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숙 친구가 여행 후 보내온 글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화76졸업여행’을 다녀와서
박 경 숙
8월31일에 정년을 맞으며 ‘이제 쉬세요~’ 인생의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언젠가 하리라 기다렸던 버킷리스트, 그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어릴적 친구들과의 가을 여행, ‘미술관, 그리고 섬을 걷다‘(슬로시티여행), 2박 3일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버스로 이동하며 조금은 낯설어도 어딘가에 금방 함께 공유할 정서를 확인하고 부담없이 웃고 얘기하고.
아침 7시 양재역 집합장소로 드르륵 가방을 끌고 가는데 앞서 가던 어느 분이 가방을 끌다가 살짝 들고 가는 센스를(아마도 이른 아침 소음을 배려하는) 보며 ‘아, 이화친군가 보다’ 생각하고 우리는 눈웃음으로 확인하였다. 2대의 버스, 1호차 2호차 앞에 붙어 있는 ‘이화76졸업여행’, 얼마나 사랑스러운 안내문인가? ‘이화,’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76,’ 내게 아련한 그리움을 주고 ‘여행’, 내 설레임을 담은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있을까? 그녀는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룸메이트 중 하나였다.
1호차 2호차 인솔자 선생님들의 구수한 입담을 들어가며 신안으로 가는 중, 우리 반 민선이가 휴게소 횡단보도에서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고 먼저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 모두들 속상하고 안타까워하며 침울한 분위기였지만 많이 다치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겼다. 여전히 병원에 입원해 있어 빨리 완쾌되길 우리 모두 기원한다.
첫 번째 방문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관람. 옛담배공장을 재건축하여 작품의 수장고 보존에 특화된 수장형 미술관. 관람객들이 유리창을 통해 대표 소장품의 소장, 보존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 중 김환기 선생의 <여인들과 항아리>가 전시중이었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며 사진도 찍으며 오랫동안 그 앞에 머물었다. 팬데믹의 비대면 상황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된 물류환경과 미술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배달’문화를 미술과 연결한 전시도 매우 흥미로웠다. 어렸을 적 아련한 추억, 따뜻한 난로 위에 쌓인 도시락도 전시 아이템이 되겠다고 얘기하였다.
공주에서 점심. 3층으로 된 푸드 디스플레이가 인상적! 실외 수영장이 초대하듯 손짓했지만 우리는 수영장 주변에 삼삼오오 앉아 식사를 기다리며 따뜻한 11월의 햇살을 받았다. 식사 후 더욱 남쪽으로 내려가 고창 선운사에 도착.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하고 임지왜란에서 불탄 것을 광해군 때 재건하였다는 고찰의 규모도 대단했고 대웅전 단층이 아름다웠다. 널찍한 사찰을 거닐며 6층석탑의 절제된 함축미를 돌아보고 작은 다리를 건너 시내따라 좁은 숲길 주변 아름다운 가을 단풍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신안으로 이동하여 지역 토속음식 게장으로 석식. 추가로 게장을 리필해 주는 주인장의 배려(서울서는 일어날 수 없는)로 실컷 먹고 저녁에 우리방 룸메들은 물 찾느라 바빴다.
둘째날은 두 개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움직였다. 신안섬 투어 관광팀과 12사도 섬 순례팀(일명 ‘섬티아고’)으로 나뉘었다. 나는 사실 잘 걸을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고심 끝에 멀리 여기까지 다시 올까 싶고 나의 컨디션도 한 번 체크해 볼 겸 순례 팀에 합류하였다. 순례팀의 첫 번째 도전은 아침 출발시각, 리조트 출발이 6시 20분! 7시 송도항에서 병풍도로 출발하여 병풍도에서 12사도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날 아침 바다는 매우 조용하였다. 배위에서 뜨는 해를 맞으며 갑판에 둥그렇게 모여 서서 우리는 즐거운 얘기로 웃고 웃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그리도 웃었을까.
진섬에서 우리를 맞아 주신 분들은 목사님내외분. 순례길 설명도 해 주시며 손수 운전하며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주셨다. 그 중 빠질 수 없는 추억은 3개의 차량이 움직였는데 3번째 차량은 트럭! 나는 처음에 좀 소심해서 다른 차량을 이용했지만 어쩌다 트럭을 타고 보니 얼마나 즐거운지! 한쪽에 야산이 다른 쪽에는 넓은 염전과 새우 양식장들을 지나며 우리는 깔깔거렸다. 차를 타고 있지만 마치 걸어가고 있는 느낌?
병풍도에서 진섬으로 이동하며 ‘섬티아고’는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둥글고 푸른 지붕의 이미지, 거칠게 마감한 벽처리. 베드로, 야고보,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마태오, 가롯유다, 등을 모티브로 한 색유리와 스틸의 앙상블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아름다운 바닥으로, 때로는 푸르디 푸른 문으로, 앙증맞은 창문으로. 프로방스풍에서 동양적인 선과 오리엔탈 스타일로 건축물과 외부 자연환경이 소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은 또 어쩜 그렇게 멋진 포즈를 취하고, 모든 컷은 배경과 완전체가 되는 것 같았다.
조식과 중식을 섬에서 하고 다시 배를 타고 송공항에 돌아왔다. 관광팀과 합류하여 그들의 분재공원 관람 등 멋진 하루일정에 대해 들으며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 밤에 한 친구의 방으로 모였다. 일찍 자는 친구는 할 수 없이 자게 두고. (사실 낮에 배 기다리며 몇몇 친구와 저녁에 보기로 하였다. 한 친구는 내가 처음 간 군산여행에서도 보고 이번 여행도 만나서 나는 그녀가 당연히 한국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미국에 살면서 이렇게 스케쥴조정해서 여행에 합류한 것! 지금도 비행기를 타며 돈을 번다는 그녀. 우리는 돈을 내며 비행기를 타는데. 그레이트!!!) 우리는 그날 밤 한 방에 모여 어느 친구가 낮에 찍은 사진 한 컷을 두고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바람에 맘껏 맘껏 웃었다. 지금도 미소가 스며 나온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날 1호차 인솔자 선생님의 유머 한토막. 여성여행자분들은 돌아가는 시각이 가까워지면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남자분들은 반대로 점점 희색이 만연해진다고. 그들은 여행중 음식도 안 맞고 등등 집을 대개 그리워한다고.
리조트의 찜질방을 하고 짐을 싼 후 소금박물관에 들러서 견학하고 백수해안도로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맘껏 눈에 담고 서울로 이동. 버스에서 이제 더욱 서로 많이 알게 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구들의 다양한 삶의 경험과 관심, 열정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무릇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하려면 보이지 않은 곳에서 희생적으로 준비한 친구들의 수고 덕분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하고 준비한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곧 다시 만나 함께 할 새로운 여행을 기다리며...
(친구들 단톡방에서 여행후기 한 토막)
# 쉽게 갈 기회가 없던 서해안 섬과 펼처진 갯벌 그리고 숙소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빛 바다는 오랜만에 충만한 힐링을...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침흘리며 부러워하며 보던 갈증을 매끼 너무나 맛있는 식사로 완전 날려 보낸 맛기행...70을 낼모레 바라보는 친구들이 웃고 떠들고 먹고 그저 즐기는 모습들이 좋았습니다...여행을 위해 수고한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밤새 앉아 있고 싶었네...별도 더 봤어야 하는데...
# 어릴적 친구들은 오랜만에 봐도 서먹함이 없네요...몇 십년 훌쩍 뛰어넘어 다시 재잘거리던 소녀로...나이들어 같이 놀 친구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나도 같이 동행한 느낌.
기록하면서
다녔는가?
어쩜 이리 세세히도
기억해낼 수 있는지?
넘 고맙구나...
수고한
모두에게...
병원에 누워 있는 친구. ♥
곧 쾌유의 소식을 전해주길...
미반 미녀교수님, 박경숙의 멋진 기행문을 읽으면서 가려고 했던 곳, 그런데 가지 못한 그곳을 상상(여행사진을 참고하며)속으로 따라가 보았습니당!
박경숙.. 2학년 때 내 짝꿍♡
넘 반갑다~~
함께 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보게 되길 ..