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무살 숫기없는 스님 얼굴이 홍당무로…
연세가 들어서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큰스님은 젊었을 적엔 더 심했다.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정진하고 계실 때 일이다. 볼일이 있어 아랫마을에 내려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아래만 쳐다보고 다녔다. 누가 말을 걸어 올까봐 무서워 옆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으니 낯가림도 무척이나 심했던 것 같다.
꽃핀 봄날, 상춘지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범어사로 구경하러 많이 오갔다. 큰스님은 아랫마을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마침 꽃구경을 온 처녀들이 올라오다가 큰스님을 보자 말을 걸었다. 가뜩이나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있는데 길을 물은 것이다. 속으로 제발 내게 와서 말을 걸지 말아주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님, 우리 범어사 올라가는데 내원암은 어디로 가지요?” 갓 스무 살로 숫기가 없었던 큰스님은 처녀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암말도 못한 것은 물론 꽁지 빠지게 걸어 내려오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처여들이 뭐라꼬 무라보는데 낯을 들 수가 있아야제.” 큰스님은 처녀를 처여라고 발음하며 아직도 부끄러운지 낯을 쓰다듬었다.
말년의 큰스님을 친견한 이들은, 호리호리하고 빠짝 말라 키만 훌쭉한 큰스님의 젊었을 적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향곡 큰스님’이라는 이미지는 키가 180cm 정도로 크고 몸무게는 90kg 되는 큰 거구로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범어사 시절에 찍은 스무 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정말로 날씬한 체구였다. 가끔씩 그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셨다.
“요때는 내가 장대 같이 빼싹 말랐어. 이 사진봐라! 그렇제.” 사진이 증명서인 셈이라, 젊은 시절에 찍은 사진을 가져와 확인을 시키곤 하셨다. 처녀들이 곁에만 와도 얼굴이 빨개지던 그 시절의 사진을. 여러 대중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키가 커서 비썩 마른 몸이 껑충하니 솟아 올라와 있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다. 아무리 봐도 큰스님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밤잠도 안 자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정진에만 힘쓰던 시절이라 살이 찔 수 없었을 터이다. 오래되어 누렇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내내 들여다보신다. 내려놓으며 계면쩍은지 싱긋 웃으신다. 그 사진을 지금은 누가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