 본 창덕궁은 옛날 그대로의 건물보다는 복구한 건물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불타서 없어지거나, 일제시대 때 일본식으로 바뀌고 헐리거나..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침입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문화재가 빼앗기고 손상되었다. 나는 역사책을 읽으면서 문화재가 손상되거나 없어져버린 기록이나 내용이 나오면 분함을 느끼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좋은 역사적 자료와 연구 자료가 될 수 있는 문화재가 그 때 만들어졌던 것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면 많은 역사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창덕궁만 해도 임진왜란 때에 많이 불타 없어져서 일제시대 때 다시 복원한 건물, 그리고 일제시대 때 그 내부를 서양식으로 바꾼 건물, 일제시대 때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바뀐 건물이 많았다. 그런 부분이 좀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래서 나로 하여금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라도 잘 보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이 없어지고 손상되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다행스럽게도 전해진 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있다. 나는 없어진 것만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또 이렇게 문화재가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잘 보관하고 또 화재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문화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도록 전시하고 전하는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청계천이 복귀되었던 것처럼 옛 문화재를 복귀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도 한 것 같다. 귀하고도 소중한 우리 문화재, 보호하고 아껴서 우리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