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泉從浴室裏過見 浴頭燒火問 云 作什麽 云 燒浴 泉云 記取來喚水牯牛浴 浴頭應諾 至晩間 浴頭入方丈 泉問 作什麽 云 請水牯牛去浴 泉云 將得繩索來不 浴頭無對 師來問訊泉 泉擧似師 師云 某甲有語 泉便云 還將得繩索來麽 師便近前驀鼻便拽 泉云 是卽是 太麁生
남전대사가 욕실을 지나가다가 욕두浴頭가 불을 때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얼 하느냐?” “목욕물을 데우고 있습니다.”
“수고우(물소)를 부르러 오는 걸 잊지 말게.”
욕두가 “예"하고 대답했다.
저녁이 되어 욕두가 방장실로 들어오자 남전대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물소께서는 가서 목욕하십시오.”
남전선사가 말하기를, “소고삐는 가져왔느냐?” 욕두는 대답이 없었다.
조주선사가 문안드리러 오자 남전대사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조주가 말했다.
“제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자 남전대사가 물었다. “고삐를 가지고 왔느냐?”
조주가 앞으로 불쑥 다가가서 남전대사의 코를 틀어쥐고 잡아 끌자 대사가 말했다.
“옳기는 하다만 너무 거칠구나.”
오늘은 남전대사가 목욕물을 데우고 있는 욕두스님에게 목욕 준비가 다 되면 '잊지 말고 물소를 불러라'고 말하니, 그 스님은 대사가 부르라고 한 사람이 대사 자신을 가리킴을 알아듣고는, '물소는 물 다 데웠으니 목욕하십시오' 라고 제대로 말했으나, '소고삐는 가져 왔느냐?' 라는 선어禪語에 대꾸를 못해 그만 땅속으로 곤두박질 당해 버렸다.
나중에 조주는 '소고삐는 이것입니다' 라는 의미로서, 손으로 스승의 코를 비틀어 버렸는데 남전의 말대로 맞기는 하지만 정말로 거칠게 행동했다.
우리나라 근대 선불교를 다시 부흥시켰다고 일컫는 경허鏡虛, 1846∼1912 선사는 한때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턱 아래에다 송곳을 놓고 목숨을 건 참선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사를 시봉하던 동은이란 사미승이 질문을 하는데, "중노릇 잘못하면 죽어서 소가 된다는데 그 소가 코뚜레를 꿸 콧구멍이 없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당시 “소가 코뚜레 꿸 콧구멍이 없다”는 이 말은 아랫마을에 사는 이처사란 분이 한 스님에게 가르친 것인데 동은이 듣고 와서 선사에게 물은 것이다.
'콧구멍 없는 소'라는 이 한마디를 들은 경허선사는 그동안 읽고 들은 백, 천 가지 법문과 수천 나날의 좌선 수행이 얼음 녹듯이 모두 녹아내려서(보통 통 밑이 쑥 빠졌다고 하는데), 모든 기억이 다 달아나 버렸다. 드디어 마음의 눈을 뜨게 된 것인데, 이에 게송을 짓기를, “홀연히 코뚜레 꿸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라고 노래했다.
남전대사나 조주, 경허선사의 콧구멍은 한 가지이다. 모두 코뚜레 뚫을 콧구멍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한 가족 식구라고 한다. 여러분도 구멍 없는 콧구멍을 맛보면 같은 식구가 된다. 모두가 한 마을, 한 고향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코뚜레 꿸 콧구멍이 없는 소인가?'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다. 이제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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