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방문 동행기 _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기도의 터전이 되어주십시오
글 _ 배봉한 편집장 ipse@cbck.or.kr·사진 _ 김민수 기자 yesican@cbck.or.kr
1999년 주교품을 받고 군종교구장으로 사목하다
2010년 2월 26일 제2대 의정부교구장으로 전보된 이기헌 베드로 주교는,
2011년 1월 8일(토) 새해 첫 사목방문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행주성당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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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소리가 나면 오신 줄 알 텐데, 걱 정은….”
성당 안에서 준비하던 젊은 자매가 주교님이 오시면 알려달라고 하자,
마당에 서있던 나이 든 교우들이 느긋하게 타이릅니다.
행주대교 쪽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매서운 데도
교우들은 아랑곳 않고 길게 줄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주교님이 나타날 들머리를 향해 연방 눈길을 보냅니다.
“아이고, 부주교님 오셨네!”
좀 늦게 도착한 신자가 겸연쩍은 얼굴로 차에서 내리자 웃으며 한마디씩 합니다.
예정 시간인 오후 4시가 안 되어 주교님이 도착하자 박수소리가 요란합니다.
주교 복장에 겨울용 망토를 걸친 주교님이 박광배 베드로 총회장을 시작으로
줄지어 선 교우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하며 다정하게 인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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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주교가 행주성당에서 최고령인 88세 최 데레사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인사하고 있다.
할머니가 꽃다발을, 어린이가 환영사를
성당 안에는 정갈한 보를 씌운 탁자와 주교님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네명의 교구청 국장신부들과 함께 성당으로 들어선 주교님이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칩니다.
본당 주임인 홍승권 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주교님이 행주성당을 새해 첫 사목방문지로 택한 것을 감사드리며 환영식을 시작합니다.
화동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본당에서 최고령인 88세의 허리가 굽은 최 데레사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나와 주교님께 꽃다발을 드립니다.
당연히 본당 총회장의 환영사가 이어지리라는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여덟 살배기 안드레아 어린이가 뛰어나오더니 깜찍하게 환영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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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이헌기 베드로 주교님!”하고 이름을 잘못 부르자 성당 안이 “와!”하고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주교님께서도 지금 발 시렵지 않으세요?” 라는 말에는
주교님도 신자들도 차가운 마룻바닥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젊은 사제들로 이루어진 의정부교구에는 경로우대증을 가진 사제가 초대교구장 이한택 주교님밖에 안 계신데,
행주성당에서는 만 65세가 아닌 70세가 넘어야 경로의 날에 선물을 받을 정도라는
본당신부의 말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지금 주교님이 앉으신 주례사제석 하나밖에 없다는 말에 주교님도 웃음을 터트립니다.
주교님은 추운데 교우들이 많이 나와 환영해 주어 고맙다며 성당 안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아름다운 구유와 전통적인 14처 그림 등이 아주 어릴적 보던 정다운 모습이라고 칭찬합니다.
그러고는‘현대 안에 있는 옛날’ 을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이곳 행주성당이
영적으로 발전되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당부합니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본당 현황 보고
본당의 개황과 역사 등을 소개하는 시간,
세월의 변천을 보여주듯 음악을 곁들인 슬라이드 쇼로 본당 변천사를 보여주고,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현황 보고가 이어집니다.
행주성당은 관할지역 내 인구 1,800명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거의20%인 76세대 350명이나 되고
2009년에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 유서깊은 성당입니다.
목조한옥 형태의 작은 성당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지금은 100년 성당의 원형을 복원하고 선조들의 깊은 신앙을 전할 기념관 건립 사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먼 계획으로는 1910년 어린이 교육을 위해 세웠던‘신양학교’ 도 복원하려 한다는 본당신부의 보고가 이어집니다.
본당 신자들이 모두 노인들이라 어르신들을 잘 모시는 게 사회사목이고,
주일학생이 12명뿐이라 청소년분과장을 적극 밀어주는 것으로 청소년사목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본당신부의 말에 국장신부들이 소리 내어 웃습니다.
“올해 견진성사 예정 인원이 12명이지만, 주교님, 기쁜 마음으로 오실 거죠?”
본당신부의 애교 섞인 부탁에 주교님이“예!”하고 대답합니다.
5년에 한 번은 하게 되어있는 교구장의‘본당순시’ 라는 무거운 교회법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입니다.
평가 아닌 격려로 마감한 본당 운영 실태 점검
이어 주교님과 본당신부가 면담을 하고,
관리국장, 선교사목국장, 청소년사목국장, 사회사목국장 신부들이 본당 분과장들과 따로따로 만나
본당 운영실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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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은 성당 안팎에 옹기종기 모여 면담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다는 일흔네 살 박 야고보 씨가 성당 밖에서 인사를 건넵니다.
어린 시절 사제관에서 놀던 일, 라틴어로 드리던 미사에복사를 서던 일,
차가운 성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던 어른들의 모습 등 옛 추억들을 들려줍니다.
1950년 행주성당 견진성사 기념사진 속의 10대소년이 노인이 되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합니다.
추운데 성당에서 기다리시는 어른들이 걱정이 되어 면담을 빨리 끝냈다며
주교님과 국장신부들이 들어섭니다.
국장신부들의 강평시간, 평가보다 격려를 부탁한다는 본당신부의 말에,
청소년국장 신부는, 비록 12명이지만 어린 양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고
어린이미사를 열심히 하는 본당신부를 격려하며,
다시 100년을 이어갈 어린이들에게 더욱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로 평가를 대신합니다.
사회복지국장 신부는 마치 역사박물관에 온 듯 마음이 따뜻하다며,
강바람 차가운 언덕에서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선배신부님이 존경스럽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의 홀몸 노인들을 돌보고 있어 고맙다며 강평을 합니다.
선교사목국장 신부는 주교님의 새해 사목방침대로 여성 7개 반모임, 남성 2개 구역모임 등
작은 공동체지만 그 안에서 더 작은 소공동체를꾸리고 있어 보기 좋다며 수고 많으셨다고 칭찬을 합니다.
관리국장 신부는 지금 내는 돈으로 앞으로 200년이 아니라 20년을 이어갈 수 있을지,
다른 신부님이 이곳에 오시면 살 수있을지 걱정이 된다며 구체적인 통계를 들어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교무금 책정 세대수가 59세대에서 39세대로 줄었는데,
본당신부님이 사람이 너무 좋아 돈 이 야기를 안 해서 그렇죠?”하자 신자들이 동의하듯 웃습니다.
본당 사무실을 살펴보니 단체들이 갖고 있는 개인 명의의 통장이 있는데,
교구 법인 명의로 바꾸라는 지적도 합니다.
“기념관 건축에 전 재산을내면 안 되겠지만 간혹 그런 분도 생기면 좋겠어요.
이곳에 알부자들 많지요?”하자 신자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립니다.
“기념관 건축 관계로 민원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는데,
여러분이 잘 아는 분이니 비난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라는 당부도 덧붙입니다.
행주성당에 어울리는 자랑거리를 만들어보라
비로소 총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집니다.
“사목방문이 우리에게는 매우 유익하였습니다. 이래도 되는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신부님들이 일깨워주어 감사합니다.
교구에서 100년 성당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기념사업이 끝날 때까지 본당신부님이 떠나지 않게 주교님께 감히 부탁드립니다.”하고 두 손을 모읍니다.
본당신부가 정색을 하며“그런 부탁을 함부로 하면 안 되죠. 주교님도함부로 결정하시진 않으시겠지요?”하자
주교님이 껄껄 웃습니다.
본당신부가 다시“이 본당신부 말을 잘 듣는 착한 양들이 주교님을 맞이하러 많이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바람이 찬 데도 지금 우리 마음은 따뜻합니다.”하며 주교님의 마무리 말씀과 강복을 청합니다.
“정말 안 추워요?” “네에!”주교님의 물음에 신자들이 소리 높여 화답하자 주교님은 뜻깊은 당부를 합니다.
“우리 교구에는 오래된 공소들이 많지요? 신암리공소 가면 술 잘 먹는다고 자랑 마라,
우고리공소 가면 노름 잘한다고 자랑 마라, 갈곡리공소 가면 연도(위령기도) 잘한다고 자랑 말라는
우스개가있던데, 행주성당도 자랑거리를 만들어보세요.”
우리 신앙선조들은 좋은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었는데, 행주성당을 찾는 이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주교님은 당부합니다.
“새로운 기도의 터전이 되어주십시오.
견진성사 때 뵙겠습니다.”하고는
강복을 주고 방명록에 이렇게 쓰십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남겨주신 유산을잘 보존하며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1월 8일 토요일 이기헌 주교 외 4명.”
밖으로 나오니 종탑을 휘감은
전구가 아름답게 빛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루카 24,29) 하고 붙들면
못 이기는체 따라가려는데, 역시 총회장님이었습니다.
근처 음식점에 상을 차려두었으니 함께 가잡니다.
“(사목순시 때 주교는) 아무에게도 과도한 비용 지출로써
무거운 부담이 되지 아니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교회법 398조) 는 법도 있지만,
교우들과 더불어 더운 밥 한끼 술 한잔 나누는 일이야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일이 아니겠지요?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첫댓글 따뜻한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