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자는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마지막 최 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장군이다.
*경주 최부자의 선대 묘 7기 <戌坐辰向>
1,崔震立장군의 부친 ; 崔臣輔의 墓,
2,崔震立장군의 증조모 ; 경주 李氏의 墓 = 崔得汀의 婦人
3,崔震立장군의 증조부 ; 崔得汀의 墓
4,崔震立의 조부모 ; 崔三聘과 평해 黃씨의 좌우 雙墳
5.崔三聘(빙)과 같은 항렬인 崔三顧와 月城 李씨 合葬 墓.
6,崔三聘과 같은 항렬의 崔三?(少+谷)의 墓.
7,崔震翰의 墓 순으로 위에서 아래로 거의 일렬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 산소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夫婦역장, 父子역장에 조부모 위에 손자의 묘가 조성된 전형적인 역장의 사례이다.
종산재(宗山齋)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에 있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재실이다. 득정(得汀)·삼빙(三聘)·신보(臣輔)·진흥(震興)·동길(東吉)의 5대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1676년(숙종 2)에 건립하였다. 이후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9년 중건하였다.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3량가(三梁架)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평면은 대청 양쪽으로 방이 일렬로 연결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구조이다. 전면 툇마루 위에 '종산재(鍾山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