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중엽, 서화가인 고려 공민왕이 그린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음산대렵도, 천산수렵도)는 설산(雪山)이라고도 불리는 천산(天山)에서의 수렵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그림에 나오는 인물을 보면 원나라 지배를 받고 있는 영향으로 변발을 한 모습이다. 이 그림은 조선 선조가 가지고 있다가 손자인 낭선군 이우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죽은 후 애호가들에 의해 조각이 났다고 한다. 공민왕은 고려를 대표하는 화가로 북종화를 잘 그렸으며 정치도 잘 하였으나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은 뒤 신돈에게 정치를 맡겨 마침내 환관인 최만생에 의해 살해된다.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한 개혁정치를 했는데, 스스로 몽골식 변발과 옷을 벗어버리고 공녀 보내는 일도 중단시키고 원나라 땅이 되었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땅을 되찾았다. 또한 사회 개혁을 위해 승려인 신돈을 발탁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했다. 이는 원나라 공주 출신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본명 보탑실리)"가 옆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신돈은 부원배, 친원파들에 의해 반역 음모를 꾀했다는 죄로 처형당하고, 공민왕도 환관인 최만생에게 살해되고 나서 고려는 급속하게 기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