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작품해설
미국 희곡의 대표 작가로 지칭되는 Eugene O’Neill은 인간과 신의 관계─우리가 의지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가치 체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자신의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고 말하곤 했다. 또한 O’Neil은 삶의 의미 체계가 부서진 이 세계에서 우리 인간은 표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The Emperor Jones, Desire under the Elms, The Iceman Cometh, Long Day’s Journey in to the Night등이 있으며, 낭만적 사실주의 경향이 농후한 가운데 표현주의, 사실주의, 가면, 방백, 신화, 상징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계속 새로운 경지를 추구했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미국 희곡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다. The Iceman Cometh와 더불어 이 두 작품은 1939년 6월경 작품에 대한 착상을 했으며 작가의 자서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작가의 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 형Jamie, 그리고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며 쓰여졌다. 이 작품의 자서전적 요소들 때문에 작가는 아내 Carlotta에게 그가 죽은 후 25년간은 이 작품을 공개하지 말 것을 유언했다. 이 조건대로라면 1978년이 되어야 공개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Carlotta는 1956년 스웨덴에서 초연되고 Yale대학 출판부에서 초판되는 것을 허용했다. 아내 Carlotta에게 이 작품을 바치면서 그 헌사에서 작가는 이 극이 “옛 슬픔을 다룬 극”이며, “눈물과 피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 극을 쓴 심정을 “with deep pity and understanding and forgiveness for all the four haunted Tyrones”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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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는 이 극이 아침 8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의 하루이면서 Tyrone가(家)의 어느하루, 인생의 하루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Journey'는 낮에서 밤으로의 여행, 인생이라는 여행 또는 순례를 말해 준다. 'Night'는 극중의 밤, 꿈 속의 밤, 또는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각각의 의미들은 사실적인 차원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함께 상징성을 띠면서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된다. 즉 이 극이 실제 시간을 초월한 의미를 지님으로써, Tyrone가의 오늘을 조망케하고 그들의 내면을 들어내는 과거로의 긴 여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개 속에 묻힌 한밤중의 마지막 장면에서, Mary가 마약 속에 몰입하면서 완전히 과거 속으로 침잠해 버리자, 남편 James와 큰 아들Jamie는 죄책감에 빠져 비탄에 잠기고, 막내아들 Edmund에게는 병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앞에 남겨진 채 이 작품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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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게된 것은 과거가 현재를 형성했으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 현재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Mary의 다음 말이 적절하다.
None of us can help the things life has done to us. They're done before you realize it. and one's they're done they make you do other things until at last everything comes between you and what you'd like to be, and you've lost your true self forever.
삶의 신비는 쉽게 설명될 수 없으며 항상 신비로운 채 남아 있다. Tyrone가의 운명-희망과 좌절, 부자의 대결, 죄의식,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바람, 자아의 상실, 깨달음과 당황-이 워낙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서 우리에게 이 극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방송대 영문과 교과서 “영미희곡1”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작품해설”에서 발췌
<밤으로의 긴 여로> 공연 팜프렛 작품해설집에서 발췌
이두현 서울대 명예교수 글 중에서
이제와서 왜 <밤으로의 긴 여로>인가? 65세에 타계한 유진 오닐(1888~1953)이 죽기 전 자신의 세 번째 아내인 칼로타에게 결혼 12주년 기념으로 선물했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원고를 아내에게 선사하면서 서두에 이렇게 적었다.
"아내여, 여기 희곡 원고를 선사하오. 여기엔 눈물과 피로서 씌어진 지난날의 슬픔이 간직되어 있소....... . 당신의 애정과 갸륵한 마음씨는 나에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하였고, 드디어 죽음과 직면하여 이 희곡을 쓰게 한 것이오. 무엇인가에 홀린 네 명의 타이런 가족에 대하여 측은한 마음과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을 지니고 쓸 수 있었던 것이오. 사랑하는 아내여, 이 12년 동안이야말로 광명으로의 여로-사랑으로의 여로였소. 당신은 내가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알 것이오. 그리고 내 사랑을..... ."(오화섭 역)
눈물과 피로 쓰인 이 마지막 작품은 그의 자서전적 작품이다. 그의 사후 25년 동안은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작품이나 그의 사후 3년만인 1956년 2월 10일 스톡홀름의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추가: 이 초연 전에 이 작품에 관련된 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서로 증오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닐의 네 식구들-그러나 그들은 혈육이기 때문에 증오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들 삼부자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메아리가 마약중독으로 실성하여 몽아 상태에 빠져 백발을 소녀처럼 땋아 늘어뜨리고 창백한 얼굴로 웨딩드레스를 끌고 나타나 외우는 마지막 대사를 듣는 순간 뼈를 깎는 아픔을 느낀다.
".... 그리고 봄이 오자 어떤 사건이 일어났죠. 그래요, 생각나는군요. 제임스 타이런하고 사랑에 빠져 한동안 행복했어요."(오화섭 역본에서)
이 때 큰아들 제이미가 스윈버언의 시<이별>을 비통하게 읊조린다.
"... 그 여인도 지난날과 옛이야기 회상하고, 우리를 향하여 한숨지으려니, 하나 우리 모두 없었던 양 떠나가네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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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는 서로가 잘못을 고백하고 이해를 구함으로써 서로를 용서하고 따뜻한 애정을 갖게 하는 오닐의 대표작이다. 번역자 오화섭 씨는 이 작품에 대해서 "회고적 관조 속에서 인생을 완전히 수용하며 초월하는 수법이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이제 회고적 관조 속에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나이에 비로소 오닐의 이 작품은 나에게 깊은 안개와 무적 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도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이미지는 바다와 안개라고 생각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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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영 평론가 글 <이해랑의 인품과 예술> 글 중에서
그의 예술철학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절제와 감춤이다. 이런 그의 철학은 두 가지 말 속에 고스란히 함축되어있다. 그 첫째가 "우주처럼 생각하고 별처럼 표현하라"는 것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또 하나의 커튼 뒤의 인생"이라는 말이다. 물론 두 번째 철학은 체홉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이긴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화 했다는데 그의 탁월서이 있는 것이다. 그는 연극이 몽땅 보여주면 안 된다고 했다. 관객 앞에 전개되는 삶 뒤에 진정한 인생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그런 감춤이 있을 때 연극의 진정한 환상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많이 출연, 연출도 했던 셰익스피어마저 과소평가한 이유도 그러한 그의 예술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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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본 후 나의 느낌>
가족의 구성원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잘못은 상대의 탓으로만 돌린다. 그 결과로 서로 갈등과 소외감이 증폭되고, 각자가 마련한 도피처에 몰입하게 된다. 남편의 경우 도피처는 부동산을 통한 재산증식이며, 아내의 경우는 마약이고 큰 아들의 경우는 술과 방탕이다. 이 희곡의 저자이기도 한 둘째 아들은 결핵에 걸렸다. 아버지에게는 아일랜드에서 전해온 이야기에 따라 결핵에 걸리면 살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평소 절약을 넘어 아들로부터 수전노로 비난받는 아버지였다. 그는 지나친 절약 정신에 몰입해서 병든 아들을 좋은 의료시설에서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지도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진다고 비난하고, 남편은 진정 가족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주장한다.
이 유진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가족 간에도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파멸로 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날로 파편화되어가는 현대인에게 새삼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아내인 Mary가 가톨릭 수도원과 관련된 회상을 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요 현재 교회와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신과 멀어진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정신적인 영역을 구축하지 못할 때 쉽게 비극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Mary가 몰핀에 의존해서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했다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가는 현대인의 같은 요구에 부합하는 side affection 제거한 몰핀의 대용품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금속성 대중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고급문화인 정통희곡의 진수를 맛보려면 공연을 보기 전에 먼저 공연될 희곡에 관한 해설서를 읽어야 한다. 작가가 글의 행간에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공연에서 막이 오르면 마음을 팝을 들을 때처럼 가볍게 가져 갈 것이 아니라 정전에 오른 작품을 잘 감상하기 위해 준비한 지식을 동원하고,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읽을 때의 자세로 눈과 귀를 공연의 흐름에 맞추어야 한다.
유진오닐의 희곡<밤으로의 긴 여로>의 공연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는 것은 나의 역량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연극을 미처 못간 학우들의 바램을 저 벌릴 수 없어, 작품과 관련된 해설을 인용하고 간략한 나의 느낌을 적었을 뿐이다.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임영웅님의 극의 간결화된 연출과 우리시대 최고의 배우 손숙님의 절제된 연기등 연극 공연에 대해서는 감히 쓸 수가 없었다. 연극을 좀더 깊이 알고있는 분에게 해설을 부탁하고 싶다.
9월29일오후5시에는 강태경교수의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제목은 '빛으로의 여로: 유진오닐이 걸어간 '밤으로의 긴 여로'이다.(담당자 연락처: 727-0922, 메일 solmae@MDtheat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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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간: 2009.09.18(금)~10.11(일)
화,목,금 7시30분/ 수,토,일 3시/ 월요일, 10월2(금)~3(토) 공연 없음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서울) : 전화 1644-2003/ www.MDtheater.or.kr
연출: 임영웅
출연진: 손숙, 김명수, 최광일, 김석훈, 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