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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호 이 칼럼에 제가 베이징에 사는 지인 L님의 초대로 베이징 북쪽 바이취안(百泉)산을 등산하던 중 산 중턱에서 톈진에 사는 지인 M님을 만났다는 기막힌 사연을 소개했는데, 기억나시는지요? 연전 M님이 먼저 중국 산행 초대를 했으나 이상하게 어그러져 다음해로 미뤄진 상태였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돼 서로 얼마나 놀랐는지 그 만남을 숙명이라고까지 표현했었지요.
근데 이번 가을 그 M님과 함께 산을 타게 됐습니다. 하지만 초대자는 M님이 아닌 K님입니다. 공교롭게도 작년 말부터 저와 아삼육(?)인 K님이 M님과 근무를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저는 두 분이 속한 톈진토요산악회 10월 넷째 주말 산행지인 베이징 남서쪽 60km 지점 장팡전(張坊鎭) 두롱꺼우(杜龍溝)에 있는 산황산(三皇山)에 동행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오전 KE805편으로 인천을 출발, 톈진으로 향했습니다.
현지 일기 예보는 맑음이었는데, 톈진공항 상공은 온통 구름 천집니다. 비행기가 구름을 헤집고 활주로에 내려앉는 순간 창 밖 풍경은 회색빛 세상. 자세히 보니 스모그 현상 같습니다. 우리 한국도 전에 한때는 이랬지요. 근데 그땐 어떻게 살았는지, 저는 그만 비행기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 ▲ 원시시대 주거지를 연상케 하는 산황산의 암굴 집. 3층 구조에 옆으로도 아파트처럼 거주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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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M님, K님은 이런 곳에서 살고도 있는데 이 무슨 사치스런 생각인감!’ 도착해 마중 나온 K님과 공항 밖으로 나서자 약간의 매캐한 냄새까지 느껴집니다. 톈진이 유명한 공업 도시라 공해에 의한 것이 분명합니다. 근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요. 길가에 가로수들이 파랗고, 철은 좀 지났지만 화단의 꽃들도 잘 피어 있으니까요.
다음날 새벽 5시 기상. 이는 한국 우리 집과 똑같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라 그런지 우리보다 먼저 나와 택시를 잡은 이도 한국인이라 우리끼리 한국 말로 속삭여 합승, 6시 50분 한인교회가 들어 있는 호텔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오릅니다. 45인승 버스는 두 곳을 더 거쳐 모두 33명을 태웁니다.
이 버스 안전벨트가 참 특이합니다. 맨 앞열만 설치돼 있습니다. 비상시 앞으로 튀어나가는 곳이 맨 앞열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교통경찰 단속 시 맨 앞좌석만 확인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과는 이런 것부터 아주 색다릅니다.
- ▲ 산행 중 만난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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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에 손 빨래 하는 아낙, 우리나라 1960년대 풍경
근데 이날 함께 산을 타기로 한 M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근래 다리를 다쳤는데, 재활에 성공해 시험적으로 타보겠다 하더니 아마도 어제 술이 좀 과했나 봅니다. 대신 지난봄 바이취안산에서 M님과 함께 만났던 억새풀 회장님, 그때 앞서 M님의 동행을 알려줬던 뽀얀 장미님까지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 정말 구면 맞습니다. 어쨌거나 두 번째 만났고, 그러려니 보니까 얼굴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바깥은 스모그에 새벽 안개까지 끼어 보이는 사람이며 차와 나무들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막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버스가 10m 앞이 잘 안 보이는 희뿌연 도로를 용케도 잘 달린다 싶더니 금방 속도가 느려지고 급기야는 정체 행렬로 빠져듭니다. 사고가 났는지, 주말 교통혼잡인지 알 수 없지만 여기저기 경적이 울려 창 밖을 내다보니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려 한가롭게 거닐기도 합니다.
현대판 바쁜 사람과 기존의 만만디인 될 대로 되라는 사람들의 대조장 같습니다. 차 안 풍경도 아주 볼 만합니다. 물론 산악회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지만 서비스가 보통이 아닙니다. 먼저 백두산 천지 물로 만든 생수(火山玉水) 한 병씩을 돌리더니 이어 아침 식사로 냄새가 아주 고소한 김밥에, 따끈따끈한 호박죽까지 한 컵씩 나옵니다. 이어서 커피, 그것도 블랙 구분까지. 필요하다면 컵라면도 내주겠답니다.
근데 앞뒤가 참 요란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들끼리라 그럴까요, 우리말 대화 기회가 적어서 그럴까요? 아님 워낙 큰 목소리로 잘 떠드는 중국사람들 틈에서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닮아버려 그럴까요, 시끄러워도 그렇게 밉진 않습니다. 밝고 힘찬 목소리들에서 한국인의 에너지가 느껴져서요. 하지만 종내 눈을 붙이지 못합니다.
톈진에서 베이징 외곽을 거쳐 다시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변 수목들도 참 특이합니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한 가지 수종이 아니라 서로 키를 달리하는 서너 종의 나무들을 심어 마치 숲 속을 달리는 효과를 느끼게 합니다. 도로변 쪽 옻나무 같은 종류도 붉게 단풍이 들었고 그 다음이 수양버들류, 맨 바깥이 키가 쭉쭉 뻗어 올라가는 미루나무 종류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수종도 있지만요.
버스는 도중 주유소와 정식 휴게소 이렇게 두 번을 쉰 뒤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목적지 마을에 도착합니다. 중간에 잠깐 비를 만나기도 하며 5시간이 넘는 거리를 타고 왔는데도 대국 중국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두어 시간 남짓 날아온 것 같습니다.
한 아낙이 마을 앞 흐르는 냇물에 손빨래를 하는 게 꼭 우리네 옛날 풍경입니다. 차 두 대가 교차해도 될 만큼 큰 마을 길이 질펀하게 젖어 있는 것까지도요. 개들이 마냥 평화롭게 놀고 있는 마을 쉼터 같은 공간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기념 촬영을 한 다음 산행을 시작합니다. 근데 이 산 어째 입장료를 받지 않는지요! .
- ▲ 계곡은 연이어 가파른 마른 폭포를 만들며 고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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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수석분재처럼 너무 예쁜 꽃들
마을 초입에 아주 오래돼 보이는, 봉긋하게 솟은 세 개의 기와지붕을 인, 문 없는 문을 통과합니다. 산문인지 선문인지 알 순 없지만 우리가 오르는 산황산이란 산 이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3황은 고대 중국을 건설한 세 임금을 뜻하죠.
물론 전설로서 사기(史記)에서는 3황을 복희(伏羲), 여와(女? ), 신농(神農)으로 복희는 역(易)을 만들고, 여와는 인류를 낳았으며, 신농은 농업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천황(天皇)씨, 지황(地皇)씨, 인황(人皇)씨라 부르는데, 인황씨 부분은 황제(黃帝) 또는 헌원(軒轅)이라 하기도 하고, 불을 쓰는 법과 음식물 조리법을 가르친 수인(燧人)씨라고 일컫는 등 자료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이 산을 산황산으로 부르게 된 연유는 정상부에 멋진 암봉이 세 개 솟아 있는데, 그 위용이 마치 3황제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해서 천황(복희)봉, 지황(신농)봉, 인황(훤원)봉이라 부르며 옛날부터 산 초입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왔기 때문이랍니다. 근데 최근 급격히 황폐해 현재는 그런 흔적들만 남아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1970년대 풍 마을을 지나 산 길로 당도하니 옥수수 밭 사이로 하얀 염소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방목 중인 모양인데 “빼빼빼애” 하면서 우릴 환영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아까부터 집집마다 감나무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후 산자락까지는 온통 감나무 천지. 맑은 날씨라면 저 감들이 황금처럼 빛을 내며 한 풍경을 이룰 텐데 아쉽습니다.
- ▲ 전설상의 중국 시조 3황제에게 제를 지내는 곳에 세워진 여인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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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이 동네 명물이자 특산품이랍니다. 대다수의 가지들이 너무 감을 많이 맺어선지 길가에 떨어진 게 많이 보입니다. 뒤에 오던 억새풀 회장님이 몇 개를 주워 한 두 개 먹어보더니만 엄지손가락을 세워 올리며 다른 회원들에게 맛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데 오른쪽 능선 길로 짐작되는 곳에 여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있습니다.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3황제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악산입니다. 짙은 안개 속이라 가까운 능선과 뾰족한 봉우리, 계곡 윤곽만 보이는데 크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안개 산행이라 부를까요. 하지만 공기가 청량감이 가득한 게 톈진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베이징과도 꽤 떨어졌고, 비록 나무들은 없지만 바위들이 내뿜는 기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샙니까! 아, 그 방목 염소들의 똥입니다. 보이진 않지만 얼마나 많은 숫자들인지 오르내리는 길 내내 까맣고 동그랗게 생긴 이것들을 밟아야 합니다. 그래도 자연의 일부려니 나쁘지 않게 생각키로 합니다.
앞쪽으로 높이 30여 m 건폭이 하나 막아서자 짠~ 큰 풍경 하나가 펼쳐집니다. 길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돌 울타리가 쳐진 게 마치 작은 만리장성 같습니다. 여기가 중국임을 웅변이라도 하듯. 폭포 상단은 낭떠러지를 돌아가는 협로고요, 상단 계곡은 암반 속에 멋진 소가 두어 개 패여 있어 트레킹 하기 좋아 보입니다.
- ▲ 하산 지점 감나무 농원 앞에 놓인 쉬기 좋은 바위에 앉아 활짝 웃는 톈진토요산악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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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으로 변한 황제보다 살아 있는 신선이 훨씬 낫지요”
두 번째 와본다는 일부 대원들은 정말로 계곡을 타고 오르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냥 산길을 따릅니다. 들꽃이 피어 있으니까요. 들은 바대로 정말 야생화 천국입니다. 때가 좀 지났지만 산국들과 쑥부쟁이류, 털머위꽃처럼 생긴 노란 꽃에다, 고도를 더 높이니 보랏빛 모싯대, 구절초까지 산상 화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산이라 계곡이나 절벽 끄트머리에 핀 것들이 많아 모두가 수석 분재처럼 너무 예쁩니다.
제가 주간 들꽃캘린더를 만든 사람이란 게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보이는 족족 꽃 이름을 물어옵니다만 한계가 있지요. 그냥 ○○꽃 류라고만 하고 말꼬리를 흐립니다. 폭포 상단으로도 계속 폭포가 이어집니다. 여름철 우기 때는 한 경치가 아니라 여러 경치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산 전체가 기암, 기봉들로 둘러싸여 있어 어딜 찍어도 작품이 될 것 같고, 계곡도 넓어서 대협곡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미국 그랜드 캐년을 닮았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아련한 안개 속 풍경이라 연상작용 효과가 더 크니까요. 이 산은 ‘스와이타이위엔(世外桃源)’ 또는 ‘에산포(野山坡)’라 부르는, 베이징에서 100km 거리에 자리한 중국의 7개 국가급 명승지 중 하나이기도 하답니다. 참고로 나머지 6곳은 바이리시하(百里峽), 마허(馬河), 바이차오판(白草畔), 포통타(佛洞塔), 롱먼시하창청(龍門峽長城), 진후아산(金華山)입니다.
- ▲ 또 하나의 폭포를 오른 후 내려다 본 두 번째 폭포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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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처럼 나무가 없는 바위산 같은 데선 조망하기가 좋지요. 간간이 나타나는 길 굽이 암봉 위 또는 허리가 좋은 장소이긴 합니다만, 보이는 것은 바로 앞 10m 남짓 거리뿐, 오히려 풍경에 대한 상상만 더 키워줍니다. 그래도 10년 전 세찬 비로 카메라까지 망쳐버렸던 금강산 산행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다행처럼 여겨집니다.
오후 2시경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진 정상부 암릉지대를 배경으로 솟은 작은 암봉 위에 대원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벌써 오후 1시경이라 여기서 점심을 들기로 합니다. 오늘 이 산에 오른 사람들은 우리 산악회원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33명이 한 자리에 다 앉긴 비좁지만 몇 그룹으로 등을 맞대고 앉으니 가능합니다. 많지도 않은 숫자인데 우리나라 팔도 말씨가 다 나오고, 중국인까지 두 명 들어 있어 더 왁자지껄합니다. 따지다 보니 미국 시민권자도 있군요. 지구촌 시대, 우리 한국인들 위세가 당당합니다. 오늘 그 이름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산 하나까지 몽땅 우리가 접수한 것만 봐도요. 김치찌개를 끓이고 도시락을 내고, 포천이동막걸리에 바이주까지 나와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순간 잠시 안개까지 걷히며 축하해 주는군요.
제가 가만 있을 수 없죠. 일어나 옆 봉우리로 가서 이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모두가 구름 위에서 점심을 들었군요. 발 아래 저 멀리 가득한 안개 바다 건너로 숨었던 암릉 능선이 나타나고 정상부 병풍 암릉도 불그스레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 상 오늘 우리 33명은 모두 신선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절경의 산황산에서요. 황제보다 신선이 더 상위인 거 맞죠? 그것도 바위 3황보다 산 신선들이 훨씬 더요.
이 산 정상은 해발 911m. 그 세 봉우리를 보려면 이 병풍 같은 암릉을 돌아올라 하늘 같은 능선 길을 더 가야 하는데 40여 분이 더 소요돼 그냥 하산하기로 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정상을 밟지 못하면 안달하는데 오늘은 이 절경을 봐서 그런지 약간 서운할 뿐입니다. 그래도 하면서 뒤돌아보는 순간 안개가 다시 산을 감쌉니다. 사라져버리는 방향감각. 그러고 보니 오늘 내내 동서남북도 모르고 산을 올랐군요.
- ▲ 산황산 등산로 입구인 마을 초입 산황산을 나타내는 지붕이 3개인 문 없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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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오른쪽으로 난 긴 능선 길입니다. 잠시 걷히는 안개 사이로 뵈는 길 굽이는 얼핏 티베트 느낌도 납니다. 길 가에 꽃들은 여전하고, 멀리 기괴한 봉우리와 편안한 능선이 함께 어우러져 한 운치를 더합니다. 등성이엔 점점이 크고 작은 하얀 바위들이 박혀 있는데 그 사이에 또 하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 한국에선 보기 힘든 거라 카메라 세례를 많이 받습니다. 걔들 울음소리도 정겹고요.
완만한 길은 우리나라 영암 월출산 같은 암릉지대를 통과하면서 급경사를 이루는데 그 굽이에 마치 원시시대 주거지 같은 자연 굴이 여러 개 뚫린 암봉 하나가 이정표 마냥 서 있습니다. 바로 옆으로 돌아내려서며 보니 가는 나무줄기로 울타리까지 쳐놔 분위기가 기괴합니다. 아마도 몇 가족이 함께 살았던, 정말 천혜의 요새 같아 보입니다.
저 아래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이 올라와 여기저기 산자락을 많이도 파헤쳐 놓았습니다. 그 헤쳐진 길 가에 고들빼기가 많이 있어 몇 분이 나물 캐기를 합니다. 또 그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감나무밭. 단풍이 곱게 든 감잎 낙엽도 일품입니다.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늘어진 가지 사이로 난 하산 길은 “도옹구 밭 과수원 길~” 같은 노래를 부르며 걷기 안성맞춤입니다.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마치 쉬어가라는 듯 들어선 한 바위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하나 둘 셋 “찰칵!” 이정표 하나 없는 오늘 산행거리는 대강 7km.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또 안개로 오리무중인 날씨에 이 지방 출신 명기 심진주의 이름을 딴 심진주봉도 확인 못 하고, 무엇보다 정상을 못 밟은 점 등이 아쉬운 흠들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아주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동네 농원에 들러 감 한 관을 우리 돈 겨우 1,700원에 사니 이만하면 특산품까지 아주 실속 있게 챙긴 산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