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화 맑음
게르에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7시에 바트 외삼촌이 왔다. 한국말을 못하지만 바트와 비슷하다. 젊고 단단하게 생겼다. 4명 중에 둘이 빠지고 이박싸와 함께 간다. 130키로 가야한다.
도시를 나와 서쪽으로 달린다. 흡수굴까지 있다는 그 고속도로다. 길은 2차선이지만 잘 되어 있다. 5분만 나와도 바로 초원이다. 산이 많다. 북사면엔 침엽수림이 자라고 남사면엔 풀만 자란다. 타이가와 스텝이 만나는 지점일까? 나무는 자작나무와 시베리아낙엽송이다. 겨울엔 낙엽으로 다 떨어뜨리겠다. 가을에 보면 좋겠다.
중간 중간 서고 싶은 곳에 서면서 갔다. 고비로 가면서 많이 보았던 쇠재두루미가 한쌍도 없다.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나만 사진 찍는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운전사와 이박쌰는 차에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다시 올 수 없는 곳일 텐데. 먹황새 비슷한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맘 같으면 개울 따라 계속 가 볼 텐데. 아쉽다.
볼강을 지난다. 작은 도시다. 아파트도 보이지 않고 거무칙칙한 나무울타리와 집들이 연속되어 있다. 그래도 교통의 요지라 활기차 보인다.
우회전하여 30킬로를 더 가서 초원으로 접어들었다. 드디어 초원이다. 길은 평탄하다. 드넓은 초원에서 간식을 먹었다. 점심을 준비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할 듯싶어 간단하게 빵을 먹었다. 메뚜기들이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뿐 조용하다. 독수리(타스) 몇 마리가 떠서 돌아다닌다. 그저 조용하다.
단순한 풍경과 조용함. 평원에 초원, 초원이 연속되어 산이 되고 그 끝에 하늘과 구름이 맞닿는다. 햇볕은 그저 옆에서 도와준다. 산도 복잡하지 않다. 둥그스럼하거나 낙엽송을 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 끼리 떠들면서 놀기엔 미안할 정도. 그냥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적막함이 참 편안하다.
언덕 몇 개를 넘어서 작은 호수에서 노는 고니와 황오리들을 본다. 망원경에 아이폰을 대고 촬영할 수 있는 아답터를 가지고 온 덕에 좀 더 가깝게 찍을 수 있다. 300미리 망원렌즈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것 때문이다. 장착에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효과는 좋다.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이 참 아쉽다. 환생교 식구들이 왔다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봤을텐데.
히르스(코삭여우)를 봤다. 6,7년 전에 보고 다시 본다. 생각보다 작았다.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붉은 여우를 볼 수 있을까? 기회를 꼭 만들어야겠다.
게르에 도착했다. 게르 두 동이 있다.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한분 계셨다. 운전사 어치르의 어머니다. 바트 외할머니고. 동쪽으로 작은 언덕을 뒤로 하고 게르가 앉혀져 있다. 문은 남으로 냈다. 식구가 더 있다고 했는데 없다. 도착하자마자 수태차를 끊여서 내신다. 맛있다. 깔끔한 성격이라는 것을 수태차 내는 것을 보고 알았다.
보이는 게르가 우리 잘 곳이다. 멀리 걸어나왔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곳이 없었다. 게르 안에 침대가 두 개 있었는데 눕기가 쉽지 않았다. 언덕위에 올라갔다. 햇볕이 조금 따가웠지만 거기에 누워서 잠시 낮잠을 잤다.
조금 나아서 주위를 둘러 봤다. 언덕위엔 흉노족장 무덤이 세 개가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본다. 이태 전 알타이에서 봤던 것보다 규모는 작지만 치장이 더 복잡해 보인다.
게르로 돌아오니 이박시는 자고 있다. 수태차를 한잔 더 먹고 양고기 장만하는 것을 보다 밖을 더 보러 갔다. 초원을 멀리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도 개미들이 세력이 크다. 풀들도 제각각 향기를 뿜으면서 살아간다. 특이하게 작은 두꺼비가 있다. 청개구리보다 조금 더 크다. 둥글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초원이다. 작은 돌들은 현무암이 많다. 용암대지였을까?
이박시와 함께 말 타러 갔다. 게르와 게르 사이가 떨어져 있어 차를 타야 한다. 어치르의 누나와 형들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유목은 손이 많이 필요하니 모여서 살아야 할 것이다. 말을 키우고 아이락(마유주)을 만드는 누나 네에 들렀다.
마침 말 젓을 짜고 있었다. 형제들이 다 모인 듯하다. 죽 묶여있던 망아지를 한 마리씩 데려다 어미 젖을 맛보게 하고 이내 떼어 내고 어치르 누나인 듯한 여인이 젖을 짰다. 많이 짜지는 않았다. 젖 짜는 소리가 대단하다. 망아지한테는 언제 젖 주나? 신기한 것은 망아지 새끼가 20여 마리가 넘는데 어떻게 어미를 찾는지로 신기하다. 무늬가 특별하게 생긴 것은 쉽게 찾는다 쳐도 비슷한 색인데. 망아지는 젖 도는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니 참 거시기하다.
일이 끝나 말을 잠시 탔다. 재미는 없었다. 남자어른들에게 담배 한 갑씩을 선물했다. 게르에 들어가니 아이락을 준다. 맛은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동물냄새가 약간 섞였다. 큰 드럼통에 말 젖이 부글부글 공기방울이 솟아나고 있었다. 발효되는 중이다. 말젖에 발효균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효모균을 투입할까? 그리고 알콜발효는 혐기발효인데 여기는 그냥 열어놓고 있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말도 통하지 않아 물어보기도 힘들고. 하루에 몇 번 젖을 짜는지 모르지만 30분 정도 지나 다시 젖을 짜러 간다.
돌아와서 어치르가 허르헉을 만드는 과정을 봤다. 양고기는 이미 장만하였고 난로에 불을 붙여 돌을 달구고 물을 일부 끊인다. 솥에 벌겋게 달인 돌과 고기를 한 켜씩 넣고 뚜껑을 닫는다. 한 시간이상 끊이면 허르헉이 완성된다. 특이한 것은 재가 묻은 뜨거운 돌을 뜨거운 물에 한번 씻어서 넣는다는 것이다. 허르헉 만드는 과정을 많이 봤지만 처음 본다. 어머니도 그렇지만 참 청결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다.
우리에게 먼저 먹으라고 한다. 먼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국물을 한 그릇씩 준다. 짭짤하지만 고기 육수의 진국이다. 고기 맛은 기가 막히다. 여러 차려 허르헉을 먹어 봤지만 제일 맛있다. 다리 살은 약간 딱딱하다. 기름기가 없어서 그렇다. 뱃살이나 부위를 모르는 다른 곳은 부드럽다. 기름기는 훨씬 덜하다. 칼로 조금 씩 잘라서 맛을 봤다. 금방 배가 부르다.
조금 있다 형제들이 모였다. 아이들도 데리고 왔다. 다들 신체 건강하고 누나는 미모가 특별나 보인다. 어머니께 내가 준비한 크림과 루즈 셋트를 드리고 가장으로 보이는 분에게 준비한 보드카를 드렸다. 보드카를 세잔 먹었다. 마지막 잔은 다 먹어야 된다고 해서 원샷했다.
가족 간에 화목하고 정겨운 대화를 우린 침대에 앉아서 지켜봤다. 부러웠다. 식구들끼리 노동하고 저녁에 모여서 같이 나누는 대화는 참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정이 느껴지는 부러운 가족이다.
별이 보고 싶었지만 반달이 떴고 구름이 많아서 보기 어려웠다.
침대가 두 개라 우리가 쓰고 어머니와 어치르는 바닥에 잤다. 어머니는 우리를 상관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