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소재가 되어 상상의 세계로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임정자. 창비. 2001)
남경화
이 책은 5편의 단편 글이 실린 환타지 작품이다. 환타지는 우리 딸이 참 좋아하던 장르였다. 《아무도 모르는 색깔》(김혜진. 바람의 아이들)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 지금도 가끔 읽는다. 나는 예전에 읽으려다 포기한 책이다. 딸아이가 중학교 때 매일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것같다. 그날도 싸우고 학교를 갔다. 나는 딸아이 침대에 누워서 밉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들면서 울었다. 오른쪽 모로 누웠웠더니, 커다란 곰인형이 있어서 치웠다. 그랬더니 벽에 연필로 작은 문을 그려놓고 ‘자~ 시작이야~’라는 글이 있었다. 나는 딸아이의 그림을 보고 울던 눈물을 그쳤다. 우리 딸은 자신만의 탈출구가 있고, 그곳에 가서 맘껏 엄마를 욕하고, 자기 좋아하는 가수 그룹도 만나고, 공부 안 해도 100점 맞는 세상을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중학생이나 돼서 이런 공상, 망상, 상상 같은 세상에 머물러 있는 딸아이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은 내가 어린이도서연구회에 들어온 것을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한 날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날이 다시금 떠올랐다. 특히 <이빨귀신을 이긴 연이>는 내 어린시절 비오는 날이 떠올랐다. 딱 한 번 우리 아부지가 우산을 들고 와서 기다렸던 것이 아주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 날은 무슨 마음에 아부지가 우산을 갖고 오셨었는지. 그 날은 술 냄새도 안 나고 아주 귀한 딸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셨다. 그것도 중학교 때.
아래는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책에서 발췌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 없다. 무보가 보기에는 매사 제멋대로 사는 듯 보여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세 가지뿐이다. 부모가 시키는 일,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놀이 그리고 부모 말 안 듣고 고집 부리기, 아이들은 권한도 능력도 없기에 현실을 답답해한다. 그렇다고 현실이 금방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기대는 것이 상상이다. 상상은 아이의 소망을 이루게 해 주고 불만을 견디게 한다. 상상할 수 없다면 아이들은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