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동산에 올라
정의륙
지난주에 설을 쇠어 음력으로는 정월 초순인데도 입춘이 지나서인지 시골 공기가 그리 차지는 않다. 예전부터 한겨울 두어 달은 청도 나들이를 중단해 왔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처럼 바람막이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오래된 집이라 찬바람이 부는 겨울 냉기가 그동안 발걸음을 막고 있어서다. 특히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버리는 화장실 물과 수도가 문제였다. 그러다 찬 공기가 수그러든 것 같아 어제 날짜로 다시 시골 생활의 문을 열었다.
겨우내 치우지 못한 낙엽을 오자마자 쓸어 모아놓고 오늘 아궁이에서 태웠다. 마당이 깨끗해지고 아궁이 앞에 쌓였던 낙엽이 줄어드는 걸 보니 마치 송구영신의 의식儀式 같아,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느 곳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언뜻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바빠 밭으로 올라가봤다. 매화꽃이 피지는 않았으나 밋밋하던 가지 끝에 봉긋하게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봄의 전령사라더니 과연 산수유는 벙글어 꽃술 많은 속살을 수줍게 내비치고 있었다. 아마 내주쯤에는 만개하여 대담하게도 노란 나신을 활짝 드러낼 것이다. 매해 벌어지는 비슷한 이른 봄 광경이지만 싫증나지 않는 것은, 순간적이나마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여 내 나이를 잊게 하는 생명의 신비로움 때문이리라.
밭을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감회가 예전과는 좀 달랐다. 오랜만에 상봉한 밭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십 년 가까이 경작하던 것을 지난달에 부동산에 내놓은 게 이유가 될 듯하다. 더 설명하면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미련과 섭섭함이 뒤섞인 착잡한 감정 같은 것이다. 우리 집은, 집과 밭이 접해있어 집의 비스듬한 언덕배기를 오르면 바로 밭이 나타난다. 그래서 밭의 동태를 살피거나, 필요한 농기구들을 옮기는 데에 시간과 힘이 절약되는 등 여러모로 편리하다. 또 밭에 올라 집을 내려다보면 아래 위 모든 땅이 내 것 같아 포만감이 들면서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집과 밭을 분리해 생각한 적이 없고 자연스런 순치脣齒 관계로만 여겨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부동산에 밭을 내놓게 되니 아직 팔리지는 않았지만, 남은 집이 마치 어처구니없는 맷돌처럼 어색하다.
밭 팔 생각을 하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 몇 년 전 정강이에 골절상을 입은 데다, 그 후에 다시 발목을 접질러 완쾌되지 않고 있어 울퉁불퉁한 밭길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작년 가을에는 아내마저 감 수확을 하다 무릎을 다쳐 둘 다 부상병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밭일을 계속하기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소개소 몇 군데에 밭을 내놓긴 했는데 요즈음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특히 시골 부동산 쪽이 심해서-부동산 가치에 대한 중개인들과 나의 생각 차이가 커서 얼른 처분이 되지 않을 성 싶기는 하다.
이런 차 어젯밤에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독문 학자이자 괴테 연구가 전영애교수가 출연한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전에 다른 동영상에서 괴테의 ‘시와 진실’과 ‘파우스트’ 강연 하는 걸 본 게 기억이 나면서 친숙하게 다가왔다. 앞서의 동영상이 괴테에 관한 강의로 지적 탐구가 목적이었다면, 어제는 전교수의 삶 등 사적 신변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경기도 여주의 산골에 서원을 포함해서 3,200평이나 되는 넓은 땅을 혼자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만이 아니라 멋지게 꾸미고 큰 꿈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그는 퇴직 후 서울 집의 전세금을 빼내어 그 돈으로 산골에 서원을 만들었고, 평생의 꿈인 괴테의 집과 길도 만들어 그 지식과 정신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전교수의 이런 꿈을 여러분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해 내어야 할 몫으로서 이면에 가려진 고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내내 공감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밭을 내놓은 현 상황이 괜히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일하는 시골의 집과 밭은 합해봐야 그의 땅에 비하면 삼분의 일도 안 되는 면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초심이 흔들리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다쳐서 일하는데 지장이 생긴 것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결국은 의지의 문제일까. 세월 따라 변하는 가치관의 미세한 파동 때문일까. 목표가 뚜렷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소극적으로 되고 의기소침할 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희망을 주고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좋다.
한 사람은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고 나는 단순히 쉼과 여유를 찾아 출발했지만, 환경이 시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목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 처한 동년배의 행동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걸 보면 내가 해온 시골 생활도 헛되지만은 않아 보여 좀 편해진다. 올해 일 년 내내 해야 할 밭일이 걱정이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새로운 의욕이 생기는 느낌이다. 혼자 너른 땅을 가꾸는 여성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훨씬 수월하지 않은가. 밭이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그런대로, 초심으로 돌아가 일하면서 놀고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해보자는 느긋한 마음이 된다. 세상이 디지털 화 되어 관련된 기기를 다루는데 서툴고, 백화점의 화려함이 싫은 나에게는 이러한 생활이 어쩌면 제일 쉬운 선택인지도 모른다.
자기 분야에 관한 지식의 흡수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위하여 젊을 때는 도시적 사고방식이 맞는다 해도, 나이 들면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삶의 지향점이나 자아실현의 목표가 폭넓어지려면 현실에 치이는 도시보다는 시골이다. 봄은 봄이다, 햇살이 부드럽다. 주문해 놓은 퇴비와 유박이 밭 입구에 쌓여 있다.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전지하고 퇴비를 뿌려야겠다.
취미
전에는 신상 신고라든지 필요 서류를 작성할 때 대개 취미를 적으라는 난이 있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취미라 할 만한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곤란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지 중요한 항목이 아니어서 그때는 적당히 기입했다. 예를 들어 취미를 독서나 영화 감상이라고 쓰는 식이었는데, 써놓고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영화는 학교 때 좀 보긴 했으나 많이 보지도 않았고 그 후에는 아예 흥미가 떨어졌으며, 독서도 주마간산 식 독서법이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취미가 이것이다 하고 딱 집히는 게 없이 지내온 셈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이 문제를 끄집어냈는데, 현업을 은퇴하고 남는 시간을 잘 보내려면 취미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고 느껴져서다.
그래서 취미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스럽지만 진지하게 짚어보기로 했다. 상식적인 이야기로, 생계나 직업과는 상관없이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취미다. 물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다. 취미가 왕왕 직업이 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가 가장 좋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취미가 밥벌이가 되는 순간 재미있는 유희에서 해야만 하는 괴로운 일이 되기 쉽다. 취미가 직업과 양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람들이 보통 취미라고 하는 여러 항목들을 나열하고 나한테 하나하나 적용해 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음주가무, 독서, 음악 감상이나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여행(유적이나 박물관 답사도 포함), 등산, 낚시, 영화나 연극 감상, 드라이브, 바둑이나 장기, 운동(골프, 스쿠버 다이빙, 요트 등 포함), 사우나, 공방(工房)에서 목공예 하기, 도자기 만들기, 화초나 정원 가꾸기, 애완동물 기르기, 요리, 사진 등등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중에서 내게 맞는 걸 몇 개 고른 후 최후에 남는 두어 개를 취미로 선택하면 될 것 같았다.
7학년인 데다 몸이 약한 나에게는 동적인 취미보다는 정적인 게 마음이 간다. 그래서 우선 고른 게 음주가무, 독서, 음악 감상이나 그림 그리기, 바둑, 목공, 정원 가꾸기 등이다. 그런데 음주는 취미라 하기에는 너무 저질이고 천박하다. 술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 이 없고,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을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인 나로서는 만약 이걸 취미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마누라가 가만있을 리 없을 것 같아 지우기로 했다. 가무는 취미로 건전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있으나 나에게는 음주의 연장선상이라 물론 포기다. 그 다음 독서는 소위 작가라 칭하고 다니면서 이를 취미라 부른다면 이상하다. 읽고 쓰는 작업은 직업처럼 늘 해야 하는 일이니 취미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된다. 음악 감상은 동인회에 클래식 음악을 올리면서 친숙해지긴 했으나 아직은 초보라 이후의 취미 생활 분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림은 작품을 남길 수 있어 성취감이 있겠지만, 손재주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번도 교실 뒤편에 그림이 걸린 적이 없지만, 혹시 미술학원에서 기초부터 배우면 가능할지 숙제로 남겨 놓으려 한다. 바둑은 대학 때 어깨 너머로 배웠는데 머리가 녹 슬은 지금은 지워야 한다. 목공은 시골생활에서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예술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인데, 이 역시 손재주가 문제다. 정원 가꾸기도 취미라기보다 시골 생활의 필수 과목이다. 이왕 하는 것, 멋지게 꾸민 다른 사람들의 정원을 흉내 내어 예쁜 정원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꿈도 있다.
그런데 흥미가 있고 시간 보내기가 좋으면 취미라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하나의 예를 들까 한다. 나는 몇 년 전에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란 책을 읽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출신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인터뷰해서 정리한 책이다. 음악 아마추어 하루키가 프로인 세이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지만, 실은 둘의 음악 대담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하루키의 음악적 지식이 전문성을 드러낸다. 하루키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이럭저럭 반세기 가까이 재즈를 열심히 들었지만,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못지않게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레코드를 모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콘서트도 자주 갔다. 특히 유럽에 살 때는 클래식에 그야말로 흠뻑 젖어 살았다.”라고 썼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둘러싸고’란 챕터에
무라카미-솔직히 말씀드려서 전 고등학교 때 굴드와 번스타인의 이 레코드를 듣고 다단조 협주곡이 좋아졌거든요. 1악장도 좋아하지만, 2악장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굴드가 아르페지오로 받쳐주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도 아주 좋습니다.
오자와- 목관이 나오는 부분 말이군요.
무라카미-네, 여느 피아니스트 같았으면 그냥 반주하는 느낌일 텐데, 굴드는 꼭 대위법으로 정면에서 들이대는 분위기가 나거든요. 그 부분이 옛날부터 어쩐지 좋다는 말이죠. 다른 피아니스트 연주와 전혀 딴 판 입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둘러싸고’란 챕터에
무라카미-특별한 걸로 말하자면, 제가 말러를 들을 때 늘 생각하는 건데 그 사람 음악에는 심층의식이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 것 같더군요. 프로이트적이라고 할지, 바흐나 베토벤, 브람스, 그런 음악의 경우 역시 독일 관념철학적이라고 할지, 지상에 나와 있는 의식의 정합적인 흐름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에 비해 말러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적이라고 할지, 지하의 어둠에 숨어 있는 의식의 흐름 같은 걸 적극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거든요. 모순되는 것, 대항하는 것, 서로 섞이지 않는 것, 분간할 수 없는 것, 그런 몇 개의 모티프가 꼭 꿈을 꿀 때처럼 거의 경계 없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게 의도적인 건지, 비 의도적인 건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대단히 솔직 하고 정직하기는 하죠.
오자와-말러가 살았던 게 프로이트하고 거의 같은 시대죠?
350페이지가 넘는 책의 전부가 위에서처럼 두 사람의 음악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보면 취미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취미의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직업에 버금가는 전문성에다 그 격이 높을 때 비로소 고상한 취미가 되지 않나 싶다. 이것저것 흥미 있다고 집적거려 보는 걸 취미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취미다운 취미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력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