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런지, 아버지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주택에 사시다가 아파트로 이사할때 묵은짐을 딸 둘이 너무 많이 정리해 버려서
돌아가시고는 아쉽게도 기억할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보시던 책들하고 고등학교 한자 가득한 교과서도 너덜하고 냄새난다고 두딸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버렸다.
그래도 꽃과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퇴직 후 가을이면 마당에 국화꽃이 가득했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아기 머리만한 대국은 정말 웅장하고 화려했다. 비료를 많이 주고 정성가득하게 키운 한해의 결과물이었다.
성실하고 착한 아버지는 가족과 엄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직장상사 조카를 소개받아 평리동에 사는 부자집딸. 얼굴도 안본다는 세쨋딸하고 선보고는 한눈에 반해서
결혼하고 평생 엄마를 사랑한 순정파다. 우리아버지 같은 사람만 있어도 우리 나라 남자들 한눈 팔아 이혼당할일 없을텐데 싶다.
친구 전화국 시험에 컨딩 도와 주러 시험 같이 치러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아버지만 취직되었다는 어이없는 일화가 있다. 그때는 전신전화국, 지금은 KT로 바뀐시점에 몸이 약해서 명예퇴직을 하셨다. 그 이후 돌아가시기전까지 외출도 거의 안하시고 집돌이로 화초가꾸고 그렇게 더 엄마 바라기로 사셨다.
고관절 수술로 다리길이가 달라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지팡이를 짚으셨는데 남보기 부끄럽다는 핑게를 대시면서...
가난한집 아들이라 절약이 몸에 배여 세탁기를 돌리고 난 뒷물 받아서 걸레를 씻고, 마당 수도꼭지 한방울씩을 모아(계량기 안돌아가게)마당청소를 하시고, 마당에 강아지 목욕까지... 손재수가 좋으셔서 옷걸이도 구리로 직접 만들고, 신발 밑창떨어지면 본드로 기본 3~4번은 붙이고 그러셨다. 무엇이든 손만 닿으면 고쳐놓는 재주가 있으셨다.
절약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면 백날글쓰기 다 채울 수 있을 듯 하다.
그리운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벗꽃피면 엄마하고 언니하고 한번 찾아갈께요.
첫댓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네요 ~ 나도 아버지 보고 싶네 ㅎㅎ
글이 차근하다. 편하구 🩵🩷💜
아버지 뵐 수 있을 때 자주 뵙는 걸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